그제, 그리고 내일
특별시 사당동 남성시장 시장입구 양쪽에 약국이 서있습니다 그리고 그 옆으로 줄줄이 옷가게, 잡곡가게, 화장품집, 비뇨기과, 미장원, 신발가게, 모자점, 한의원, 건어물집, 모두가 골목처럼 어깨동무를 하고 서있습니다 그제는 파도횟집이 신장개업을 했고 어제부터는 청정야채가게가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직업소개소 간판을 다느라 골목길이 어수선하구요 골목시장을 끌고 가는 각설이 아저씨의 쨍하면 볕들 날이, 고래아저씨의 저 높은 곳을 향해서가 국수집, 나물집, 두부집, 곱창집, 짜장집 영양탕집, 통닭집, 피자집, 순대국집, 찐빵집 떡집, 집 집 집들에 시리고 아프게 스며듭니다. 특별시 사당동 남성시장 하늘에는 낮달이 전깃줄에 걸려 흔들리고 있습니다.
2020. 9. 12.
진눈깨비 내리던 밤
산다는 것이 잿빛 공기만 취하는 것이 아니어서, 바람처럼 구름처럼, 동에서 서로 불다, 흐르다, 갈대옆구리에 부딪치고 잔풀위에 앉아 쉬기도 하면서, 아니 가랑비에 숨죽이며 촉촉이 젖기도 하면서 그렇게 엎어지고 자빠지고 고들빼기처럼 고들고들 산다는 것 일진데, 왜! 이리도 가슴속에 살얼음이 얼고 뼈 속까지 시린지 진눈깨비덕인 것인지 아니면, 내 영토 끝자락 마라도 귀퉁이에 파도가 부서지는 것인지 내 함경도 옆구리가 부스럼이 난 것인지... 모래벌판에 하늘의 별만 총총히 그리며 걸어왔는데 어젯밤 내린 지랄 맞을 싸락눈, 아니 진눈깨비를 보더니 새삼 엊그제 그 진눈깨비, 산 넘어, 모래 글피 달음박질 때의 진눈깨비까지 가슴속이 진눈깨비로 쌓여가 가슴속 숨죽이던 가시들이 꿈틀거리고 아우성이다.
2020. 9.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