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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트렁크에는 무엇이 들어있나71

담쟁이넝쿨이 날갯짓하고 있다 담쟁이넝쿨이 날갯짓하고 있다 담쟁이넝쿨은 벽을 넘고 있는 푸른 화살 비틀거리는 사람을 보면 그 가슴에 화살을 숨겨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내 안에 층층계단 세우며 담쟁이넝쿨이 푸른 날갯짓을 한다 그럴 때 담쟁이넝쿨에선 땀 냄새가 난다 허공을 붙잡고 있는 담쟁이넝쿨 그 날갯짓은 아무나 따라 할 순 없다 담쟁이넝쿨이 허공이기에, 담쟁이넝쿨의 고향은 꽉 막힌 음지 어둠속에서 길 잃어버리면 그는 눈을 부라린다 땡볕에 주저앉아버린 사람도 그 뿌리가 담쟁이넝쿨이었을 것이다 절벽 가진 사람도 들숨으로 담쟁이넝쿨의 푸른 강물을 빨아들여야 한다 내 앞에 담쟁이넝쿨이 출렁이고 있다. 아니 허공을 푸르게 날아가고 있다 2022. 7. 2.
내가 부르는 노래 내가 부르는 노래 / 박흥순 지금도 내 가슴이 이렇게 아리는 것은, 노을 속으로 멀어져가던 당신 모습이 내 심장에 지문처럼 새겨져 버렸기 때문이다. 서리 내리고 감나무 잎 떨어지듯 당신에게서는 언제나 스산한 바람이 일곤 했었지, 아리기만 한 내 가슴에 당신은 웃으며 가시선인장이나 내밀어주었어, 봄 들녘이 그리운 나는, 볼 수 없는, 만질 수도 없는, 꽃을 가슴에 안고, 아지랑이 가물거리는 들판에서 당신의 향기를 찾아 떠돌았었지, 길 없는 산속에서 헤매기도 했었지만 그 어디에도 그대향기는 찾을 수 없었다. 구겨진 종잇장 같은 세월을 밟고 지나온 당신과 나의 사랑이, 흘러가는 구름이었거나 굽이쳐가는 강물이었다면, 나는 이렇게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여름 내내 은밀한 그림자만 물위에 출렁이다 소슬바람 불면 뼈.. 2022. 2. 25.
요양원의 아이 요양원의 아이 / 박흥순 아름다운병원 민들레병동404호실에 치매에 걸린 그녀가 있다 침대위에 환자복을 입고앉아 민들레꽃처럼 웃는다 내가 그녀의 손을 꼬옥 잡아보자 그녀의 손은 내 손보다 더 따뜻하다 “내가 누군 줄 알아?, 누구시요?” “오늘은 친구들이 많이 놀러 와서 기분이 참 좋다” 주름진 그녀 얼굴에 노란웃음꽃이 피어난다. 그녀는 서랍에서 홍시하나를 꺼내 내게 내민다. “맛있어, 먹어봐” 나는 그녀를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를 떠 올려본다 반지하방에는 화장지가 가득 했었다 약장수들을 찾아다니며 모아놓은 그녀의 제산이었다. “내가 무서운 꼴을 너무 많이 보아서,” 그녀가 갑자기 온몸을 진저리 친다. “무서워, 무서워” 웃음꽃 피던 표정은 어디로 가고 온몸을 움츠리며 떨고 있다. 영화배우보다 잘생겼다고 동.. 2022. 2. 2.
소요산 진달래꽃피어 소요산 진달래꽃피어 / 박흥순 그때, 등산객으로 꽃핀 소요산 정상 너는 날보고 진달래꽃 아래 돌덩이를 들춰 보라고 하였지 난, 산 아래로 날아가는 장끼 한 마리를 바라보면서 진달래꽃 아래 돌덩이를 들추어본 것뿐인데 산 정상이 웅성거렸어 돌덩이아래 분홍 학 한 마리가 날 기다리고 있었지 내손바닥에서 학이 날개를 퍼덕이는 순간 산 정상이 다시 한 번 웅성웅성 거렸어 학이 내 손에서 날개를 펴는데 내 얼굴도 진달래꽃처럼 붉게 물들어가기 시작했었지 흘러가버린 세월, 안개 낀 강변에서 말 타고 달리는 사람도 보았고 풀벌레소리 오색물방울 비비는 소리로 듣고도 싶어 했던 십 수 년 떠오르는 먼 소요산정상 그 진달래꽃 아슴프레 하기만한 지금 난 아직도 빈손, 오늘도 진달래꽃 붉기만 하여 봄 처녀 얼굴처럼 붉기만 하여 .. 2022. 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