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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다리꽃63

청계천시궁쥐 산책 나섰다  명물 청계천 1급수에 산다는 버들치가 올라왔고 밤이면 천영기념물 황조롱이가 왔다고 떠들고 시궁쥐도 벌써 청계천 가족부에 이름 올린지오래 그는 한해 새끼를 일곱 번까지 낳는다는 쟂빛 잡쥐다 시장이나 주택가에 살던 것들이 도로나 하수관타고 천변으로 왔다가 사람들이 버리고 간 이것저것 다 처먹고 신바람이나 간이 배 밖으로 나왔는지 사람들이 같잖은 것인지 비대해진 몸 흔들며 사람을 파리똥만큼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황조롱이 말똥가리 눈 부라리는 밤을 피해 사람들 활보하는 대낮에 나보라는 듯이 슬금슬금 어슬렁어슬렁 산책을 즐기는 청계천시궁쥐 사람들은 재미있다고 깔깔깔 웃는다 2020. 9. 12.
고시원의 낮달 도 과장님 사장님 회장님 다 할 수 있어 지금은 해떨어져 순댓국집으로 왔지만 찌그러진 한 그릇에 나는 또 다른 세상의 견습공이 되어봐 한 잔술 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갈 때 내 아이가 웃고 있어 아침은 햇살을 마시고 점심은 그리움을 떠먹고 저녁은 기름기 넘치는 순댓국 그래야만 내 야윈 창자속 기름기가 마르지 않아 그래야만 내 아이와 함께 웃을 수 있어 2020. 9. 12.
내일 퇴근길 발길로 냅다 걷어찼다. 쨍그랑 소리를 지르며 콘크리트 바닥을 굴러가는 깡통 전봇대아래 멈춘 찌그러진 깡통을 노려본다 회색빙 아귀에 발목이 잡혀있는 전봇대가 초저녁부터 술 취했느냐고 눈을 부라린다 깡통소리에 놀라 잽싸게 날아나던 고양이 한 마리도 가시담장위에서 두 눈을 부릅뜨고 노려본다. 그래, 오늘은 몇 번이나 걷어 차였던가 차라리 깡통처럼 쨍그랑 소리라도 질렀으면 전봇대가 발목이 붙잡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텐데 고양이가 나를 노려본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을 텐데 김과장과 박부장을 생각하며 냅다, 깡통을 다시 한 번 걷어찼다 쨍그랑! 골목길의 강통소리가 어둠속으로 달아나고 골목길을 보고 있는 초승달이 배시시 웃는다 2020. 9. 12.
문門 길가담벼락에 기대어있는 헌 문짝을 본다. 낡고 헤어진 모습에 지난 숨결들이 터져 나온다. 색 바랜 손잡이는 한 때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길을 느끼기도 했을 것, 때로는 우악스럽게 잡아 제치는 성난 손길에 겁먹었던 기억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버려진 채 골목길 담벼락에 기대어 차디찬 시선도 받지 못한 채 버려진 헌 문짝, 지나가던 어느 집 개가 한쪽다리를 들고 볼 일보고가는 그런 곳에서 비를 맞고 있다. 門은 여 닫을 수 있을 때만 문이다 부지런히 내 보내고 부지런히 받아들이며 경계를 허물어야만 門인 것이다. 門이 너무 오래 닫혀있으면 그것은 벽이다. 2020. 9.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