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다리꽃63 장대 빗속의 소녀 내 열일곱의 여름 장마철이었지 리어카에 짐을 가득 실고 구로동 소방서 앞 비탈길을 내리 달리던 짐꾼일 때, 버스정류장 앞이었어. 흠뻑 젖은 쥐새끼 꼴이 되어 뒤집힌 리어카 밑에서 기어 나와 비 쏟아지는 허공을 망연히 바라보며 눈물 흘리며 서있던 나에게 너는 말없이 다가와 우산을 받혀주며 처연한 눈빛으로 비를 맞았지 그 아이 부러웠던 책가방의 그 소녀가 가슴 아리게 생각난다. 2020. 9. 11. 어젯밤 꿈, 그리고 또 다른 세상 나는 어젯밤 이팝나무 아래서 너를 만났다(다음역은서빙고역입니다)그리고 둘이서 그 길을 걷고 또 걸어 물비늘 반짝이며 흐르는 강 언덕에 다다랐다, 그곳에서 바람과 구름 새들의 이야기를 푸르게 전해주던(젊은애기엄마가안고있는아이가울기시작한다)수양버드나무 아래서 서로에 눈을 바라보며 마주앉았지 그리고 너와 나는 은빛강물이 전해주는, 저 깊은 산골짜기의 이야기들을(다음역은왕십리역입니다) 전해들었다, 노을에 물들어가는 먼 하늘도 함께 보았지. 그 하늘에서는 어둠이 날개를 퍼덕이는 것도 보았다, 노을이 붉던(마스크를쓴여자행상이손전등을판다 )그 자리에서는별무리들의 한판 잔치가 시작 되었지. 그렇게도 보고 싶어 했던 별들의 잔치 너와 나는 아침이슬처럼 반짝이며(노인이쿨럭콜럭하자옆자리사람들이자리를피한다)그 황홀한 잔치를 .. 2020. 9. 11. 맹감 눈 덮인 산길 모퉁이 앙상한 줄기 가시만 꼿꼿한 맹감나무 아슬한 이파리 부르르 떨며 상처 난 붉은 미소 송송송 눈雪을 바라보고 있다 메마른 가지에 매달려 찬바람 맞으며 붉은 미소 짓는 저, 모습 일산 암병동 병실에 누워있는 "꼭" 그 사람 같아 울컥! 목 줄기가 붉어진다. 2020. 9. 11. 방전된 그녀 나는 보랏빛 그녀를 모시고 산다 어느 해, 뻐꾸기소리 들리던 날부터 그녀는 봄비처럼 나를 촉촉이 적시며 내게로 왔지 은밀히 만나야 하는 사람들까지도 그녀를 통해서만 만날 수 있고 그런 자리에도 그녀는 꼭 나와함께 해 한밤중에 찾아온 일면식 없는 사람들의 술주정 까지도 그녀는 꼭 듣도록 하고 말아 잠자리까지도 그녀와 함께 해야 하는 그녀는 나의 소중한 주인이 되었어 그러니 여행도 당연히 함께해 유달산에도 해운대바닷가에도 그녀가 있어야만, 파도를 바라 볼 수가 있고 갈매기와 눈도 맞출 수 있어 그런데 말이야 유달산 일등바위에서 그녀가 그만 숨이 멈춰버렸어 그토록 소중한 나의 주인인 그녀가 보랏빛 도금된 차가운 쇳덩어리 일뿐라니 2020. 9. 11. 이전 1 2 3 4 5 6 7 8 ··· 1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