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다리꽃63 그 때, 파도소리 아버지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로 어머니를 포박했고 묶인 어머니는 먼 바다만 말없이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안개 속처럼 아른거렸고 어머니는 파도소리에 묻혀 가고 있었다 먼 바다를 노려보는 내 두 주먹에는 어머니 한숨이 꽉 잡혔다 나는 씩씩거리며, 어머니 그럴 땐 손뼉을 치셔야죠 나는 알지 못했다 어머니가 왜 손뼉을 치지 않으시는지 언제부터인가 내발걸음은 새벽이슬에 젖었고 노을이지면 물동이 이고 언덕 오르는 아이가 되기도 했다 제 넘어 어머니생각에 아궁이 앞에서 비땅*을 태우기도 했다 파랗게 자라던 우물가 미나리 밭에선 참깨 꽃 같은 누이들이 시들시들 웃고 있었다 달빛이 귀뚜라미울음소리 찾아 내려오던 그 밤 파도소리는 늑대울음소리 같았다 날름날름 혓바닥 내밀며 불길은 타오르고 검은 연기가 오른다 비땅(부지깽이.. 2020. 9. 11. 베란다에서 우는 귀뚜라미소리 그가 아직 떠나지 않았는데 창문 틈 사이로 귀뚜라미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창문을 꼭 닫아도 문틈으로 스며드는 귀뚜라미소리 푸른 산들이 오색치마로 갈아입는다는 숨 가쁜 전언이다 비 내리던 날 흠뻑 젖어 걸어가던 내 모습 같기도 하고 안개 속으로누군가를 떠나보내던 마음 같기도 한 저 귀뚜라미 울음소리내 마음속으로 파고든다 귀뚜라미 울음 속에 박꽃이 피었고 귀뚜라미 울음 속에 할머니가 가셨지 귀뚜라미 울음 속에 그녀가 울었고 귀뚜라미 우는 이 밤에 나는 시를 잡으러 가는데 울고 있는 저 귀뚜라미 한 줌 흙에 심어놓은 나팔꽃나무 아래 슬픔이란 심는 것이 아니라 삭히는 것이라고 귀뜰, 귀뜰, 귀뜨르르... 삼 파장 불빛 속으로 스며드는 저 간절한 울음소리 조용하던 내 피를 끓게 하면서. 2020. 9. 11. 외나무다리를 혼자 건널 때 깊은 들숨이 필요하지 왼발로 외나무다리를 밟으며 눈길은 건너편 하늘의 토끼모양 구름을 쫒아가 거기, 말괄량이 삐삐가 앉아 손짓하고 있다고 생각해봐 발 거름이 한결 가벼워지지 않겠어 삐삐 얼굴에 박힌 점들은 밤하늘의 별들이라고 생각을 해봐 어때, 옛날 별들을 바라보며 함께 손가락 걸었던 그 아이 생각이 나지 않아 오른발을 잠시 멈추고 그 아이는 어떻게 변했을까 한번 생각해봐 지금도 당신의 동그란 웃음을 그리워 할께야 외나무다리가 흔들거린다고 그 아이가 다리 저편에 기다리고 있다 생각해봐 .왜.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 졌다고. 2020. 9. 11. 괴로움이 꿈틀거릴 때 빈 깡통을 콘크리트 바닥에 두고 망치로 찌그러뜨린다, 나는 망치를 들고 다니는 건축가이기 때문이다. 내가 새로 짓는 집은 시간이 흐르면 집 모양이 바뀌어 간다 창문이 꽈배기처럼 휘기도 하지만 중간층이 장구모양의 집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이상한 집을 짓는 이상한 건축가라고 수근 거린다 그렇다고 나는 주춤 하지 않는다 보라는 듯이 이번에는 창문이 하늘을 보며 놀고 있는 파란 집을 지었다, 창문도 파랗게 웃었다. 입이 머리통 뒤에 달린 사람들, 눈이 발톱 밑에 붙은 사람들, 그들이 보고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는 대신, 날아가다 똥을 싸고 가는 새들의 몸짓을 볼 수 있고, 웃고 가는 뭉게구름 사시로 쳐다보지 않기 때문이라고 큰소리쳤다, 사람들은 나에게 갸우뚱 건축가라고 한다 내 아버지가 사용하던 .. 2020. 9. 11. 이전 1 ··· 8 9 10 11 12 13 14 ··· 1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