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2일
사회제도의 개혁은 외면적인 형식을 바꿈으로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 목적을 위해서 방해가 되는 그것은 없다.
이 그릇된 생각은 사람들의 일을 그 목적에 따르지 못하게 하며, 도리어 사회제도의 개혁을 위해서 필요한 일에서 멀리 떨어지게 하는 것이다.
1
사회제도는 인간의 의식 여하에 달린 것이지 과학에 의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문화란 무엇보다도 먼저 도덕의 문제이다.
정식 권리와 의무에 대한 존경, 이웃에게 대한 사랑ㅡ간단하게 말하자면 도덕 없이는 모든 것은 위험하며, 멸망하고 마는 것이다.
과학도, 예술도, 공업도, 정치도, 도덕 없이는 기초 없는 공중누각과 같은 것이다. 단순히 이해계산과 무장 공포 위에 기초를 둔 국가는 믿을 수 없는 무너지기 쉬운 것이다.
대중의 좋은 덕성, 그리고 그 덕성의 충분한 표시 그것만이 모든 문화의 기초로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초석이 되는 것은 의무의 관념 그것이다.
조용히 자기의 일들을 완수하고, 사람들에게 좋은 모범을 보이는 사람은 빛나는 사회에 배한 조력과 지지를 실현하고 있는 사람이다.
민중을 그 사악과 파멸에서 건져내려면 수십만 명의 착한 힘이 필요한 것이다. <아미엘>
2
사상의 진정한 방향은 지상적인, 혹은 정신적인 권력을 위하여, 새로운 법칙을 세우는 그것이 아니다.
인간의 개성을 인정하고 그 속에 숨겨져 있는 힘을 발견하는 그것이다. 이와 같은 방향을 취하는 사상이 인류의 진화에 공헌할 수 있는 것이다.
장님에게 이끌려가는 장님은 슬퍼해야 할 여러 가지 시도가 행해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가 독단과 권위와 도덕적 공식의 돌덤 속에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이아토스>
3
그리스도교와 사회주의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 하는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두 개의 것은 비교조차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처럼 그 본질은 다른 것이다.
그리스교는 이 세계의 영원한 의의에 대하여, 신에 속하는 것에 대하여 따라서 우리들의 전신적 본질의 불멸에 대하여 인간의 사명에 대하여 그리고 그 사명에서 일어나는바 물질의 결핍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허용될 수 있는 가장 올바른 방법을 가르친다.
사회주의는 그리스도교에 비교한다면 제이의 적 문제, 즉 인생의 의의에 대하여 가장 외면에 있는 노동계급의 물질적 결핍문제에 대해서 가르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와 사회주의가 공통한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다. 즉 그리스도교인 나도 사회주의의 이론에 흥미를 가지고 그에 따를 수는 있다. 그러나 오늘은 그리스도교도이며, 동시에 사회주의자일 수는 있어도 내일은 이미 흥미를 잃어버릴 것이다.
그리스도와 사회주의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어떻게 재기할 수 있을 것인가. <표돌 톨스토이>
*
허위라 인정되는 일에 복종을 덜게 할 수 조차도 없는 것이다.
◆ 상처 입은 사람들
여관에 도착했을 때, 밖은 대단히 더웠음으로 나는 발코니로 나가 앉았다. 눈앞에 태양빛을 반사해가며 긴 도로가 뱀처럼 구불구불 뻗어 있었다. 그 길은 산기슭을 따라서 가늘고 길게 멀리 해안선까지 연해 있었다.
빨간 숯으로 장식을 하고 방울을 울리면서 몇 필의 노새가 술다루를 싣고 간다. 보고 있으려니, 여간 신중한 걸음걸이다. 천천히 걸어간다. 그러자 그 행렬은 저편으로부터 달려온 마차에 의해서 혼란을 일으켰다. 마부가 채찍을 휘두르며 큰소리로 소리친다. 노새의 행렬은 낭떠러지 가로, 몸을 부쳐버린다.
마부는 마차를 향해 욕지거리를 한다. 그러나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 쓴 마차는, 그대로 내 달려서 내가 앉아있는 발코니 밑에 와서 섰다. 마부는 뛰어내려 말을 마차로부터 풀기 시작했다.
국제수비병의 제모를 눌러쓴 건장한 여관주인이 마차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마차 안에 탄 귀족인 듯한 손님에게 인사를 했다. 두 번이나 절을 했다.
그러자 그때까지 마부대에서 잠을 자고 있던 시종은 비로소 잠을 깨고 하품을 하고 땅위에 내려섰다.
(마부대에서 저렇게 졸고, 게다가 대단히 양이 큰 사람처럼 저런 하품을 하는 것을 보니, 저 종은 분명히 로서아 사람임에 틀림이 없을 게야)
하고 나는 생각하며, 그 사나이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먼지를 뒤써서 뽀얗게 된 노란 수염, 넓적한 코, 입수염에서 쭉 이어져 얼굴의 반쯤이나 가린 구레나룻들, 그 외의 여러 가지 로서 아인 특유의 모습은 나로 하여금, 그 시종을 펜사지방이나 탐바지방, 혹은 시베리아지방 태생임에 틀림없으리라고 생각게 하였다. 여하간 먼 이국에서, 뜻밖에 동국인을 만났다는 것은 무엇인지 모르게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 마차에서 삼십 전후의 사나이가 내려섰다. 행복하고 유쾌하며, 또 즐거운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관대해 보이고 소화기능도 대단히 순조롭고 신경질이 조금도 없어보였다.
가는 줄이 달린 안경을 걸고 그 마차의 승객은 좌우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어린애처럼 단순한 표정으로 아직 내리지 않은 동행인 사나이에게 말했다.
『참으로 비할 바 없는 좋은 경치군요. 이태리입니다. 참으로 이태리답군요, 하늘은 푸르고 마치 청옥과 같지 않습니까,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이태리라 하겠습니다. 그려.』
『아우이니온서부터 군은 이것으로 여섯 번이나 같은 말을 하는 셈이 되네.』
동행인 사나이는, 피곤한 듯하고 신경질적인 듯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면서 천천히 내려왔다.
둉행인 남자는, 마르고, 키가 크고, 나이가 훨씬 들어 보이는 남자였다. 산뜻하게 눈에 뜨이는 초록색 외투가 단 하나의 색채였다. 백마 모자 밑으로, 먼지를 쓴 흰머리가 보였다. 힘없는 눈은 짙은 눈썹으로 가리우고 병자인 듯한 초조한 안색은 회색이라기보다도 누런색을 띄운 녹색으로 보였다.
그 가냘프게 보이는 사나이는 말없이 동행인이 가르치는 쪽을 바라 보았다. 그러나 경탄의 소리를 내지도 않고 또 만족한 듯한 빛도 보이지 않았다.
『이것이 모두 오리부나무입니다. 오리부나무 뿐입니다.
하고 젊은편 사나이는 말했다.』
『오리부의 초록색은 단조해서 실증이 나네.』
하고 누런색을 띤 녹색의 사나이는 말했다.
『로서아의 백화가 훨씬 아름답지』
젊은 사나이는 그렇지 않다는 듯이 머리를 흔들었다. 그러나 말대답을 하지 않고 눈을 위로 돌렸다. 그 사나이의 얼굴을 나는 본적이 있다.
그러나 어디서 언제 보았는지는 생각이 안 났다. 로서아 사람이란 외국에 오면 묘하게도 알아 낼 수가 없게 된다.
로서아에서는 독일식으로 머리를 깎고 다니던 사람도 외국에 오면 로서아식으로 거의 믿을 수 없으리만치 속히 수염을 텁수룩하게 기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오래 생각해 볼 필요가 없었다. 젊은 편의 남자는 오리부 나무를 보며 즐겨하던 그대로의 선량하고 걱정 없는 듯한 표정을 하고 내 곁으로 달려 와서, 로서아 말로 소리쳤다.
『야 이거 참 뜻밖이로군, 개도 걸어가면 돌부리에 차인다고. 저를 모르세요, 옛 친구를 잊다니 좀 심하신데』
『생각납니다. 알겠어요. 너무 모습이 변하셨으니 알 도리가 있어야지요. 어째 수염이 그렇게 자랐으니, 그렇지만 참 탐스러운 수염인데요. 마치 우유로 기른 것 같군요』
『수염은 났지만 이는 안 빠졌어요.
하고 그는 뱃속에서 우러나오는 듯한 웃음을 웃으며 대답했다. 그럴 때, 늑대라도 탐낼 만한 튼튼한 이가 들어났다.』
『그러나 당신도 늙었군요. 아주 변하셨습니다. 어떻습니까, 요사이는? 무슨 흥미 있는 일이라도 없습니까? 벌써 헤어진 지 사년이나 되었으니, 유수는 쉬지 않고 흐르더라, 라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이런 곳까지 오시게 되었습니까?』
『환자와 동반해서…….』
이사나이는 모스크바대학의 의사였다. 그리고 해부학의 조수노릇도 하고 있었다. 꼭 오년 전에, 나도 해부학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친하게 된 사람이다. 선량하고 직무에 충실한 청년이었다.
대단한 근면가여서, 열심히 공부했었다.
그러나 아주 요령이 좋은 사람으로,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는 전혀 머리를 쓰지 않고, 다만 해결된 문제만은 무엇이나 똑똑히 외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습니까. 그러나 저 환자는, 어찌 저런 안색을 하고 있습니까? 아주 녹색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저런 환자는, 이런 이태리 같은 곳에서는 결코 찾아낼 수 없을 것입니다. 두뇌는 건전하지만 여기가 나쁩니다.(하며 그는 손끝으로 자기의 가슴을 가르쳤다.) 그래서 제가 그 치료를 맡아 보고 있습니다마는, 이런데서 옛 친구를 만났다고 갑자기 말해 주면 끔찍이 놀랄 것입니다. 저런 환자에게는 기분을 전환시켜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주 심한 우울증이 있답니다. 그것이 마니아의 증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때로는 하루 종일 한마디도 않는 적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떻게 하다 아주 말을 많이 하는 때가 있답니다. 그리고 머리카락을 곤두세우고 흥분하고 맙니다. 어떠한 것에든 대꾸를 하지 않습니다. 여하간 정신 상태가 대단히 이상합니다.
아마 여자에 관한 일에 원인이 있다고도 소문이 있습니다마는, 확실한 것은 모르겠습니다.
그러한 일도 있기는 있었던 모양이나, 성질은 대체로 온순하고 선량한 사람입니다마는, 이런 외국에까지 오기는 싫다고 우겼답니다.
그러나 친척 사람이 억지로 설복시키고 말았습니다. 친척 사람들은 모두 저 사람을 어디 먼 곳으로 보내려고 하고 있답니다. 저분이 문지기나 하인들에게 무엇을 말할까 해서 경계하고 있답니다. 경찰에 가서 고발이나 하지 않을까 해서 두려워하고 있답니다. 아마 땅 문제인지 무엇 때문에요.
저 사람은 그러면 시골로 가겠다고 말했답니다. 그러니까, 저이 누님이 저이가 가지고 있는 토지와 무슨 관계가 있어 누님이 놀래 버렸답니다. 농부들에게 공산주의를 선전하게 되면 곤란하다고 인지 무어라고 말하면서요. 아마 꾸어간 돈의 잔금인지, 또는 딴 문제가, 얽혀져 있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저 사람은 남부 이태리로, 치료받기 위하여 가는 것이 좋다고 억지로 승낙을 시켰답니다. 그래서 가라부리아를 목표로 하고 떠나왔답니다. 바로 이 당신의 옛 친구가 충실한 시의의 역할을 하는 셈이죠.
뭐, 도둑이나 중밖에는 없다는 곳이니, 저는 말세이유에 오는 도중에서 피스톨을 샀습니다. 사연발짜리를요.
『그렇습니까. 그러나 여간한 일이 아니겠군요. 늘 그런 병자와 함께 있는 것은 그러나 벽 위로 기어오른다던가, 벽 흙을 마구 먹는다는 환자는 아니니까요.』 저래도 저 사람으로서는 내가 마음에 드는 모양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한 마디도 입 밖으로 표시하지 않습니다마는, 무어라고 말을 듣게 되는 것이 싫은 모양입니다.
그러나 저는 만족하지요. 아주 대만족이랍니다. 제반 비용은 전부 저편에서 부담하고 그 위에 일 년에 십 만원의 용돈을 타게 되니 말씀입니다. 담배 한 개비, 내 돈으로 살 필요가 없답니다.
저 사람은 그런 일에 대해서는 여간 꼼꼼하답니다. 하여간 이 세상에는 뜻하지 않은 일이 많습니다. 어째든 저의 『기특한 사람』 을 만나보아 주십시오. 이리 데리고 올 터이니 사실 한 시간쯤 함께 있으면서 식사라도 하면 대단히 선량하고, 도 아주 현명한 사나이라는 것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네 정신 이상만 아니라면』
『그것은 어느 편이든 상관없습니다마는, 어찌했던 불행한 사람입니다. 놀랍게 해서 기분을 전환시켜 주는 것이 제일 효과가 있습니다.』
『저를 약 대용으로 쓰시려는 셈입니까?』
하고 나는 말했으나, 그때 벌써 의사는 복도를 따라 나는 듯이 뛰어가 버렸다.
나는 그의 그러한 희망이나 타인의 의사에는 상관치 않는 로서아식인 점이 마음에 안 들었으나, 그의 녹색 환자의 ⨯⨯⨯⨯의 지주는 내개 흥미를 갖게 했다. 그래서 나는 거기 남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안 되어 환자는 나타났다. 어물어물하고 부끄러운 듯한 표정이다.
그리고 필요 이상으로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신경질적인 웃음을 지었다. 그의 얼굴의 근육은 이상하게도 잘 움직였다. 그리고 그 때문에 그 표정은 기묘하고 걷잡을 수 없는 동요를 보였다.
표정은 자꾸 변했다.
우울한 표정에서 웃는 얼굴이 되나하면, 때로는 전혀 무표정한 모습을 지니기도 했다. 그의 눈은 언제나 아무데도 보고 있지 않는 것 같게 보였으나, 그 속에는 늘 무엇인지 한 가지 일에 전 정력을 집중시키는 습관과 같은 것이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두뇌 속에서 행하여지고 있는 무엇인지 이상한 노고를 볼 수가 있었다.
눈썹 의를 뒤덮다시피 한 이마 전체에 잡혀진 주름살은 그 고생의 소산임에 틀림이 없다. 이와 같이 주름살 잡힌 이마의 뼈 아래 싸여있어서는 일 년이라도 견디어 낼 수 없다는 것은 지당한 말이다. 안면의 근육이 그렇게도 잘 움직이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에우게니 니크라이치』
하고 의사는 말했다.
『소개 하겠습니다. 참으로 뜻밖의 일입니다. 이런 곳에서 옛 친구를 만나다니ㅡ더구나 함께 개난 고양이를 함께 해부하던 친구랍니다.』
에우게니 니크라이치는 미소하며 중얼거리는 정도로 말했다.
『대단히 기쁘게 여깁니다. 참으로 의외의 곳에서......』
『단신은 기억하고 계십니까?』
하고 의사는 말을 계속했다.
『우리들이 수이채후의 개를 잡아가지고 와서 해부하여 미주신경을 연구하였을 때 일을?』
에우게니 니코라이치는 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창밖을 내다보면서 두 번이나 기침을 하였다. 그리고 나를 보며 말했다.
『로서아를 떠나오신지 오래 됩니까?』
『오년이 됩니다.』
『그러면 여기 생활은 아주 잘익으셨겠군요.』
하고 말하면서 얼굴을 붉혔다.
『예 아주 익숙해 졌습니다.』
『그렇지만 외국의 생활이란 대단히 불유쾌하고 단조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로서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하고 의사는 예사로 말해 버렸다.
그랬더니 갑자기 전혀 의외로 에우게니 니코라이치는 심히 웃기 시작했다. 배창자가 끊어지게 웃어대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참 동안이나 그 웃음을 멈추려고 애쓰다가 띄엄띄엄 말을 하기
시작했다.
『언제나 자네는 내 말에 반대하는군, 휘맆다이니로이치군. 하하, 하. 내가 이 지구는 되다만 유성이다. 그렇지 않으면 병든 유성이라고 하나 이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내가 외국 생활은 단조하다고 하나 어찌해서 그 반대로 로서아의 생활이 단조하다는 것이 되는지요?』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한층 웃어댔다. 그리고 드디어는 이마의 혈관이 심히 충혈 되어 버렸다.
의사는 내게 교활하게 눈짓을 했다. 이것 보라는 듯이. 그 의사의 표정을 보니, 나는 이 자가 묘하게 불쌍하게 여겨져 왔다.
『어찌해서 지구가 병든 유성이 아니라 할 수 있을까요?』
하고 에우게니 니콜라이치는 진취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병든 인간이라는 것도 잊지 않습니까?』
『그것은』
하고 의사는 나를 대신해서 대답했다.
『유성은 감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경이 없는 곳에 병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자네는 우리들, 인간을 기본삼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병에는 신경이 필요 없다. 포도에 조차 병이 있다. 감자에도 역시 병이 있지 않은가? 나는 알고 있어요.』
얼마 있지 않아 지구가 파괴되어, 궤도에서 떨어져, 어딘지 모르게 날아가 버린다는 것을 알고 있지요. 아주 재미있는 일이 생기게 될 것이다.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또다시 웃기 시작했다. 가라부리아나 니코라이 파우로이치나, 나나, 자네나, 모두가 날아가 버릴 것이다. 그리고 자네의 피스톨조차 아무런 필요성도 없게 될 것이다.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또다시 웃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 나를 보며, 매우 긴장해서 말했다.
『이대로는 살아나갈 수는 없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일어나지 않으면 안됩니다. 현제의 진화는 전혀 실패입니다. 반드시 무엇이든지 간에 일어날 것입니다. 우주 창조시 부터 달이 지구로부터 떨어져 나간이래로 무엇인지가 잘 되어가지 않고 있습니다.』
정당한 과정을 밟고 있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병의 징조는 현저했었습니다. 지구가 지질학적인 변화를 일으킨 때부터 무엇이가의 나쁜 열을 그 속에 감추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월은 그 위를 달리고 있습니다마는 병세는 차츰, 더 그 흔적을 남겨 가고 있습니다. 평형이란 것은 없어지고 유성은 공간으로부터 공간으로 방황하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의 양의 방면에,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 나타났습니다. 예컨대, 크나큰 짐과 같은 도마뱀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잎사귀 한 장으로 능히 경기장을 덮을 수 있는 큰 양치류가 무성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서 이와 같은 것은 모두가 죽어 버리지 않았습니까?
이런 굉장히 큰 몸집을 한 것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현대에 있어서는 모든 것이 질(質)적 방면에 있어서 한층 더 나쁜 상태에 있습니다.
뇌수도 신경도 혼란의 궁극에 달하고 총명과 우매의 구별을 하지 못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멀지 않아 역사는 인류를 멸망시킬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이 비록 무어라 하실지라도 또 아무리 놀라시더라도 인류는 멸망할 것입니다.
단숨에 이만큼 떠들고 나자, 니코라이치는 다시 입을 닫아버렸다.
드디어 식사 시간이 되었는데, 그는 참 적게 먹고 술도 조금밖에 안 먹었다. 그리고 식사 중엔 다만 그렇습니다. 아니요, 하는 말 외에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식사가 끝이 나가자, 그는 갑자기 기운을 내서 컵을 내밀어 술을 가뜩 따르라고 했으나, 한 모금 마시자 상을 찌푸리고 컵을 내려놓았다.
『왜 그럽니까, 맛이 없습니까?』
하고 의사가 물었다.
『맛이 없어』
하고 환자는 말했다. 그러자 의사는 여관 주인을 나무랐고, 급사 아이를 야단쳤다. 그들의 탐욕 함을 자못 크게 놀란 듯이 꾸며 가며 그들의 이기주의를 비난했다. 그리고 사십오 퍼센트나 물을 타서 손님을 기만한다고 공격했다.
에우게니 니코라이치는 자기는 상관없다는 태도로 무엇을 의사는 노하고 있는지 자기는 모르겠다는 것, 또 여관주인이 어째서 하는 김에 육십오 퍼센트의 물을 타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 사가는 손님이 있는 동안은 태연하게 물탄 술을 팔고 있던 여관 주인은 참으로 현명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는 둥…….을 내게 이야기 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그의 도덕적인 의견 가운데 우리들의 식사는 끝났던 것이다.
이 병자인 지주와 처음으로 만난 이야기를 한 후부터 나는 그의 병적인 두뇌가 극히 독자적이며, 대담한 곳이 있다는데 놀래고 말았다. 그에게는 확실히 모자라는 곳이 있었다.
그러나 의사의 의견에 의하면 그는 풍부한 지주며, 한 평생을 통해서 크나큰 불행과 큰 혼란을 받을 만한 환경에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고 했으나, 나는 이 선량한 옛 친구의 관찰을 믿을 수는 없었다.
우리들은 함께 제노아로 갔다. 그리고 어느 때 인가의 동란으로, 망해버린 귀족이 경영하고 있는 여관에 머물렀다. 에우게니 니콜라이치는 나의 여러 가지 이야기에는 별로 흥미를 보이지 않았으나 지극히 싫어하는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의사와 그와는 늘 말다툼만 하고 있었다.
시무룩한 우울증의 시간이 오면 그는 사람들 틈을 벗어나서 방에 처박혀 있었다. 그리고 파리한 얼굴을 하고 떨고만 있었다. 때로는 그의 눈은 울고 있던 사람같이 보일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의사는 그가 혹시 자살이나 할 가해서 여러 가지 어리석은 주의를 한다. 면도칼이나 피스톨을 감추어 버리고 신경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가지가지의 약을 조제해 주어 그를 괴롭혔다.
혹은 좋은 냄새가 나는 따뜻한 목욕탕에 그를 억지로 넣기도 했다. 환자는 그럴 적마다 기분 상하게 여기고 귀찮은 듯이 반항ㅇ을 해보기도 하고 혹은 또 제멋대로 자라난 어린애 모양으로 말하는 대로 복종했다.
우울증이 지나면 그는 조용한 말이 적은 사람이 된다. 그러다가 갑자기 저수지 수문이 터지듯이 떠들어 대기도 하는 것이다.
꿀리는 듯한 웃음을 폭발시켜 신경질적으로 목을 울리고, 그러다가 도중에 심한 기침이 나서 말을 멈추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듣는 사람은 늘 음울한 초조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의 기묘한 역설적인 의견은 그 자신에게 있어서는 구구를 외우는 것이 간단하고도 쉬운 일인 것 같았다. 그의 견해는 그 자체에 있어서는 정확하고 그가 기초 잡고 있는 근원에서 순서 있게 유도된 것이다.
그는 여러 가지 일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떠한 것에서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것이 관학(官學)적인 의사의 의견과 충돌하게 되는 것이었다. 의사는 무엇에나 결론을 내리게 될 때에는 큐배와 훈볼트를 인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째서 나머지 훈볼트가 생각하듯이 생각하면 안 됩니까. 훈볼트는 박식하고 그리고 널리 이 세상을 돌아다닌 사나이다.
그가 본 것, 생각하는 것을 안다는 것은 대단히 흥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나머지 그와 독 같은 사고방식을 가져야 한다는 의무는 없다.
훈볼트가 무슨 옷을 입고 있었다고 나도 푸른 옷을 입어야 한다는 말인가. 현제 자네 자신도 모세를 믿지 않고 있지 않나』
하고 에우게니 니콜라이치는 자신 있는 말로 대답했다.
『그러나 말일세, 에우게니 니코라이치는 종교와 과학의 구별을 인정하지 않는 답니다. 이것은 어떠한 일인가요.』
하고 의사는 모욕을 당한 듯이 나를 보고 말했다.
『그별은 없다.』
라고 에우게니 니코라이치는 자신 있는 말로 대답했다.
『종교와 과학과는 두 가지 단어로써 표현 되어 있으나, 동일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종교는 기적에 그 기초를 두고 있고, 과학은 이성에 그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종교에 있어서 필요한 것은 신앙입니다. 그러나 과학에 있어서 필요한 것은 지식입니다.』
『기적이라는 것은 종교에도 과학에도 있는 것이다. 다만 종교는 기적에서 출발하는 것이며 과학은 기적에 가까워 간다는 차이점 밖에 없는 것이다. 종교는 하느님이 내리신 것이라는 의미에서 지식으로써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그러나 인간보다도 총명한 지식이 있어서, 그 지식이 이러 이러 하다고 설명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며, 과학은 기만을 낳으면서, 모든 것을 이리 저리 하여 이해하였다고 공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어는 것이든 본질에 있어서는 인간은 모든 것을 이해할 능력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데 불과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사실을 인정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인간의 타고난 약점 때문에 어떤 이는 모세를 신뢰하고 어떤 이는 쿠배를 신뢰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어디 참된 믿음이 잇는 것이냐?
어떤 자는 하느님이 짐승이나 초목을 찬조하셨다고 말하며, 어떤 자는 생활에서 그와 같은 것을 창조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지식과 천계의 사이에는 서로 상반되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다만 신앙에 대한 회의와 인정 사이에 상반되는 것이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가령, 내가 병리학상의 사실을 유기체의 관성에서 찾아내서 이해하고 있는데 어찌해서 그것을 신앙에 의해서 승인하지 않으면 안 됩니까?』
『그렇다, 그와 같은 경우에는 그럴 필요가 없다. 허나, 자네가 아니라, 다른 어떤 이는 그 관성이란 것을 알지 못하니까, 신앙에 의해서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는 것이다.』
『참으로 훌륭하신 이론이십니다.』
하며 나는 농담 비슷이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단신이 빨리 완쾌되는 날에 니코이 빠으로이치가 당신을 문교부장관으로 인명 한다 하더라도 저는 조금도 놀라지 않을 것입니다.』
『모욕하지 마십시오, 정말 저를 모욕하지 마십시오.』
하고 그는 진정으로 말하며,
『그리고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허튼 소리로 취급하지 마십시오. 저 자신도 루쏘를 농락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보테유가 네발로 걸어 다니는 연습을 하는 것은 이미 때가 늦었다고 루쏘에 대해서 편지를 쓴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어디서부터 일어나게 되는가 하는 것을 이해하기 까지는 여간한 고통스러운 고민을 겪어 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해한 후에, 이렇게 신체를 해한 것입니다.
저는 아무에게도 그것을 말하지 않고 잠자코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번민과 슬픔이 점차적으로 더해가고 악이 점점 노골화하여 지기 때문에 나는 진리를 세상에 공개하려고 결심했습니다.
우리들은 멸망하여 가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영원한 타락의 희생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기네의 선조 대대의 죄악의 지불청산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어떻게 하면 살아갈 수 있는지요. 그러나 다음 시대는 그것을 이해할 것입니다.』
라고 말을 이었다.
『단신의 지론이겠습니다. 결국 인간이 건강한 상태로 되는 것은 진화 대신에 퇴보가 인류를 찾아 올 때에만 가능하다는 말씀이지요. 옛날의 원숭이로 돌아갈 목적으로 인류가 퇴보해 갈 때 말씀이지요.』
하고 의사는 새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말을 했다.
『인간이 동물에 가까워지려는 시도는 인간이 천사가 되려는 것과 마찬가지로 실패하게 됨은 당연한 잉ㄹ이다.
모든 동물에게는, 당연히 있어야할 생활상태가 있다. 본질을 바꾼다는 그것은 항상 위험한 일이다. 강물은 우리들에게 있어서 바다를 보다 더 친하기 쉬고 깨끗하게 생각되는 것이다. 그러나 강물에 바다의 생물을 집어넣으면 죽어버릴 것이다.
인류는 상상되는 바와 같이 풍부하게 자연의 해택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류의 신경이나 두뇌의 병적인 발달은 어떤 사람을 현혹 시키고자 본연적이 아닌 그리고 인류에게는 너무 높은 생활로 끌어들이고 있다. 』
그리고 그 생활 가운데서 그 사람들은 파멸의 길을 걷고 폐병이 되어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다. 인류가 이 병적인 상해를 파괴할 때에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인도에 잇는 사람들을 보시오, 자연은 풍요한 선물을 주고 있다.
생활에 대한 국가적인 혹은 정신적인 상처는 없었다. 유기체의 생활을 지배하는 두뇌만의 우월이라는 것은 인정되지 않았다. 세계의 역사도 그들만은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들은 인간으로서 될 수 있는 한 좋은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저주할 동인도 상회라는 것이 생기게 되어 전력으로 그것을 파괴하고 말지 않았는가.
『그렇지만』
하고 의사는 말하였다.
『민중은 그와 같은 것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 그 점이 나의 이론에 대한 가장 중요한 증명이다. 자네가 민중이라는 것은 이런 경우에는 인류라고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허나 인류는 자기들이 갈망하고 있는 생활을 허용 받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불행이 있는 것이다. 교육을 박고자 한다면 대단히 비싼 돈을 지불해야 한다.
00국교 00은 하류계급에 기아의 원인을 자아내는데 지나지 않는다. 그와 같은 것은 다만 하류 계급을 망하게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류계급의 눈앞에서 자기의 재산을 계산하고 야비한 악의 취미를 발달시키고 불필요한 요구를 부과하고 필요를 만족시키는 수단을 빼앗아가는 것에 지나지 않다.
얼마나 불행하고 그리고 가슴을 아프게 하는 상대이다. 하중에서는 노역으로 시달리고 기아 때문에 고통 받는 대중이 득실거리고 있다.
그리고 그 위에는 굶주린 대중들에게 식량이 부족하고 보수가 적음을 골똘히 생각하고 사생에 지친 다른 불쌍한 사람들이 목이타고 말려들고, 실망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질병과 고뇌에 쫒기며, 악한 생활 때문에 열병에 걸리고 미친 듯한 신경 때문에 폐병에 시달리고 있는 이 두 가지의 층계사이에는 문명의 아름다운 꽃이 피고 문명의 총아가 뛰놀고 잇는 것이다. 모든 그것을 향락할 수 있는 인간들이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은 인간들이란 어떤 사람들인가? 우리들도 알고 있는 지주들이다. 혹은 이 부근에서도 볼 수 있는 상인들이다.
그러나 이세상의 자연이란, 그것을 나무레지 않는다. 그리고 목을 베는 사라보다 참혹한 배신행위에 스스로가 도장을 찍고 있는 것이다.』
하며, 그는 방안을 거닐면서 말을 했다 . 그리고 갑자기 거울 앞에서 멈추었다.
『보십시오, 이 얼굴을! 하, 하, 하. 얼마나 무서운 얼굴인지. 이 얼굴은 어는 농부의 얼굴과 비교해 보십시오. 그 무서운 복잡성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나와 같은 이런 찌그러진 얼굴에는 관리나 상인이나, 학자나, 귀족이나, 기타 모든 그와 같은 사회의 세력을 받은 자들이 속하고 있는 것이다. 가냘픈 골격과 근육을 가지고 류마치스에 걸리고 어리석은, 안한, 미소한, 무지하고 비열한 자들이 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나와 같이 삼십 오세에 이미 폐인이 되고, 힘도 필요 없고, 그의 일생을 두 종류의 사람들 사이에서 겨울의 후추 풀과 같이 무익하게 모배고 잇는 자들만이 속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의 야생의 편안히 필요하다. 바빌론의 탑과 같은 사회 조직을 구성하는 그것은 이 이상 필요치 않다! 현제의 모든 것을 정지시켜라ㅡ 그렇다! 이미 필요한 것을 추궁하지마라!
자연 그대로의 포근한 침대가 잇는 집에 들어가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자치적인 야성의 의지를 존중하고 자유를 얻을 때가 닥쳐온 것이다!』
이렇게 말하며 이마의 핏줄이 불룩 솟아올랐다.
그리고 갑자기 괴로운 듯이 상을 찡그리면서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그대로 완고하게 입을 닫고 잠잠해 졌다. <아게르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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