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9일
동물로서의 인간은 죽음에 배반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성에 의해서 인간은 언제나 다음과 같은 것을 인정할 수 있다.
즉 인간의 죽음에 대한 태도는 순종할 뿐만 아니라 동의해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1
생활은 죽음에 유사한 그 아무것도 느끼게 하지 않는다. 아마 그럼으로써 우리들 속에 끊임없이 이를 어둡게 하고, 죽음이 불가피적이라는 확신을 움직이려는, 기계적이고 본능적인 희망이 생기는 것이리라.
생활은 현실을 고수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동화속의 앵무새와도 같이 목을 졸리는 순간 까지도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를 되풀이 하는 것이다. <아미엘>
2
최후의 때가 와서 죽음이 가까워지면, 정신적인 본원은 육체에서 떠난다. 그리고 그것이 육체를 뒤에 남기고 초시간적이며 초 공간적인 모든 것의 본원과 하나가 되는 것인가, 또는 또다시 다른 유기적인 형태 속에 옳아가는 것인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우리들은 다만 육체가 자신을 살리고 있던 것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다만 해부 대상으로 되어 버린다는 것만을 알고 있을 따름이다.
3
그대는 이 세상에 자신으로서는 이유를 모르고 태어난 것이다. 허나 지금 살아있는 것과 같은 그대로서 태어난 것임을 그대는 알고 있다.
그리고 이 세상에 태어난 이래 그대는 거침없이 걸어 왔다.
길을 반쯤 오면 갑자기 즐거움도 놀라움도 느끼지 않고 다닌 그 장소에서 움직이기 싫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앞에는 무엇이 있는가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대는 그대가 온 길도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알지 못한 채 걸어온 것이 아닌가? 그대는 입구로는 들어갔으면서도 출구로는 나가기 싫다고 하는가?
그대의 생활이란 모두가 그대의 육체를 거쳐 가는 것이다. 그대는 걸어 나아가고 급하게 걸어 나가고, 그리고는 별안간 이제까지 걸어온 그 걸음을 끝까지 계속하기가 슬퍼지는 것이다.
그대는 육체의 죽음에 의하여 그대의 상태가 아주 변화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그대의 탄생에 의하여서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 변화에서는 그 무슨 오히려 나쁜 것이 생긴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그대가 지금 떠나기 싫어하는 그러한 좋은 결과가 생긴 것이 아닌가.
4
죽음의 고통 그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죽음에 대해서 반항하도록 한다. 그러나 또 이 고통으로 그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죽음을 원하도록 강요하는 것이다.
5
죽음이란 인식의 대상의 변화이다. 또는 그 대상의 소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식 그것은 구경의 장면이 바뀌어도 구경꾼은 없어지지 않는 것과 같이 죽음으로 인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
만약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우리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믿으며 이 생활의 근원에 행복이 있다고 믿는다면 ㅡ 우리들의 죽음으로 인해서 수행되는 모든 것을 우리들의 행복을 위해서 수행되는 것이라고 믿자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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