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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이 있는 시

샤를르 보들레르 /신청옹 외

by 바닷가소나무 2015. 9. 4.


신천옹(信天翁) / 들레르

 


흔히 뱃사공들은 장난삼아서
크낙한 바다의 새, 신천옹을 잡으나
깊은 바다에 미끄러져 가는 배를 뒤쫓는
이 새는 나그네의 한가로운 벗이라.


갑판 위에 한번 몸이 놓여지면
이 창공의 왕은 서투르고 수줍어
가엾게도 그 크고 하얀 날개를
마치도 옆구리에 노처럼 질질 끈다.


날개 돋친 이 길손, 얼마나 어색하고 기죽었는가!
멋지던 모습 어디 가고, 이리 우습고 초라한가!
어떤 이는 파이프로 그 부리를 지지고
어떤 이는 절름절름 날지 못하는 병신을 흉내낸다.


시인 또한 이 구름의 왕자와 비슷한 존재,
폭풍 속을 넘나들고 포수를 비웃지만
땅 위에 추방되면 놀리는 함성 속에
그 크낙한 날개는 오히려 걸음을 막고 만다.

 


*제목인 신천옹은 새 이름. 몸은 크고 살이 쪘으며, 날개와 꼬리는 검다. 원이름 그대로 알바스트로라 부르기도 한다.
이 시는 뛰어난 예술상의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처세술이 서툴러서 세상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받는 시인을 붙들린 신천옹에다 비겨 노래한 것이다.
이 시는 작자의 시집 악의 꽃재판(1861)에 수록되어 있는데, 1857년에 간행된 악의 꽃초판은 세상의 비난을 받고 벌금형에 처해진 일이 있다. 그 때의 감회를 읊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적수 / 보들레르

 


내 청춘은 오직 어두운 폭풍우
여기저기 밝은 햇살이 비치었어도
천둥과 비바람이 사정없이 휩쓸어
내 정원에 남은 건 빨간 열매 몇 개

이제 나 사상의 가을에 다가섰으니
삽과 쇠갈고리를 쥐어야겠다.
무덤처럼 커다란 물구멍이
홍수난 대지를 새로 갈기 위하여

하지만 그 누가 알랴,
내가 꿈꾸는 새 꽃들이
갯벌처럼 씻겨진 이 흙 속에서
생기 줄 신비한 양식 찾아낼는지를?

---, 이 고뇌여!
시간은 생명을 좀먹고
우리의 심장을 갉아먹고 이 엉큼한 적수는
인간이 잃어 가는 피로써 자라며 살쪄 간다

 

 

 

 

풍경 / 보들레르

나의 목가 정하게 읊기 위하여
점성가처럼, 하늘 가까이 드러누워
종각 이웃하여 꿈꾸며 듣고 싶어라.
바람이 싣고 오는 엄숙한 성가들을
두 손으로 턱을 괴고, 내 높은 다락방에서
나는 보리라, 노래하며 재잘대는 아틀리에를
굴뚝들, 종각들, 이 도시의 돛대들을
또 영원을 꿈꾸게 하는 저 거대한 하늘을.

안개 사이로 내다보이는 풍경이 즐거웁구나.
창공에 별이 뜨고, 창가에는 불이 켜지는 것
강 줄기 같은 매연은 푸른 하늘로 솟아오르고
달님이 제 창백한 광채를 내려 비추는 것
나는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을 보리라.
또 단조로운 눈이 내리는 겨울이 오면
사방 휘장과 덧문을 내려 닫고
방 속에서 꿈 같은 궁전을 세우리라.
그리하여 내가 꿈 속에서 보는 것은 푸르스름한 수평선
정원, 대리석 석상들 틈에서 눈물짓는 분수들
입맞춤, 아침 저녁 노래하는 새들
그리고 목가에서나 노래할 더없이 천진난만한 것들
소요가 제아무리 내 유리창에 폭풍을 몰아쳐도
내 이마를 책상에서 들게 하진 못하리라.
왜냐하면 내 의지의 힘으로 ''을 불러일으키고
내 가슴에서 태양을 끌어내어
타오르는 생각들로 따스한 분위 만들어 내는
그러한 쾌락에 내가 잠겨 있을 테니.

 

 

 



장님들 / 보들레르

내 영혼이여, 저들을 보라, 정말 끔찍스럽구나!
마네킹 같기도 하고, 어딘지 우스꽝스럽고
몽유병 환자들처럼 섬뜩하며 야릇한 그들은
어두운 눈알로 어딘지 모르게 쏘아본다.

거룩한 빛이 떠나가 버린 그들의 눈들은
마치 먼 곳을 바라보는 듯, 계속 하늘로 쳐들고 있어
그들의 묵직한 머리가 생각에 잠긴 듯이
포도 위로 숙여지는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들은 이처럼 끝없는 어둠을 지나가고 있다.

이 영원한 침묵의 형제를, , 도시여!
네가 잔인할이만큼 쾌락에 도취되어
우리네 주위에서 노래하고 깔깔대며 울부짖는 동안에
보라! 나 역시 몸을 끌며 간다! 하지만 그들보다 더 얼이 빠져서
나는 생각해본다. 무얼 하늘에서 찾고 있을까, 저 모든 장님들은?

 

그대가 질투하던 마음씨 / 보들레르

그대가 질투하던 마음씨 갸륵한 하녀
지금은 보잘 것 없는 잔디 아래 잠들어 있으니
우리, 그녀 앞에 꽃다발을 놓아야 하지.
죽은 사람들, 가엾은 그들에겐 큰 고통이 있다.
10월의 묵은 나무 쳐버리는 음산한 바람이
그들의 대리석 묘비 둘레에 휘몰아칠 때
진정, 그들은 제대로 이불에 싸여 포근히 잠자는
살아 있는 사람들을 원망하리.
그럴 때, 그들은 어두운 악몽에 찢기고
잠자리를 같이 나눌 동반자도, 다정한 이야기거리도 없이
구더기에 시달린 얼어붙은 늙은 해골되어
무덤 울타리에 매달린 시든 꽃가지를 갈아 줄
친구도 없고 가족도 없이, 쌓인 겨울 눈이
녹아 방울져 내리고 세월이 흘러감을 느낄 따름.

벽난로의 장작불이 탁탁 튀기며 노래부를 때
만일 저녁마다 조용히 그녀가 안락의자에 와서 앉는 걸 본다면
그녀가 시퍼렇게 추운 섣달 밤에 영원한 제 잠자리 속에서 빠져나와
예절 바르게 내 방 한쪽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모성어린 눈으로 다 큰 아이를 대견스럽게 바라본다면
그 움푹 패인 눈까풀에서 떨어지는 눈물을 보며
나는 이 경건한 영혼에 무엇이라 대답할 수 있으리?


* 그대가 질투하던 마음씩 갸륵한 하녀 - 보들레르의 어머니의 하녀였던 Marieett로서, 그녀는 어린 시인을 대단히 사랑해 주었다.

 

 

 

 

어스름 새벽 / 보들레르

기상 나팔은 병사 마당에서 울리고
아침 바람은 가로등 위로 불고 있었다.
때로 바로 악몽이 벌떼처럼 떼지어 와서
갈색 머리 소년들을 베개 위에 잡아 비틀고
껌벅거리는 핏발선 눈처럼
등불은 햇빛에 붉은 얼룩을 지우는 시간,
거칠고 육중한 몸무게에 짓눌린 영혼은
등불과 햇빛의 싸움을 흉내내는 시간
산들바람이 닦아 주는 눈물젖은 얼굴처럼
대기는 쓰러져 가는 것들의 전율로 가득 차면
사내는 글쓰기에, 계집은 사랑하기에 지친다.

여기저기 집들은 연기를 뿜기 시작했다.
쾌락 쫓는 계집들은, 납빛 눈까풀을 하고
입을 헤벌리고 얼빠진 잠에 빠져 있었다.
가난한 여자들은, 말라빠진 싸늘한 젖통을 늘어뜨리고
손가락을 까불거리며 깜부기불을 불러일으킨다.

이때가 바로 추위와 인색 틈에서
산고에 든 여인의 아픔이 더해 가는 시간
들끓는 피로 인해 끊기는 흐느낌처럼
수탉의 울음이 멀리 안개낀 대기를 찢고
안개의 바다는 높은 건물들을 감싸고
자선병원 저 안쪽에서 죽어가는 환자들은
고로지 않은 딸꾹질로 마지막 숨을 내뱉고 있었다.
방탕한 녀석들은 밤일에 지쳐 늘어져,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불그스레하고 혹은 초록의 옷을 입은 새벽은 부들부들 떨면서
인기척 없는 세느 강 위로 서서히 다가오고
어두운 파리, 이 부지런한 늙은이는
부시시 눈을 부비며, 제 연장을 손에 쥔다.



고독한 자의 술 / 보들레르

물결 같은 달님이 제 나른한 아름다움을
멱감기고 싶을 때, 전율하는 호수 위로
살며시 내려보내는 하얀 달빛처럼
우리에게 던져지는 매혹적인 여인의 야릇한 눈초리도

노름꾼 움켜쥔 마지막 돈주머니도
야윈 아들린의 방종한 입맞춤도
아련히 들려오는 인간 고뇌의 외침과도 같은
무기력하고 달콤한 음악 소리도

이 모두가 쓸데없구나. , 그윽한 술병이여!
경건한 시인의 갈증이 가슴속에 파고드는
네 볼록한 배가 간직한 진정제
너는 시인에게 부어 준다, 희망과 젊음과 생명을.
---오만, 온갖 거지 근성의 이 보물은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어 신을 닮게 하누나!



연인들의 술 / 보들레르

오늘은 세상이 찬란도 하다!
재갈도, 박차도, 고삐도 없이
말타듯 술을 타고 떠나자꾸나
거룩한 꿈나라 하늘을 향하여!

열병같이 지독한 환각으로
괴로워하는 두 천사처럼
수정처럼 맑고 푸른 아침에
아득한 신기루를 따라 가자꾸나!

분별 있는 회오리바람의
날개를 타고 두둥실 흔들거리며
너와 나 똑같은 환희 속에서

누이여! 나란히 헤엄치면서
한시도 쉬지 말고 날아가자꾸나.
내 몽상의 천국을 향하여!


샤를르 보들레르, Charles Baudelaire (1821~1867)

낭만파 시인들은 사치스러운 독백을 통해 자기들의 불안을 발산시켰다. 낭만주의 시대의 한복판에서 자라나, 그 모든 투쟁의 갈피를 샅샅이 살아 온 보들레르는, 그러나 그들과는 달리 '마음의 참회소'를 마련하고 거기서 자기의 내심의 왕국을 탐구했다. [악의 꽃]의 시인인 동시에 [낭만파 예술, L'Art romantique][심미적 호기심, Curiosite esthetique]을 쓴 날카로운 비평가이기도 했다.

주요작품: 악의 꽃(Les Fleurs du mal)1857, 파리의 우울(Spleen de Paris) 평론집-낭만파 예술, 심미적 호기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