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모두를 흔들리게 한다 / 이 섬
제주도 돌담은 바람은 한통속이다
숨기고 감추어둔 속마음 겉마음 다 터놓고 산다
바람의 지문이 찍힌 검은색 현무암 숭숭 뚫린 구멍은
강풍의 숨통이고 바람의 공기구멍이다
바람에게도 빠져나갈 구멍이 필요하다
수시로 몰아붙이는 강풍 옴짝달싹 못하게
가둬 놓으면
그 사나운 성깔 언제 어디로 폭발할지 모른다
물불 가리지 않고 흔적 없이 휩쓸고 뭉개 버릴지,
바람이 땀 식히며 숨 돌리고 쉴 수 있는 쉼터,
바람그물이 필요하다
얼기설기 쌓아서 달빛 별빛도 잠시 쉬어 가는
여유로운 현무암 돌담길
흔들릴수록 더 깊이 뿌리 내린다는,
튼튼한 돌담
밭담, 월담, 산담, 울담 모두 모여 만 리를 이룬다는
제주도 흑룡만리 길,
꼬리며 지느러미가 꾸불꾸불하다
등굽이 숭숭 뚫린 구멍마다 바람이 걸어간 발자국이
또렷하다
가끔은 내 어깨를 통과하는 바람의 기침 소리 들릴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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