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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 시

오카리나 부는 그 사람

by 바닷가소나무 2012. 4. 2.

 

 

 

오카리나 부는 그 사람

                                                                                   

그 사람 옥탑방 밖에는

벽 잡고 오르는 푸른 담쟁이넝쿨이 있고

그 담쟁이넝쿨 붙잡아주는 옥상 난간이 있다

달빛이 옷을 벗는 밤이면

그 사람은 그 난간에 기대어

달빛이 벗어놓은 옷을 걸치고 오카리나를 분다

오카리나 열두 구멍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들은

동굴 속에서도 담쟁이넝쿨 푸르기 바라는 그 사람의 꿈이라고 했다

거칠고 마른 숨소리들이 동굴 속 빠져나오듯

그 사람이 입술을 모으고 오카리나를 불면

나는 그럴 때마다

나무하나 없는 산악지대가 떠오르고

내 마음은 동굴 속처럼 어두워진다.

멀고도 가까운 그 사람의 나라 아프가니스탄이 생각나는 것이다

총소리와 피 냄새를 등에 지고 언덕 오르는 낙타들

거꾸로 총을 메고 낙타 뒤를 따르는 남자들

온몸에 달빛을 휘감고 오카리나 불던 어느 날

그 사람은 동굴 속처럼 깊고 촉촉한 눈빛으로

그 사람 고국에 대해 말해 주었다

그곳은 달빛 속으로 낙타가 걸어 들어가는 사막도 있지만

아무다리야강, 하리강, 헬만드강, 카불강도 흐르고 있다고

하얀 이를 드러내 보여주면서도

그 사람은 손등에 박혀있는 비둘기 모양의 흉터에 대해서는

결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다만, 눈가에 달빛 같은 미소만 흘려주었다

그 사람이 부는 오카리나 소리를 들으면, 가끔

내 마음속 담쟁이넝쿨도 푸르게 바들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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