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트렁크에는 무엇이 들어있나71 나, 떠나가야 하기에 나, 떠나가야 하기에 노란 봄배추 꽃에게 말하지 않겠네 청초함 사랑 했노라고 설 킨 생 살아가는 당쟁이 에게도 말하지 않겠네 끈질긴 생명력 사랑 했노라고 하늘미나리 에게도 말하지 않겠네 물 갈망하던 그대 사랑했노라고 늙어 휘어진 감나무에게 말하지 않겠네 그대 참으로 사랑 했.. 2013. 1. 29. 상처 난 피라미들 상처 난 피라미들 출근시간, 사무실 문이 열리자 피라미들이 모여들었다. 명함을 들고 순서를 기다리는 피라미들의 지느러미가 쳐져있다. 뺑소니차에 치인 남편 병원비 때문에 청소일 다녔다는 수빈이 엄마 14년 동안 폐수처리장에서 근무했다는 경상도 사투리의 홍씨 아저씨 이제는 돈 .. 2013. 1. 29. 고천암호에 흔드는 깃발 고천암호에 흔드는 깃발 노을내리는 고천암호 가창오리들 물을 박차고 솟구쳐 오르기 시작한다. 하늘 한쪽이 검은 깃발로 펄럭이기 시작 한다 작은 날갯짓으로 스크럼 짜고 가며 목청 돋우며 큰 깃발을 만들어 흔들고 있다 고천암호에 와서 알았다 작은 몸짓들이 모이고 또 모이면 하늘.. 2013. 1. 29. 1971년 봄 1971년 봄 낙산아파트 창가에 달빛이 휘청거리며 찾아오는 날이면, 설음에 젖은, 탁 사발에 젖은, 술 취한 사내들의 늘어진 육자배기 한가락이 고샅길을 더듬고, 목 줄기를 타고 터져 나온 타향살이가 비틀 비틀거리며 성곽을 걷는다, 배부른 가난이 광 땡을 잡고 창신동의 야윈 꿈들이 치통을 앓는 그런 날이었다. 시린 발목으로 먼동이 달려오는 공사판으로 나가는 엄마는 오! 아바지 삼남매를 굽어 살피소서! 공사판의 벽돌 숫자만큼 기도를 했다. 누이들은 조막손에 껌 몇 통씩을 들고 미쳐 날뛰는 네온불빛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오빠하고 깨꽃처럼 웃었다. 어둠을 가르기 위해 허물어진 낙산성터에서 칼을 갈던 나는, 귀신 잡는 해병대와 맞붙기로 했다. 이겨야 끗발이 오를 것 같았다. 그 봄 밤, 달빛은 그녀의 찰랑거리는.. 2013. 1. 29. 이전 1 2 3 4 5 6 7 8 ··· 1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