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렁이와 까치 설화
젊은이는 드디어 괴나리봇짐 하나를 둘러멘 채 이른 아침에 과거길을 나섰다. 그는 사립문을 나서자 벌서부터 가슴이 설레었다.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날이냐. 그는 꼭 십년을 하루같이 쉬지 않고 공부를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첫날부터 희망에 벅찼는지도 모른다. 젊은이는
벌써 산을 몇 개나 넘었는지 모른다. 그는 그만큼 쉬지 않고 걸었던 것이다. 그는 목이 타고 땀이 온몸을 적셔도 쉬지 않았다. 한시라도 더 빨리
서울에 닿고 싶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젊은이가 풀뿌리 나무가 잔뜩 우거진 숲길을 지나고 있었다.
"깍! 깍! 깍!"
어디선가 까치가
몹시 다급하게 울고 있었다. 꼭 무엇에게 죽임을 당하기 직전에 지르는 비명 소리만 같았다. 그는 바쁜 걸음을 멈추고 까치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다가가 보았다. 그랬더니 아주 높은 소나무 위에서 들려왔다. 젊은이는 소나무 위를 자세히 살펴보다가 하마터면 '악!'하고 소리를 지를 뻔했다.
글쎄 거기에는 커다란 구렁이가 까치를 칭칭 감고는 그 날랜 입으로 삼키려고 하지 않는가? 젊은이는 얼른 메고 있던 활로 뱀을 겨누어 쏘았다.
까치를 삼키려던 뱀은 까치를 놓고 땅 위로 떨어지고 말았다.
젊은이는 죽어가려는 까치를 살린 게 여간 흡족하지 않았다. 그는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조금 전에 지체했던 만큼 더 걷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그는 서쪽 하늘에 붉은 노을이 감돌고 산속은 어둠 속에 파묻히는
것을 잊었다. 젊은이는 아주 깊은 산속에서 밤을 맞았다.
"어디서 잘까?"
젊은이는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보이는 게 모두 첩첩 산일 뿐
집이라고는 한 채도 보이지 않았다. 왈칵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가 다리도 아프고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그는 한참을 둘러보다가 아득하게
먼 쪽에서 반짝반짝 불빛이 비치는 것을 보았다. 그는 정신없이 불빛을 향해 갔다. 그것은 생각지도 않은 훌륭한 기와집이었다. 젊은이가 주인을
찾자 이내 대문이 열리고 스무 살쯤 되어 보이는 아주 예쁜 처녀가 나왔다.
"서울로 과거를 보러 가다가 날이 저물어 들렀는데 하룻밤만
묵어가게 해주싮시오."
젊은이가 이렇게 말하자 처녀는 서슴지 않고 그를 친절하게 맞아 주었다. 처녀는 그가 저녁을 먹지 않은 것을 알고는
아주 맛있는 음식도 차려다 주었다. 그는 저녁을 먹고 나자 피로가 몰려와 금방 잠이 들고 말았다. 얼마나 잤을까? 그가 가슴이 답답하여 눈을
떠보니 장대만한 구렁이가 그의 몸을 칭칭 감고 있었다.
"아앗!"
"떠들어 봤자 소용없다. 난 너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젊은이는 묻지 않고도 이 집 처녀가 구렁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소름이 끼쳤다.
"이 원수야, 네가 이 산속을 곱게
빠져나갈 줄 알았으냐?"
"원수라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흐흐흐, 그래 얘기해 주마."
그러더니 구렁이는 어제 산 속에서
젊은이가 죽인 구렁이가 바로 자신의 남편이라는 것이다.
"이제야 모든 것을 알겠니? 난 남편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너를 이곳으로 끌어들였단
말이다."
이 말을 듣자 젊은이는 앞으로 살아나갈 것 같지 않았다. 젊은이는 떨리는 말로 구렁이에게 말했다.
"사실은 나도 당신의
남편이 미워서 그런 게 아니오. 다만 그 약한 까치가 하도 가엾어서 그랬을 뿐이오. 아무쪼록 10년 공부를 하고 과거를 보러 가는 길인데 원수로
생각 말고 한번 살려 주시오. 은혜는 꼭 갚겠소."
구렁이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몸을 자꾸 조이는 것이었다. 이제 젊은이는 숨조차 쉴 수
없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사정을 했다.
"그렇다면 내 소원을 들어줘라."
"네, 무엇입니까?"
"이 산 깊은
곳에는 다 낡은 절이 있다.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는데 그 절에는 커다란 종이 달려 있다. 그 종을 세 번 울리면 살려 주겠다."
"네,
그러지요."
"그렇지만 이 자리에서 종을 울려야 한다."
구렁이는 그 종이 세 번 울리면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기 때문에
살려주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잡아먹고 말겠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이 밤중에 절간을 찾아 종을 친다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하물며 이렇게
구렁이한테 온몸이 감겨 가지고 어떻게 종을 친단 말인가? 젊은이는 이제 죽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밤의 고요를 깨뜨리고 '따앙 따앙 따앙'하고 종소리가 맑고 아름답게 들려 왔다. 그러자 구렁이는 스르르 젊은이를 풀어 주고 하늘로 올라갔다.
금방까지 있던 기와집도 연기처럼 사라졌다.
젊은이는 너무나 이상하여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가 산 속 깊은 곳에 있다는 절간을 찾아가
보았다. 정말 다 낡은 그 절에는 커다란 종이 걸려 있었다. 그런데 그 아래를 보니 머리가 깨져 온몸에 피가 묻은 까치 세 마리가 쓰러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