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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 시

『문학과 창작』이 조명하는 박흥순 신작 소시집

by 바닷가소나무 2020. 9. 13.

전남 신안 안좌 출생

명지전문대학문예창과 졸업

서울디지털대학교문예창과, 사회복지학과 졸업

중앙대학교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수료

 

2011년 월간시문학신인우수작품상 수상

시집 내 트렁크에는 무엇이 들어있나

 

blog.daum.net/asd123777

E-mail-phs172@hanmail.net

 

 

박흥순 시인의 신작 소시집

산두, 그 고샅길, 외 4편

 

 

산두, 고샅길

 

 

고샅길하면 성문이네 집 굴뚝에서 저녁연기가 스몰스몰 오를 것 만 같은

그리고 고샅길하면 금방이라도 성두네집 누렁이가 꼬리를

스르렁스르렁 흔들며 달려 나올 것만 같은

 

그때 고샅길은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다 태일네 돛단배에서 감자서리를 하던

귀뚜라미 신바람나게 기타를 켜는 달밤이면

, 흐드러진 달빛아래 청무우 사각사각 깎아먹던

킥킥 거리던

 

송희네집 흙담 너머

그 아이 얼굴 닮은 단감을 따먹자고

도둑고양이처럼 흙담을 기어오르다

마당으로 떨어져,

달빛을 걷어차며 달아나던 발자국 소리로 출렁이던

 

고샅길은 눈 내리면 친구들이 몰려나와

자박자박 코스모스 꽃 수놓던 꿈길

아니, 낄낄대며 호호 불며

눈꽃으로 피어나던.

 

 

 

별 볼 일없는 생각

 

 

"너는 내 다락방으로 가야하겠다"

 

들녘이나

동네 골목길이나

갈짓자를 걷다가도

눈에 밟히는 그 무엇이 있으면 나는 그렇게 말한다.

 

동전 가득한 공중전화기를 만났을 때,

전화기에 동전을 밀어 넣고 나누었을

그 사람들의 대화를 상상하면서

짜릿한 맛을 느끼며 즐겼던

카바레 작업장에서처럼

 

형형색색의 양초, 버림받은 괘종시계, 노란 손풍금

혼자서는 들 수 없었던 박혁게세 돌덩이

대나무바구니, 상처투성이교자상

쓰레기통속 인형이 서제에 가면

어둠을 밀치고 나를 반긴다.

 

내가 그들은 모셔다 두며 눈빛을 주는 것은

별 볼 일없는 나의 모습이 저런 모습이 아닐까하는 ,

그래서 언젠가, 그들을 의 옷으로 바꾸어 주고 싶은

내 가난하고 별 볼일 없는 생각 때문이다.

 

 

그제, 그리고 내일

 

 

특별시 사당동 남성시장

시장입구 양쪽에 약국이 서있습니다 그리고 그 옆으로 줄줄이

옷가게, 잡곡가게, 화장품집, 비뇨기과, 미장원, 신발가게, 모자점,

한의원, 건어물집, 모두가 골목처럼 어깨동무를 하고 서있습니다

 

그제는 파도횟집이 신장개업을 했고

어제부터는 청정야채가게가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직업소개소 간판을 다느라 골목길이 어수선하구요

 

골목시장을 끌고 가는

각설이 아저씨의 쨍하면 볕들 날이,

고래아저씨의 저 높은 곳을 향해서가

국수집, 나물집, 두부집, 곱창집, 짜장집

영양탕집, 통닭집, 피자집, 순대국집, 찐빵집

떡집, 집 집 집들에 시리고 아프게 스며듭니다.

 

특별시 사당동 남성시장 하늘에는

낮달이 전깃줄에 걸려 흔들리고 있습니다.

 

 

 

괴로움이 꿈틀거릴 때

 

 

  빈 깡통을 콘크리트 바닥에 두고 망치로 찌그러뜨린다, 나는 망치를 들고 다니는 건축가이기 때문이다. 내가 새로 짓는 집은 시간이 흐르면 집 모양이 바뀌어 간다 창문이 꽈배기처럼 휘기도 하지만 중간층이 장구모양의 집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이상한 집을 짓는 이상한 건축가라고 수근 거린다 그렇다고 나는 주춤 하지 않는다

 

  보라는 듯이 이번에는 창문이 하늘을 보며 놀고 있는 파란 집을 지었다, 창문도 파랗게 웃었다. 입이 머리통 뒤에 달린 사람들, 눈이 발톱 밑에 붙은 사람들, 그들이 보고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는 대신, 날아가다 똥을 싸고 가는 새들의 몸짓을 볼 수 있고, 웃고 가는 뭉게구름 사시로 쳐다보지 않기 때문이라고 큰소리쳤다, 사람들은 나에게 갸우뚱 건축가라고 한다

 

  내 아버지가 사용하던 사다리는 나선형의 대나무 사다리를 쓰기도 했지만 썩은 물푸레나무로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 위험하다고 했지만 나는 아직도 그것을 사용하고 싶어 한다 망치가 필요 없는 집을 짓고 싶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초승달이 뜨는 밤이면 말했다 망치 같은 연장을 쓰지 않고 초승달 같은 집을 지어서 거기 살고 싶다고,

 

  나는 아버지 유산인 썩은 물푸레나무로 만든 휘어진 사다리를 타고 아버지에게 갔다. 초승달 같은 집에 누워있던 아버지는 눈도 뜨지 않은 채 빨리 내려가라고 했다. 내가 묻기도 전에, 망치로 꿈이 없는 집짓는 것 보다, 푸른 깡통이 열리는 한그루 나무를 초승달이 뜨는 언덕에 심으라했다. 나는 오늘도 빈 깡통을 콘크리트 바닥에 두고 망치로 찌그러뜨리고 있다.

 

 

 

그대와 함께 갯뻘로 가고 싶다

 

 

갯뻘이 옷을 벗고 가슴을 내보이기 시작하면

그대는 가래로 갯뻘의 가슴을 파헤쳐 낙지를 잡아내고

나는 갯뻘의 혈관 속에 낚싯줄을 드리우는

그렇게 갯바람 같은 한철을

그대와 살았으면 좋겠다.

 

그대는 더 많은 낚지를 바랑에 넣기 위해

쩍을 밟고서라도 가래질을 하고

나는 갯골에 밀물이 밀려와도

한 마리 물고기를 바구니에 더 넣기 위해

가난한 파도소리가 되어가면서

그대와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

 

그대와 함께 갯뻘로 간다는 것은

달려오는 흙탕물이

갯뻘을 통째로 삼켜도

태초부터 조간대의 아버지는 달이었다고

갯뻘도 그 달의 새끼라고

그대와 갯멧꽃 바라보며 웃을 수 있기에

그대와 함께 갯뻘로 갔으면 좋겠다.

 

 

박흥순 시인의 시작노트

 

아모르 파티

 

 

  어느 가수의 아모르파티라는 노래를 듣고 사전에서 찾아보았더니, 아모르파티는 독일철학자 니체사상 중 하나로 (운명애, 運命愛), 인간에게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운명을 감수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오히려 긍정하고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사랑하는 것이 인간 본래의 창조성을 키울 수 있다는 사상이다. 따라서 자신의 운명은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이 사상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주장이라 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한평생 어찌 좋은 일만 있을 수 있겠는가? 굽이굽이 첩첩 산중을 걷는 것이 삶이라 한다면, 때로는 넓은 벌판에 만발한 꽃 잔치의 주인공이 될 때가 있을 것이고, 때로는 넘어져 피 흘리며 가쁜 숨 몰아쉬는 긴박한 순간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삶속에서 나는 과연 어떤 삶을 살아왔으며 앞으로는 어떤 걸음걸음으로 걸어갈 것인가? 그리고 시인으로서 지금까지 어떤 자세로 시를 써왔나를 생각해보니, 내가 쓴 시들은 대체적으로 그 기저에 아픔을 품고 있는 시들이 많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왜 그런 시를 쓰게 되었을까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그러나 그 답은 간단했다.

  워즈워드는 시는 생의 진술이며 표출이다. 그것은 체험을 표시하고 생의 내면적 진실을 묘사하는 것이다. 2의 세계, 꿈은 최고의 시인이다.”라고 했다.

  나는 자신의 삶을 통해 보고 격은 일들로 인해 자연스럽게 연민의 정이 깊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러한 연민의정을 연민으로만 끝낼 수 없다는 것이 시인인 내가 할 수 있는 특권이며 책무라 생각한다.

  내가 쓰는 졸 시들을 통해 나 자신과 내 시속 화자에게 위로와 격려, 그리고 절망을 희망으로 승화시켜주고자 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비록 서툴고 투박한 시어들로 시를 쓰는 시인이지만, 내가 만일 있는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만 있다면, 변화도, 새로운 길도, 볼 수도, 갈 수도 없는 처지가 될 것이다. 이는 내 생이, 내 삶이, 너무 의미가 없고 슬픈 일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 얼마나 달콤하고 힘 있는 단어가 아닌가?

 

 아모르파티!

 

내가 시를 쓰며 괴로워하고 즐거워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산두, 고샅길

 

  고향 섬마을 산두는 80여 가구가 버섯처럼 옹기종기모여 있던 농촌마을이었다. 마을 앞에는 넓은 갯뻘이 있는 바다와, 마을 뒤편으로 산락이 마을을 감싸 안고 있는 마을인 산두에서 유소년 시절을 보냈던 나는, 고향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아주 싫어했다. 남아있는 기억들은 가슴 아픈 일들이 전부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해서 나는 살아오면서 어려운 문제에 부딪혀 현실을 헤쳐가기에 힘이 들고, 판단하기 어려울 때면 혼자서 고향을 찾았다. 그리고 어려웠던 고향의 유년시절과 현실의 어려움을 비교해보면서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을 찾아내고자 했었다. 그런데 내가 시를 쓰면서 언제부터인가 싫기만 했던 고향의 기억 중에, 문득문득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었다. 그것은 그 시절 나의 현실과 관계가 없는 동무들과의 추억이었다. 추억을 더듬어 친구들과의 기억들을 쫒아가 보면, 내 고향산두의 아름다운풍경들과 티 없이 맑고 씩씩했던 까까머리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들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지금의 나는 시를 통해서 아픔의 고향을, 행복과 아름다운의 고향으로 치환하며 상처를 치료 받고 있는 것이다.

 

 

그대와 함께 갯뻘로 가고 싶다

 

  나는 갯뻘을 바라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리고 먼 바다를 바라보며 천천히 상상에 나래를 펼쳐 드넓은 갯뻘 위를 날아가기 시작한다. 갯뻘 위에서는 까까머리들이 온몸에 뻘칠을 하고 나뒹굴며 키키덕거리는 모습들이 펼쳐진다. 그리고 갯뻘에는 구불구불 흐르는 갯골이 저 멀리 뻗어 나간다. 나는 파도가 보이는 먼 바다를 향해 높이높이 날아오른다. 검푸른 파도 위를 날아오르다 파도를 스치듯이 낮게 날기도 한다. , 멀고도 먼 육지를 향해 힘차게 날갯짓을 하는 것이다.

  갯뻘, 그 곳에는 수많은 생물들이 밀물과 썰물에 적응하며 생존을 위해 치열한 숨 쉬기를 하는 곳이다. 내가 사는 그리고 앞으로도 살아가야할 이 세상이 바로 그런 갯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분명한 것은 우리의 삶에도 밀물과 썰물이 반복되어 밀려왔다 밀려간다는 사실이다. 이런 현상들을 긍정하든 부정하든 이러한 변화들은 분명 가상이 아니라 현실인 것이다. 이런 갯뻘같은 삶에서 나는 너를 위해주고 너는 나를 위해주며 쩍을 밟고서라도, 갯골에 밀물이 밀려와도우리가 함께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제, 그리고 내일

 

  젊은 시절 사당동 남성골목시장에서 떡 장사를 시작으로 현제까지 36년째 사당동 남성시장 근처에 살고 있다. 내가 그동안 시장사람들의 삶을 통해서 느끼고 배운 것들은 삶이란 무엇인가를 깊이생각하게 하는 것들이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내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반성할 때가 많다. 나름 최선을 다하는 그들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간판이 바뀌고 또 새로운 사람이 그 자리를 대신할 때면,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내가 이곳에 둥지를 튼 처음이나, 세월이 흘러간 지금이나 골목시장의 모습은 큰 변함없는 듯 한 풍경이지만, 그 안에는 그 사람들의 치열한 삶의 몸짓들이 꽃으로 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제 그랬듯이 모래도 글피도말이다.

 

 

별 볼 일없는 생각

 

  무심코 밤하늘을 올려 보았을 때, 하늘에는 무수한 별들이 반짝이는 눈빛으로 우주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을 전해주고 있다. 나는 그러한 이야기들 속에 숨겨져 있는 비밀스런 사연들을 상상해가며. “그래, 지금 나는 은하수에서 쪽배를 저어 너희들 곁으로 가고 있단다.”

  그렇다. 무심히 길을 걷다 길가에 버려진 소소한 그 무엇들을 보게 되면, 그 모습 에서 측은지심이 인다. 누군가의 관심에서 멀어지기 전까지는 나름의 위치에서 꼭 필요한 물건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랑이 무엇이지도 느꼈을 것이다. 누군가의 마음과 눈길에서 멀어져 길거리에 나앉아있는 그들을 보게 되면, 내 품으로 품어주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너는 내 다락방으로 함께 가야하겠다하고 손을 내민다.

  내 다락방에는 이렇게 사연 있는 눈빛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사랑해 달라고, 의 옷으로 입히기 위해 쪽배를 타고 노 저어 와달라고 온몸으로 채근 하고 있는 것이다.

 

 

괴로움이 꿈틀거릴 때

 

  괴로움이 밀려오기 시작하면 그 원인이 무엇이든 밀어내기가 쉽지 않다. 그럴 때면, 괴로움을 밀어내기기 위해 별의별생각을 다해본다. 그 원인을 찾아 해결책을 찾아가 보기도 하지만 쉽게 물러갈 것 같았으면 괴로움으로 찾아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기발한 생각으로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어 그녀석이 더 깊이 파고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해서, 내 직업인 건축가로서 이상하고도 갸우뚱한 건축가가 되어 집을 짓기 시작한다. 그렇게 별난 건축을 하다보면 괴로움은 발을 붙이지 못하고 어느 사이 사라져버린다. 괴로움이 사라진 그 틈사이로 먼 곳에 계시는 아버지 생각이 밀고 들어온다. 아버지께서는, 괴로움을 쫒기 위해, 썩은 물푸레나무를 타고 찾아간 아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무엇 때문에 왔는지 묻지도 않은 채, 빨리 내려가 망치로 꿈이 없는 집을 짓는 것보다 푸른 깡통이 열리는 나무를 언덕에 심으라 한다.

나는 오늘도 언덕에 푸른 깡통이 열리는 나무를 심어놓고 초승달을 기다리고 있다.

 

 

 

잃어버린 고향과 다시 생각하는 삶의 의미

박흥순 시세계 조명, 신작시 5

 

 

윤정구

 

 

1. 잃어버린 고향을 찾아서

 

 

  시를 찾아가는 길은 결국 자신의 본향을 찾아가는 길인지도 모른다. 시성(詩聖)으로 불리는 두보(杜甫)나 시선(詩仙)으로 불리는 이백(李白), 시불(詩佛)로 불리는 왕유(王維) 등 빼어난 시인들의 작품들이 즐비한 중에서도 도연명(陶淵明)귀거래사(歸去來辭)가 아직도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한시의 정상을 지키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귀거래사는 약 1,600년 전 동진(東晉) 팽택현의 지사(知事)로 있던 41세 도연명이 내 어찌 쌀 다섯 말의 봉급을 위하여, 그들에게 허리를 굽힐소냐?” 하고 자리를 팽개치고, 고향으로 돌아오며 지은 노래로서, 가족을 생각하여 참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수많은 봉급쟁이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 꿈꾸는 탈현실을 이루어 자연 속 고향을 찾아가는 한시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가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면, 내가 무엇으로 이루어진 것일까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결국 7살 이전의 유년기에 형성된다는 것이 현대 정신과학의 결론이라니, 내가 나고 자란 고향의 의미는 지대하다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귀향은 문학작품의 시작이자 끝이 되는 영원한 주제의 하나라 하겠다.

  박흥순의 작품 산두, 그 고샅길, 그제, 그리고 내일, 별 볼 일 없는 생각, 괴로움이 꿈틀거릴 때, 그리고 그대와 함께 갯뻘로 가고 싶다는 일별하여, 고향의 추억과 고향을 떠나 살고 있는 현재의 삶의 풍경과 그에 대한 상념과 괴로운 현실, 그리고 순수한 자연 상태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열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고샅길, 하면 성문이네 집 굴뚝에서 저녁연기가 스몰스몰 오를 것만 같다/ 금방이라도 성두네집 누렁이가 꼬리를/ 스르렁스르렁 흔들며 달려 나올 것만 같다 //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다 태일네 돛단배에서 감자서리를 하던,/ 귀뚜라미 신바람나게 기타를 켜는 달밤/ , 흐드러진 달빛 아래 청무우 사각사각 깎아 먹으며/ 킥킥거리던 그 길 // 송희네집 흙담 너머/ 그 아이 얼굴 닮은 단감을 따 먹자고/ 도둑고양이처럼 흙담을 기어오르다/ 마당으로 떨어져,/ 달빛을 걷어차며 달아나던 발자국 소리로 출렁이던 길 // 고샅길은, 눈 내리면 친구들이 몰려나와/ 자박자박 코스모스꽃 수놓던 꿈길/ 아니, 깔깔대며 호호 불며/ 눈꽃으로 피어나던 그 길이다.

박흥순 산두, 그 고샅길전문

 

  고샅길은 집들이 연이은 마을의 좁은 골목길이 흑백사진처럼 친근하게 연상되는 데다가, 성문이네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저녁연기와 성두네 누렁이가 꼬리를 흔들며 나와 평화로운 유년기의 한때를 회상하게 한다. 연기가 오르는 모양을 스몰스몰로 그리고, 누렁이가 꼬리 흔드는 모양을 스르렁스르렁으로 표현한 것은 마치 굵은 크레용으로 연기와 누렁이를 그린 듯 고샅길의 정경을 인상적으로 만든다.

  화자는 지금 굴뚝 위로 피어오르는 연기를 기대하고, 반갑게 좇아나올 누렁이를 상상하며 고향 고샅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망아지처럼 자유로웠던 시절의지금은 금지된, 그러나 전에는 너그러이 넘어갔던감자서리를 떠올리고, 귀뚜라미 울던 달밤에 무를 깎아 먹었던 추억을 떠올린다. 거기에 의성어인 사각사각이나 킥킥 웃음소리를 넣어 현장감을 살려낸다. 다만 감자서리를 한 장소가 태일네 돛단배라는 것은 그 마을이 바닷가 마을로서 주민들의 대부분은 농사를 짓던 전국에 흔히 볼 수 있던 농어촌임을 짐작하게 한다.

  고샅길은 송희네집 흙담에 이르고, 단감을 따먹다 들켜 도망치던 추억과 함께 단감처럼 둥그레한 송희의 얼굴도 떠오른다. “마당으로 떨어져,/ 달빛을 걷어차며 달아나던 발자국 소리로 출렁이던 길이란 묘사는 평면에 머무르기 쉬운 추억의 서사를 입체영상처럼 살려 놓았다. 마지막 연의 눈 내리면 친구들이 몰려나와/ 자박자박 코스모스 꽃 수놓던 꿈길역시 눈 위에 발자국으로 수놓던 눈꽃들이 뚜렷이 그려질 정도로 묘사에 성공하고 있다.

  박흥순 시인은 산두, 그 고샅길을 통하여 우리가 잊고 있는 농경사회의 천진난만했던 시절의 추억을 선명하게 되살렸다. 그것은 산업화를 통하여 잃게 된 소박한 행복의 원형일지도 모른다.

 

 

2.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삶의 풍경

 

  특별시 사당동 남성시장/ 시장 입구 양쪽에 약국이 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옆으로 줄줄이/ 옷가게, 잡곡가게, 화장품집, 비뇨기과, 미장원, 신발가게, 모자점,/ 한의원, 건어물집, 모두가 골목처럼 어깨동무를 하고 서 있습니다 // 그제는 파도횟집이 신장개업을 했고/ 어제부터는 청정야채가게가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직업소개소 간판을 다느라 골목길이 어수선하군요 // 골목길을 끌고 가는/ 각설이 아저씨의 쨍 하면 볕들 날이,/ 고래아저씨의 저 높은 곳을 향해서가/ 국수집, 나물집, 두부집, 곱창집, 짜장집/ 영양탕집, 통닭집, 피자집, 순대국집, 찐빵집,/ 떡집, 집 집 집들에 시리고 아프게 스며듭니다 // 특별시 사당동 남성시장 하늘에는/ 낮달이 전깃줄에 걸려 흔들리고 있습니다.

박흥순 그제 그리고 내일전문

 

  두 번째 시로 시인은 서울특별시 사당동의 남성시장을 그림으로서 고향을 떠난 화자가 살고 있는 도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 여러 가지 종류의 가게를 열어 서로 의지하고 살아가지만, 부침의 영고성쇠를 어쩔 수 없는 특별시 살아내기는 만만치 않다. 그제는 파도횟집이 신장개업을 했는가 하면, 어제는 청정야채가게가 문을 닫았고, 오늘은 직업소개소가 간판을 달고 있다. 쨍하고 볕들 날의 세속적인 번영을 꿈꾸는 사람도,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영혼의 영광을 꿈꾸는 사람도, 다같이 스쳐 지나가는 특별시 사당동 남성시장 하늘의 전깃줄에 걸려 흔들리는 낮달은 두고 온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자 잃어버린 동심의 상징이 아닌가.

 

 

3. 버림받은 물상을 사랑하는 까닭

 

  세 번째 시는 조금 엉뚱한 제목이어서 눈길을 끈다. 별 볼 일 없는 생각이란 무엇일까? 시를 읽어보자.

 

  “너는 내 다락방으로 가야겠다” // 들녘이나/ 동네 골목길이나/ 갈짓자를 걷다가도/ 눈에 밟히는 그 무엇이 있으면 나는 그렇게 말한다. //// 형형색색의 양초, 버림받은 괘종시계, 노란 손풍금/ 혼자서는 들 수 없었던 박혁거세 돌덩이/ 대나무 바구니, 상처투성이 교자상/ 쓰레기 통 속 인형이 서재를 가면/ 어둠을 밀치고 나를 반긴다// 내가 내가 그들을 모셔다 두며 눈빛을 주는 것은/ 별 볼 일 없는 나의 모습이 저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그래서 언젠가, 그들을 시의 옷으로 바꾸어주고 싶은/ 내 가난하고 별 볼 일 없는 생각 때문이다

박흥순 별 볼 일 없는 생각부분

 

  화자는 길을 걷다가도 예컨대 공중전화기를 만나면 그들이 동전을 밀어 넣고 나누었을 대화를 상상하면서 짜릿한 쾌감을 느낀다. 그래서 사람 냄새가 나는 그 무엇들을 다락방에 모셔 둔다. 형형색색의 양초나 누가 버린 괘종시계, 손풍금에 대나무 바구니, 상처가 난 교자상까지 별 볼 일 없는 나의 모습으로 생각되어 다락방에 모셔 두고, “언젠가는 시()의 옷으로 바꾸어주고 싶은생각을 한다. 효용이 사라진, 지난 시대의 물건들에 시의 옷을 입혀, 잊혀진 그 뜻을 새기는 것이 시인의 따뜻한 소망임을 말한다. 그것을 별 볼 일 없는 생각이라고 비하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분명 역설일 것이다. “박혁거세 돌덩이도 엉뚱하다기보다는 신비감을 자아내기 위한 장치로, “짜릿한 맛을 느끼며 즐겼던/ 카바레 작업장에서처럼도 현장감의 흥미를 돋우기 위한 장치로 이해하기로 한다.

 

 

4. 나만의 창, 구름의 위안을 찾아서

 

  네 번째 작품 괴로움이 꿈틀거릴 때는 매우 흥미로운 진전을 보여준다. 독특한 상상력의 작품을 읽어보자.

 

  빈 깡통을 콘크리트 바닥에 두고 망치로 찌그려뜨린다 나는 망치를 들고 다니는 건축가다 내가 새로 짓는 집은 시간이 흐르면 집 모양이 바뀌어 간다 창문이 꽈배기처럼 휘기도 하지만 중간층이 장구 모양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이상한 집을 짓는 이상한 건축가라고 수근거린다 그렇다고 나는 주춤거리지 않는다 보라는 듯이 이번에는 창문이 하늘을 보며 놀고 있는 파란 집을 지었다 창문도 파랗게 웃었다 입이 머리통 뒤에 달린 사람들, 눈이 발톱 밑에 붙은 사람들 그들이 보고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는 대신, 날아가는 새들의 몸짓을 볼 수 있고, 웃고 가는 뭉게구름을 제대로 볼 수 있다고 큰소리쳤다 사람들은 나를 갸우뚱 건축가라고 부른다

박흥순 괴로움이 꿈틀거릴 때부분

 

  건축가인 화자는 망치를 들고 다니며 빈 깡통을 망치로 찌그러뜨린다. 그것은 정형화된 것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욕구 부수기일 것이다. 창문이 꽈배기처럼 휘고, 중간층은 장구 모양으로 하기도 하고, 창문이 하늘을 보도록 하는 창의적인 집을 짓지만,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은 그를 이상한 건축가라고 불렀다. 그렇다고 그가 물러서지 않았다. “날아가는 새들의 몸짓을 볼 수 있고, 웃고 가는 뭉게구름을 제대로 볼 수 있다고 큰소리쳤다.”

  그는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실용 이상의 가치, 나는 새들의 몸짓을 보고, 흘러가는 뭉게구름을 보는 문화의 가치를 실현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돈키호테였던 것이다.

  그것이 시로 성공하기 위하여 그는 물푸레나무로 사다리를 만들어 사용했던 아버지 이야기를 이어간다. “망치 같은 연장을 쓰지 않고 초승달 같은 집을 지어서 거기 살고 싶다던 아버지는 한 발 더 나아가 푸른 깡통이 열리는 한 그루 나무를 초승달이 뜨는 언덕에 심으라고 했다.” 그가 망치로 빈 깡통을 찌그러뜨리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읽고 난 다음에는 세상의 수군거림이 사라질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세상의 수군거림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듯, 갈등을 이겨내고 초연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시인의 마음이 짠하게 밀려온다. 독특한 화법과 함께 상상력을 밀고 나가는 필력이 돋보이는 수작(秀作)이다.

 

 

5. 그대와 함께 꿈꾸며 살고 싶은 곳

 

  어느 사이 다섯 번째 시 그대와 함께 갯뻘로 가고 싶다에 이르렀다. 제목만으로도 다섯 편을 따뜻하게 매듭짓고 싶은 시인의 마음이 느껴진다. 시는 그가 그대와 함께 이미 당도한 갯뻘에서 시작된다. 표준어 갯벌을 굳이 소리나는 대로 갯뻘로 표기하는 것 역시 유토피아를 지향하는 시인의 내재된 심리에 기인할 것이다.

 

  갯뻘이 옷을 벗고 가슴을 내보이기 시작하면/ 그대는 가래로 갯뻘의 가슴을 파헤쳐 낙지를 잡아내고/ 나는 갯뻘의 혈관 속에 낚싯줄을 드리우는/ 그렇게 갯바람 같은 한 철을/ 그대와 살았으면 좋겠다 // 그대는 더 많은 낙지를 바랑에 넣기 위해/ 쩍을 밟고서라도 가래질을 하고/ 나는 갯골에 밀물이 밀려와도/ 한 마리 물고기를 바구니에 더 넣기 위해/ 가난한 파도 소리가 되어가면서/ 그대와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

박흥순 그대와 함께 갯뻘로 가고 싶다부분

 

  도회에 화합 적응하지 못하고 이상한 수군거림에 싸여 불화를 인내하고 있는 시인이 꿈꾸고 있는 마지막 이상향은 고향 바다이다. 때묻지 않은 갯뻘에서 건강한 몸으로 건강한 그대와 땀흘리며, 꿈꾸며, 살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잠재의식에는 가난에 대한 걱정이 숨어 있는 것 같다. “가난한 파도소리가 그렇게 말해준다. 아직은 특별시에서의 상처가 회복되지 않은 까닭이리라. 그래도 갯뻘로의 귀향을 꿈꾼다. “달려오는 흙탕물이/ 갯뻘을 통째로 삼켜도/ 태초부터 조간대의 아버지는 달이었다고/ 갯뻘도 그 달의 새끼라고/ 그대와 갯메꽃 바라보며 웃을 수 있기에/ 그대와 함께 갯뻘로 갔으면 좋겠다.”는 그의 소원은 절절하다 못하여 엄숙하기까지 하다. 갑자기 튀어나온 조간대(潮間帶)의 아버지가 달이라는 발상에서 갯뻘로 확대하여 나아간 것도 재미있다. 만약 자전적인 스토리를 이 정도의 시로 구성해 냈다면, 그는 상당 기간 타고난 재능에 걸맞게 내공을 쌓아왔음에 틀림없다.(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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