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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한편의 詩

언덕 위로 / 로제티

by 바닷가소나무 2018. 2. 19.

언덕 위로


           - 로제티 -


언덕 위로 길이 내내 구불구불 하나요?

그럼요, 끝까지 그래요.


오늘 여행은 하루 종일 걸릴까요?

아침에 떠나 밤까지 가야햐요, 내 친구여.


그럼 밤에 쉴 곳은 있을까요?

서서히 저물녁이 되면 집 한 채가 있지요.


어두워지면 어쩜 보이지 않을 수도 있겠네요?

그 집은 틀림없이 찾을 수 있어요.


밤에는 다른 길손들을 만나게 될까요?

먼저 간 사람들을 만나겠지요.


오래 문을 두드려야 하나요?

보이면 불러야 하나요?

당신을 문간에 세워 두지는 않을 겁니다.


여행은 고달프고 힘이 들어요.

평안을 얻게 될까요?

들인 대가를 얻게 되겠지요.


나와 찾아온 이들 모두에게

돌아갈 잠자리가 있을까요?

그럼요, 누가 찾아오든 잠자리는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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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티

다른 표기 언어 William Michael Rossetti


요약 테이블
출생1829. 9. 25, 영국 런던
사망1919. 2. 5, 런던
국적 영국

요약 :   영국의 예술 비평가, 문학 편집자, 학자.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의 동생이자 크리스티나 로제티의 오빠였다. 그는 라파엘 전파(前派) 협회의 공동 창설자였으며 이 유파의 잡지인 〈싹 The Germ〉의 편집자였다.


여러 가지 면에서 그보다 화려했던 형과는 어렸을 때부터 대조를 이루었는데, 예를 들면 그의 차분하고 지적인 외모나 경제적인 면의 신중함, 이기심없는 태도가 그랬다. 16살에 그는 간접세무국(후에는 내국세입청이 됨)의 사무원이 되어 연봉 80파운드를 받았고, 이로써 그는 로제티 집안 전체의 대들보가 되었다.


1850년에 잡지 〈스펙테이터 The Spectator〉의 예술비평가로 임명되고 또 그후 공무원으로서도 조금씩 승진함에 따라 1854년에는 아버지와 어머니, 두 자매를 위해 안락한 집을 마련했다. 어머니와 누이 마리아가 처음엔 캠던 타운에, 후에는 서머싯에 있는 프롬에 학교를 세우려고 했던 노력은 허사가 되고 말았지만 이탈리아어를 가르치면서 그들도 가계를 도왔다.


윌리엄은 어떤 형식이든지 간에 종교를 싫어하고 거부했다. 1874년 그가 결혼했을 때 그의 나이는 45살이었으며, 그는 자기 어머니와 누이 크리스티나와 함께 살고자 하였다. 하지만 2년이 지난 후 그들이 함께 사는 데서 오는 심리적인 문제점들이 크리스티나와 아내 에마 루시(포드 매독스 브라운의 딸) 모두에게 분명하게 나타났기 때문에 결국 크리스티나와 어머니가 토링턴 스퀘어에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갔다.


가정을 위해서는 묵묵히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었지만 보잘것없는 사람은 결코 아니었던 윌리엄은 비평가로서 그리고 라파엘 전파의 역사가로서 뛰어난 자질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작품을 독자적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당시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킨 월트 휘트먼의 시 〈풀잎 Leaves of Grass〉(1855)을 형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는 비웃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천재적인 작품이라고 격찬했다. 블레이크에 대한 그의 열정은 단테 가브리엘의 열정에 못지 않은 것이었다. 그는 수많은 영시집을 사려 깊고 뛰어나게 편집했으며, 제프리 초서와 조반니 보카치오 같은 중세 작가들에 대한 비교 연구에도 정통해 있었다. 그는 라파엘 전파와 관련된 엄청난 양의 가족 서한과 자료, 그리고 그 운동에서 형이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 사사로운 감정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진지하게 논했는데 그로써 자신이 빼놓을 수 없는 연대기 저자임을 입증했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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