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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 시

베란다에서 우는 귀뚜라미소리 / 박흥순

by 바닷가소나무 2017. 11. 29.

 

베란다에서 우는 귀뚜라미소리

 

 

그가 아직 떠나지 않았는데

창문 틈 사이로 귀뚜라미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 온다

창문을 꼭 닫아도

문틈으로 스며드는 귀뚜라미 소리

푸른 산들이 오색치마로 갈아입는다는

숨 가쁜 전언이다

 

비 내리던 날

흠뻑 젖어 걸어가던 내 모습 같기도 하고

안개 속으로

누군가를 떠나보내던 마음 같기도 한 

저 귀뚜라미 울음소리

내 마음속으로 파고든다

 

귀뚜라미 울음 속에 박꽃이 피었고

귀뚜라미 울음 속에 할머니가 가셨지

귀뚜라미 울음 속에 그녀가 울었고

귀뚜라미 우는 이 밤에 나는 시를 잡으러 가는데

 

울고 있는 저 귀뚜라미

한 줌 흙에 심어놓은 나팔꽃나무 아래

슬픔이란 심는 것이 아니라 삭히는 것이라고

 

귀뜰, 귀뜰, 귀뜨르르......

 

삼 파장 불빛 속으로 스며드는

저 간절한 울음소리

 

조용하던 내 피를 끓게 하면서

 

 

 


2017ㅡ 동작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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