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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 인생독본

톨스토이-인생독본 / 9월8일

by 바닷가소나무 2015. 9. 8.

98

 

어린 아이들에게는 모든 위대한 것이 가능한 것이다.

 

1

그리스도는 말했다.

진실로 그대에게 고하노라. 만약 그대가 다시 어린애처럼 되지 않았더라도 천국에 들어 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라도 이 어린애처럼 자기 자신을 낮추는 것은, 천국에 있어서 위대한 것이다.

그러나 나를 믿고 있는 이 조그마한 한 사람이라도 무릎을 꿇게 하는 자는 커다란 맷돌을 목에 걸고 깊은 바다 밑바닥에 가라않게 되는 편이 좋다.<성 서>

 

2

천지의 주인 아버지시여, 나는 감사 하노라. 이러한 것들을, 착하고 지혜로운 것에 감추어 어린애 속에 나타나게 하신 것을!

아버지시여, 그렇다, 이것은 당신의 뜻에 맞은 일인 것이다.

 

3

그 천진난만함과, 그리고 완전한 것에 이를 수 있는 일체의 가능성을 지니고, 어린 애들이 그칠 새 없이 태어남이 없다면이 세계는 얼마나 무서운 것으로 되어버릴 것인가?

 

4

어린애는 그 약한 손가락 사이에 어른의 손으로는 잡지 못할 진리를 잡고 있다.

그리하여 성숙한 뒤의 참다운 자랑에 대한 암시를 갖고 있다. <라스킨>

 

5

어린애는 자기의 영혼을 알고 있다. 그 영혼은 어린애에게 있어서 존귀한 것이다.

어린애는 눈썹이 눈을 보호하고 있듯이 그 영혼을 지키고 있다.

그리하여 사랑이라는 열쇠가 없으면 누구라도 자기 영혼 속에 들어갈 것이 허락 되지 못한다.

 

6

이 세계에 갖 태어난 어린애에게 모르는 세계의 일을 이야기 하는 것만큼 사악한 일이 또 있을까? <칸 트>

 

7

어째서 어린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높은 덕성을 갖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어린아이들 지혜가, 기만이나 유혹이나 죄악에 의해서 사악하게 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있어서는 완전을 향하여 걷는 도상에 그들을 방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인 것이다.

아이들은 그저 앞을 향하여 걸어 나가면 된다. 그러나 어른들은 언제나 투쟁이 필요한 것이다.

 

8

아이들은 진리를 알고 있으나 그것을 말로 나타낼 줄을 모른다. 마치 우리가 외국어를 읽을 줄을 알지만 말은 하지 못하는 듯이.

 

9

아이들은 무엇이 선이라는 것을 우리들에게 이야기 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모든 기만 악에서 반듯이 틀림없이 피하는 것이다.

 

10

무슨 일에 있어서나 기만에 의해서, 가장 현명한 사람 주의 깊은 사람을 속일 수가 있다. 그러나 오직 아이들만은 아무리 교묘하게 숨길지라도, 곧 그것을 알고 그리고 피하는 법이다.

 

11

두 가지의 조흔 덕성사심이 없는 기쁨과 사랑에 대한 무한한 요구가 생활에 대한 유일한 각성이 되기 위해서는 아이들 시절보다 더 좋은 시대는 다시없는 것이다.

 

*

모든 사람을 존경하라. 그러나 그 백배만큼 아이들을 더 존경하라.

그리고 아이들의 완전한 깨끗함을 파괴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공포

파시카와 어머니는 비에 젖으며 먼 길을 걸어갔다. 처음은 나무그루가 너더분한 논밭을 가로지르고, 다음은 누런 나뭇잎이 파시카의 장화에 달라붙는 숲속의 축축한 길을 지나서, 새벽까지 절었다.

그리고 다시 두 시간이나 어두운 현관 앞에 서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현관 앞은 물론 바깥보다는 따뜻하고 공기가 말라 있었지만, 살을 에이는 듯한 바람은 거기까지도 사정없이 비를 쏟아 놓았다. 그래서 현관 앞이 환자들로서 차츰 가득하게 되자, 파스카는 그 사람들 속으로 기어 들어가 몹시 좀내가 나는 양가죽 상의 에다 얼굴을 묻고 어느새 잠이 들었다.

얼 후 빗장이 미끄러지는 소리가 나고 문이 열리었으므로, 파시카와 어머니는 대함실로 들어갔다. 그러나 또다시 오랜 시간을 기다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환자들은 모두 벤치에 걸터앉고 누구하나 꼼작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누구나 입을 열지 않았다.

파시카는 가만히 군중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있노라니 여러 가지로 이유 모를 우스꽝스러운 모양들이 눈에 띄는 것이었는데, 역시 그는 아무 말 않고 있었다. 허나 어떤 소년이 한 발로 방안으로 뛰어 들어오자 파시카는 어머니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찌르며, 이렇게 말하였다.

봐 엄마참새가!

가만있으라니까 그래!

조그만 창으로 조수의 졸음에 겨운 얼굴이 보였다.

이리로 와서 이름을 대시오

기다리고 있던 환자들은 창 앞으로 몰리었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조수는 성과 이름과, 그 주소와 병이 걸린 날자와 그 밖의 여러 가지 말을 물었다.

성명이 기입된 후 다시 잠간동안 시간이 있었다. 얼마 후에 흰 가운을 입고 어께 위에 수건을 얹은 의사가 대합실을 지나갔다. 그는 절름발이 소년 앞을 지나갈 때에 어께를 으쓱하며 억양이 없는 소리로 말했다

이 녀석아, 너는 바보로구나! , 바보 아니란 말이냐? 월요일이라고 일껏 말했는데 화요일에 오다니! 내가 담당하고 있는 동안은 그래도 무관심 하지만, 제 자신이 명심하지 않으면 이 바보야, 다리가 없어지고 마는 거야!

절름발이 소년은 눈을 깜빡거리고 마치 동냥이나 하듯 애처롭게 낮을 찡그리고 말하였다.

이완니콜라위치제발 용서해 주세요.

뭐가 이완니 코라위치야!

의사는 조롱하듯이 말했다.

내가 월요일이라고 말했을 것 같으면,넌 그대로 하면 된다! 너는 아무래도 바보란 말이야!

진찰이 시작 되었다. 의사는 자기 방에 자리를 정하고 환자들을 차례차례로 불러 들였다. 이따금 그 방에서는 귀를 찌르는 듯한 고함소리, 어린것들의 울음소리에 섞이어, 의사의 성난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는 왜 질러. 죽이진 않을 테니까! 꼼짝 말고 있으라니까!

겨우 파시카 차례가 돌아왔다.

파울 가라크티오노브

하고 의사는 불렀다.

파시카의 어머니는 마치 그 호출을 이야기하지 않았던 듯이, 가벼운 현기증을 느끼고 이마에 손을 얹었으나, 곧 정신을 다잡아가지고 파시카의 손을 이끌고 의사의 방으로 들어갔다. 의사는 탁자 앞에 걸터앉아서, 장도리로 두꺼운 서적을 기계적으로 두드리고 있었다.

어디가 아파?

하고 그는 사람들 쪽을 보지도 않는데 물었다

선생님 어린애가 종기가 나서요…….

하고 파시카의 어머니는 대답하였다. 그 어조에는 파시카의 종기 때문에 자기도 몹시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는 뜻이 넘쳐 있었다.

옷을 벗어!

파시카는 가슴을 두근거리면서 먼저 머릿수건을 끄르고 소매로 콧물을 훔쳐 닦은 ekamd, 상의 단추를 끄르기 시작했다.

여보시요! 당신은 나한테 손님으로 온 거요?

하고 의사는 신경질이 난 듯 어머니에게 말했다.

왜 빨리 하지 않는 거요? 기다고 잇는 사람은 당신만이 아니야!

파시카는 당황해서 상의를 마루 위에 던졌다. 그리고 어머니의 손을 빌려 샤쓰를 벗었다. 의사는 흥미 없다는 듯이 파시카를 건너다보았다. 그리고 벌거숭이의 배꼽 언저리를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이런 파시까씨

하고 그는 소리를 질렀다.

자넨 또 왜 이렇게 살이 쪘나?

이렇게 말하고 그는 후유 하고 한숨을 내쉰 다음, 팔꿈치를 내보이게!

파시카는 피에 물든 유리 항아리의 붉은 물을 보고서는 무서움이 와락 나면서, 의사의 가운을 보며 울음보를 터트렸다.

바아보!

의사는 어르는 듯이 말했다.

여편네들 가져도 좋을 만큼 다 큰 녀석이 울긴 왜 울어. 바보새끼!

파시카는 눈물을 막으려 했다. 그가 어머니를 보는 눈치 속에는 이런 말이 담겨 있었다.

병원에서 울었다고 집에 가서 말하지 말아,

의사는 자세히 보고나서 그 부분을 꼬집어보고 혀를 차면서 또 한 번 팔꿈치를 만져 보았다.

왜 좀 일찍 데려오지 않았어? 팔은 인제 틀렸어! 이것 봐요, 관절이 아주 썩은 게 당신 눈엔 안 보이는가?

, 그렇습니다. 선생님!

하고 파시카의 어머니는 말했다.

선생님이라고? 자식새끼 팔이 다 썩어 가는데, 선생님이구 개똥이구 다 뭐야? 팔 없이 무슨 일을 해 먹느냐 말이지! 어머니가 일생 먹여 살려야지! 자기 일이라면 콧잔등에 여드름 하나 나도 여길 달음질 해 오면서, 자기가 배를 앓은 자식새끼는 반년동안이나 썩혀둬? 그래도 당신은 인간인가?

의사는 여송연에다 불을 붙여 물었다. 그리고 그 담배가 타는 동안, 파시카의 어머니를 꾸짖기도 해보고, 콧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머리를 휘휘 내저어 보기도하고, 또 무슨 생각에 골똘히 잠기는 척도 했다. 벌거숭이 파시카는 그의 앞에 선채, 그 콧노래에 귀를 기울였다가, 담배연기 가는 곳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기도 했다.

여송연이 다 타고난 다음, 의사는 불쑥 일어서며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

여보시요! 고약이고 약이고 이젠 쓸데없소! 이애는 입원시키지 않으면 안 되겠는 걸!

그럼 선생님 제발 그렇게 해 주세요

절개를 …….가르지 않으면 안 된단 말이야. 허니까 파시카, 너 여기 남아 있어야 해

하고 의사는 파시카의 어개를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어머니는 집에 가드래도, 넌 나하고 함께 여기 있지? 여기도 그리 나쁜 곳은 아니지. , 파시카씨. 저것 봐, 나무도 있어, 너하고 나하고 말이야. , 파시카, 병이 다 나으믄 새 잡으러 가자. 그리고 여우를 보여 줄게. 둘이서 같이 가보자 응? 여기 남아 잇을 테지? 그리어머니는 내일 또 올 거야

파시카는 어떻게 하면 좋으냐는 듯이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넌 여기 남아 있어야 돼!

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뭐 다른 말 할 것 없이나는 애한테 산 여우를 보여줄 작정이야. 같이 시장으로 가서 사탕 과자도 사주고.마리아테니소오우나이 애를 이층으로 데리고 오시오!

의사는 분명히 유쾌하고 수다스러운 사람이었다. 그리고 파시카는 여태껏 시장에 가본적도 없고, 또 산 여우도 보고 싶고 해서 마음이 끌리었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그녀는 그 문제를 여러 모로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자기도 남으면 어떠냐고 선생님께 물어보기로 마음먹었다. 헌데 아직 입을 때기도 전에 간호부가 아들을 이층으로 데려갔다. 입을 멍하니 연채 아들은 주위를 살펴본다. 층층계나 마루나 문설주나 모두 곱게 노랑빛으로 칠해져 있었다. 그리고 도처에서 제삿날 단술 같은 달달한 냄새가 오라고 손짓하는 듯하였다. 놋쇠 수챗구멍은 사방 벽에서 어서와 마시라는 듯 주둥이를 내밀고 있었다. 그러나 그중 제일 파시카의 마음을 끈 것은 쥣털 빛 이부자리가 깔린 침대였다. 그는 베개와 이불에 손을 대어 만져 보았다.

그것은 작은 병실로서 세 개의 침대가 있을 뿐이었다. 문어귀에서 첫째 것은 비어 있고, 둘 째 것이 파시카의 침대였다. 그리고 셋째 것에는 징그러운 눈을 한 할아버지가 앉아 있었는데, 쉴세. 없이 기침을 하고서는 ,타구 속에다 가래를 뱉고 있었다.

파시카는 자기 침대에서 열리어 있는 문틈으로 옆방 일부를 볼 수가 있었다. 거기에는 두 개의 침대가 있었는데, 하나에는 낯빛이 해쓱한 야윈 사나이가. 머리위에 고무주머니를 얹은 채 모로 누워 있었다. 다른 한에는 한 사람의 농부가 팔을 벌리고 머리에 붕대를 감고 마치 할머니 같은 모양을 하고 앉아 있었다.

파시카를 놔두고 간호부는 나갔다가 곧 한 아름 가득 옷 보따리를 안고 들어왔다.

이게 다 네 거야, 자 입어 봐요

하고 간호부는 말했다.

파시카는 자기의 헌 옷을 벗어버리고 빙글거리며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셔쓰와 양복즈봉과 잿빛 상의까지 입고 난 다음, 그는 터져 나오는 웃음에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자기 몸을 돌아다보았다. 그리고 이 생옷을 입은 몸으로 마을을 걸어 다닌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였다. 그의 즐거운 상상은 그가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냇가 채소밭으로 도지 먹이로 줄 양배추 떡잎으로 따러갈 때, 마을 머슴애나 계집애들이 그의 앞뒤에 몰려와서, 부러운 듯이 입을 멍하니 열고 그의 옷을 보고 있는 광경을 그려졌다.

다음번 가호부가 돌아왔을 때는 두 개의 접시며 두 개의 빵과 두 개의 숟가락을 가지고 왔다. 그녀는 접시 하나를 옆 침대의 할아버지에게 주고, 하나는 파시카에게 주었다.

어서 먹어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파시카는 그 접시 속에, 기름 이 뜬 국물이 가득 들어 있으며, 그 밑바닥에 고기 덩이가 한 조각 잠겨 잇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의사는 상당히 잘 살고 있으며, 아까 말투로 느낀 것보다 치절 하다 생각하였다.

그는 국물을 한 숟갈씩 더 넣고서는 입안에서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고 한참 맛을 즐기다가 넘기곤 했다. 그리고 고덩어리만 남았을 때, 할아버지 족을 곁눈으로 보고 퍽 부드럽게 생각했다.

한숨을 쉬고 그 고기를 먹기 시작 했는데 될 수 있는데도 오래 씹도록 하였다. 그러나 고기는 곧 없어지고 말았다. 이제 방만 남게 되었다. 그가 빵마저 다 먹어버렸을 때 감호부가 두 개의 접시를 들고 들어왔다. 이번에는 불고기와 삶은 감자가 들어 있었다.

너 빵 어떻겠니?

하고 간호부는 물었다. 파시카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휴 하고 한숨을 내뿜었다.

먹어버렸구나?

간호부는 꾸짖듯이 말했다. 그럼 불고기는 무엇으로 먹을래?

간호부는 방을 나가더니 다시 빵을 가지고 들어왔다. 불고기로 해서 먹는 빵은 참으로 맛났다. 파시카는 처음으로 불고기를 먹어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불고기는 눈 깜짝할 새에 다 없어지고 또 다시 빵만 남았다. 그것은 아까 것보다 한층 더 큰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식사를 마치고 나더니, 나머지 빵을 서랍 속에 넣어 두었다. 그래서 파시카도 그렇게 할까 했으나, 잠간 망설인 후 그것마저 먹어버렸다.

식사 후에 그는 탐험을 떠났다. 다른 병실에는 아까 본 사람들 밖에도 도 네 사람이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이 특히 파시카의 눈에 끌었다. 그는 키가 큰 말라빠진 농부였다. 텁석부리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침대 위에 앉아 있었는데 쉴 새 없이 머리와 팔을 내흔들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 농부가 시계추모양 머리와 팔을 내젓는 것이 보는 사람을 웃기려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가만히 보고 있노라니까 그것이 참을 수 없는 고통 대문임을 알고 파시카는 갑자기 그 농부가 가엾은 생각이 들었다.

셋째 병실에는 검붉은 얼굴이 마치 진흙으로 붙인 듯 붉은 얼굴을 한 두 사나이가 앉아 있었다. 그들은 침대 속에 꼼짝도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저 사람들은 왜 저러고 있어요?

하고 파시카는 간호부에게 물었다.

저 사람은 말이지 두창 환자야

파시카는 자기 방으로 돌아와서 의사를 기다리는 동안 옆 침대의 사람을 돌아다보았다. 할아버지는 연거푸 기침을 하고서는 타구 속에다 가래를 뱉는다. 기침은 길고 꼬리를 끌고 목에서 가르랑 가르랑 소리가 났다. 헌데, 한 가지 몹시 파시카를 재미나게 한 것은, 할아버지가 기침을 하고 숨을 후우 들이쉬면, 그 가슴 속에서 무슨 소린지 중얼거리는 듯 여러 가지 노래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뱃속에서 무엇이 울고 있어요?

하고 파시카는 물어 보았다. 할아버지는 대답이 없었다.

오래 기다렸으나 의사는 끝내 오지 않았다. 그러는 중 간호부가 차를 가지고 와서 파시카가 빵을 다 먹어버린 것을 꾸짖었다.

여러 사람들이 옆의 병실에 들어와서 떠들고 있었다.

침대 채 가져갈까? 신체만 가져갈 가

하고 그중 한 사람이 물었다.

신체만 가져가지. 침대 둘곳은 없어. ! 더러운 때 죽어 가지구!

한 삶이 시체의 어깨를 들고 한 사람이 그의 다리를 들고 일어섰다. 또 한 사람그는 여자 같이 생긴 농부였다이 십자를 그었다. 그리고 세 사람이 함께 시체의 다리를 질질 끌면서 병실에서 나가버렸다.

잠들고 있는 할아버지의 가슴 속에서는 가르랑 가르랑 여러 가지 노래 소리가 들렸다. 파시카는 그 소리를 들으며, 무서운 듯 검은 창문을 쳐다보고 있다가 황급히 침대에서 뛰어 나왔다.

어머니!

하고 그는 외쳤다. 그리고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다음 병실로 뛰어 들어갔다. 램프의 희미한 불이 가까스로 어둠을 물리치고 있었다. 파시카는 화자의 죽음에 겁이 나고, 게다가 검은 그림자들이 붙어 있는 것 같아서 모두가 도깨비처럼 무섭게 보였다. 멀리 덜어진 어두운 구석에 한 농부가 쉴 새 없이 중얼거리며 파를 내저으며 앉아 있었다. 문 쪽은 보지도 않은 채 파시카는 두창환자들의 병실을 빠져서, 복도를 지나 수염이 긴 쭈구럭 쭈구럭한 얼굴을 한 괴물들이 가득 있는 넓은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 부인 병실을 뛰어나와서, 다시 복도로 나오자, 거기 난간이 있는 것을 보고 번개 같이 아래층으로 달려 내려갔다. 거기는 오늘 아침에 앉아 있었던 대합실이었음으로 대 뜸에 입구 문을 찾을 수가 있었다.

문고리가 찰칵 울고 차가운 바람이 뺨을 스쳤다. 파시카는 몇 번이나 어프러질듯 하며 마당 쪽으로 달렸다. 머릿속은 도망하자! 도망하자!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찼었다. 그는 기릉몰랐지만 쉬지 않고 달린다면, 곧 어머니와 같이 집에 있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다.

달은 어두운 하늘 검은 구름 속에 비치고 있었다. 파시카는 꼿꼿이 앞으로 내달리다가 어떤 초가집 뒤를 돌아 관목 숲 앞에 당도하였다. 한참이나 거기 우두커니 서 있다가, 다시 병원 쪽으로 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병원 주위를 빙빙 돌며 달리다가, 그러나 거기서 어떻게 하면 좋은가 하고 멈추어 섰다. 문득 자기 눈앞에 하얀 십자가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

파시카는 외치고 다시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검은 무서운 건물 앞을 지났을 때, 비로소 그는 등불이 켜있는 창을 보았다. 캄캄한 어둠 속에 환히 비치는 붉은 도리어 무서움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당황한 나머지 미친 듯이 된 파시카는, 어디로 도망해야 올을 지 몰랐으므로, 하여튼 그쪽으로 가면 살 것 같았다.

창 옆에는 층층계와 게시판이 붙어있는 방문이 있었다. 파시카는 그 층층계릏 달려 올라가서 창안을 들여다보았다. 숨이 막힐 듯 한 기쁨이 가슴에 북받혀 올랐다. 그 창안에는 탁자가 있고 거기에 그 쾌활하고 수다스러운 의사가 손에 책을 들고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파시카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벙글 그리며 소리를 지르고 하였다. 그러나 무엇인지 막을 수 없는 힘이 숨을 꾹 누르고 발밑이 휘청거렸다. 그는 비틀거리며 그만 맥이 풀리어 층층계 위에 쓰러졌다.

그가 제정신을 차렸을 때는 벌써 환하게 날이 밝아 있었다. 글기고 시장과 새와 산 여우를 약속하던 억양이 있는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서 속삭였다.

이 바보 같은 녀석! 파시카, , 넌 바보가 아니구 뭐야! 이 녀석, 어디 똥줄이 빠지게 맞아봐야 알겠나!』 <안톤. 체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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