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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이 있는 시

헤트라이트 / 심상운

by 바닷가소나무 2015. 8. 20.

헤트라티트 /    

 

초여름 감자밭 고랑에 앉아 포실 포실한 흙 속으로 맨손을 쑤욱 밀어 넣으면 화들짝 놀라는 흙덩이들. 내 난폭한 손가락에 부르르 떠는 축축한 흙의 속살. 나는 탯줄을 끊어내고 뭉클뭉클한 어둠이 묻어있는 감자알을 환한 햇살 속으로 들어낸다. 그때 아 아 아 외마디 소리를 내며 내 손가락에 신생의 비릿한 피 냄새를 묻히고 미꾸라지처럼 재빠르게 흙 속으로 파고드는 어둠. 흙 속에 숨어있는 어둠의 몸뚱이에는 빛이 탄생하기 이전 우주의 피가 묻어있을 거라고? 그럼 붉은피는 어둠 속에 서 나오기를 거부하는 우주의 꽃빛 파일(file)!  몇 장의 헌혈 증서를 남기고 떠나간 20대의 그녀는 하얀 침대에 누워 누군가의 혈관 속으로 흐르는 자신의 장밋빛 시간을 상상했을까? 아니면 비 오는 밤, 검정고양이가 청색 사파이어 눈을 번득이며  잡동사니로 가득한 헛간을 빠져나와 번개 속을 뛰어가고 있는 TV화면을 보고 있었을까? 나는 불빛이 번쩍하는 순간 번개 속을 통과한 검정고양이를 찾아 승용차의 헤드라이트를 켜고 강변도로를 달린다. 비가 그치고 가로수를 껴안고 있던 어둠들이 깜짝깜짝 놀라면서 몸을 피하는 게 희뜩희뜩 보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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