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일
남자나 여자나 그 사명은 다 같다. 그 사명이란 신에게 봉사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 봉사의 방법은 남자와 여자와는 서로 다르며 또 제한되어 있다. 따라서 남자와 여자는 제각기 정해진 방법으로써 신에게 봉사하지 않으면 안된다. 여자의 가장 중요하고 특별한 일, 인류의 생활과 완성을 위해 결정적으로 필요한 하나의 일ㅡ 그것은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기르며 교육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그 일과 그 일에 관계있는 모든 일에 대해서 여자는 있는 힘과 주의를 다 기울이지 않으면 안된다. 여자는 남자의 하는 일은 무엇이든 할 수가 있지만, 남자는 여자의 하는 일을 할 수가 없다. 즉 아이를 낳는다는 것과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남자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여자는 여자만이 할 는 두 가지 일에 자기의 전부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1
기묘한, 그리고 깊은 뿌리를 가진 착오가 있다. 그것은 요리며 바느질, 세탁, 육아는 모두 여자만이 하는 일이며 남자가 그런 일을 하는 것은 수치라고 여겨지고 있는 그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로 그와 같은 사나이야 말로 부끄러워해야 한다.
즉, 피로에 지친, 또한 가냘픈 몸에 무거운 짐을 짊어진 여자들이 있는 한도의 힘껏 힘을 내어서 요리를 하던가, 빨래를 하던가, 아이들을 보아 줄 때, 시시한 오락에 시간을 낭비하든가 혹은 전면 아무것도 않고 빈들빈들 노는 사나이야 말로 부끄러워해야 한다.
2
가정에 대한 사랑 속에는 자기의 개성에 대한 사랑 속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선도 악도 없는 것이다.
이것은 어느 것이나 자연의 나타남인 것이다.
가정에 대한 사랑은 자기의 개성에 대한 사랑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에 상응(相應)한 한계를 넘었을 때만 죄악이 되는 것이다.
3
누가복음 제14장26절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그 부모, 처자, 형제, 자매, 자기 자신의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라고 <미워한다. 란 언어에 의해 그리스도는 가정을 버리거나 혹은 가정에 대하여 증오를 품으로라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가까이가고 추종자로서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가정적인 결합으로서가 아닌, 먼저 신과의 결합에 의해서, 그리고 그 후에 서로서로의 결합에 의해서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가정은 최고의 상태가 아니다.
그 반대로 그 대부분은 보다 높은 상태, 종교적인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선 방해가 되는 일이 많은 것이다.
4
적나라하게 살라. <오규스드 콘트>
5
가정 상태를 좋게 못 만드는 여자는 집안에 있어서 절대로 행복하지 못하다. 그리고 집안에서 행복하지 못한 여자는 어디를 가도 행복하지 못하다.
6
인류에게 봉사한다는 것은 그 자체를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생각할 수 있다.
그 하나는 현존하고 있는 인류의 행복을 더욱 크게 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인류의 종족 보전이다. 첫째 부문에는 주로 남자의 사명이 있으며, 두 째 부문에는 주로 여자의 사명이 있다.
7
남자와 여자란 두개의 악보이다. 그것 없이는 인류의 영혼의 악기는 바르고 충분한 곡을 표현할 수 없다. <마드지이니>
8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덕이 높은 여성이다. <마호멧드>
***
이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여, 아직 결혼하지 않은 동안엔 아직 아이를 낳지 않은 동안엔
남자가 하는 일은 무엇이던 해도 좋다. 그러나 아무도 당신들을 대신해서 할 수 없는 일
이 있음을 알라. 그것은 즉 아이를 낳는 일과 아이를 기르는 일 그 일이다.
◆ 귀여운 여자
오렝카는 퇴직한 전문학교 위원 프레미얀니코프의 딸이었다.
그녀는 무엇인가 생각에 잠긴 듯 툇마루에 앉아있었다. 무더운 날씨라 파리 떼들이 성가시게 날아다녔다. 그러나 곧 밤이 된다고 생각하면 즐거웠다. 동쪽에서 먹구름이 뭉게뭉게 몰려 와서는 때때로 시원한 바람을 보내 준다.
뜰 가운데에는 <쿠우킨>이 하늘을 바라보고 서있었다. 그는 <티워리>라는 야외극장의 지배인데, 이 집에 셋방을 얻어 사는 사나이다.
『에이, 또 빌어먹을 놈의 비!』하고 그는 절망적인 표정으로 말했다. 『또 비가 오려나! 일부러 오는 거냐? 요즘은 날마다 비야. 차라리 목매 죽을까 보다. 이젠 다 틀렸어. 날마다 날마다 큰 손해야!』
그는 손을 내어 흔들며 오렝카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보시오! 이게 우리들의 생활이오. 올가 • 세미요노프나! 이런 생활은 사내자식 한 놈 울리기에 충분합니다. 인간은 밤에 변변히 잠자지도 못하고 일만하여, 그 자신을 쇠약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선의 일에 써야 할 머리를 아주 못쓰게 해버리고 말지요. 그러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무엇보다도, 대중이란 무지하고 야만하지요. 나는 대중 앞에 대단히 훌륭한 가극과 무언극 일류 극장악사를 내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중이 바라고 있는 것이란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은 이러한 종류의 것에는 아주 무식이거든. 그들은 어릿광대 따위만을 찾고 있습니다. 속되고 좋지 못한 것만 찾는 것이지요. 게다가 이 날씨란 왜 이렇습니까? 매일 밤 같이 비가 쏟아지구... 오월 열흘 날 부터 시작해 가지고 6월 한 달 죽 계속하니 정말 진절머리가 나지요! 구경 오는 사람은 없는데 땅세는 바쳐야 한다, 관리들한테 돈을 주어야 합니다...』
이튿날도 저녁때가 되자 또 먹구름이 떼를 지어 몰려왔다. 그래서 쿠우킨은 히스테리칼한 웃음을 띠고 말했다.
『그래! 얼마든지 오라! 뜰 가득히 넘쳐서 날 물귀신으로 만들어라! 관청 놈들, 모두 나를 볶아서 씹어 먹어도 좋다. 에잇! 감옥 속에라도 쳐 박혔으면━ 시베리아에 가서 사형이나 되었으면 속이 시원하겠구나! 핫, 핫, 핫!』
그런데 그 다음날도 비는 마찬가지였다.
오렝카는 잠자코 열심히 쿠우킨이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어떤 때는 눈에 눈물이 핑 돌고는 있었다. 이리하여 드디어 쿠우킨의 불행은 오렝카의 마음을 동요시켰다. 오렝카는 어느새 그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쿠우킨은 얼굴빛이 누렇고, 곱슬머리를 이마에 드리운 작은 사나이였다. 그는 연약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말을 할 때는 입이 한 쪽으로 삐뚤어 졌다. 그리고 언제든지 절망한 듯 한 표정이 얼굴에 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처녀의 마음에 깊고 깨끗한 애정을 불 질러 놓았던 것이다.
그 처녀는 늘 그 누구인가를 사랑하고 있었다. 사랑함이 없이는 그녀는 하루도 살아 나갈 수가 없었다.
훨씬 이전에는 그녀는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지금은 괴롭게 가쁜 숨을 쉬면서 어둠침침한 방안에 앉아있다. 오렝카는 또 매년 <브리양스크>에서 다니러 오는 숙모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그 이전에 그녀가 학교에 다니고 있었을 적에는, 불어 선생님을 사랑하고 있었다.
오렝카는 퍽 건강하고 얌전하며 정숙하며 정에 잘 쏠리며 자비심이 깊어 친절한 눈을 가진 처녀였다. 장밋빛 볼이라든가 어떤 유쾌한 말을 가만히 듣고 있을 적에 떠오르는 부드럽고 순진한 미소를 보면, 남자들은,』
『아아, 참 미인이구나! 속으로 생각하고는 부지중 자기도 웃는 얼굴이 되는 것이었다.
쿠우킨은 오렝카에게 결혼을 신청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결혼하였다.
『당신은 어쩌면 요렇게 귀여울까!』
그는 행복하였다. 그러나 결혼식 날에는 밤낮으로 비가 오던 때와 똑같이 그의 얼굴에 절망의 표정이 떠올랐다.
두 사람은 화목하게 살았다. 그 여자는 쿠우킨의 사무실에 앉아서, 『티워리』 극장 일을 이것 저것 돌본다든가 계산서를 작성한다든가, 급료 지불 같은 일들을 맡아 하였다.
배우들은 그녀를 좋아했다. 그래서 그 여자를 <와아니치카와 나> 라든가 <사랑스러운 여자!>라든가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여자는 배우들을 불쌍히 생각하여 약간의 돈을 빌려 주기도 했다. 배우들이 여자를 속인 뒤에는 자기 혼자 눈물을 흘렸으나 남편에게 고해바치는 짓을 안했다.
두 사람은 그 겨울을 즐거이 지냈다. 겨우내 거리에서 연극을 하였다. 자기들의 극장을 단기간씩 소러시아의 단체나, 마술사나, 시골극단의 일행에게 빌려 주기도 했다.
오렝카는 더욱더 건강한 몸으로 늘 만족한 명랑한 마음이었다. 허나 그 동안에 쿠우킨은 점점 더 몸이 마르고 혈색이 누르러 갔다. 겨우내 손해는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큰 손실이야, 막대한 손실이야, 그런 말을 늘 입 밖에 내고 있었다. 밤에는 기침을 하였다. 그래서 여자는 더운 보리수 물을 마련하여 주기도 하고 자기의 따뜻한 쇼올로 그를 덮어 주기도 했다.
『당신은 어쩌면 요렇게도 귀여울까요?』하고 여자는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면서 마음속에서 울어 나오는 다정한 말로 말했다.
『정말 당신은 좋은 분이예요!』
사순제가 가까워서 쿠우킨은 새로운 단체를 모으기 위하여 <모스크바>로 갔다. 남편이 없으면 여자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리고는 별을 바라보면서 밤을 고스란히 창가에 앉아 지낸다.
쿠우킨은 모스크바에 머물러 있었다. 그는 부활제 무렵에는 돌아온다고 편지를 보내오고, <티워리> 일들을 잘 처리하라고 가르쳐 왔다.
아아! 그러나 부활제를 앞 둔 일요일 밤 늦게, 불길한 예감을 가지게 하는 노크 소리가 갑자기 문 밖에서 났던 것이다. 마치 술통 바닥이라도 두들기는 것 같은━ 텅 텅,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선잠을 깬 요리부는 맨발로 물구덩이에 빠지기도 하면서 황급히 문을 열러 나갔다.
『문을 빨리 열어 주십시오.』 하고 문 밖에서 누군가가 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봅니다』
오렝카는 전에도 남편으로 부터 전보를 받은 적이 있었으나, 이번에는 웬일인지 공포에 싸여 오싹했다. 여자는 벌벌 손을 떨면서 전보를 다음과 같이 읽었다.
(이완•페트로윗치 금일 돌연 사망. 화요일 장례식XXXX의 선처 바람) <장례식> 그리고 그 다음에 적혀있는 무슨 뜻인지 모를 말━ 전보는 그렇게 적혀있었다.
『아아, 여보!』 하고 오렝카는 목메어 울었다.
『와아니키카! 내 소중한 당신! 어이하여 나는 당신을 만났을까요. 어이하여 당신을 알게 되어 당신을 사랑하였을까요. 절망한 이 불쌍한 당신의 오렝카는 당신을 잃고, 이제 단 혼자되어버렸습니다!』
쿠우킨의 장례식은 화요일 모스크바에서 거행되었다. 오렝카는 수요일에 집에 돌아왔다. 그리하여 방에 돌아와서 방바닥 위에 몸을 내던지고 옆방에서도 들릴 만큼 큰 소리로 흐느껴 울었던 것이었다.
『가엾은 여자다!』하고 이웃 사람들은 십자를 그으면서 말하였다.
『올가 • 세미요노프가 저다지도 탄식하고 있구나!』
그 후 사흘이 지난 어느 날, 오렝카가 우울하게 생각에 잠기며 미사에서 돌아오는 도중이었다. 이웃에 살고 있는 <와시리 앙드레뷔치 프스트와로프>가 교회에서 돌아오는 길에, 오렝카의 뒤를 따라 왔다. 그는 목재상 『바 카에프』 상점의 지배인이다. 그는 맥고모자를 쓰고 흰 옷에 금시계 줄을 늘이고 상인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시골신사라고 하는 편이 알 맞는 태가 보였다.
『만사가 다 운명입니다. 올가세미요노프나,』 하고 그는 동정에 넘치는 음성으로 정중하게 말하였다.
『우리들이 소중히 여기고 있는 사람이 죽는 것도 신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순종하여 참고 나아가야 합니다.』
문 앞까지 오렝카를 전송하고서야 그는 안녕히 계시라는 말을 하고 되돌아갔다. 그 후 여자는 하루 종일 침착하고 위엄 있는 그 남자의 목소리를 생각했다. 눈을 감으면 언제든지 그의 검은 수염이 보였다. 여자는 대단히 그가 좋아졌다. 분명 여자도 그 남자에게 어떤 인상을 주었다. 그 증거로는 얼마 후 오렝카와 겨우 안면이 있을 정도의 어떤 나이든 부인이 커피를 마시러 와서 테이블 앞에 앉자, 곧 『프스트와로프』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정도 이였으니까.
그 부인은 프스트와로프를 퍽 믿음직하고 훌륭한 남자라고 말하고, 그이와라면 어떠한 여자라도 결혼하리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난 사흘 후쯤 이번에는 프스트와로프가 직접 찾아 왔다. 그는 오래 앉아있지 앉았다. 한 10분쯤 있었을 뿐, 별로 말도 없었다. 그러나 그가 가버린 뒤, 오렝카는 벌써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를 사모하여 열병이라도 걸린 듯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약혼은 곧 성립되었다. 그리고 결혼식이 다가왔다.
남자는 보통 점심때까지 사무실에 앉아 있다가 그 뒤에 장사하러 나간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오렝카가 계산서를 작성하기도 하고, 주문서를 조사하기도 하며 저녁까지 앉아 있었다.
『재목이 해마다 비싸지고 있어요. 20퍼센트씩 값이 올라가고 있습니다.』하고 그녀는 손님들이나 친구에게 말하였다.
『좀 생각해봐 주세요. 우리는 시골재목을 거래하고 있잖아요. 『와아시치카』는 항상 『모기레프』 지방으로 재목 구입하러 가지 않으면 안돼요. 그리고 그 운임!』하고 여자는 겁이 난다는 듯이 양손으로 뺨을 누르고 덧붙이는 것이었다.
『그 운임!』 마치 여자에게는 자기가 몇 해 동안이나 목재상을 하고 있었던 것처럼 생각되는 것이었다. 또한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목인 것처럼 생각되는 것이었다. 그녀로서는 각재, 기둥, 대들보, 통나무, 판자, 등등 이런 말 속에도 정다운 감동을 일으키는 그 어떤 것이 있는 듯 느껴졌다.
밤 잠자고 있을 적에 여자는 그 두꺼운 판자나, 커다란 목판이 쌓여있는 산더미와 어딘가 멀리 재목을 운반해 가는 마차들의 김 행렬을 꿈꾸었다.
토요일에는 프스트와로프와 그 여자는 항상 저녁 기도를 보러 갔다. 일요일에는 아침 예배를 보러 갔다. 교회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두 사람은 화락한 얼굴로 어깨를 나란히 해서 걸었다. 두 사람의 주위 에는 즐거운 향기가 있었다.
그 여자의 비단옷이 기쁜 듯이 살랑살랑 소리를 내었다. 집에서는 과자 빵과 여러 종류의 쟘으로 차를 마시고 그런 다음에 파이를 먹었다. 매일 12시가 되면 이 집의 뜰에는 무우 스프와 양고기며 오리의 맛좋은 냄새가 풍겼다.
일주일에 한 번씩 두 사람은 목욕하러 갔다. 그리고는 두 사람 다 얼굴이 빨갛게 하여 돌아왔다.
『신의 선택으로, 우리들은 무엇 하나 부족을 말할 것이 없어요.』 하고 오렝카는 자기 친구에게 말하였다.
『나는 모든 사람이 와아시치카와 나처럼 산다면 퍽 행복하리라 생각한답니다.』
그러나 프스트와로프가 <모기레프> 지방으로 재목을 구입하러 가면, 그 여자는 그가 집에 없음을 몹시 괴로워하며 밤에도 자지 않고 슬퍼하였다. 그런데 그들의 방을 빌리고 있는 스밀링이라는 군대 소속의 수의는 밤이 되면 때때로 그 여자가 거처하고 있는 곳을 방문 하였다. 그는 오렝카에게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트램프를 치기도 하였다. 남편이 집에 없는 동안에는 이러한 일이 그 여자를 위로하였었다.
그가 자기 가정에 대해 이야기를 함을 그 여자는 특히 흥미 있게 느꼈다. 수의에게는 아내가 있었으며, 조그마한 아이가 하나 있었다. 허나, 그는 아내의 흐리멍덩한 부주의성 때문에 헤어져 버렸던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이제 그는 아내를 미워하고 있었다. 아이의 양육비는 한 달에 40루블씩 보내 주고 있다고 하였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오렝카는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그 여자는 그를 가엾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후 프스트와로프가 돌아오자, 그 여자는 작은 목소리로, 수의에 대하여 또 그의 불행한 가족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다. 이렇게 두 사람은 한숨을 쉬고 고개를 흔들면서, 아이들은 아버지가 없어서 슬퍼하리라고 서로 이야기를 했다.
이렇게 프스트와로프 부부는 평화롭고 의좋게 서로 사랑하면서 6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러나 어느 겨울에 『왓시리•앙드렛위치』는 재목을 운반해내는 것을 감독하기 위하여 모자를 쓰지 않고 목재장으로 나갔다. 이것이 원인이 되어 감기에 걸려 자리에 눕게 되고 유명한 의사의 치료를 받았으나, 병은 중해지기만 했다. 그리하여 4개월 동안이나 앓다가 드디어 죽고야 말았다. 이로써 오렝카는 다시 과부가 되어 버렸다.
『어찌하여 나를 혼자 남겨 두셨나요? 아이...』하고 오렝카는 남편의 장사를 치른 뒤에 울었다. 『당신 없이 나는 어떻게 살아요. 불행하고, 불쌍한 나! 친절하신여러분, 나를 불쌍하다고 생각해 주세요. 나는 이제 완전히 외롭게 되었답니다.』
오렝카는 긴 상장이 붙은 검은 옷을 입고, 이제는 결코 모자나 장갑을 몸에 붙이지 않게 되어 버렸다. 그녀는 교회와 그리고 남편의 묘지에 가는 이외에 조금도 바깥에 나가지 않았다.
이렇게 하여 수녀같이 세월을 보냈으나 6개월도 못되어, 그녀는 상장을 버리고 닫혀진 문을 열게 되었다.
그리고는 아침에 요리부를 데리고 시장으로 식품을 사러 가는 그 여자의 모습이 때때로 발견되었다. 그의 집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떻게 하여 그녀가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을 잘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가끔 뜰에서 수의와 함께 차를 마시고 있음을 보아 사람들은 대개 추측하였다. 수의가 소리를 내어 그녀에게 신문을 읽어주고 있다던가, 우편국에서 아는 부인에게 말한 것이라던가, 그러한 사실들에서 사람들은 대게 추측하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거리에서는 가축의 완전한 검사가 없어요. 그것이 여러 가지 유행병의 원인이에요. 우유에서부터 전염병이 발생한다든가, 말이나 소로부터 병이 감염하는 수가 자주 일어납니다. 그러기 때문에, 가축의 병은 인간의 건강과 마찬가지로, 잘 조심해야 하겠어요.』
그 여자는 수의의 말을 그대로 되풀이 하였다. 그 여자가, 무엇이나 애착하는 것 없이는 한 해도 살 수 없음은 명백한 일이었다. 이렇게 자기의 셋방 속에서 새로운 행복을 발견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행복도 오래 계속 되지 못하였다. 수의는 떠나가 버렸다. 그의 연대(聯隊)가 먼 곳ㅡ 아마 시베리아━ 이동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는 연대와 함께 떠난 것이었다.
오렝카는 다시 홀로 남겨졌다.
그녀의 아버지는 벌써 오래 전에 죽었다.
그녀는 점점 말라들어가 보기 흉하게 되어 버렸다. 사람들은 거리에서 그녀를 만나도 여태까지와 모양으로 유심히 바라보지도 웃지도 안했다.
분명히 오렝카의 성년기(盛年期)는 벌써 멀리 달아나 버렸기에 여태껏 생각하지 않았던 어떤 새로운 생애가 시작하였다. 만년(晩年)이 되어, 오렝카는 뒷마루에 앉아서 연주 하고 있는, 악대의 음색과 불꽃이 터지는 음향에 이따금 귀를 기울였으나 이제는 아무런 감정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런 흥미도 없이, 아무런 생각도 없이, 아무런 소원도 없이 그저 막연히 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얼마 후, 밤이 들면 방에 들어가 누구 한 사람 없는 정원을 꿈에 보았다. 그녀는 아주 싫증이 난다는 듯이 먹고 마시곤 하였다.
쿠우킨과 혹은 뿌스트와로프와 혹은 또 수의와 함께 있을 적엔 오렝카는 아무거나 모두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벌써 그녀의 머리도 정신도 뜰처럼 텅 비었다. 그래서 마치 몹시 아픈 치통과도 같이 괴롭고 쓰라렸다. 차츰 차츰 거리는 확장되어 갔다. 소로(小路)는 큰 길이 되었다. 그리고 『티워리』와 재목장이 있었던 곳에는 새로운 길의 모퉁이가 되어 집들이 즐비하였다. 얼마나 빠른 속도로 세월은 달아나고 있는가!
오렝카의 집은 헐어서 지붕에 풀이 돋고 한쪽으로 기울어졌으며 뜰에는 가득히 덩굴과 풀이 우거져 있었다.
오렝카는 보기 흉하게 늙어 빠졌다. 여름이 되면 그녀는 뒷마루에 앉았다. 봄의 향내가 깃들고 교회의 종소리를 듣게 되면 지난날의 기억이 갑자기 가슴 속에 떠올라 그녀는 마음이 부드러운 고통을 맛보았다.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방울지어 떨어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동안 계속 될 따름 이내 또 공허함이 휩쓸었다.
그러던 6월 어느 더운 날 저녁, 마침 가축이 쫓겨 들어와서 먼지를 자욱하게 일으키고 있을 때 누군가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오렝카』는 몸소 문을 열러 나갔다. 그라고 바깥을 내다보았을 때, 그 여자는 놀라서 말문이 막혔다. 거기에는 머리카락이 회색이 된 스밀링이, 문관 같은 옷차림으로 현관 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 여자는 울면서 그의 가슴팍에 머리를 내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리하여 두 사람이 함께 정신없이 어떻게 방에 들어 왔는지 언제 자리에 앉았는지 몰랐다.
『아이고머니나 <우라지밀 쁘라트윗치>! 그런데 어떻게 지났어요.』하며 그녀는 기쁜 듯이 떨면서 속삭였다.
『나는 영구히 여기서 살고 싶어졌습니다. <올가 . 세미요프누나> 하고 그는 말하였다.
『나는 근무를 고만 두었습니다. 그래서 몸을 안정시켜, 자기 힘으로 무얼 하나 해볼까 하고 왔습니다.
게다가 아이를 학교에 보내게 됐지요. 이제 장성했으니까. 나는 아내와 화해하였습니다.』
『부인은 어디 계시나요?』하고 오렝카는 물었다.
『아이들과 함께 여관에 있지요. 그리고 나는 지금 셋방을 구하고 있습니다.•
『어머, 당신! 셋방을! 왜 우리 집에 오지 않으세요? 나의 뜰 안에서는 마음이 맞지 않으시나요. 네, 여보세요. 방세 따위는 필요 없으니까 자, 어서!』하며 오렝카는 다시금 울기 시작하면서 흥분한 어조로 말하였다. 『여기 와서 사세요. 그럼 나는 얼마나 기쁘겠어요!』
그 이튿날 지붕은 고쳐지고 벽은 닦였다. 오렝카는 활개를 펴고 정원을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을 지도하였다. 그 여자의 얼굴에는 옛날처럼 웃음이 떠오르고 명랑하게 빛났다. 마치 긴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활발해졌다.
수의의 처는 머리털이 짤막하고 간질 환자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마르고 보기 흉한 그 부인은 그 여자의 작은 <사이샤>하고 왔다. 사이샤는 뺨에 보조개를 가진 눈이 푸르고 투실투실하게 살이 쪘으며 올해 열 살이 되는데 비교적 가냘픈 아이였다. 그 아이는 뜰에 들어오자마자 곧 고양이를 쫓아 다녔다. 그러자 거기에는 벌써 활기 있는 즐거움의 웃음소리가 울렸다.
오렝카는 사이샤가 마치 자기 아들이나 되는 것처럼 부드러운 느낌을 가졌다. 저녁때 사이샤가 테이블에 기대 일과(日果)를 공부하기 시작하면, 그 여자는 사랑과 귀여움에 가만히 그를 바라보면서 자기 자신에게 중얼거렸다.
『어머, 예뻐라... 이렇게도 작은 것이 어찌 저렇게 영리할까!』
『섬이란 사방이 물로 둘러싸여 있는 육지의 일부다』하고 사이샤는 음성을 높여 읽었다.
『섬은 육지의 일부다』하고 그녀는 되풀이하였다. 이것이 몇 년 동안 침묵하며 사상이란 것을 잃어버린 이래 그녀가 또렷이 확신을 가지고 말한 최초의 의견이었다.
이제야 그 여자는 그 여자자신의 의견을 가지게 되었다.
사이샤는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그의 언니가 있는 『하리코프』 에 가고 나서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매일 가축의 검사에 나갔다. 더욱이 사흘쯤 집에 돌아오지 않는 일이 자주 있었다.
사이샤는 가정에서 거추장스럽게 취급되고 풀이 죽어서 전연 버린 아이처럼 되는 것같이 오렝카는 느꼈다. 그 사이샤를 자기 있는 곳으로 거기에다 자그마한 방 하나를 주었다.
반년 동안, 사이샤는 그 여자와 함께 하숙에서 지냈다. 매일아침 오렝카는 그의 침실에 들어갔다. 그리고 뺨 아래 손을 얹고, 숨소리도 내지 않고 깊이 잠들어 있는 그를 보았다. 그를 일으키는 것이 측은해 졌다.
『사이샤』하고 그녀는 늘 쓰라린 듯이 말하였다.
『자, 일어나야지. 학교에 갈 시간이야』
그는 일어나서, 의복을 갈아입고 기도를 올렸다. 그런 다음에 아침상을 대하고 앉아 차를 세 잔만 들고 커다란 비스키트 두 개와 빵 반 조각을 먹었다. 이때는 아직 겨우 잠을 깨었기 때문에 언제나 다소 기분이 좋지 못하였다.
『너 아직 우화를 모르니? 사이샤』 하고 오렝카는 그가 마치 여행이라도 떠나기 전인 것처럼, 그를 응시하면서 말하였다.
식사를 끝내자 커다란 제모를 쓰고 가방을 어깨에 멘 자그마한 모습이 학교로 간다. 오렝카는 항상 등 뒤로 가만히 따라갔다. 샤아샤 하고 그 여자는 뒤에서 소리 내어, 과실이나 캬라멜을 손에 넣어 주었다. 학교가 있는 거리에 들어서면, 사이샤는 키큰 커다란 여자가 따라옴을 계면쩍어하게 여기며 말하였다.
『이젠 집에 돌아가세요, 아주머님, 저 혼자 갈 수 있어요.』
그 여자는 우두커니 그의 모습이 교문 안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오오, 얼마나 그 여자는 사이샤를 사랑하고 있었을까? 이전에 그 여자가 느낀 사랑은, 결코 이만치 깊은 것이 못되었다. 지금 그 여자는 어머니로서의 본능이 각성 하였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순수하게, 유쾌하게 어떤 애정에 몰두하여 버리자는 못하는 것이었다. 물론 밖에서의 모든 장애가 없다면, 본래 보조개가 있는, 커다란 제모를 쓴 이 작은 아이에 대해서 그 여자는 자기의 전생애(全生涯)를 바쳤으리라. 따뜻한 기쁨과 눈물로서 그것을 바쳤으리라. 그러나 무슨 까닭일까? 누가 그것을 나타내 말할 수 있으랴?
사이샤를 전송하고 나서 그 여자는 애정으로 가슴을 가득 채우면서 만족하여 상쾌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 왔다.
이 반년동안에 젊어진 그 여자의 얼굴에는 미소가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 여자를 만난 사람들은 기쁜 듯이 그 여자를 주시하였다.
『안녕 하세요, 올카 • 세미요노프나. 어떠하십니까?』
『 학교의 학과(學課)는 퍽 어렵더군요.』 하고 그 여자는 시장에서 이런 말을 끄집어내는 것이었다. 『너무 과목이 많아요. 이제 1학년 학생들에게 우화의 암송을 숙제 내었어요. 그리고 또, 라틴어의 번역과 기하의 제도까지 숙제로 냈지 뭐예요. 저런 작은 아이에게는 너무 많아요.』
3시에 그들은 함께 점심을 먹었다. 저녁이 되면 함께 소리를 내어 일과를 공부하였다. 방바닥에 그를 잠들게 하였을 적에는 오렝카는 그를 위하여 십자를 그어 기도를 하면서 오래도록 거기에 서 있었다.
그리고는 자기의 방으로 들어가서 사이샤가 학교를 졸업하고 의사나 교사가 되어, 말이나 마차를 가지고 있는 커다란 집을 가지고, 결혼하여 아이를 가졌을 때의 훨씬 먼 까마득한 미래를 상상해 보는 것이었다.
그 여자는 언제 까지나 언제까지나 같은 것을 계속해서 생각하면서 잠들어 갔다.
누운 그녀의 감은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그동안에 검은 고양이는 그녀의 곁에 가로누워 목청구멍을 울리고 있었다. 미율, 미율.
그러자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오렝카는 깜짝 놀라서 공포에 질려 숨이 그쳤다. 심장이 팔딱팔딱 움직였다.. 얼마쯤 지나자 또 문에 노크소리가 났다.
(틀림없이 하리코프로부터 전보가 왔어)하고 그 여자는 온 몸을 떨면서 생각하였다.
(사이샤의 어머니가 사이샤를 돌려 달라고 하려고 왔어. 이를 어떻게 하나!)
그 여자는 절망하였다. 머리ㅘ 손발이 싸늘해 졌다. 자기보다 불행한 인간은 이 세상에 없을 것처럼 느껴졌다. 다시 일 이분의 시간이 지났다. 그러나 들려온 다른 소리에 의하여 수의가 클럽에서 돌아왔다는 것을 알았다.
『아아, 다행이었어.』하고 그 여자는 느꼈다.
차츰 마음으로부터 무거운 짐이 제거되어서 다시금 명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여자는 침대 위에 가로 누워 사이샤에 대하여 생각했다. 『사이샤』는 옆방에서 깊이 잠들고 있다. 그리고 때때로, 이러한 잠꼬대를 하였다.
『골려 줄 테야! 저 쪽에 가! 닥쳐!』 <안톤 체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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