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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이 있는 시

엽총 / 이계설

by 바닷가소나무 2015. 5. 25.

엽총 / 이계설

 

 

빗맞은 사냥감이 눈 위에 선혈을 토하고 사라진 날부터 나는 총을 접어 두었다 마치 가정 파괴범이나 되는 것인 양, 죄의식의 사슬에 포박되었기 때문이다 납탄 자국이 얼마나 깊었으면 핏자국마다 붉은 가시가 자랐을까 지금도 눈이 오면 그 선명한 영상이 가슴을 찌른다

 

그러나 나는 매일밤 사냥을 떠난다

긴 총신을 겨누며

닥치는 대로 참새, 호랑이, 코끼리, 사람등

끝없는 욕망을 향해 부질없이 총질을 해대는 것이다

죄의식마져 전혀 느끼지 못한 채

땀에 젖어 눈을 뜨면

밤의 구릉을 힘겹게 넘어온 머리카락들이

여기저기 폐잔병처럼 널려 있다

 

몇 시 쯤일까

단정히 넥타이를 매고

빗질을 하고

로션도 문지른다

이제 가면만 뒤집어쓰면

수없이 쏘고 싶은 충동은 아랑곳없이

총을 한 번도 발사한 적이 없는 척

시치미를 뗄 수 있을 것이다.

 

오늘 하루도 가면 뒤에는 얼마나 많은 본성이 잔털을 세울 것인지

 

가면 위로 털들이 삐져나온다

가늠쇠 사이로 넘나드는 표적들, 눈이 어리다

정조준된 순간

오줌을 지리듯

나도 모르게 방아쇠를 당긴다

뒤로 넘어지는 낯익은 그림자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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