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그러나 보석들
나에게는 약 50여년 간직하고 있는 책이 한권 있다. 지금은 색이바래고 책장을 넘기는데 쉽지가 않은 책이 되어있어 세월의흐름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이러한 책 톨스토이의 인생독본의 책 한권이 나에게는 인생의 나침판이 되었다 해도 과언 아닌 보물 같은 책이다.
내가 열여덟이던 그 봄! 나는 영등포일대에서 리어카 행상을 하는 길거리아이 이였다. 그날도 봉천동 102번지 산동네에서 출발하여 용산 야채시장으로 물건을 구입하러 갔었다. 그러나 행인지 불행인지, 그날은 행상하며 팔아야할 물건들이 적절치 않아서 구입하지 못하고 힘없는 발걸음으로 리어카를 끌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용산시장 앞 굴다리를 지나서 용산역 광장 쪽으로 가는데, 건너편 빈터에 남학생하나가 서있었다.
그 시절 나는 학생들을 보게 되면 너무도 작아만 지던 그런 아이였었다. 그런데 남학생이 서있는 앞 땅바닥에는 몇 권의 책이 놓여 있었다. 나는 리어카를 세워두고 그 아이에게로 갔다.
책이름이 금빛으로 번쩍이는 여러 권의 책들을 바라보면서 “와! 좋은 책인 가보다!”
나는 그 책들을 읽고 싶었다.
아니 책들을 사고 싶었다.
그때, 실제로 그러한 책들을 서점에서 구입하기에는 엄두도 낼 수 없는 나의 형편이었었다. 나는 그 아이와 책을 두고서 흥정을 했다. 그러나 그 책을 내가 사기에는 액수가 너무 많았다. 나는 아이에게 사정사정하여 장사밑천으로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다 그 아이에게 주고서야 책들을 리어카에 실을 수 있었다. 이광수전집 11권인가와 톨스토이의 인생독본은 그렇게 해서 내 책이 되었다.
톨스토이의 인생독본이 품고 있는 사상과 철학을 초등학교학력인 열여덟의 내가 풀어내기에는, 어쩌면 맨손으로 바위를 파들어 가는 무모한 행위 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읽고 또 읽었다. 쉬지 않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혀도 잘 돌아가지 않은, 그 수많은 사상가들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나의 무식을 탓하며, 읽고 또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다. 내가 그 사상가들의 깊은 뜻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결국, 톨스토이의 인생독본이라는 책이 품고 있는 사상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책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책을 읽어 가면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은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인가 알 듯도 싶고 보이는 듯도 싶었다. 나는 그때부터 책을 읽는데 있어서 아무 책이나 읽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그때 내가 접할 수 있었던 가장 쉬운 책들은, 그 시절 인기 있었던 주간잡지 들이었다. 지금도 기억이 나지만 주간지의 내용들은 사춘기 때인 내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잡지들이었다.
그렇게 구입한 톨스토이의 인생독본은 매일매일 날짜가 있어서 더욱 읽어가기가 좋았다. 그날은 그 날 글귀의 내용을 생각하며 하루를 열심히 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날마다 날마다 열심히 살다보면, 장사밑천을 다 건네주고 내 책으로 만든 톨스토이의 인생독본의 값은 할 것 같았다.
나는 열여덟의 그때, 영등포, 양평도, 당산동, 문래동, 신길동, 대방동, 도림동, 신풍동, 구로동 영등포구 일대의 골목골목을 누비며, 야채며 과일에 생선 그 외의 물건들은 리어카에 실고 목청껏 소리쳤다. 얼가리배추사려! 꿀참외사려! 펄떡펄떡뛰는고등어사려! 내청춘사려!
낮이면 밥벌이를 하기위해 영등포 일대의 골목을 누비고 다녔고, 밤이면 책을 읽었다. 장사를 하여 쌀값을 버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지만, 나에게는 책을 읽는 것은 더 중요한 것이었다.
나는, 그때 하루의 장사가 끝나면, 리어카를 끌고 노점에서 책장사하는 아저씨를 찾아가 책을 구입했다. 리어카를 끌고 와 책을 사가고 또 사가는 아이의 책값이 걱정이 되었던지, 어느 날 책장사 아저씨는 책을 깨끗하게 읽고 가져오면 빌리는 값만 받겠다는 호의를 베푸셨다. 나는 책장사 아저씨가 파는 책들 중에 내가 읽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책을 제외하고는 모든 책들을 다 읽었다. 아저씨는 언제쯤 무슨 신간을 가져오니 팔리기 전에 갔다 보라고도 하셨다.
내가 오랜 세월동안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는 물건 중에는, 노트 장을 넘기기가 걱정이 될 정도로 늙어버린,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과제물이 있으며, 그 과제물이 첫 번째 나의 보물이다.
이 과제물은, 내가 배우지 못하고 살아가는 슬픔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는 물건이다.
그 두 번째가 톨스토이의 인생독본이다. 이 책은, 배우지 못한 내가 세파를 헤쳐 나가며 살아가는데 있어서, 그 어떤 좌표를 설정해준 나침반이 되었기 때문이다.
강산이 몇 번이 바뀌어버린 지금까지 나에게는 수많은 기회와 위기가 왔으며 또 지나갔다. 그러한 상황마다 어쩌면 내가 판단하고 결정하는 과정들의 저변에는, 예전, 열엷여덟의 아픈 가슴으로 읽었던 톨스토이의 인생독본이 품고 있는 사상과 철학이 분명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사람답게 사는 것인지?
나는 어떻게 죽어야 사람답게 죽는 것인지?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지금까지 살아왔듯이 그렇게 살아 갈 것이다.
2015년 1월 29일. 1/28 유명산자연휴양림에서
나는 이 책의 내용 전부를 여기에 옮기고자 한다.
세상의 땟국에 얼룩이 져있는 내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고자 함이 첫째요.
다음은, 누군가에게도 좋은 글이 되어서, 앞으로 걸어가는데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 필사후기 -----
톨스토이 인생독본의 필사 기간이 1년이 조금 더 지나서 오늘 끝을 맺었다. 1년 동안 매일매일 필사를 하다시피 했지만 그래도 건너뛰는 날들이 많아서 그런 것이다. 그동안 책장이 많이 부스러졌다. 부스러진 조각들을 치우지 않고 책상위에 그대로 두고서 필사를 끝내고 나니 시원 섭섭하다.
낡아서 펼치기가 어려운 책이 되어버린 톨스토이 인생독본은 내가 죽는 날까지 나와 함께 할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힘이 되어 줄 것이고 또한 용기가 되어 줄 것이다. 그렇게 내 옆에서 내가 바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줄 것이다.
2016년 4월 14일
평내 고시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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