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꽃이 웃고 있었어요
안개 자욱한 산길에서 말 탄 사내가 채찍을 휘둘렀어요. 놀란 말은 앞발을 높이 쳐들고 흙먼지를 일으키며 뛰어나갔지요. 그녀는 말발굽에 밟히지 않으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었지만 그만 밟히고 말았어요. 그녀의 몸은 흙투성이 피투성이가 되어 나뒹굴었고 그녀는 말 탄 사내 손을 붙잡으려 앙상한 손을 내밀었지요. 사내 시선은 몽롱했어요. 한 손에는 시든 장미꽃 다발을 들고 말이에요. 말 탄 사내가 지나간 자리에 악취가 진동했어요. 장미꽃 썩는 냄새인지 어젯밤 쏟아낸 사내 정액이 썩는 냄새인지 악취는 바람 따라 너울너울 춤을 추었지요. 말을 탄 사내는 채찍과 썩은 장미다발을 흔들며 멈칫멈칫 멀어져 갔어요. 그녀가 비틀거리며 걷다 웅크리고 앉아있는 자리에 햇살이 내리기 시작했어요. 깨진 유리병 하나가 반짝이며 그녀 옆에 누워 있었지요. 민들레꽃하나도 깨진 유리병 옆에 앉아 그녀처럼 웃고 있었어요
'내 트렁크에는 무엇이 들어있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떤 사람의 집짓기 구상 (0) | 2013.01.29 |
---|---|
가출 (0) | 2013.01.29 |
내 의자가 오리걸음을 걷는다 (0) | 2013.01.29 |
모기장 (0) | 2013.01.29 |
평화시장 (0) | 2013.0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