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전된 그녀
나는 보랏빛 그녀를 모시고 산다
어느 해, 뻐꾸기소리 들리던 날부터
그녀는 봄비처럼 나를 촉촉이 적시며 내게로 왔지
은밀히 만나야 하는 사람들까지도
그녀를 통해서만 만날 수 있고
그런 자리에도 그녀는 꼭 나와함께 해
일면식 없는 사람들의 술주정 까지도
한밤중에도 그녀는 듣도록 하고 말아
이제는 잠자리까지도 그녀와 함께 해야 하는
그녀는 난의 소중한 주인이 되었어
그러니 여행도 당연히 함께해
유달산에도 해운대바닷가에도
그녀가 있어야
파도를 바라 볼 수 가 있고
갈매기와 눈도 맞출 수 있어
그런데 말이야
유달산 일등바위에서
그녀가 그만 숨이 멈춰버렸어
그토록 소중한 나의 주인이
보랏빛 도금된 차가운 쇳덩어리 일뿐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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