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송 시27 아버지의 마음 / 김현승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 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 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 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아버지의 동포(同抱)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어버지는 비록 영웅(英雄 )이 될 수도 있지만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 어린 것들이 가직한 그 깨끗한 피로 ... 2023. 10. 29. 가을삽화 / 민병도 달빛을 흔들고 섰는 한 나무를 그렸습니다 그리움에 데인 상처 한잎 한잎 뜯어내며 눈부신 고요 속으로 길을 찾아 떠나는 ... ... 제 가슴 회초리 치는 한 강물을 그렸습니다 흰 구름의 말 한 마디를 온 세상에 전하기 위해 울음을 삼키며 떠나는 뒷 모습이 시립니다 눈 감아야 볼 수 있는 한 사람을 그렸습니다 닦아도 닦아내어도 닳지 않은 푸른 별처럼 날마다 갈대를 꺾어 내 허물을 덮어 주는 이 기러기 울음소리 떨다가는 붓끝따라 빗나간 예언처럼 가을은 또 절며 와서 미완의 슬픈 수묵화 여백만을 남깁니다. 2023. 10. 29. 낙화 / 조지훈 낙화 / 조지훈(1920~1968)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2023. 10. 20. 홍시를 두고 / 유재영 첫서리 내린 마당 누구의 발작처럼 어디서 날아왔나 등 붉은 감잎 한 장 고향집 노을이 되어 사뿐히 누워있네 지우고 고쳐 쓰다 확 불 지른 종장(終章)같이 와와와 소리치면 금방 뚝 떨어질 듯 우주 속 소행성 하나 발그라니 물이 든다 굽 높은 그릇 위에 향기 높은 전신 공양 가만히 귀 기울면 실핏줄 삭는 소리 말갛게 고인 저 투명 문득 훔쳐 갖고 싶다 <해설> 운율이 살아있는 시조다. 감나무에 달려 있던 딱딱한 감이 부드럽고 붉은 홍시가 된다. 그 홍시를 시조로 쓰는 시인은 "지우고 고쳐 쓰다 확 불 지른 종장"같다고 표현한다. 고민 속에 몇 번이고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하다 섬광처럼 다가온 마지막 언어를 찾아내 시를 완성하는 기분을 홍시에 비유한 것이다. 시인에게 홍시는 '향기 높은 전신공양'이다. 자신.. 2023. 10. 20. 이전 1 2 3 4 5 6 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