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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밤중에 일어난 일 넓은 운동장 같은 곳에서 많은 사람들과 어디론가 가고 있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아니 아우성을 치면서 그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공포에 질린 얼굴로 넘어지고 밟히고 순식간에 운동장은 지옥이 이런 것이 아니가 하는 생각이 드는 곳이 되어버렸다. 나도 엉거주춤 그들이 뒤 돌아 보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휘어진 물기둥이, 성난 물벼락이 사람들 머리위로 덮쳐오고 이었다. 아! 세상의 끝이로구나! 나도 있는 힘을 다해 도망가기 시작했다. 있는 힘을 다해 달리고 또 달렸다. 그러면서 생각나는 것은 어차피 죽을 것이라면, 저렇게 세상을 다 삼켜벌릴 작정이라면, 뛴다고 도망간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그 물기둥에서 피 할.. 2020. 9. 11.
소문 사람들이 신 바람나게 눈덩이를 굴리고 있어 굴리던 눈덩이로 눈사람을 만들어 놨어 붉은 고추로 코를 대신하고 숯검뎅이로 입을 아귀처럼 좍 찢어놨어 머리카락은 글쎄 시래기로 한 폼을 잡았고 귀는 말이야, 당나귀 귀인 게야 무슨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있나 쫑긋하고 있어 눈썹은 푸른 솔잎으로 붙여놨는데, 눈사람이 두 눈은 꼭 감고 있는 폼이 골목길에서 눈덩이처럼 부풀어가던 이야기들이 마음에 걸렸었나봐 근데 말이야, 재미있는 것은 눈사람이 외계인처럼 이상하게 생겼다는 게야 눈코입귀 모두가 삐뚤 빼뚤이야 보면 볼수록 웃음이 절로 나와 골목길에 눈덩이처럼 굴러가던 이야기처럼 완전, 삐뚤빼뚤 제 마음대로야 2020. 9. 11.
가을밤에 쓰는 편지 그리움은 달빛 속에 묻어두고 귀뚜라미 소리나 따르다 어느 늙은 감나무 아래 누워 잘 익어가는 별이나 헤아리며 추억의 바닷가 화진포 파도소리와 앳된 소녀처럼 볼 붉어지던 모습 파도가 감추어 주던 그때 그대 모습 그려 보려합니다, 어쩌나요, 귀뚜라미가 담장을 넘어요, 소리로 노래로 달빛을 타고 그대 계신 푸른 방으로 스며들려나 봐요, 내 안에 화진포파도소리가 밀어로 그리움으로 추억으로 밤의 깊이를 더해 가고 있는데 가을달밤의 귀뚜라미소리에 묻혀버려요, 그대여! 국화꽃이 피려고 몸짓하는 소리가 들리는 달밤이에요 2020. 9. 11.
이사 애기아빠 이것 좀 봐요 자지러지는 주인집 아주머니의 고함소리가 문간방의 귀청을 후려갈겼다 방문을 열고 바라보니 세발자전거를 타고 놀던 아들의 손에는 플라스틱 바가지가 들려있고 마루에서 점심을 먹고 있던 주인집 식구들은 마룻바닥의 물을 닦고 있었다 아니, 이마에 피도 마르지 않은 것이 꼴에 성질은 있어가지고 마당에서 자전거 타고 놀지말라고 했더니 바가지에다 물을 퍼가지고와 뿌려버려... 맨발로 뛰어나온 나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아들은 눈만 껌뻑이고 있었다 나는 아들에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이의 눈만 바라보며 많이 놀랐지 아이의 눈빛은 빛나고 있었다 주인집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다가왔다 2020. 9.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