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운동장 같은 곳에서 많은 사람들과 어디론가 가고 있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아니 아우성을 치면서 그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공포에 질린 얼굴로 넘어지고 밟히고 순식간에 운동장은 지옥이 이런 것이 아니가 하는 생각이 드는 곳이 되어버렸다. 나도 엉거주춤 그들이 뒤 돌아 보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휘어진 물기둥이, 성난 물벼락이 사람들 머리위로 덮쳐오고 이었다. 아! 세상의 끝이로구나!
나도 있는 힘을 다해 도망가기 시작했다. 있는 힘을 다해 달리고 또 달렸다.
그러면서 생각나는 것은 어차피 죽을 것이라면, 저렇게 세상을 다 삼켜벌릴 작정이라면, 뛴다고 도망간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그 물기둥에서 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 끝장이라면 도망가다 죽지는 않겠다는 오기가 발동하여 몸을 굼벵이처럼 웅크리고 주저앉았다.
그러나 도망가는 그들을 쳐다 볼 수는 없었다. 그리고 덮쳐오던 그 물줄기를 다시 볼 수는 더욱 없었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고개를 숙인 체, 아우성과 물줄기 쏟아지는 속에서 갑자기 작은 아들이 보고 싶었다. 그 놈은 아직 살아 있을 것인가,
이렇게 앉아있다 죽는 것 보다는 작은아들을 찾아서 한번이라도 보고 죽어야 하겠다는 생각에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나는 아수라장이 데어있는 사람들 틈에서 미친 듯이 아들에 이름 부르며 아들을 찾아서 이리 뛰고 저리 뛰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붙잡고 내 아들을 보았느냐 물었다. 나는 도망가는 그들보다 더 미쳐 있었다.
다행이 아들에 행방을 아는 사람들이 이었다. 묻고 물어 찾아낸 내 사랑하는 아들은 초취한 모습, 파리한 눈으로 얼이 나간 모습으로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와락 아들을 끌어않고 울음을 터뜨렸다. 사람들의 아우성 소리 비명소리가 귀가를 때리지만 난 내 사랑하는 작은 아들을 끌어 않은 팔에 더욱더 힘을 주었다.
아들이 희미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