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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

바리데기공주

by 바닷가소나무 2006. 9. 8.
 

바리 공주


작자 미상


 대왕마마는 바리 공주에게 비단 창옥, 비단 고의, 고운 패랭이, 무쇠 질방, 무쇠 주령, 무쇠 신을 내려 주었다. 바리 공주는 그것을 받아 몸에 걸친 후 대궐문을 나섰다. 나서니 동서를 분간치 못하고 갈 곳도 아득했다. 망설이고 서 있는데 까막 까치가 날아와서 길을 인도해 준다. 바리 공주가 무쇠 지팡이를 한 번 짚으니 천 리를 가고, 두 번 짚으니 이천 리를, 세 번 짚으니 삼사 천 리를 간다. 때는 춘삼월 호시절로 백화는 만발하고 시내는 잔잔했다. 푸른 버들 속에 황금 같은 꾀꼬리는 벗을 부르느라 지저귀고 앵무 공작은 서로 회롱한다.

 금바위 밑을 보니 반송(盤松)이 구부러졌는데, 석가 여래와 지장보살이 바둑을 두고 있다. 바리 공주는 나가 재배하였다. 그러자 석가 세존님은 눈을 감으시고 지장 보살이 말씀하신다.

 “귀신인가 사람인가? 날짐승 길짐승도 못 들어오는데, 천궁을 범하였구나.”

 “소신은 조선 국왕의 일곱째 대군인데, 부모님 목숨 구할 약수를 가지러 왔다가 길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소신의 길을 인도하소서.”

 그제서야 석가 세존님은 눈을 뜬다.

 “나는 국왕의 칠공주란 말은 들었지만 일곱째 대군이란 말은 듣던 중 처음이로다. 네가 하늘은 속여도 나는 못 속이리라. 너를 태양 서촌에 버렸을 때 잔명을 구한 게 나인데 나를 속일소냐? 부처님 속인 죄는 팔만사천지옥을 가는 죄이다. 그래도 네가 용하구나. 육로 육천 리를 왔으니, 험한 길 삼천 리가 남았는데 어찌 가려느냐?”

 “가다가 개죽음을 당할지라도 가려 하나이다.”

 석가 세존님은 감동한 듯 머리를 연신 끄덕인다.

 “정성이 지극하면 지성이 감천이다. 네 말이 기특하니 내가 길을 인도하리라. 낭화(浪花)를 가져왔느냐?”

 “촉망중이라 가져오지 못했나이다.”

 석가 세존님은 낭화 세 가지와 금주령을 주시며 일러 준다.

 “이 주령을 끌고 가면 험로가 평탄해지고 대해는 뭍이 되느니라.”

바리 공주는 두 손으로 받고 하직 인사를 올린 후 길을 떠났다.

 한 곳에 당도하니 칼산 지옥, 불산 지옥, 독사 지옥, 한빙 지옥, 구렁 지옥, 배암 지옥, 문 지옥이 펼쳐져 있었다. 칠성이 하늘에 닿았는데 구름도 쉬어 넘고 바람도 쉬어 넘는 곳이었다. 귀를 기울이니 죄인 다스리는 소리가 나는데 육칠월 악마구리 우는 소리 같았다. 낭화를 흔드니 철성이 무너지고 죄인들이 쏟아져 나왔다. 눈 없는 죄인, 팔 없는 죄인, 다리 없는 죄인, 목 없는 죄인, 귀졸(鬼卒)들이 나와 바리 공주에게 매달리며 구제해 달라고 애원한다. 바리 공주는 그들을 위해 염불을 외워 극락 가기를 빌어 주었다. 바리 공주가 이 곳을 지나니 또 커다란 바다가 펼쳐 있다. 이 곳은 날짐승의 깃도 가라앉는 곳으로 배도 없는 곳이다. 망설이던 바리 공주는 부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금주령을 하늘로 던졌다. 그러자 무지개가 서서 건너갈 수가 있었다.

 건너가니 키는 하늘에 닿고, 눈은 등잔 같고, 얼굴은 쟁반 같은 무장승이 서 있다.

 “사람인가 귀신인가? 열두 지옥을 어찌 넘어오며 바람도 쉬어 넘고 구름도 쉬어 넘고 산진이 수진이 해동청 보라매도 쉬어 넘는 철성을 어떻게 넘어왔는가? 또 모든 것이 가라앉는 삼천 리 바다는 어찌 넘어왔는가?”

 “나는 국왕의 일곱째 대군인데, 무장승의 약수를 얻어다가 부모님 살리려고 왔나이다.”

 “그대 길값을 가져왔는가?”

 “촉망 중에 못 가져왔나이다.”

 “길값으로 나무 삼 년 하여 주오.”

 “그리 하오이다.”

 “삼(蔘)값으론 불 삼 년 때 주오.”

 “그리 하오이다.”

 “물값으론 물 삼 년 길어 주오.”

 “그리 하오이다.”

 세월은 흘러 어느덧 석삼 년 아홉 해가 되니 하루는 무장승이,

 “그대의 상이 남루하여 보이나 앞으로는 국왕의 기상이요, 뒤로는 여인의 몸이니 나와 천생 배필이라, 혼인하여 아들 일곱을 낳아 주오.”

 한다. 바리 공주와 무장승은 천지로 장막을 삼고, 일월로 등촉을 삼고, 산수로 병풍을 삼고, 금잔디로 요를 삼고, 샛별로 요강 삼고, 썩은 나무 등걸로 원앙금침을 삼고 살림을 시작했다. 세월은 또 흘러서 바리 공주는 마침내 아들 일곱을 낳아 주었다.

 바리 공주는 이제 그만 돌아가겠다고 했다.

 “부부의 정도 중하지만 부모님께 효행이 늦어지니 바삐 가야겠나이다.”

 “앞바다의 물 구경을 하고 가소.”

 무장승이 청했다.

 “물 구경도 싫소.”

 “뒷동산 꽃 구경 하고 가소.”

 “꽃 구경도 싫소. 초경에 꿈을 꾸니 금관자가 부러져 뵈고, 이경에 꿈을 꾸니 신관자가 부러져 뵈더이다. 양전 마마가 승하할 꿈이니 급히 가야겠소.”

 “그러자면 그대가 길어다 쓰는 물이 약수이니 가져 가고, 베던 풀은 개안초(開眼草)니 가져 가오. 뒷동산 후원의 꽃은 숨 살이, 뼈 살이, 살 살이 꽃이니 가져가오. 숨 살이, 뼈 살이, 살 살이의 삼색 꽃은 눈에 넣고, 개안초는 몸에 품고, 약수는 입에 넣으시오.”

 바리 공주는 물을 넣어 짊어지고 하직 인사를 한 후 길을 떠나려 하자,

 “그 전에는 혼자 살았으나 인제는 혼자 살 수 없소. 나도 공주 뒤를 쫓아가리다.”

무장승도 가겠다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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