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의 혼령(魂靈)
단종이 영월에 물러나 있다가 승하하신 후에 영월 부사가 되는 사람은 갑자기 죽으니, 사람들이 다 두려워하며 피하여 영월은 드디어 황폐한 고을이 되고 말았다. 이 때, 한 조관이 스스로 그 부사가 되기를 요망하였다. 그가 영월 부사로 부임하는 날 밤에 그는 좌우를 물리치고 홀로 촛불을 밝히고 앉아 있었는데, 밤이 깊었을 때 갑자기 임금이 행차하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 오더니, 한 임금이 익선관을 쓰고 곤룡포를 입고 들어와서 대청에 앉았다. 부사가 황공하게 여겨 즉시 뜰 아래 내려서 고개를 숙이고 엎드리니, 임금(단종)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공생에게 목을 매인 바 되었는데, 그 활줄이 아직도 내 목에 매어져 아픔을 참지 못하겠구나, 내 본관(부사)을 보고 풀어 달라 하려고 여기에 이르면 그들은 기백이 부족하여 나를 보자마자 모두 갑자기 겁을 먹고 죽어 버리는구나. 오직 너만이 그렇지 않으니 그 용기가 가상하구나." 하였다. 부사는 비로소 이 분이 상왕(단종)의 신령임을 알고, 땅에 엎드려 흐느끼며 말하기를, "신은 옥체가 어디에 있는지를 몰라서 감히 명령을 따르지 못하겠나이다." 하니 단종은 교시하여 말하기를, "이전에 호장을 지낸 엄흥도 혼자 그곳을 알고 있으니, 그에게 물으면 가히 알 수 있을 것이니라."하고, 드디어는 수레를 돌렸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그 관속들이 대청 아래 모여 서로 미루며 곧바로 올라오지를 못했다. 이 때 부사가 창을 밀어 젖히면서 묻기를, "너희들은 무슨 일로 이리 어지러우냐?" 하니 관속들이 다 놀라 엎드려서 죄를 청하였다. 부사가 묻기를, " 이 고을에 전에 호장을 지낸 엄흥도라는 사람이 있느냐?"하니, 관속은 말하기를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밤이 깊었을 때 부사가 은밀히 사람을 시켜 엄흥도를 불러, 그와 함께 방에 들어왔다. 부사는 곧 그에게 상왕의 옥체가 어디에 있는지를 물으니, 엄흥도는 눈물을 흘리면서 대답했다. "소인은 전에 호장으로 있었습니다. 당시 금부도사 왕방연이 사약을 가지고 왔을 때, 상왕께서는 익선관과 곤룡포를 갖추시고 대청 위에 앉아 계셨는데, 왕방연이 몸둘 곳을 몰라 감히 사약을 올리지 못하고 뜰 아래 엎드려 있으니, 상왕께서 말씀하시기를 할 때 옆에 있던 한 공생이 활끈을 가지고 억지로 상왕의 목에 매고 창틈으로 잡아 당겨서 갑자기 돌아가시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공생은 그 자리에서 발꿈치를 다 돌리지도 못한 채 일곱 구멍으로 피를 쏟고 죽었습니다. 그러자 상왕을 모시던 궁녀들은 다 스스로 몸을 청렴포 바위 아래로 던져 죽었습니다. 이 곳을 낙화암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때 고을 사람들은 화가 그들에게 미칠까 두려워서 다투어 옥체를 강물 속에 던지니, 물결을 따라 밑으로 밑으로 떠내려 갔습니다. 소인은 그 날 밤에 몰래 그 시체를 업어다 읍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받들어 모셨으나, 활줄은 미처 풀지를 못하였습니다." 부사가 곧 엄흥도와 함께 몰래 그 곳에 도착하여 관을 열고 살피니, 상왕의 옥체는 마치 살아 있는 것과 같고, 활줄이 과연 그 목에 매어져 있었다. 즉시 그것을 풀어 버리고 수의를 갖추어 무덤을 고치고 장사를 지냈는데, 지금의 장릉이 바로 그것이다. 이 날 밤, 단종이 다시 전과 같이 대청 위에 오셔서 분부를 내려 말하기를, "비로소 활줄을 제거한 다음부터 목이 아프지 않구나. 너와 엄흥도는 남 몰래 좋은 일을 하였으니, 마땅히 후한 보답을 받으리라."하고, 드디어는 수레를 돌려 되돌아 가셨다. 이로부터 영월 고을의 원님이 된 사람은 평안히 지내게 되었다. 세상에 알려지기를, 이 때 부사는 낙촌 박충원의 할아버지라고 하는데, 그는 명종 때 이조 판서를 지내고 문형의 자리를 맡았다. 그가 장릉에 제사 지낼 때, 제문에 말하기를, "왕실의 맏아드님이요, 어린 나이로서 한 조각 천산 기슭에 만고의 원혼이 되시었네."라고 하였고, 참판 조하망의 자규루 시에는 말하기를, "옛날부터 영월에는 세 번 사양한 곳이 있다더니, 지금도 저 강 위에는 구의산이 솟아 있네."라고 하였다. |
설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