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감호(金現感虎) 설화 - 삼국유사, 권5- |
[ 내용 ] 신라 풍속에 해마다 2월이 되면 초파일에서 15일 까지 서울의 남녀가 다투어 흥륜사의 전탑을 도는 복회를 행하였다. 원성왕 때에 김현이라는 낭군이 있어서 밤이 깊도록 혼자서 탑을 돌기를 쉬지 않았다. 그때 한 처녀가 염불을 하면서 따라 돌다가 서로마음이 맞아 눈을 주었다. 돌기를 마치자 으슥한 곳으로 이끌고 가서 정을 통하였다. 처녀가 돌아가려 하자 김현이 따라가니 처녀는 사양하고 거절했지만 김현은 억지로 따라갔다. 길을 가다가 서산 기슭에 이르러 한 초가집에 들어가니 늙은 할머니가 처녀에게 물었다. " 함께 온 이가 누구냐? " 처녀는 사실대로말했다. 늙은 할머니는 말했다. " 비록 좋은 일이지만 없는 것만 못하다. 그러나 이미 저지른 일이어서 나무랄 수도 없으니 은밀한 곳에 숨겨두어라. 네 형제들이 나쁜 짓을 할까 두렵다. " 하고 김현을 이끌어 구석진 곳에 숨겼다. 조금 뒤에 세 마리 범이 으르렁거리며 들어와 사람의 말을 지어 말했다. " 집에서 비린내가 나니 요깃거리에 어찌 다행이 아닐꼬. " 늙은 할머니와 처녀가 꾸짖었다. " 너희 코가 잘못이다. 무슨 미친 소리냐. " 이때 하늘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너희들이 즐겨 생명을 해침이 너무나 많으니, 마땅히 한 놈을 죽이어 악을 징계하겠노라. " 세 짐승은 이 소리를 듣자 모두 근심하는 기색이었다. 처녀가 " 세 분 오라버니께서 만약 멀리 피해 가서 스스로 징계하신다면 내가 그 벌을 대신 받겠습니다. " 하고 말하니, 모두 기뻐하여 고개를 숙이고 꼬리를 치며 달아나 버렸다. 처녀가 들어와 김현에게 말했다. " 처음에 저는 낭군이 우리 집에 오시는 것이 부끄러워 짐짓 사양하고 거절했습니다. 이제는 숨김없이 감히 진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또 저와 낭군은 비록 유(類)가 다르기는 하지만 하루 저녁의 즐거움을 얻어 중한 부부의 의를 맺었습니다. 세 오빠의 악은 하늘이 이미 미워하시니 한 집안의 재앙을 제가 당하려 하오나, 보통 사람의 손에 죽는 것이 어찌 낭군의 칼날에 죽어서 은덕을 갚는 것과 같겠습니까. 제가 내일 시가(市街)에 들어가 심히 사람들을 해치면 나라 사람들이 저를 어찌 할 수 없으므로, 임금께서 반드시 높은 벼슬로써 사람을 모집하여 저를 잡게 할 것입니다. 그때 낭군은 겁내지 말고 저를 쫓아 성 북쪽의 숲속까지 오시면 제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김현은 말했다. "사람이 사람과 사귐은 인륜의 도리지만 다른 유와 사귐은 대개 떳떳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미 이렇게 되었으니 진실로 하늘이 준 다행인데 어찌 차마 배필의 죽음을 팔아 한 세상의 벼슬을 바라겠소." 처녀가 말했다. " 낭군은 그같은 말을 하지 마십시오. 이제 제가 일찍 죽는 것은 대개 하늘의 명령이며, 또한 저의 소원이며 낭군의 경사이며, 우리 일족의 복이며, 나라 사람들의 기쁨입니다. 한 번 죽어 다섯 가지 이로움을 얻을 수 있는 터에 어찌 그것을 어기겠습니까. 다만 저를 위하여 절을 짓고 불경을 강하여 좋은 과보(果報)를 얻는 데 도움이 되게 해주신다면 낭군의은혜, 이보다 더 큼이 없겠습니다. " 그들은 마참내 서로 울면서 작별했다. 다음날 과연 사나운 범이 성안에 들어와서 사람들을 해침이 심하니 감히 당해 낼 수 없었다. 원성왕이 듣고 영을 내려, " 범을 잡는 사람에게 2급의 벼슬을 주겠다 "고 하였다. 김현이 대궐에 나아가 아뢰었다. "소신이 잡겠습니다. " 왕은 먼저 벼슬을 주고 격려하였다. 김현이 칼을 쥐고 숲속으로 들어가니 범은 변하여 낭자가 되어 반갑게 웃으면서, " 어젯밤에 낭군과 마음 속 깊이 정을 맺던 일을 잊지 마십시오. 오늘 내 발톱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모두 흥륜사의 장을 바르고 그 절의 나발소리를 들으면 나을 것입니다. " 하고 말하고는 이어 김현이 찬 칼을 뽑아 스스로 목을 찔러 넘어지니 곧 범이었다. 김현이 숲속에서 나와서, " 지금 범을 쉽게 잡았다. " 고 말했다. 그리고 그 사유는 숨기고, 다만 그 범이 시킨 대로 치료하니 상처는 모두 나았다. 지금도 민가에서는 범에게 입은 상처에는 또한 그 방법을 쓴다. 김현은 벼슬하자 서천 가에 절을 지어 호원사(虎願寺)라 하고는 항상 불경을 강해 범의 저승길을 인도하고 또한 범이 제 몸을 죽여 자기를 성공하게 해준 은혜에 보답했다. 김현은 죽을 때에 지나간 일의 기이함에 깊이 감동하여 이에 붓으로 적어 전하였으므로 세상에서 비로소 듣고 알게 되었으며, 그래서 이름을 논호림(論虎林)이라 했으니 지금까지도 그렇게 일컬어 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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