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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 머무른곳

남산 둘레길에서

by 바닷가소나무 2022. 10. 14.

남산 둘레길을 돌아보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회현역에 내려 둘레길 코스를 찾아 올라갔다. 백범광장을 지나, 장춘동 방향 둘레길로 접어들어 이 생각 저 생각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지나갔다. 국립극장 위쪽에서 한남 동쪽 방향으로 올라가며, 나는 자연스럽게 숲 속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타워호텔을 찾고 있었다. 새삼 50여 년 전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만장하신 소나무 여러분!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고, 말재주까지 없는 저는, 오늘 소나무 여러분에게 제 가슴속 응어리를 보여주고, 힘들어하는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북돋아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지혜를 얻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때였다!

 

가만히 서있던 소나무들이 나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것도 밀려오는 파도처럼 나를 향해 몰려오고 있는 것이었다.

무섭고 놀라서 나는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멈춰! 거기 멈추란 말이야!”

나도 잘살아보고 싶어서, 산속의 너희들에게 하소연 좀 하고 조언이나 충고를 찾으려고 왔는데, 왜 이러는 거야?”

거기 멈춰서 내가 하는 이야기들을 들어보란 말이야!”

 

나를 향해 걸어오는 소나무들을 향해 있는 힘을 다해 소리 질러댔다.

 

그 순간, 기세 등등하게 나를 향해 걸어오던 소나무들이 멈추어 섰다.

그리고 부드러운 몸짓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나는 안도의 깊은숨을 몰아쉬며 그들을 바라보았었다.

 

50여 년 전,

그때 나의 재산은 젊음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재산을 소진해버리고, 산등성이 칠부능선에서 저녁노을을 등에 업고 산을 오르고 있다.

참으로 세월의 무상함을 절절히 맛보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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