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둘레길을 돌아보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회현역에 내려 둘레길 코스를 찾아 올라갔다. 백범광장을 지나, 장춘동 방향 둘레길로 접어들어 이 생각 저 생각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지나갔다. 국립극장 위쪽에서 한남 동쪽 방향으로 올라가며, 나는 자연스럽게 숲 속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타워호텔을 찾고 있었다. 새삼 50여 년 전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만장하신 소나무 여러분!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고, 말재주까지 없는 저는, 오늘 소나무 여러분에게 제 가슴속 응어리를 보여주고, 힘들어하는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북돋아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지혜를 얻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때였다!
가만히 서있던 소나무들이 나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것도 밀려오는 파도처럼 나를 향해 몰려오고 있는 것이었다.
무섭고 놀라서 나는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멈춰! 거기 멈추란 말이야!”
“ 나도 잘살아보고 싶어서, 산속의 너희들에게 하소연 좀 하고 조언이나 충고를 찾으려고 왔는데, 왜 이러는 거야?”
“거기 멈춰서 내가 하는 이야기들을 들어보란 말이야!”
나를 향해 걸어오는 소나무들을 향해 있는 힘을 다해 소리 질러댔다.
그 순간, 기세 등등하게 나를 향해 걸어오던 소나무들이 멈추어 섰다.
그리고 부드러운 몸짓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나는 안도의 깊은숨을 몰아쉬며 그들을 바라보았었다.
50여 년 전,
그때 나의 재산은 젊음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재산을 소진해버리고, 산등성이 칠부능선에서 저녁노을을 등에 업고 산을 오르고 있다.
참으로 세월의 무상함을 절절히 맛보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