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느낌이 있는 시

동백 몸을 풀다 / 이주희

by 바닷가소나무 2015. 5. 4.

 

동백 몸을 풀다 / 이주희

 

 

집밖에서 하루 자고 들어온 사이

베란다에 동백꽃이 한 송이 피어 있었다

 

봉오리도 못 본 것 같은데

얼마나 볼록해졌나 언제쯤 꽃이 피려나  

맏딸의 산달을 기다리는 친정엄마처럼 살필 새도 없이

불빛마저 없는 텅 빈 집에서 꽃을 피워낸 것이다

 

힘에 겨워 진땀을 흘렸을 텐데

입덧 때문에 때로는 몸이 으슬으슬하기도 했을 텐데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사이

스스로 불을 지펴 몸을 데우며 이겨낸 것이다

 

미혼모가 혼자 낳은 아이를 여관방에 버리고

도망쳤다는 뉴스가 떠올랐다

손잡아주는 이 없이 여관으로 향하는 걸음은

살 맞은 노루처럼 허청거렸을 게다

포대기와 배냇저고리 들고 달려올

친정 식구도 없이 얼마나 두려웠을까

아이 아버지와 연락이 닿지 않아 얼마나 서러웠을까

아기의 첫울음에 얼마나 막막했을까

 

스스로 불을 지펴 몸을 데우며 피워낸 동백꽃

 

그래도 힘내야 한다고 밑동을 보듬어준다

 

'느낌이 있는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날 / 오탁번  (0) 2015.05.04
풀에게 / 문효치  (0) 2015.05.04
젖은 눈망울에 대하여 / 복효근  (0) 2015.04.17
먹빛 – 동대구역 대합실에서 / 박기섭  (0) 2015.04.10
금강 버드나무 / 이경철  (0) 2015.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