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잘한 세 가지
2015년1월 어느 날 문득 자신에게 이렇게 자문해보았다.
“너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신의 노력으로 잘했다고 생각한 세 가지가 무엇인가? ”
생각해 볼 것도 없이 단숨에 그 답이 나왔다.
첫째. 나는 해병이다.
둘째. 나는 만학도이다.
셋째. 나는 시인이다.
참 어렵고도 힘든 과정들이 나에게서 지나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첫째. 내가 해병이 되려고 19살에 해병대에 자원입대 한 이유는. 내 자신의 가족환경으로 인한 숙명적인 슬픔과 그런 환경 속에서 자라야했던 아픈 성장과정, 그리고 배우지 못했기에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육체적이나 정신적으로 강해져야 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나는 인생을 잘 살고 싶었다.
가진 것 없고 배우지 못 한 내가 현실에서 다른 사람보다 뒤처지지 않으려면, 정신적, 육체적 건강은 기본이고 더 갖추어야 할 것은 노력과 인내라는 생각이었다.
19살의 나는 세상을 저주했고 누군가와 아니 모든 세상 사람들과 자폭이라도 하고 싶은, 그러면서도 모든 사람들이 왜 그리도 불쌍하게만 보였던지, 나는 내 자신이 불쌍해서 울었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불쌍해서 울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자신이 너무도 미웠고, 그렇게 세상에서 방치된 체 살기위해 몸부림치며 외로움과 싸우는 내 가슴속에서는 불덩이들이 아우성치며 굴러다니고 있었다.
나는 해병대 자원입대를 도피처가 아닌 도전의 장으로 택했던 것이다. 그리고 강한 박흥순을 만들어야 한다고 다짐했다. 세상의 어떤 고난과 역경이 나를 덮치더라도 두 눈을 부라리고 일어 설 수 있는 그런 사내로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당당하게 세파를 헤쳐 나가는 사나이로 살고 싶었던 것이다.
해병대 신병훈련 중 내 스스로 자신을 실험하며 힘든 훈련을 받았던 경험적 이야기하나를 여기에 쓰고자한다.
훈련병은 배가 고팠다! 너무도 고팠다! 그 어떤 훈련도 견딜 수 있었지만 배가고픈 것은 견딜 수가 없었다. 해서, 대책을 강구 해야만 했다. 대책이라고 해봐야, 훈련병인 내가 배부르게 밥을 먹으며 훈련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나는 고심 끝에 배부르게 먹는 것이 아니라, 배가 고프지 않게 하는 것이 옳은 생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어떻게 배가 고프지 않게 먹을 수 있는 것인가를 생각해보니, 같은 식사량을 먹고도 배가 고프지 않으면 되는 간단한 문제이었다.(무슨 말장난 같지만)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같은 밥을 먹고도 배가 고프지 않을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해보니, 그것은 정신적인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부터 나는 한 수저의 밥을 남기기로 했다. 육체보다는 정신의 힘이 더 강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식사개시 구령과 함께 한수저의 밥을 떠서 밥 그릇 옆에다 두었다. 그렇게 한 수저를 남기고 밥을 먹기 시작한지 몇 번, 왜, 밥을 따로 남기고 먹는가? 스스로에게 반문해 보았다. 그것은 먹던 밥을, 그 밥그릇에 남기지 못 할 것 같아서 그랬던 것이다. 누가 밥 한 수저를 남기고 먹으라고 명령한 것도 아니데... 이번에는 밥을 먹으면서 한 수저 분량만큼의 밥을 먹 던 밥그릇에 남기기로 했다. 그런데 나 자신도 모르게 그 밥을 조금씩 파먹고 있었다.
“ 이 자식아! 치사한 행동을 하려거든 애초에 밥을 남기지 말고 다처먹지 무슨 짓이야!” 나는 자신과 싸움을 그렇게 하였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배가 고프지 않았다.
“ 나는 밥을 남기는 사람이다, 그러니 배가 고프지 않다.”
자신을 그렇게 채찍질하며, 격려하며, 배고프지 않게 진해 해병대훈련소를 마치고 당당한 해병이 되었다.
둘째. 내가 만학도가 된 이유들은 많지만, 그때 내가 공부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살아있지 못했을 것이다.
한마디로, 나는 인생을 잘살고 싶었다.
2003년, 나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여 친구에게 집을 마련해 주느라 정신없이 보내고 있었다. 그 여름이 다가면 나는 지금까지 이루었던 모든 것들을 내려놓아야 할 처지에 몰리고 있었던 때이었다. IMF 여파로 힘들게 버티고 지탱해 왔던 사업이 절벽으로 몰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어떠한 경우에라도 약한 상대에게는 피해를 주어서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다. 때문에 사업을 접는데 있어서, 약한 상대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천천히 그 수순을 밟아가고 있던 중이었다.
그해 여름, 암담하게 펼쳐질 앞날을 생각하니 미칠 지경이었다. 지금까지 열심히 달려온 내가 미웠고 억울했다. 나름대로 사회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봉사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었는데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 생각하니, 앞으로 내가 사회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을 것 같다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실패한 사업가이기에 앞으로 식솔들이 먹고 살며 공부시키는 것 자체가 걱정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배운 것도 없이 몸뚱이 하나로 지금까지 역경을 잘 이겨내고 살지 않았나, 그리고 사업적으로 실패했지만 결코 부끄러움이 없으니, 이러한 내 삶의 이야기들을 글로 써서 나처럼 힘들게 살아온, 단 한사람이라도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다면, 내 삶이 결코 헛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글을 쓰기로 작정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글이라는 것이 어디 마음대로 써 지는가? 마음속 여러 생각들을 정리해서 글로 표현하고, 그 글을 누군가 읽어서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재주가, 나에게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시작하라.”
초등학교학력인 나는 중학과정 부터 대학까지, 아니 더 이상의 과정이라도 배워서 꼭 뜻을 이루리라는 각오를 하였다.
2004년 그 한해는 사업정리로인 한, 피 눈물 나는 한해였으며, 내가 중고등학교검정고시에 합격하여 수시로 명지전문대학 문예창작과 합격통지서를 받는 한해였다.
2004년 그 해 1년 과정을 피 눈물 나는 한해였다고 하였는데, 우선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지나친 스트레스로 인한 고혈압 약을 먹는 처지가 되었고, 심경근색의 위험한 상태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 와중에서도 나는 의자를 3개나 망가뜨리며 책상 앞에 앉아서 중고등하교를 졸업한 것이다.
지금은 가끔 지인들과의 대화중에 “나는 사업이 실패하기를 참 잘했다” 라고 웃으며 말하고 있다.
셋째,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시인이 되기까지는 악착같은 근성의 결과가 아닌가 생각된다. 나에게 있어서 문학이란? 치유의 학문이며 도전의 문학이다. 내가 만일에 문학을 공부 하지 못했다면, 지금 이렇게 살아있지 못했을 것이다.
한마디로, 나는 인생을 잘살고 싶었다.
2007년 3월, 명지전문대학 문예창적과를 졸업하였다.
그러나 글은 쓸 수가 없었다. 차라리 배우지 못했을 때는 그냥 쓰면 되었었는데, 조금 배움에 언저리에 서성거렸다고 두려움이 앞섰기 때문이다.
내가 글을 써 보겠다고 작정하고 배움에 길에 들어선지 3년이 지났는데, 예전보다도 더 글을 쓸 수가 없다니, 지난 시간이 그리고 맞이해야할 시간들이 두렵고 무서워졌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해병!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어디 순순히 풀렸던 일이 있었던가?
나는 더 미치기로 했다!
중앙대학원 문예창작전문과과정에 입학을 했다.
그때 쌀값마저 없던 그런 때였다.
그야말로 밥벌이를 해야 했고, 두 아들의 대학생활을 유지 시켜야 했다.
한마디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나는 해병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해병이다, 그리고 안 되면 될 때까지 하는 것이다.‘
밥벌이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고 詩에 미쳐가고 있었다.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시가 번개처럼, 굼벵이처럼, 아니 지렁이처럼, 꽃처럼, 구렁처럼, 돈 돈 돈처럼 머릿속에서 돌고 돌았다.
시의 열병이 그렇게 나를 찾아와 “네가 시인이 되면 길 가던 소가 웃겠다.” 하고 놀리며 약을 올렸다.
긴 여정이었다.
2011년 1월, 월간시문학 신인문학상에 <내 트렁크에는 무엇이 들어있나> 외 4편이 당선되었다.
그리고 2013년 3월에는 첫 시집으로 <내 트렁크에는 무엇이 들어있나> 를 출간하였다.
이렇게 지난 일들을 써내려 가다보니, 결국, 나는 인생을 잘살기 위해서 이런저런 일들을 했다고 자화자찬하는 이야기가 되는 것 같아서 조금은 쑥스러운 마음이다.
그러나 내가 시인으로 등단하기까지, 10여년에 걸쳐서 만학의 쉽지 않은 길을 포기하지 않고 달려 왔다는 사실이다.
좋은 작품을 쓰고 그렇지 못하는 것은 앞으로 내가 해야 할 또 다른 과제 일뿐인 것이다.
나는 문학을 통해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그것은 문학을 통해서, 나 자신보다는 훨씬 더 슬프고도 아픈 삶들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내주위에 있다는 사실과, 인생이란, 걷고 또 걸어가다, 어느 날 노을과 함께 비탈지고 그늘진 어느 곳에서 걸음을 멈춘다는 사실이다. 내가 쓰는 글들이 내세울 것 없는 부족한 글들이지만,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진심으로 감사한다. 그리고 내가 쓴 글에서 한사람이라도 희망과 용기를 얻을 수 있기를 바라며, 더 좋은 글을 쓰기위해 앞으로 더 열심히 배우고 노력해 나갈 것이다.
2015년 2월 6일 2시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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