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귀한 자료

[스크랩] 은진미륵 불사 논산 관촉사

by 바닷가소나무 2006. 2. 11.

 

 

은진미륵의 불사 논산 관촉사

 

                                                      글 . 사진 / 고 운


 참 맛있는 해장국 이였다. 논산 역 철길 건널목 못미처 코너에 자리 잡은 해장국집의 소고기 우거지해장국, 전통과 연륜을 자랑하는 간판에 부끄럽지 않았다. 땀을 흘리며 점심을 먹고 나와 건널목을 건너려니 내가 탈 여수행 기차가 막 건널목을 통과하고 있다.

 다음 열차 시간까지는 2시간이 넘게 남아 있다. 그동안을 그냥 역에 앉아 다소곳이 기다릴 내가 않이쟎은가?. 관광 안내를 보니 이곳이 은진미륵의 고장이라고-. 표를 끊어 넣고 역 광장으로 나와 택시를 타려는데 줄을 이은 택시가 모두 고개를 흔든다. 조금 전 기차에서 쏟아놓은 젊은이들을 실으려 호객행위에 정신이 없다. 장정 입대하는 날이라 연무대까지 나라시(?) 뛰려는 택시들이란다.

 길가에 정차한 택시를 잡아타고 관촉사로 가자고 했다. 기사양반이 자기도 이곳에 살며 운전을 하지만 관촉사에 언제 가 봤는지 기억이 없다며 관촉사가 불이나 다 소실됐었는데 당시 대통령에 출마한 고 정주영씨가 다시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을 해 줬다고 설명을 곁들인다.

 

 차에서 내리니 특이하게 반야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관촉사의 모습이 일주문 위에서 수직 평면으로 한눈에 잡힌다. 잔설이 깔린 경내에는 효행 설법의 말씀이 스피커를 통해 낭낭히 울려 퍼지고 계단을 돌아올라 명곡루明谷樓를 들어서니 제법 널따란 경내엔 늦추위에 인적이 끊기어 참배객도 없는 거대한 석불이 외롭게 서 있다.

 책이나 사진에서만 보아왔던 전설의 은진미륵. 한참을 그 우람함에 넋을 잃고 바라봤다. 동자의 흙장난을 보고 거대한 세덩이의 돌을 쌓아올려 자연의 화강암반 위에, 허리 아랫부분, 상체와 머리부분을 조각하여 불사를 이뤘다는 혜명대사의 전설.

 이리 조성된 당시의 미륵은 전신에 황금칠을 하고 자줏빛으로 화려하게 장식을 했었는데 송나라의 지안智眼이란 명승이 찾아와 예불하고 "촛불을 보는 것 같이 빛나는 미륵불이구나" 며 칭송한데서 관촉사란 이름으로 절이 조성되었다고 전한다. 

 헌데 머리부분의 갓모양은 왜 저리 만들었을까.... 원래의 모습인가?. 아니, 기법이나 돌의 질감이 전혀 다르다. 차라리 머리부분에서 갓의 밑부분과 맞물려 세워졌다면 훨씬 더 짜임새 있고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는 우문이 든다. 보물 232호인 관촉사 석등은 문외한의 눈에도 압도하는 기품이 넘쳐 아름답다.

 석문을 오르내려보고 백제왕궁의 화려한 삶도 마다하고 정인에게로 도망치다 숨어 죽어갔다는 어부 숙향이의 애틋한 사랑 얘기를 품은 숙향이 굴도 기웃거려보다 인적 없이 한적한 경내를 빠져나와 마침 도착한 시내버스에 서둘러 몸을 싣는다.


                                            2006. 02. 09.

 

입구에서 바라본 일주문과 반야산 중턱에 자리한 관촉사 전경

대웅보전. 단청이 산뜻하다.

인자한 눈빛과 보일 듯 말 듯한 미륵의 미소. 머리 위 갓 하단의 덧 댄듯한 모습이 생소롭다.

관촉사 석탑과 석등 그리고 은진미륵이 미륵전으로부터 일직선으로 도열해 있다. 

고려 초기의 관촉사 배래석(유형문화 제53호). 돌이 파이도록 빈 그들의 염원은 어느구천 떠돌까.

전설의 바위를 혜명이 조정의 명을 받아 986년 부터 38년 간에 걸쳐 완성한 우리나라 최대 석불

세상과 인간에 광명을 비췄다는 관촉사 석등(보물 제232호)의 고운 모습.

너무 많이 몰려드는 참배인파를 규재할 목적으로 건립했다는 석문(문화재 자료 제79호)

미륵전과 석탑. 유리창을 통해 미륵전 안에서 미륵보살 입상을 보며 예불하는 곳이다.

온 누리에 부처의 자비가 타종 되기를.......

나처럼 미륵이 궁금해 찾았을까?. 카메라와 배낭을 짊어진 과객에게 부탁해서 한 컷.

미륵 조성의 전설을 그린 미륵전의 벽화


 
출처 : 블로그 > 사랑이 샘솟는 옹달샘터 | 글쓴이 : 고 운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