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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송 시

길 /김기림

by 바닷가소나무 2023. 10. 14.

나의 소년 시절은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빛에 호저 때 없이

그 길을 넘어 강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함뿍 자주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강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댕겨갔다.

까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낳은지를 모른다는

동구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아

멍하니 기다려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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