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 쌓인 골짜기 동굴 속
어두움과 습한 냉기 춤추는 그곳에
잔뜩 웅크린 그가
땀 흘리며 칼을 갈고 있다
쓱 쓱 스르륵 스르륵
냉기의 늪에서
창백한 불덩이를 가슴에 안고
송곳 같은 신음을 토해내고 있다
눈빛은 이글거리고
가슴에 땀방울이 송송 맺혀있다
비바람 불던 산골짜기
펄펄뛰던 물고기처럼 살아 움직이던 어두움
구름 가르고 한 줄기 섬광 동굴 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니
흔들림도 신음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뚫리는 가 했더니 통째로 무너져 내렸다.
갈던 칼! 허리춤에 꼽는다.
이제, 칼날을 시퍼렇게 갈 필요가 없어졌다
어둠은 칼로 베는 것이 아니라
빛으로 부수는 것이니
저, 살아있는 한 줄기 번쩍이는 빛을 가슴에 품고
한 덩이 두 덩이 ……
뜨거운 불덩이를 토해 내려고 천천히 그가 일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