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달 그믐날 밤 풍경
총신대역 14번 출구 앞,
백발의 할머니가 고개를 떨구며 졸고 있습니다
땅바닥에 앉아 한 움큼으로 변해버린 주인을 닮아서인지
투명비닐 봉투 속에 떨고 있는 물건들도 한 움큼 한 움큼입니다
백발할머니 맞은편
켄터키할아버지 가게 안은
크리스마스 트리 불빛이 지금도 환하고요
옆 가게 대박부동산 사무실은 불이 꺼져 있지만
간판에는 힘이 철철 넘쳐흐릅니다
그 위층 불 꺼진 유리창에는
붉은 글씨로 안경이라 쓰여 있습니다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한 움큼이 되어 버린
노점상 할머니를 바라보다 저리 붉어져 버렸나 봅니다.
함박눈이 꾸벅꾸벅 내리기 시작합니다.
2018년6월5일 / 홍천휴양림에서
2019년 문학과 창작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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