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일
죽음을 두려워함은 부자연한 일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죄악의 의식이다.
1
그 생활에 매우 큰 가지를 가질 수 있었던 사람은 무엇 보다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이다. < 칸 트 >
2
어떻게 해선 던지 생활을 잃지 않으려고 비겁한 걱정을 하고 있는 자는 결코 인생을 즐길 수는 없다.
3
하루 이 세상에 산사람은 1세기나 이 세상에 산 것과도 같다. 태양, 토지, 세계, 가지가지 인상 ― 모두 마찬가지다.
오늘 있는 것이 내일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죽은 것, 육체가 없어지고 다만 심령만으로 되는 것은 정말로 호기적인 일이 아닐까? 그러나 온갖 새로운 것에 대하여 호기심을 갖는 사람도 오로지 죽음에 관해서는 호기적이 아니다. 태어난 날 부터 웬일인지 불안해하며 끊임없이 심심해하는 사람도 살아가는 데는 싫증을 느끼지 않는다. 인간은 모두 살아 나아가는 데엔 찬성한다. 병에 걸리거나 고통을 겪거나 죽은 사람을 본 것 같으면 인간은 또 하나의 세계로 버림을 받은 것처럼 도망친다. 이 일에 대하여 인간이 깊이 사색하도록 하자면 종교의 모든 힘이 필요할 것이다. < 라 브류이엘 >
4
참된 삶을 맛보지 못한 자만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 제이메 >
5
죽음이란 개인주의에 의해 독점되어 있었던 상태로부터 해방되는 순간이다. 개인주의란 인간의 근본적인 본질이라니 보담 인간의 본질을 불구로 만드는 것이라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이 인간의 본질적인 상태의 완전한 부활이라 할 만한 순간에 참된 제일의적(第一義的)인 새로운 자유가 찾아오는 것이다.
죽은 사람의 거개가 평화스럽고 안정한 표정을 띄우고 있는 원인은 분명히 여기에 있다. 모든 착한 사람의 죽음은 편안하고 용이한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생활을 위하여 노력할 의지가 없고 그 의지를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침착하게 자진하여 희열의 심경으로써 죽을 수 있는 특권은 가질 수 없다. 왜냐하면 자살하는 자는 현실에 죽는 것만을 바랄 따름이며 자아가 먼 장래에까지 존속해 나가기를 필요로 하지도 않으며 또 그것을 요구 하지도 않지도 않기 때문이다. < 쇼오펜하우엘 >
6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 속에 나타나는 감정이란 생활의 내면적인 모순에 대한 의식에 지나지 않는다.
7
죽음에 대한 공포는 사람들이 인생을 하나의 조그마한 부분적인 유기체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는 그릇된 관념을 가지고 있는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8
만약에 인생에 대하여 그릇된 관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고 인생에 대한 그들의 사고방법을 올바르게 가질 수 있다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즉 우리가 죽음이라고 부르고 있는 육체상의 변화는 끊임없이 우리들 사이에 그리고 모든 생물(生物)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것이며, 그러므로 서 조금도 불유쾌하거나 무서운 것도 아닐 것이라는.
9
인생을 벌(罰)이라고 생각하는 여러 성인이 있었다. 그러나 죽음을 벌이라하기에는 건강한 두뇌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하나 생각할 수 없다. < 렛 싱 >
*
죽음이란 날마다 밤이 오고 해마다 겨울이 찾아오는 것과 같이 피할 수 없다. 우리들은 밤이나 겨울에 대해서는 준비를 하지만 어째서 죽음에 대해서 조금도 준비를 하지 않은 것일까? 죽음에 대한 준비는 단 하나 밖에 없다. 그것은 훌륭한 인생을 산다는 것이다. 우리들이 훌륭한 인생을 살면 살수록 그에 대한 공포도 없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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