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신춘문예 시 읽기> 새로운 움직임 속에 난해한 시편들이 등장하는 문학적 흐름 ----- 시인 유창섭
1. 새로운 문학적 지평을 열기 위하여
금년에는 어떤 새로움과 감동을 가진 시를 만나게 될까? 하는 설렘이 새해 신춘문예를 찾아나서게 된다. 매년 맞이하는 신춘문예작품이지만 그 작품들을 대할 때마다 다른 느낌을 받는다. 물론 한 해 한 해가 지날 때마다 그 동안 발표되는 각 문예지나 다른 공간에서 시를 읽으면서 새로움이나 복고적인 흐름을 감각적으로 느끼게 되며 그런 경험들이 쌓여 우리 현대 시의 전반적인 흐름을 느끼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를 강론하다보면 시인들로부터 시를 쉽게 쓰는 것이 좋으냐, 어렵게 쓰는 것이 좋은 것이냐 하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이에 대한 정답은 없다. 다만 시를 읽는 독자나 또는 함께 시를 교류하며 정서적 교류를 꾀하는 사람들이 보다 더 어려운 시를 선호하는 경우에는 그 형편에 맞게 쓰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시 속에 장치하려는 감동의 크기나 은밀함, 또는 함축미를 고려한다면 좀 더 깊은 이미지와 상상력이 결합하도록 하는 시창작 방법을 택하게 되는 경우가 있을 것이므로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일률적으로 답을 내기는 어렵다. 과거에도 거의 10여년 이상 산문주의와 난해한 문학적 흐름이 지속되고 극심한 난해성에 빠져 있다가 2009년경부터 새로이 서정주의로 회귀하면서 시적 함축미와 언어적 의미의 새로움 발견이나 새로운 활용을 추구하던 의미론적 발견이나 천착에 의해 이미지가 새롭게 재해석되는 경향이 4~5년간의 진행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사이에도 다소간의 난해함에 기대어 시를 쓰는 일군의 시인들의 도전은 항상 있어왔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보다 더 많은 새로움을 포장한 시들이 난해성으로 치장하고 등장하기 시작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아마도 이런 난해성을 가진 시적 흐름은 당분간 새로운 탈출구를 찾게 될 때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예견된다. 사실, 신춘문예작품을 찾아내어 한 곳에 모아 놓는 일조차 상당한 수고로움을 투자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 수고로움에 맞는 정도의 경이로움과 감동을 가지게 되기를 기대하면서 한 작품 한 작품의 시를 읽으며 커다란 감동을 느끼기도 하고 난독증(難讀症)에 빠져 헤매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시에 대한 집착을 놓지 못하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힘겹게 섭렵하여 모은 것들이지만, 금년에는 24개 신문사에서 발표한 신춘문예 당선작품을 가지고 전체적인 신춘문예의 경향과 새로움, 그리고 새로운 시 정신에 대한 시적 흐름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1) 시의 형식과 내용의 변화
시의 형식 면에서는 24개 신춘문예 당선작 25편 중 4편이 산문시의 형식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고, 나머지는 모두 자유시의 형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는 산문시와 자유시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시의 행이 길어져서 시행의 산문화 현상이 두드러졌다고 볼 수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아직도 간결한 행으로 충분히 깊은 사색의 틀을 짤 수 있다고 믿는 시인들에게는 마뜩하지 않은 현상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현상, 즉 시가 산문화의 경계면에 바짝 다가서 있는 모습에서, 과거의 간결하고 감추어진 이미지의 결이 또렷하게 모습을 드러내던 은밀함과 함축적인 형식은 이제 과거의 전형으로 자리매김하여야 할 것 같은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을 것 같다. 과거의 시적 형식에서도 긴 호흡을 가진 시들이 없지 않았지만 요즘에는 그런 시 형식이 보편화되고 하나의 유행처럼 커다란 시적 흐름을 유지하고 있으므로 그런 흐름을 옳다 그르다 단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시적 형식은 이미 10여년이 넘는 과정에서 서서히 자리를 잡아왔고, 그러한 시의 그릇에 맞게 시의 내용과 의미도 그런 형식에 맞게 진화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그런 형식이 현대의 시적 정서를 함축하는 형식이 되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시적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형식으로의 진화가 진행되어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다. 다음으로 2009년경부터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한 서정주의로의 회귀현상은 2010년에 이르러 본격화되기 시작하여 2014년까지 꾸준히 이어졌다. 그 와중에도 간간히 드러내 보이던 개인적인 시적 실험이나, 또는 난해성과 접목된 시적 변화가 있었지만 그러한 시적 실험이나 난해성이 금년에 와서 본격화되는 조짐이 보인다. 전년에 비해 시적 난해함이나 어떤 실험적 발명이 보이는 시의 난독성(難讀性)이 많아졌음을 보면서 그런 난독성이 가지고 있는 근거와 유추(類推), 해석(解釋)이 공유될 수 있는 접점이 찾아질 수 있기를 바랐지만 필자의 역량 부족으로---여전히 난독증(難讀症)에 빠져 충분한 의미의 결을 건져내지는 못한 것 같다.
2) 신춘문예에 영향을 주는 심사위원들의 면모
신춘문예 작품 심사에 나선 심사위원들의 면면을 보면 한국 현대시의 흐름이 어떻게 될지를 유추할 수 있는 단초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심사위원들의 시적 성향이나 그들의 시적 역량에 우리 현대시가 한정되어 버릴 위험은 없을까? 염려스럽다. 우리 현대시가 가는 길목에서 심사위원들의 심사에 투영되는 시선은 한국시의 흐름을 형성하게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너무 오랜 시간 동안---어떤 심사위원은 몇 십년 동안 의미있는 신문의 심사위원 자리에서 떠나지 않고 중요한 역할을 해 왔음을 알 수 있다---장기 집권을 함으로서 한국시의 발전을 한정시키는 역할을 해 오지는 않았을까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진정으로 한국시의 발전 위해서는 그 당사자인 자신이 스스로 심사위원을 사양하고 금전적 욕심이나 명예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자리를 내 주는 어른스러움을 보여 줄 때가 이미 지난 것은 아닐까? 몇 년 전부터 심사위원들의 장기독식보다는 새로운 중견시인들의 등장과 열린 시각으로 한국시를 바라보고 가슴으로 안아줄 시인들이 심사위원들로 바뀌어야 한다는 말을 해 왔지만, 아직도 역시 그 상태에 머물고 있는 것은 각 신문사의 문학에 대한 시선이 얼마나 편협하고 대중적 인기주의에 편향되어 있는지를 알게 한다.
편의 상 가나다 순으로 장리한 금년도 신춘문예 작품 심사위원들은 다음과 같다.
강원일보(이영춘/홍성란), 경남신문(유홍준/박서영), 경상일보(권달웅), 경인일보(문정희/유성호), 경향신문(이시영/황인숙), 광남일보(나희덕), 국제신문(최영철/전동균/손택수), 농민신문(손해일/황인숙), 동아일보(황현산/김혜순), 동양일보(정연덕), 매일신문(김주연/김명인), 무등일보(김경윤), 문화일보(황동규/정호승), 부산일보(강은교/이우걸/김경복), 서울신문(정호승/나희덕), 세계일보(문정희/김사인), 영남일보(이하석/송재학), 전북도민일보(조미애), 전북일보(이양아/이동희), 조선일보(정호승/남진우), 한경청년(김기택/권혁웅/이원), 한국일보(남진우/황지우/이문재), 한라일보(황학주/김병택),....
위와 같이 24개 신문사의 심사위원은 이상 45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여기에 등장하는 심사위원들 중에는 과거 수십년간 심사위원으로 활동한 분도 있고 거의 그에 견줄 만큼 오랜 경력을 자랑할만한 분들도 많아 보인다. 그 중 5인의 심사위원은 2~3곳의 신문사 심사위원을 겸하고 있는 시인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정호승 시인(서울신문/조선일보/문화일보), 황인숙 시인(경향신문/농민신문), 나희덕 시인(서을신문/광남일보), 문정희 시인(세계일보/ 경인일보), 남진우 시인(조선일보/ 한국일보), 제씨들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문학단체인 한국문인협회에 등록된 시인들의 숫자만도 6,600여명과 시조, 평론가들을 합하면 7,500여명을 넘는다. 그 중에서도 좋은 시를 써서 발표하고 있고 능력있으며 충분한 심사자격을 가지고 있는 훌륭한 시인들이 위에 등장하고 있는 0.6%에 지나지 않는 45명 뿐일까? 심사위원들의 개인적 성향이나 시에 대한 열린 정신, 또는 시적 세계관에 의해 시적 흐름은 크게 변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심사위원들의 새로운 등장이 아쉽게 느껴지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이제 그들 스스로 원로라고 자처하며 그 동안의 귀족놀음에 빠졌던 원로시인들은 스스로 그런 자리에 연연하지 말고 후배들에게 양보하고 자신을 되돌아볼 시간을 가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이대로 간다면 한국문학에서의 시부문은 조로(早老) 현상에 빠지게 되고, 그 신선한 문학적 흐름을 가져보지도 못한 채 몇 십 년 동안의 정체에 빠져 발전을 기약하지 못하고 횡보를 거듭하게 될까 염려스럽다.
3) 난해성으로 치장된 시 읽기
2010년에도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작품의 심사에 임하는 심사위원들의 견해는 각 신문사에서 위촉한 심사위원들의 심사의견 속에 들어 있는 시적 가치기준으로 나타나고 그 나름대로 우리 한국시가 나아갈 방향과 그 성향을 알 수 있는 여러 가지 시사점을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들의 견해가 한국시단의 견해나 시단의 흐름을 대표한다고 볼 수는 없을지라도 그러한 견해는 작건 크건 우리 시의 흐름을 형성해 가는 데에 커다란 영향을 주게 되는 중요한 시사점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각 당선작품의 심사평을 최소한으로 간추려 놓았음을 밝힌다.
특히 금년에 들어 난해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등장한 시편들이 많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이것은 서정성과 함축미를 추구하는 경향의 시가 유행하게 되는 4~5년 동안의 흐름 뒤에는 그런 흐름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나는 하나의 현상일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난해성을 띈 이미지를 활용하려는 시에서, 난독증에 기대어 일어날 수 있는 문제는 일반적인 문장에서의 합리성과 문법적 문장에 대한 개념에 충실하지 않아서 일어나는 부실한 문법적 오류와 난독증에 기여하는 상상력을 유발하는 사물에 대한 의미망을 비틀어 혼란을 유발시킨다는 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시인은 자신의 시에서 읽혀지도록 하려는 어떤 의지를 가지고 사물과 상징의 관계를 정립시켜나가야 하는 가에 대한 고뇌를 하여야 할 것이다. 시가 쓰여진 바에는 그 시를 읽는 독자가 존재하는데 무작정 어렵게 의미를 비틀어 눈치 채지 못하게 만들 것이 아니라 그 독자들로 하여금 어떻게 하여 자신의 의도를 아름답고 신선하며 아주 독창적인 화법으로 그 중심적 정서를 전달할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하며 시를 썼는가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우리 시대에 존재하는 난해한 시적 탐험에 의해 우리 시가 그 깊이를 더할 수 있는 해석적 의도로 시적 영역이나 의미의 천착능력이 더 넓어졌음은 매우 긍정적인 공헌으로 보인다. 물론 아직도 이상의 “오감도” 같은 시편들은 그 전체적인 의미가 충분히 해석되고 음미할 장도의 수준으로 조차 탐색되지도 못했다는 점을 생각하여 보아야 할 것이다. 대학에서 시를 강론하며 가르치는 교수조차도 자신은 현대시의 그런 난해시들이 가진 의미를 충분히 해석하여 읽기 어렵고 그런 난해함의 의도를 공감하기 어렵다는 점을 솔직히 토로하는 것을 보고 공감한다. 우리가 시를 쓰는 것은 독자들에게 숙제를 만들어 주자는 데 목적이 있지 않고 그 중심이 되는 정서를 통해 감동을 느끼면서 읽어내고 충분히 공감할 수 있어야 그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과연 심사위원들조차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였으며 감동하였을지 의심되는 시를 만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심사위원이라고 해서, 문학비평가라고 해서 만능의 해석력을 가진 사람은 없다. 그런데 이런 신춘문예 작품에서조차 그런 난해함을 하나의 유희로 삼아 해독이 가능하지 못할 만큼 비틀고 충돌하도록 만들었다면 그것은 심사단계에서부터 분명한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하여 심사평을 던져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게 충분한 해석과 감동을 이끌고 있는 시편의 중심 정서를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이런 난해성을 가진 시일 수록 의미의 전달이 어려운 문법적 오류가 많고, 그런 문법적 오류가 적당히 감추어져도 좋다는 관대함이 끼어들 가능성이 많다. 어떤 경우에는 “문법 뛰어넘기“라는 관대함으로 포장하여 그런 문제들을 쉽게 포용하게 될 가능이 많지만, 오히려 그 난해함이 더 과학적인 짜임새를 가지고 합리적 해석이 가능하도록 그런 문법적 기교나 수법이 충실하게 그 의미들의 맥락을 이끌어가는 구조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한 편의 난해시를 읽고 그 시를 해석하고 의미를 찾아내는 데 동일한 의미와 동일한 감동을 느끼는 것은 어렵다. 그것은 한 편의 시를 읽는 사람들의 많은 경험과 지성적 작용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당한 경륜과 시에 대한 확고한 시론을 가지고 있는 시인들이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그분들이 심사하고 논의한 끝에 뽑은 당선작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심사위원들이 가진 시에 대한 바람이나 시를 선(選)하는 가치기준들은 어떤 것일지 가늠해 보는 일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사실 시를 선(選)하는 것은 개인적인 가치 기준에 따라 매우 다르기 때문에 누가 심사위원이 되는가에 따라 다른 시가 당선시로 선택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2. 신춘문예 작품의 전반적 경향과 의미
신춘문예에 나타난 시적 경향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을 심사평에서 발췌하여 종합해 보면 (1) 산문화 경향이 많아지고 (2) 함축성이 없고 문장이 장황하게 길어지고 있다는 점과 (3) 너무 표현의 신기성에 기대고 있거나 이해가 어려운 표현들이 끼어들고 있다는 점, (4) 언어 자체가 살아 움직여 비의에 이르지 못하고 자기만이 알 수 있는 표면적인 은유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 (5) 일체감과 통일성이 부족한 면이 발견된다는 점 등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필자의 견해와도 맥을 같이한다.
그 외에도 심사위원들이 지적한 내용을 좀 더 들여다보면, 신인이 가져야할 시에 대한 자세와 시를 창작하는 핵심적 요소들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다. 즉, 신인에게는 자기만의 화법과 개성적 표현력이 있어야 하며, 장황하고 모호한 시가 많아진 요즈음 한국시단 풍토에, 명징한 이미지로 내면세계를 깊이 있게 투시한 작품을 기대하고 있으며(경상일보), 시단의 주류 형식을 추수하거나 판박이에 가까운 관습적 상상을 보여주지 않고, 스스로의 경험적 구체성에 정성을 쏟은 것도 퍽 긍정적으로 느껴졌다.(경인일보) 시단에도 성형이 대유행이다. 잘 빚어진 작품들은 많으나 고유한 생기를 찾기가 힘들다. 뿌연 관념과 성찰 없는 묘사와 휘황하기만 한 이미지의 더께가 시의 숨구멍을 틀어막고 있다. 장황한 요설까지 더하여 사물과 현실의 빛나는 구경은 갈수록 희박해져 간다. 꿈틀거리는 생의 비의를 추적하면서 경화된 시어의 권위를 의심하는 불화와 불온의 젊은 시정신은 어디에 있는가.(국제신문) 모름지기 신인이라면 참신함은 물론이지만, 시로써 자신에게 되물으려는 질문 또한 절절해야 할 것이다. (매일신문) 열정은 높았지만 절제와 균형이 부족했고 산문적 요설이나 추상적 관념의 나열로 흐르는 경향이 많았다. 무엇보다 대상을 주의 깊게 보고 새롭게 표현하려고 하는 자세가 부족해 보였다. (무등일보) 너무 표현의 신기성에 치우친 점, 이해불가의 내용이 상당수 끼어들어 있는 점 등이 지적됐다.(부산일보) 발견은 소통 가능성(서정시), 발명은 소통 불가능성(비서정시)과 직결되고, 다시 발견은 언어의 투명성(우리), 발명은 언어의 불투명성(나)과 연관된다. 우리 현대시는 발견과 발명 사이에 서식한다. (한국일보) 우리가 친숙하게 읽어온 '낯익음'의 유형이라는 점 때문에 손을 들어주는데 망설임이 따랐다. (한라일보)는 점 등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한 요점들이 담긴 내용을 각 신문사의 심사평 중에서 발췌하여 펼쳐본다.
대상을 장악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화법과 리듬으로 시를 운산(運算)하는 범상치 않은 솜씨(경향신문) 대부분 산문적 요소가 많고, 시가 지녀야 할 함축성이 없으며, 문장이 장황하게 길었다. 신인에게는 자기만의 화법과 개성적 표현력이 있어야 한다. 이해하기 힘들며 장황하고 모호한 시가 많아진 요즈음 한국시단 풍토에, 명징한 이미지로 내면세계를 깊이 있게 투시한 작품은 아주 드물다. (경상일보/ 심시위원 권달웅 시인)
시단의 주류 형식을 추수하거나 판박이에 가까운 관습적 상상을 보여주지 않고, 스스로의 경험적 구체성에 정성을 쏟은 것도 퍽 긍정적으로 느껴졌다. 이 모든 것이 우리 시의 미래적 좌표를 개척해가는 생산적 면모라고 생각되었다.(경인일보/ 심사위원 문정희(시인, 한국시인협회장),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학교 국어국문과 교수) 예상 가능한 상상력의 구도에서 비약하지 못한 채 익숙한 은유로 생의 비의를 드러내는 데 안주했다. 곳곳의 상투적인 시행들의 병렬로 인해 이른바 언어 자체가 살아있는 ‘물활’(物活)의 경계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경향신문 / 심사위원 이시영·황인숙 시인) 대상을 장악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화법과 리듬으로 시를 운산(運算)하는 범상치 않은 솜씨를 보여 주었다. (경향신문 / 심사위원 이시영·황인숙 시인)
우울한 사회분위기를 반영하듯 전반적으로 죽음이나 상실을 노래한 시편들이 많았다. 세상에 대한 비판적 사유를 경쾌하면서도 통렬한 풍자를 통해 개성적인 목소리와 활달한 상상력을 보여 주었다. (광남일보 / 나희덕 시인(조선대 문예창작과 교수)
시단에도 성형이 대유행이다. 잘 빚어진 작품들은 많으나 고유한 생기를 찾기가 힘들다. 뿌연 관념과 성찰 없는 묘사와 휘황하기만 한 이미지의 더께가 시의 숨구멍을 틀어막고 있다. 장황한 요설까지 더하여 사물과 현실의 빛나는 구경은 갈수록 희박해져 간다. 꿈틀거리는 생의 비의를 추적하면서 경화된 시어의 권위를 의심하는 불화와 불온의 젊은 시정신은 어디에 있는가. 응모자들 모두 산문적 일상을 품고 떠오르는 시적 부력에 대해 더 고민할 필요가 있었다. 고른 기량과 자신만의 고유한 화법 (국제신문 / 심사위원 최영철 전동균 손택수 시인)
현란하나 발랄한 어법으로 자신의 내면에 집중한 작품도 눈에 띄었다. (농민신문/ 손해일 시인·황인숙 시인)
장식과 조립에 치중한 시가 많았으며 재주나 재치에 기댄 시가 많았다. 응모작 전체가 고른 수준을 갖춘 예도 드물었다.(동아일보 /황현산 문학평론가·김혜순 시인(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
신인에게서 볼 수 있는 야심찬 패기와 실험성을 좀처럼 발견하기 힘들었다. 사물을 볼 때 관념의 무게를 줄이는 시작(詩作) 필요 (동양일보 / 심사위원 정연덕 시인)
시심으로 보면 공들여 가다듬은 흔적이 역력하지만 감각이나 인식으로는 특별히 새로울 것이 없는 그만그만한 수준의 성취였다. 모름지기 신인이라면 참신함은 물론이지만, 시로써 자신에게 되물으려는 질문 또한 절절해야 할 것이다. (매일신문 / 김주연(문학평론가)`김명인(시인) )
열정은 높았지만 절제와 균형이 부족했고 산문적 요설이나 추상적 관념의 나열로 흐르는 경향이 많았다. 무엇보다 대상을 주의 깊게 보고 새롭게 표현하려고 하는 자세가 부족해 보였다.....시인이란 보이지 않은 것까지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가진 자라고 한다.....신인에게는 늘 창조적 상상력과 패기가 요구된다. (무등일보 / 심사평 ; 김경윤 시인)
신춘문예는 한국 문학의 축제다. 새로운 시인이 탄생하는 축제의 한마당이다. 이 축제에 참여한 이는 맛있는 음식도 나누어 먹고 오랜만에 배도 좀 불러야 한다. 그러나 이번 축제의 상에 놓인 음식들은 숙성과 발효가 되지 않은 겉절이들이 유난히 많았다.(문화일보 / 심사위원 황동규·정호승)
시적 대상을 통해 현대적 삶의 고단함과 삭막함에 대해 재치 있고 도전적 자세로 표현해내고 있는 점은 주목되었으나 너무 표현의 신기성에 치우친 점, 이해불가의 내용이 상당수 끼어들어 있는 점 등이 지적됐다.(부산일보 / 심사위원 강은교·이우걸·김경복 )
사회 전체가 죽음의 사건들에 침잠된 탓인지 올해 투고작들은 전반적으로 어둡고 무거운 느낌이었다. 몽환적이고 묵시록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작품들도 많았다. 이 죽음의 시대에 시는 현실적인 응전이나 전망을 보여주기보다는 그 내상(內傷)을 깊이 앓으며 치러내는 제의적 행위에 가까운 것일까. 그러나 이런 현상이 한편으로는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나 패배의식의 반영으로 보이기도 한다.(서울신문 / 심사위원 ; 정호승, 나희덕 시인)
우리를 두렵게 하는 동시에 매혹하는 시쓰기, 읽기 전과 후의 우리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 해방과 자유의 에너지를 내장한 시쓰기, 그러므로 쓰는 이뿐 아니라 읽는 이에게도 근원적 의미의 모험이어 마땅한 그런 시쓰기의 시인을 우리는 설레며 기다린다.....보이지 않는 긴장이 견지되는 한에서만 이런 시는 유효하다는 것, 그렇지 않을 때 요령부득의 주관적 요설이나 겉멋의 함정에 떨어지는 것은 순식간일 수 있다는 우리의 우려가 기억되기를 바란다. (세계일보 / 심사위원 문정희·김사인)
유행하는 어법을 도외시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자연스럽게 드러내었다는 점이 우리의 호감을 얻었다. 빛나는 구절이 상투성이란 단점을 껴안았다. (영남일보 / 심사위원 ; 이하석, 송재학 시인)
고단한 일상을 단순하게 토로하기보다는 시어로 승화하여 길어 올림으로써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 느리게 진행하는 영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문학이 지니는 장점일 것이다. 파편이 된 시적 소재를 다듬고 맞추어서 전하고자 하는 연결고리를 분명하게 찾아내고 사물 저 건너편까지 들여다 볼 수 있는 역량을 가지는 것이 필요, (전북도민일보 / 심사위원 조미애)
무모하다 싶은 실험, 일체감과 통일성이 부족한 작품도 있었습니다. 안이한 타성에 젖어 있거나 목적의식이 두드러져 보이는 주제, 수사적 표현에서 독창성이 의심되는 작품들도 있었습니다.(전북일보 / 심사위원 ; 이양아, 이동희 시인)
이 시에 담긴 지혜는 통속적 잠언을 훌쩍 뛰어넘은 것으로서 오래 되새길 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여겨졌다. (조선일보 / 정호승(시인)·남진우(시인))
낯설고 도전적인 작품이 더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청년의 언어에서 보고 싶은 것은 ‘두려움’이라는 불가능을 ‘열정’이라는 가능으로 바꾸는 마술이기 때문이다.(한경청년신춘문예 / 김기택·권혁웅·이원)
시에서 발견과 발명은 구분된다. 발견이 낯익은 대상에서 낯선 의미를 찾아내는 과정이라면, 발명은 대상과 무관하게 낯선 의미를 빚어내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발견은 소통 가능성(서정시), 발명은 소통 불가능성(비서정시)과 직결되고, 다시 발견은 언어의 투명성(우리), 발명은 언어의 불투명성(나)과 연관된다. 우리 현대시는 발견과 발명 사이에 서식한다. (한국일보 / 문학평론가 남진우, 황지우 이문재 시인)
작품의 수준이 고르고 그만큼 만만찮은 자기 연마의 과정을 짐작케 했으나 우리가 친숙하게 읽어온 '낯익음'의 유형이라는 점 때문에 손을 들어주는데 망설임이 따랐다. (한라일보 / 심사위원 / 황학주 시인, 김병택 문학평론가)
위와 같은 내용을 이해함으로서 좋은 시를 쓰기 위해 시인 나름대로의 자신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가치기준을 찾아내고 그것을 이루어낼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3. 각 신문사별 신춘문예 당선작품과 심사평 요약
이어서 각신문사 별---가나다 순(24개 신문사)---로 발췌한 신춘문예 당선 시와 그 심사평을 요약하여 살펴 볼 수 있도록 정리하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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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강원일보[신춘문예 당선작-시] 벽과 담의 차이 / 봉윤숙
우리의 이야기는 지붕 속에서 산다 지붕을 가지고 있는 벽과 지붕이 없는 담 안엔 사슴벌레 달팽이 사금파리 장지뱀 등 여러 종류가 산다 벽은 못, 시렁 아버지의 맥고모자 달력의 날짜로 불리기도 한다 드나들거나 넘을 수 있는 높이의 담은 그림자와 낙서의 한 영역이다 벽은 문 없는 간극과 문의 사고가 가끔 어긋나기도 하지만 옷들은 그 사이에서 잘 기대어 무늬를 새긴다 담을 넘어간 소리는 키 큰 소문이 되고 담 밖에 있던 사람이 훗날 벽의 못에 걸리기도 한다 담은 올록볼록한 퍼즐 같다 퍼즐을 맞추려 틈새의 흐름을 허용한다 그 사이로 번식하고 바람이 드나들며 물길도 흐른다 구멍이 없어 마음, 다만 낙서로 대신하는 일들이 있고 수직의 소문들이 넓다 커다란 순록을 보면 따뜻한 벽이 생각난다 그들은 스스로 진화된 지붕을 가지고 있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뿔로 계절은 완성되고 빨강은 절판된다 숲은 담이다 나무들은 지붕이 없으므로 흔들린다 이야기가 없을 때는 흔들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경기 부천 生 △숭의여대 문창과 졸업, 중앙대 문예창작 전문가 과정 수료
[신춘문예-심사평] 낯선 형식이지만 기본 위에 축조된 시
본심에 200편 가까운 응모작이 올라왔다. 최종 논의된 작품에서 `달과 비누'는 이미지 형상화 능력이 뛰어났으나 모호했다. `내 마음 속 국어사전'은 삶과 죽음의 도정에서 학습하는 언어를 국어사전으로 은유한 전개가 돋보였으나 단순 평이가 흠결로 `달과 비누'와는 상반된 흐름을 보였다. .........`벽과 담의 차이'는 활달한 수사와 짜임새 있는 전개로 재치가 돋보이는 수작이다. 근사한 시를 넘어 좋은 시는, 낯선 형식이되 의미를 배반하지 않는 시다. 정서적 고양과 정화, 공감 공명이라는 시의 기본 위에 축조된 시다. 신인다운 패기를 잃지 말고 정진 대성하시길 바란다. / 심사위원 ; 이영춘·홍성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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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경남신문[신춘문예 당선작-시] 물수리 그림자, 지나간다 / 김진백
나를 흠뻑 적시고 흘러간 붉은 저 강물 폐륜(廢倫)이라 해도 나는 연어의 힘센 자식 아니기에 돌이킬 수 없다
목마른 내 우물 모래바닥에 거친 예감 물살 치는 날
청춘이 할퀴어 쓰린 상처 위로 물수리 그림자 휙 지나간다 하늬바람 시작되는 곳, 너는 눈먼 꽃으로 돌아온다 얼음 부딪히는 북해에서 내 이물까지 오만 리 길 그곳에서 다시 고물까지 십만 팔천 리 길
너는 함포처럼 요란하게 쏟아진다, 날아와 펑펑펑 터진다
강물은 이른 새벽부터 몸 비틀어 나를 껴 앉는데 너를 따라온 달이 눈동자에 월식으로 지워진다
내 가난한 땅에 새겨진 풍성한 강물의 위로는 돌아오고 떠나는 사이 제 몸 넉넉히 내어주는 일뿐
험한 물길 찾아오다 세찬 숨결 아찔한 순간, 그 순간 너는 가끔 튀어 오르며 돌아온다 가슴 부푼 비린 꽃으로.
△1993년 마산 출생 △경남대 가정교육과 군휴학(창원중부 방범순찰대 본부소대 상경) △청년작가아카데미 2기 수료 △2013년 경남 고성 디카시 공모전 우수, 2014년 제28회 10·18문학상 시 부문 당선
[신춘문예-심사평] 행간마다 생기와 상상력 넘쳐
신춘문예 당선작은 하늘이 내리는 선물일지도 모른다. 단 한 편을 새해 신문에 내보내는 작품을 골라야 하는 심사위원들의 취향은 다르다. 그리고 뽑는 이유도 제각각이고 탈락시키는 이유도 제각각 다르다. 최종심에서 논의된 시는 ‘우물우물 맛있나요’, ‘우중 건축’, ‘물수리 그림자, 지나간다’이다. ..........처음부터 ‘물수리 그림자, 지나간다’는 앞에 언급한 두 작품에 가려져 심사위원의 눈길을 끌지 못한 작품이다. 그런데 자꾸 읽다 보니 행간마다 생기가 넘치고 있었다. 막막한 청춘을 이상한 활기와 비약으로 성큼성큼 건너 뛰어가고 있었다. “얼음 부딪히는 북해에서 내 이물까지 오만 리 길/그곳에서 다시 고물까지 십만 팔천 리 길”이라는 표현의 진폭은 넓다. 배의 앞부분인 ‘이물’과 뒷부분인 ‘고물’까지의 거리를 ‘북해’에서 시작하고 있는 투고자의 상상력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시에서 우리는 울퉁불퉁 몸을 비틀며 지나가는 강물처럼 격렬한 청춘이 지나간 흔적을 읽었다. 한 마리 물수리가 강물 위를 날아갈 때 모래바닥에 거친 예감이 그림자처럼 생긴다는 시적 사유도 만만치 않았다. 우리는 결국 섬세하고 아름다운 표현이 아니라 막막하지만 거친 청춘을 노래한 쪽에 손을 들어주기로 했다. 당선자가 앞으로 어디로 흘러갈지, 독자를 놀라게 할 그 아찔한 순간이 언제 올지 기대하며, 축하의 말을 전한다. / 심사위원 ; 유홍준, 박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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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경상일보[신춘문예 당선작-시] 걸어가는 나무 - 정지윤
그들의 발소리는 너무 조용하여 먼 훗날 겨우 발견될 뿐, 아르볼 께 까미나(arbol que camina) 태양을 찾아가는 나무의 뿌리는 아마존의 고대 지도를 기억한다 끝과 시작이 맞닿은 유랑 기억을 더듬는 긴 촉수의 뿌리들은 수십 개월 느리게 이동한다 걷는 나무에게 숲은 한낮 궤도일 뿐 달과 달 사이로 시간이 흐른 뒤 숲은 파헤쳐졌다 나무들은 뿌리 앞에서 뒤틀림을 멈춘다 태양을 훔치는 뿌리들은 제 뿌리를 등 뒤에 남기며 다시 앞을 향해 걷는다 숲을 향해 숲이 되기 위해 걷는 일 아마존을 느린 걸음으로 가는 아마존의 나무들 언젠가 숲이 초원에 이르는 날 절룩거리며 걸어 나와 제 그림자와 뒤꿈치에 박힌 상처들을 전할 것이다 나는 잠시 멈춰선 채 먼지 같은 시간을 바라다본다 고통은 크기만큼 가벼워지는 것이어서 깔깔거리며 저마다 제 이름을 깊은 곳으로 불러들인다 아르볼 께 까미나(arbol que camina)
[정지윤-약력]-1964년 경기도 용인 출생 /-제1회 민중문학상 신인상 시 부문 수상 /-제22회 전태일문학상 시 부문 수상 /-제6회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 동시 부문 수상
[신춘문예-심사평] 명징한 이미지로 내면세계 깊이있게 투시
응모된 작품 수준이 비슷하여 우열을 가려내기가 힘들었다. 대부분 산문적 요소가 많고, 시가 지녀야 할 함축성이 없으며, 문장이 장황하게 길었다. ..........이에 비하여 ‘걸어가는 나무’는 산만하지 않고 간결하며, 내면적 깊이도 있었다. 식물의 한계성을 극복하고 태양을 찾아가는 나무의 뿌리가 수 십 개월 느리게 이동하는 일월의 섭리나, 숲이 되기까지의 상처와 고통을 감내하는 과정을 무리 없이 전개하고 있다. 특히 대상과 내면의 등가적 유추가 섬세하며, 이미지가 청신하여 신뢰감이 갔다. 신인에게는 자기만의 화법과 개성적 표현력이 있어야 한다. 이해하기 힘들며 장황하고 모호한 시가 많아진 요즈음 한국시단 풍토에, 명징한 이미지로 내면세계를 깊이 있게 투시한 작품은 아주 드물다. ‘걸어가는 나무’는 언어가 간결하고, 투명한 이미지가 환기해내는 전이적 상상력을 부여하는 능력을, 중요한 가능성으로 인정하여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당선을 축하한다. / 심사 ; 권달웅 시인 [권달웅-약력]-1943년 경북 봉화 출생./-한양대, 동 대학원 국문과 졸업./-1975년 박목월에 의해 ‘심상’ 신인작품상 등단./-시집 <해바라기 환상> <사슴뿔> <바람 부는 날> <지상의 한사람> <내 마음의 중심에 네가 있다> 등 -시선집 <초록 세상> <감처럼>-사화집 <70년대 젊은 시인들> <신감각> 동인 -편운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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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경인일보[신춘문예 당선작-시] 모자이크 / 이인서
쨍하는 소리와 함께 앞집 유리창이 깨졌다 얼음판을 돌로 친 것처럼 어느 일성이 내놓은 모자이크, 여전히 붙어있는 파편들은 찡그린 얼굴 같다
작은 구멍이 난 곳을 정점으로 사방으로 퍼져나간 사나운 선들, 그 앞을 누군가 서성거리고 창밖의 나무 한 그루가 모자이크 처리된 채 서 있다
살얼음이 낀 12월의 안쪽은 왠지 범죄 냄새가 난다 조각 난 얼굴 위로 가끔 변검을 한 목소리가 튀어나오고 모자이크 속 남자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
깨어진 균열의 힘으로 버티고 서 있는 집, 깊숙한 구석까지는 채 다다르지 못한 금
깨진 햇빛 조각 하나가 섞여 있는 창문
문을 꽝, 닫으며 뛰쳐나가는 여자 뒤로 은행나무 마른 가지들이 뿌연 하늘을 모자이크 처리하고 있다
■ 약력 / 1959년 전남 영광 출생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불문과 졸업 /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수료
[신춘문예-심사평] 안정성·진정성·밀도 잘 어우러진 결실
.......심사위원들은 본심에 부쳐진 작품들을 여러 차례 읽어가면서, 일부 작품들이 만만찮은 안목과 역량을 보여주었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시단의 주류 형식을 추수하거나 판박이에 가까운 관습적 상상을 보여주지 않고, 스스로의 경험적 구체성에 정성을 쏟은 것도 퍽 긍정적으로 느껴졌다. 이 모든 것이 우리 시의 미래적 좌표를 개척해가는 생산적 면모라고 생각되었다. .......오랜 토론 끝에 심사위원들은 이인서 씨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당선작으로 결정된 이인서 씨의 '모자이크'는 몇 개의 감각적 장면들을 모자이크한 일종의 감각 시편이다. 충격과 반응으로서의 '돌'과 '파편' 사이에서, '구멍'과 '사나운 선' 사이에서, '목소리'와 '얼굴' 사이에서 각각의 모자이크들은 스스로의 독자성과 서로를 얽는 연관성을 동시에 완성하고 있다. 결국 "깨어진 균열의 힘으로 버티고 서 있는 집"이라든지 "깊숙한 구석까지는 채 다다르지 못한 금" 등의 표현이 시인이 '시'를 통해 가 닿고자 하는 세계에 대한 불가피성과 불가능성을 동시에 알려준다. 그래서 "깨진 햇빛 조각 하나가 섞여 있는 창문"은 시인이 가 닿아야 할 '시'의 궁극적 좌표가 되는 셈인데, 결국 이 시편은 자신이 어떤 시를 써야 할지를 모자이크로 그려낸 일종의 메타시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안정성과 진정성 그리고 밀도가 잘 어우러진 결실이라고 생각된다. / 심사위원 ; 문정희(시인, 한국시인협회장), 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학교 국어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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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경제신춘문예[신춘문예 우수상-시] 머이투데이 시라시 / 염민숙·시
초봄이면 한강으로 시라시를 뜨러 갔다 빚보증으로 논밭을 날린 후 어머니는 책값이며 차비가 없어 꾸러 다녔다 어머니가 떠오는 시라시는 식구들 마른 삶에 도랑물을 내었다
시라시를 따라 강의 깊은 데까지 가 등에 업힌 막내와 자맥질도 하였다 눈물자국 같은 물빛이 뜰채에 걸려나왔다 물의 정수리를 오래 들여다본 죄로 햇살에 눈이 멀어 어머니 돌아오는 걸음이 출렁거렸다
어디 먼 바다로부터 제 어미의 길을 되짚어 시라시가 오는 철이다 곁에 감기던 식구들 다 떠나고 어머니 혼자 봄밤을 지새우는 날 얼음장 떠가던 그 밤처럼 무릎 시리게 떠오르는 물빛 기억들
*시라시: '시라시'라고 부르는 작고 가는 실뱀장어. 외국에 양어종자로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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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경향신문[신춘문예 당선작-시] 선수들 / 김관용
전성기를 지난 저녁이 엘피판처럼 튄다 도착해보면 인저리타임 목공소를 지나 동사무소, 골목은 늘 복사된다 어둑해지는 판화 속에서 옆집이라는 이름을 골라낸다 옆집하고 발음하면 창문을 연기하는 배우 같다 보험하는 옛애인이 전화한 날의 저녁은 폭설과 허공 사이에서 방황하고 과외하는 친구의 문자를 받은 날 아침은 접시 위의 두부처럼 무심해진다 만약이라는 말에 집중한다 만약은 수비수 두세 명은 쉽게 제쳤으며 늘 성적증명서보다 힘이 셌다 얇은 사전을 골라 가장 극적인 단어를 찾는다 아름다운 지진이란 지구의 맨 끝으로 달려가 구두를 잃어버리는 것 멀리 있는 산이 침을 삼킨다 하늘에선 땅을 잃은 문장들이 장작 대신 타고 원을 그리며 날던 새들의 깃털이 영하로 떨어진다 원점은 어딘가 빙점과 닮았다 양철 테두리를 한 깡통처럼 전력을 다해 서 있는 트랙처럼 잠시라도 폼을 잃어선 안 된다
전광판이 꺼지더라도 경기가 끝나면 유니폼을 바꿔 입어야 한다
△1970년 서울 출생 △1997년 2월 울산대 철학과 졸업 △2014년 8월 동국대 불교학과 석사 △현재 동국대 불교학과 박사과정
[신춘문예-심사평] “균열·의외성… 자본의 시대, 시가 필요한 이유 증명”
.......응모작들 중 가장 두드러진 작품은 ‘선수들’이었다. 함께 응모한 다른 작품들도 그러했지만, 이 시인은 무슨 제재를 다루든지 일거에 대상을 장악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화법과 리듬으로 시를 운산(運算)하는 범상치 않은 솜씨를 보여주었다. 특히 표제작인 ‘선수들’은 언어와 언어가 충돌하며 파열하는 섬광 같은 것을 뿜어내면서 자기 시를 “전력을 다해 서 있는” 삶의 트랙으로 밀어붙인다. 그리하여 이 시는 시적인 것으로부터의 일탈을 통해 ‘다른 시’를 창출하는 데 성공했다. 한치의 오차도 허락지 않는 이 주밀한 자본의 세계에서 시가 필요한 것은 바로 이 균열과 의외성이다. 트랙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우리는 모른다. 결말을 짐작할 수 없는 것으로의 이 과감한 투신의 성과를 당선작으로 미는 데 우리는 주저하지 않았다. / 심사위원 ; 이시영·황인숙 시인
“선수들”은 언어가 충돌하며 드러내는 이미지들이 서로 연결되지 않는 산만함 속에서 혼돈을 경험한다 ==========
2015광남읿보[신춘문예 당선작-시] 레몬 / 김완수
레몬은 나무 위에서 해탈한 부처야 그러잖고서야 혼자 세상 쓴맛 다 삼켜 내다가 정신 못 차리는 세상에 맛 좀 봐라 하고 복장(腹臟)을 상큼한 신트림으로 불쑥 터뜨릴 리 없지 어쩌면 레몬은 말야 대승(大乘)의 목탁을 두드리며 히말라야를 넘던 고승이 중생의 편식을 제도(濟度)하다가 단것 단것 하는 투정에 질려 세상으로 향한 목탁의 문고리는 감추고 노란 고치 속에 안거한 건지 몰라 들어 봐, 레몬 향기가 득도의 목탁 소리 같잖아
레몬은 반골을 꿈꿔 온 게 분명해 너도 나도 단맛에 절여지는 세상인데 저만 혼자 시어 보겠다고 삐딱하게 들어앉아 좌선할 리 없지 가만 보면 레몬은 말야 황달 든 부처가 톡 쏘는 것 같아도 내가 단것을 상큼하다고 우길 땐 바로 문 열고 나와 눈 질끈 감기는 감화를 주거든 파계처럼 단맛과 몸 섞은 레몬수를 보더라도 그 둔갑을 변절이라 부르면 안돼 레몬의 마음은 말야 저를 쥐어짜면서 단맛을 교화하는 것이거든
레몬은 독하게 적멸하는 부처야 푸르데데한 색에서 단맛을 쫙 빼면 모두 레몬이 될 수 있어 구연산도 제 가슴에 맺힌 눈물의 사리(舍利)일지 몰라 레몬이 지금 내게 신맛의 포교를 해 내 거짓 눈물이 쏙 빠지도록
약력 1970년 광주광역시 출생 1998년 전북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 과정 졸업 2009년 제1회 '강원문학' 신인상 수필 부문 당선 2013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조 부문 당선 2013년 서울 암사동 유적 세계유산 등재 기원 문학 작품 공모전 동화 우수상 2014년 계간 '시조시학' 여름호 신인 작품상 2014년 제10회 5ㆍ18문학상 시 부문 당선 2014년 제1회 농어촌문학상 시 부문 우수상 2014년 제2회 평택 생태시 문학상 우수상 현 학원장
[신춘문예-심사평] "비판적 사유, 경쾌 통렬한 풍자로 전개"
600여 편의 투고작들은 우울한 사회분위기를 반영하듯 전반적으로 죽음이나 상실을 노래한 시편들이 많았다. 그 중 세 사람의 시가 마지막까지 남겨졌는데, 이들의 시에 담긴 세계 역시 무겁게 침전되어 있는 모습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그 절망의 바닥에서 희미한 한 줄기 빛을 길어 올리는 일일 것이다. ..........'레몬' 외 4편은 나머지 두 사람에 비해 투고작 전체의 수준이 고른 편이고, 개성적인 목소리와 활달한 상상력이 돋보였다. 시인 이상의 방을 자신의 유폐된 내면과 연결한 '이상(李霜)의 방', 벤치에 앉아 출전의 기회를 기다리는 후보 선수의 애환을 담은 '벤치 워머', 수많은 환자들을 상담하지만 정작 자신의 병은 돌보아주는 이 없는 '신경정신과 닥터 김의 하루' 등은 현대인의 고독과 비애를 인상적으로 그리고 있다. 어느 작품을 당선작으로 해도 무방하지만, 세상에 대한 비판적 사유를 경쾌하면서도 통렬한 풍자를 통해 전개한 '레몬'을 당선작으로 정했다. 당선을 축하드리고, 그의 시가 "거짓 눈물"을 거슬러 "신맛의 포교"를 힘차게 해나가기를 기대한다. / 나희덕 시인(조선대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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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국제신문[신춘문예 당선작-시] 아령 또는 우리의 王 /김분홍
이것은 두 짝, 권력에 관한 보고서이다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는 당신은 스킨십을 좋아해
자르려는 자와 붙어 있으려는 자의 대립으로 각을 세우고 같은 말을 쫑알대는 손가락에 권력이 붙는다
살을 섞으며, 당신을 사랑했다 뼈를 추리며, 당신을 증오했다
같은 동작을 세뇌시키는 당신은 뼈대만 남은 마지막 자존심 당신의 부름에 암묵적으로 동조한다
12월의 볼륨까지는 고백이 필요하다
온몸을 좌우로, 상하로 굴곡 있는 성격을 만든다 당신의 몸에서 땀방울이 떠나고 있다 권력의 잔고가 쌓인다 가슴에 왕을 만들 때까지 밥그릇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 것이다
아령을 찌그러뜨리며 근로자들이 첨탑 농성을 하고 있다 아령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
사랑하는 우리의 왕
당신의 권력에 군살 한 근 붙지 않는다
▶약력=1963년 충남 천안 출생. 본명 김미자. 명지전문대 문예창작과, 한국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 전문가과정 수료.
[신춘문예-심사평] 활달한 어조에 흥미로운 상상력 응모작 중 압권
시단에도 성형이 대유행이다. 잘 빚어진 작품들은 많으나 고유한 생기를 찾기가 힘들다. 뿌연 관념과 성찰 없는 묘사와 휘황하기만 한 이미지의 더께가 시의 숨구멍을 틀어막고 있다. 장황한 요설까지 더하여 사물과 현실의 빛나는 구경은 갈수록 희박해져 간다. 꿈틀거리는 생의 비의를 추적하면서 경화된 시어의 권위를 의심하는 불화와 불온의 젊은 시정신은 어디에 있는가.........응모자들 모두 산문적 일상을 품고 떠오르는 시적 부력에 대해 더 고민할 필요가 있었다. 최종심에 남은 것은 성영희와 김분홍의 작품이다. 고른 기량과 자신만의 고유한 화법을 가지고 있어서 두 분 모두 당선의 자격이 있었다. 성영희는 더러 튀어나오는 비문과 산문적 진술이 거슬렸으나 사물을 초점화해서 날카롭게 묘사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김분홍의 경우는 무엇보다 언어와 사유의 힘이 팽팽한 긴장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특히, 활달한 어조에 흥미로운 상상력을 담은 '맹꽁이 울음'과 드물게 사회학적 상상력을 선보인 '아령 또는 우리의 王'은 전체 응모작 가운데 단연 압도적이었다. 자칫 알레고리의 단순성에 빠질 위험이 없지 않았으나 명징한 현실 인식과 날렵한 진술이 오히려 알레고리를 중층적으로 해석하는 힘이 되고 있음을 주목했다. 장고 끝에 심사진은 세련된 수사의 범람 가운데 현실에 대한 집요한 관심을 잃지 않는 김분홍을 당선자로 선정하는 데 만장일치로 합의하였고 자폐적인 언어 미학에 빠진 시단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리라 믿는다. / 심사위원 ; 최영철 전동균 손택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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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농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분홍잠 / 김겨리
고수레로 남겨 둔 홍시의 밀린 잠이 붉은 저녁이다 마당을 쓸던 노인이 허리를 굽히자 짧은 옷단 아래로 살짝 드러나는 등골, 그 깊은 계곡까지 노을이 들었다 무너지는 한쪽 벽에 봉창 달빛을 빚어 얽는 거미가 바람이 들지 않도록 거미줄을 암팡지게 엮는다 명아주 이파리 스적거림으로 창문을 단 집 구절초 꽃대로 세운 배흘림기둥에선 풍경(風磬) 소리가 향긋하다 노인이 굽혔던 허리를 펴면 가을볕이 어리광처럼 달려든다 도돌이표만 있는 가을볕은 노인의 십팔번이다 음정은 새털구름이고 박자는 떨어지는 은행잎, 아무나 풍월로 읊어도 진양조 장단* 지붕엔 말표고무신 한 짝이 노을로 배꼽만 덮고 누워 있다 갈기털 다 빠진 목덜미에 솟대 그림자를 괴고 잠든 말굽은 아직도 따스한 발걸음을 기억하며 지붕에 올라가 누구를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긴 한숨을 쉬는 노인의 호흡이 가늘게 떨린다 허공에 써 놓은 점자로 되짚어 가는 길에도 과속방지턱이 있는지 바람도 잠시 주춤하는 법인데 어느새 성성해진 백발과 그믐달만 뜨는 눈썹 슬하에 노을 닮은 은행나무 한 그루만 달랑 둔 노인의 가계(家系) 입술에 허옇게 일어나는 각질을 옷소매로 쓱 훔치니 노을이 찍 묻어난다 노인의 등뒤로 달이 뜬다 어쩌면, 오늘밤 은행잎 한꺼번에 다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뜻 노을의 끄나풀이 길다
*진양조 장단:판소리에서 가장 느린 박자
●김겨리(본명 학중) ▲1962년 경기 안성 출생 ▲홍익대학교 졸업 ▲현대로템㈜ 근무
[신춘문예-심사평] “시각·청각·촉각 생생…풍부한 언어구사 인상적”
...........전반적으로 농촌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많았는데, 자연 풍광을 그리기보다 사소한 자연 하나하나를 씨앗으로 사람살이를 싹틔워 형상화하려는 자세가 마음에 와 닿았다. ..........농촌의 삶이란 평화롭기만 한 게 아니라 고된 것이고, 그 고된 만큼의 보상은 없어 소외감과 박탈감을 느끼기 쉬운 것이다. 그로 인한 서글픔이나 분노와 절망감을 ‘세월호’ 등으로 외연을 확대한 작품, 그리고 현란하나 발랄한 어법으로 자신의 내면에 집중한 작품도 눈에 띄었다. .........당선작은 김학중의 <분홍잠>이다. 가을 정취 물씬한 농촌 풍경을 배경으로 홀몸어르신의 하루 일상을 담았다. 내용이나 시어를 군더더기 없이 길게 끌고 나가는 힘이 있다. 줄글인데도 운율이 만져질 듯하다. 즉 언어구사가 풍부하고 내재율이 있는 시다. 농촌 홀몸어르신의 외로움과 그리움이 시각 청각 촉각에 생생히 스치는 듯하다. 배경은 농촌이지만 홀몸어르신 문제가 어찌 농촌만의 문제일까. 시적 대상에 제 감정을 흘리지 않고 객관적 거리를 두어야 독자를 보편적 감정으로 이끈다는 걸 익히 아는 시인이다. 축하드린다! / 심사위원 ; 손해일<시인>·황인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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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동아일보[신춘문예 당선작-시] 쌈 / 조창규
나는 쌈을 즐깁니다 재료에 대한 나만의 식견도 있죠 동굴 속의 어둠은 눅눅한 김 같아서 등불에 살짝 구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낱장으로 싸먹는 것들은 싱겁죠 강된장, 과카몰리* 등 다양한 <쌈장 개발의 기원>
봄철, 입맛이 풀릴 때 나는 구멍이 송송, 뚫린 배춧잎을 새로운 쌈장에 찍어먹습니다 달콤한 진딧물 감로를 섞어 만든 장 어떤 배설물은 때로 훌륭한 식재료가 되죠
두꺼운 것들은 싸먹기 곤란합니다 스치면 베이는 얇은 종잇장에도 누명과 모함은 숨겨있죠 적에게 붙잡히면 품속의 기밀이 구겨 한입에 삼켜요 무덤까지 싸들고 가는 비밀도 있습니다
어둠의 봉지에 싸인 이 밤 구멍 난 방충망은 경계가 소홀합니다 누군가 달의 뒷장에 몰래 싸놓은 알들 나는 긴 혀로 나방을 돌돌 말아먹는 두꺼비를 증인으로 세웁니다 사각사각, 저 달을 갉아먹는 애벌레들
수줍은 달을 보쌈해간 개기월식 삼킬 수 없는 과욕은 역류되기도 하죠 보름달을 훔쳤다는 나의 누명이 시간의 부분식으로 벗겨지고 있습니다
*아보카도를 으깬 것에 양파, 토마토, 고추 등을 섞어 만든 멕시코 식 쌈장
△1980년 전남 여수 출생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신춘문예-심사평] ▼자연의 변화와 삼투… 파노라마처럼 전개… 시인의 탐구 돋보여▼
본심의 심사 대상이 된 작품들을 읽으면서, 이 시들을 쓸 때 이 응모자들은 자신의 내부로부터 어떤 간절한 욕구가 있었는가, 아니면 어떤 경로로 시를 쓰는 과정에 입문하게 되어 습관처럼 시를 쓰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질문해 보고 싶었다. 그만큼 장식과 조립에 치중한 시가 많았으며 재주나 재치에 기댄 시가 많았다. 응모작 전체가 고른 수준을 갖춘 예도 드물었다. .............‘쌈’ 외 4편은 ‘쌈’을 ‘동굴 속의 어둠’, ‘스치면 베이는 얇은 종잇장’, ‘어둠의 봉지에 싸인 이 밤’, ‘구멍난 방충망’, ‘달의 뒷장’, ‘긴 혀’, ‘보쌈’으로 비유하고, 이 비유에 어울리는 쌈장을 ‘달콤한 진딧물 감로를 섞어 만든 장’으로 만들고 난 다음 이 모든 사물과 자연 현상을 흡입하는 나를 내세워 자연의 아름다운 변화와 삼투, 세월과 일식을 파노라마처럼 전개하고 있었다. 유쾌한 유머가 있고, 축소와 확장이 화자의 입을 통해 전개되는 재미가 있었다. 그렇지만 시 속의 ‘나’는 쌈을 멋지게 비유해 낼 수 있지만, 과연 이러한 ‘쌈’의 현상들이 시적화자의 감각들을 통과했다고 볼 수 있겠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그럼에도 응모작들이 각각 다른 경향성을 보이기는 하지만 5편 모두가 그 나름의 탐구가 있는 점을 높이 사서 ‘쌈’을 당선작으로 선하는 데 합의했다. /심사위원 ; 황현산 문학평론가·김혜순 시인(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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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동양일보[신춘문예 당선작-시] 누에의 잠 / 이현정
칸칸의 방에 무릎을 접고 잠 든 하얀 누에고치 오래 전 저 무릎에서는 한철 내내 누에가 자랐다 옆에서 자는 날이면 밤새 뽕잎 갉아먹는 소리가 들렸다 방을 바꾸며 마디를 키워가는 누에들 궁금한 것이 많은 어린 것들은 강물소리를 자장가삼아 잠이 들곤 했다
손끝은 하얀 실처럼 길어지는 듯 했지만 점점 닳아갔고 누에를 키우던 손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마디를 지탱하던 관절들이 빠져나가고 접힌 무릎 펴지 못할 때 당신의 수의를 지으신 어머니 수천 겹 흰 올을 안고 오른 섶 잠든 고치에는 이제 무릎이 없다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한 생을 헐고 나오는 것이 탈피이고 죽음이라면 죽음을 나온 그 흔적으로 돌아가는 것은 또 다른 탈피이겠지
혼자만의 걸음걸이로 가만가만 방을 옮겨가던 하얀 발끝에 붙은 햇살은 다 떨어져 나갔다 그러고 보니 슬픔도 예전과 같지 않다 나방이 되어 날아갈 때 모정도 끌고 날아간 것일까
깊은 잠에 든 지금 뜨거웠던 한 철에 남은 미온으로 유골함속 무릎은 어쩌면 부화의 계절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신춘문예-심사평] 사람의 숨결이 느껴지는 신선한 상상력
윤현숙은 ‘도배하는 여자’에서, 여자는 낡은 꽃무늬에 숨어있던 벽을 불러낸다. 벽은 거친 맨살을 드러낸다. 그리고 퍼런 정맥이 툭 터질 것 같은 손등 관절을 곧 추세울 때마다 벽과 벽 사이 긴장감이 돌던 뻐근한 허리 허공에 젖혀놓은 채 둘둘 말린 하늘을 천장 가득 풀어놓고 있다 사각의 방 투명한 그림을 그려내고 있다. 눈이 가는 작품이다. ..........이현정은 ‘누에의 잠’에서 칸칸의 방에 무릎을 접고 잠이 든 하얀 누에고치를 보고 오래전 어머니 무릎에서는 한철 내내 누에고치 자랐고 뽕잎 갉아먹는 소리 그 속에서 자장가인양 잠들던 어린 시절을 불러낸다. 누에를 키우던 손을 놓고 당신의 수의를 짓던 어머니 수천 겹 흰 올을 안고 오른 섶 무릎이 없는 누에고치(유골함)로 치환, 어머니의 부화(환생)의 꿈을 그리고 있는 게 아닌가. 내밀한 자기 문법의 언어로 표출하여 전달한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사물을 볼 때 관념의 무게를 줄이는 시작을 통해 더욱 정진 대성하기를 바란다. 이현정의 ‘누에의 잠’을 당선작으로 민다. / 심사위원 : 정연덕(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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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매일신문[신춘문예 당선작-시] 새벽낚시 / 박예신
물상들이 번져가는 어슬한 하늘 움켜쥔 새벽. 틈으로 푸른빛 스치더니 이내 어둠은 바다를 기억으로 길게 풀어놓는다. 꽤 괜찮은 미끼를 산 낚시꾼이라면 으레 찾는 그 곳. 긴 장대 쥔 어둑한 손들이 끊임없이 베어대는 채찍소리. 벌어진 암흑 사이로는 가늠키 어려운 뭔가가 일렁이는 듯. 침묵은 침묵을 질러대고 산전수전이 무언으로 공간에 쟁쟁한 순간. 뇌리에 깊이 묻어둔 별 몇 개는 음파에 부딪혀 검푸른 바다로 떨어지고 은빛으로 부서진다. 하얀 포말 사이사이에 끼어있는 은빛 조각들이 꾼들의 주린 눈동자 위에 가득 들어찰 때까지. 한 살배기의 미소가 언뜻 지평선에 걸쳐있다. 하지만, 아이가 휩쓸린 별과 아버지가 뿌려진 달은 슬프다. 혹은 애상을, 혹은 사라진 순간을 건진다고 하는 이른 새벽이 연주하는 푸른빛 안개. 감정이 씨줄과 날줄로 낚싯줄에 엉키거나 그물로 한 움큼 건져지는 민생의 곳. 내일도 이곳을 지배할 만감의 울림은 태양의 저쪽 편으로부터 타오르다가 서서히 붉게 사그라든다.
박예신 ; 1990년 부산 출생 /대구대 영어영문학과 4학년 재학 /매일신문 재난안전 수기공모전 우수
[신춘문예-심사평] 시적 형상성에 재능이 자연스레 스며들어 가능성에 기대 걸어볼 만
.......모름지기 신인이라면 참신함은 물론이지만, 시로써 자신에게 되물으려는 질문 또한 절절해야 할 것이다. 투고된 시편들의 스펙트럼이 연륜의 다채로움만큼 넓지 않았다는 것도 심사자에겐 유감이었다. 마지막까지 논의로 남았던 작품은 김태인 씨의 「안개 서식지」, 김정윤 씨의 「캥거루주머니 속으로」, 박예신 씨의 「새벽 낚시」, 이윤정 씨의 「모자는 만년필을 써본 적이 없다」 등이었다. .........박예신 씨의 시편은 시의 미학을 의식하는 문제적 시선이 옅은 대신 해맑고 풋풋한 정감이 잔뜩 묻어나는 시편을 선보인다. 이는 노력해서 얻어낸 습작의 결과가 아니라 그 나름의 재능이 시적 형상성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경우가 아닐까 판단되었다. 그리하여 이 응모자의 세계는 이즈음 신인들이 보여주는 장황하고 난삽한 수사적 중첩에서 한 걸음 비켜선다. 아쉽다면 수사적 평면성을 떨치고 저만의 개성으로 부피가 부조되는 시의 구상력을 함께 건사하는 일이다. 숙고 끝에 박예신 씨의 「새벽 낚시」를 당선작으로 밀어올린다. 습작의 연조로 보아 앞으로의 가능성에 기대를 걸어보려는 것이다. 당선을 축하하며, 각고의 정진을 당부한다. / 심사위원 ; 김주연(문학평론가)`김명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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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무등일보[신춘문예 당선작-시] 잉카 염전 / 나미화
바람이 누웠던 빈 둑마다 산이 뱉어놓은 통증이 하얗게 널려있다
내 어미가 바다가 아닌 산 이라니 소금은, 몰래 다듬어온 은빛 칼날로 자신을 가두었던 산의 자궁을 찌르고 싶었다
적막이 달빛처럼 침식해 들어와 점점 빙하를 닮아가고 있었다 산을 벗어나는 법을 모르기에 정해진 몫만큼 매일 하늘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새들이 물고 온 파도냄새가 두려울 때마다 몸을 낮춰 바람과 관계를 맺었다 소금을 잉태하던 순간부터, 산은 빗물을 붙잡아두기 위해 다랑이 밭에 둑을 만들었다
의붓자식 같은 저것들, 그 안에서 구름 족속들과 뒹굴면 바다 따위는 기억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쓰라려도 품지 않을 수 없는 단단한 고요를 깨뜨리기 위해 저희들끼리 엉기며 서로 핥아주어야 했다
바다의 기억은 남아있지 않지만 짜디짠 그리움은 어쩔 수 없었다
바람이 누웠던 잉카의 골짜기마다 억겁의 생채기가 눈보다 눈부시다
* 잉카문명이 남긴 유물로 해발 3천 미터 산 속에 계단밭으로 형성된 염전.
나미화▲전북 김제 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신춘문예-심사평] 활달한 상상력과 참신성 높이 평가
............대부분의 작품이 문학적 열정은 높았지만 절제와 균형이 부족했고 산문적 요설이나 추상적 관념의 나열로 흐르는 경향이 많았다. 몇몇 작품들은 세월호 사건 등 우리 시대의 당면 문제를 다루고 있었으나 적절하지 못한 은유와 생경한 표현으로 독자의 공감을 얻기가 힘들었다. 또 응모 작품의 수준의 편차가 심해 한 편만을 선뜻 고르기가 어려운 작품도 있었다. 무엇보다 대상을 주의 깊게 보고 새롭게 표현하려고 하는 자세가 부족해 보였다. 시인이란 보이지 않은 것까지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가진 자라고 한다. 그래서 좋은 시는 삶과 세계에 대한 새로운 개안(開眼)을 보여준다. “시는 이 세계를 드러내면서 다른 세계를 창조한다.”는 옥타비아 파스의 말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신인에게는 늘 창조적 상상력과 패기가 요구된다. 응모작 중에서 마지막까지 선자의 눈길을 붙잡은 작품은 '소금꽃'(황보림), '고욤나무'(하상수), '잉카 염전'(나미화) 등이었다. 이 세 분의 작품은 각각의 개성과 장점을 가지고 있었으나 1%의 아쉬움 때문에 오랫동안 망설이게 했다. ...........'잉카 염전'은 잉카의 유물 살리나스(Salinas)염전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참신한 시적 발상과 여성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소금을 ‘산이 뱉어놓은 통증’이라고 표현한 대목에서 여성적 삶의 운명적 고통이 느껴지고, 여성성의 상징인 바다와 자궁의 이미지가 ‘잉카 염전’으로 치환되면서 눈부신 ‘억겁의 생채기’로 빛나는 아름다움을 형상화하고 있다. 다만 화자의 시점이 흔들리고 대상과의 거리감이 불안정한 점 등이 눈에 띄었으나 오랜 고민 끝에 안정된 언어 구사나 주제의식보다 활달한 상상력과 참신성을 더 높이 평가하여 '잉카 염전'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앞으로 쓰게 될 미지의 작품들이 부족한 점들을 충분히 극복하리라고 믿는다. 당선자는 부단히 정진하여 한국문학의 중추가 되길 기원한다. / 심사 ; 김경윤 ▲1989년 무크지 '민족 현실과 문학운동'으로 등단,▲시집 '아름다운 사람의 마을에서 살고 싶다', '신발의 행자'등. ▲광주·전남 작가회의 회장 역임, 현 김남주기념사업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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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문화일보[신춘문예 당선작-시] 어머니의 계절 / 최영랑
빈집엔 봄이 오지 않고 여름도 오지 않고 빈집의 계절만이 서성거린다
빈집은 쉽게 들어갈 수 없고 대문 안에 들어서도 속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곳은 시끄럽고 어스름한 저녁 누구라도 거부하는 빈집만의 습관이 있다
그림자 없는 대문에서 빈집의 툇마루를 바라보면 그곳은 포근했던 무릎, 포근한 미소가 떠올라 헐렁한 하루가 부풀었다 사라진다 눈을 감고 나는 경직된 다리를 뻗는다
가끔 무릎을 내어주는 거기, 정류장처럼 너그럽다 잡초들이 슬그머니 들어와 영역 다툼에 휘말려도 장독대의 도깨비풀이 항아리 속을 욕심내어도 그냥 말줄임표만 사용할 뿐이다
빈집은 기다린다 밤나무가 뒷마당에 밤톨을 툭 툭 던지고 바람이 기왓장을 와장창 깨뜨릴 때도 빈집은 그냥 “좋은 날이야”라고 말한다 빈집은 어느 때보다 여유로워 멀리 떨어져 있어도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내가 바라보는 집이 자꾸만 멀어져 간다 그 집에 가까이 가야 한다 들어가 마당을 지나 툇마루에 가서 닳은 무릎을 위로해주어야 한다 어머니의 계절
[신춘문예-심사평] 모성 통해 사랑과 고통의 본질 깨달아
신춘문예는 한국 문학의 축제다. 새로운 시인이 탄생하는 축제의 한마당이다. ......그러나 이번 축제의 상에 놓인 음식들은 숙성과 발효가 되지 않은 겉절이들이 유난히 많았다. 시는 겉절이보다 오래 숙성되고 발효된 맛의 깊이를 요구한다. 그릇에 담긴 음식이 제대로 된 음식이 아니라면 그릇 또한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모순과 부조리를 이야기하는 시라 하더라도 부조리하다는 메시지밖에 없다면 그 또한 시로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최종심까지 올라온 작품은 박현영의 <유형에 대한 탐구>, 박민서의 <실록>, 김재인의 <오늘의 만남>, 최영은의 <어머니의 계절> 등 4편이었다. ........다행히 모성을 ‘빈집’에 비유한 <어머니의 계절>은 비교적 완성도가 높았다. 모성을 통해 사랑과 고통의 본질을 깨닫고 있다는 점 또한 돋보여 당선작으로 결정할 수 있었다. 시를 쓰는 일도 노력하는 일이다. 당선자는 더욱 노력함으로써 한국 시단의 밑거름이 되는 시인으로 성장해주길 바란다. / 심사위원 ; 황동규·정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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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부산일보[신춘문예 당선작-시] 탕제원 / 박은석
탕제원 앞을 지나칠 때마다 무릎의 냄새가 난다
용수철 같은 고양이의 무릎이 풀어지고 있던 탕제원 약탕기 속 할머니는 자주 가르릉 가르릉 소리를 냈었다 할머니의 무릎에는 몇 십 마리의 고양이가 들어 있었다. 가늘고 예민한 수염을 달인 마지막 약, 잘못 쓰면 고양이는 담을 넘어 달아난다.
밤이면 살금살금, 앙갚음이 무서웠다. 고양이를 쓰다듬듯 할머니의 무릎을 만졌다 몇 마리의 고양이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던 할머니들이 절룩거리며 나타났다 빗줄기가 들어간 무릎의 통증 등에 업힌 밭고랑 한가득 들어 있는 무릎
탕제원 오후는 화투패가 섞인다. 화투 패는 오래 달일 수가 없다 약탕기 안에 판 판의 끗발들이 성급하게 달여지고 있지만 가끔은 불법의 처방이 멱살을 잡기도 한다.
약탕기 속엔 팔짝팔짝 뛰던 용수철 몇 개 푹 고아지고 있는 탕제원, 가을 햇살은 탕제원 주인의 머리에서 반짝 빛난다. 무릎들이 무릎을 맞대고 팔월 지나 단풍을 뒤집고 있다.
[신춘문예-심사평] '탕제원' 대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 잔잔한 감동 '소금꽃' 바다와 사람 생애 상징화하는 솜씨 탁월
올해 투고된 작품은 많았으나 전체적으로 그 수준은 평이했다. '대장장이 아버지'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성찰과 표현의 아름다움은 돋보였으나, 당대적 현실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측면이 아쉬움으로 지적되었다..........시적 표현의 형식들이 역시 신기성에 머물러 감동을 주지 못했다. 이에 비해 당선작 '탕제원'은 표현의 묘미와 인간에 대한 따뜻한 관점이 주목을 끌었으며 무엇보다 대상을 참신하게 바라봄으로써 신선미와 함께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는 점이 점수를 받았다....... / 심사위원 강은교·이우걸·김경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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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서울신문[신춘문예 당선작-시] 키워드 / 최은묵
죽은 우물을 건져냈다 우물을 뒤집어 살을 바르는 동안 부식되지 않은 갈까마귀 떼가 땅으로 내려왔다 두레박으로 소문을 나눠 마신 자들이 전염병에 걸린 거목의 마을 레드우드 꼭대기로 안개가 핀다, 안개는 흰개미가 밤새 그린 지하의 지도 아이를 안은 채 굳은 여자의 왼발이 길의 끝이었다 끊긴 길마다 우물이 피어났다, 여자의 눈물을 성수라 믿는 사람들이 물통을 든 채 말라가고 있었다 잎 떨어진 계절마다 배설을 끝낸 평면들이 지하를 채워나갔다 부풀지 못한 뼈들을 눕혀 물길을 만들면 사람들의 발목에도 실뿌리가 자랄까 안개가 사라진다 흰개미가 우물 입구를 닫을 시간이다 우물은 떠나지 못한 자의 피부다
▲1967년 대전 출생 ▲충남대 기계설계공학 전공
[신춘문예-심사평] 죽음의 사건을 환기하며 시대의 음화 그려내
사회 전체가 죽음의 사건들에 침잠된 탓인지 올해 투고작들은 전반적으로 어둡고 무거운 느낌이었다. 몽환적이고 묵시록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작품들도 많았다. 이 죽음의 시대에 시는 현실적인 응전이나 전망을 보여주기보다는 그 내상(內傷)을 깊이 앓으며 치러내는 제의적 행위에 가까운 것일까. 그러나 이런 현상이 한편으로는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나 패배의식의 반영으로 보이기도 한다. 당선작인 최은묵의 ‘키워드’ 역시 ‘죽은 우물’을 중심으로 우리 시대의 음화(陰畵)를 그려내고 있다. 이미지가 지나치게 모호해서 소통이 쉽지 않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고도의 암시성은 시에 있어서 결함보다는 장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는 세월호를 비롯해 죽음의 사건들을 환기하면서 그것을 상징화된 제의로 감싸안는다. 나머지 시들에서도 어딘가 깨지고 부서지고 불구화되고 불모화된 존재들이 그려내는 고통과 폐허의 풍경은 하나의 세계를 이루었다고 할 만하다. / 심사위원 ; 정호승, 나희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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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세계일보[신춘문예 당선작-시] 로로 - 김성호
나는 너에 대해 쓴다.
솟구침, 태양의 계단, 조약돌이 되는 섬 ; 깊은 수심에 가라앉은 이야기를 떠올리다가 나는 너를 잊곤 한다.
로로, 네 빛깔과 온도를 나는 안다. 네 얼굴이 오래도록 어둠을 우려내고 있는 것을 안다. 더 이상 깊지도 낮지도 않은 맨살 같은 나날을 로로, 나는 안다.
네가 생각에 잠길 때 조금씩 당겨지는 빛과 무관한 조도를 안다. 마음에 마음이 부딪혔다. 소리가 났다. 그쯤은 네게 자주 일어나는 일이어서 내 망각은 너의 미래에서 쑥쑥 자란다.
마을은 물에 잠기고 고통은 가장 가볍다. 로로, 내 한 살 된 부엉이를 로로라 부를 때 날개에 대해 적고 싶은 두려움도 모른 채 쿵쾅이는 마음을 너는 알까? 여긴 쓸려갈 거야,
온 마을의 고양이가 낮 동안 밋밋하게 비상하는 것을, 환호도 없이 사라지는 것을 너는 알까? 로로, 우리 모두는 네 내면과 살았다. 나는 그곳에서 눈에 띄지 않는 한 형상이었다. 우린 오래도록 있어도 고요한 줄 몰랐지. 나는 오늘 온통
상처투성이여서 내일도 빛을 삼키고 반짝일까 무섭다. 사지를 갖추고 내일이 지상에 엎드릴까 무섭다. 로로, 나는 널 부르면서 여전히 네가 고스란히 피어오른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동안만은 날 잊곤 하는 걸까. 로로, 네가 들린다. 언제일까?
로로, 나는 너에 대해 쓴다.
내면에 내면이 쏟아졌다. 카스트라토
구름, 비틀림, 작은 의식, 이런 것들을 떠올리곤 하다가 나는 다시 너를 잊어버린다.
[신춘문예-심사평] 내면을 언어로 투시하는 힘… 음악처럼 다가와
우리는 어떤 새 시인을 기다리는가. 우리를 두렵게 하는 동시에 매혹하는 시쓰기, 읽기 전과 후의 우리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 해방과 자유의 에너지를 내장한 시쓰기, 그러므로 쓰는 이뿐 아니라 읽는 이에게도 근원적 의미의 모험이어 마땅한 그런 시쓰기의 시인을 우리는 설레며 기다린다. 시라는 이름의 관행적 작문방식에 갇혀 오히려 생과 세계의 피 흐르는 실상으로부터 시 자체가 유리되는 자가당착을 돌파하는 패기의 글쓰기, 한국어의 갱신과 재구성이 그로부터 시발될 글쓰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면 새로운 것은 무조건 정당한가. 바로 이 오래된 물음을 또한 고통스럽게 치르는 가운데 일종의 시적 윤리성을 확보한 글쓰기이기를 바란다.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진정한 희망의 새로움이지 ‘새것 흉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난 시대 민중시풍의 단순 답습이 오늘의 문학적 대안일 수 없는 것과 똑 같은 이유에서 안이하고 나태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김성호는 내면을 언어로 투시하는 힘, 나아가 그것을 시적 문장으로 조직하는 감각과 내공으로 우리를 움직였다. 그는 확보된 관념이나 느낌, 사실의 서술로 시를 삼지 않고, 참 자체가 스스로 드러나는 언어적 형식으로 시가 기능하기를 바라는 듯하다. 안이 비어있는 비인칭의 이름 ‘로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마음과 언어의 섬세한 탄주에 귀를 기울이면, 윤곽이 모호한 듯하나 매우 진실하고 예민한 한 벌의 심미적 긴장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김성호의 언어사용이 구현하는 미감과 아우라를, 처음 듣는 음악을 만나듯 체험해 보기를 독자들께 권한다. 동시에 보이지 않는 긴장이 견지되는 한에서만 이런 시는 유효하다는 것, 그렇지 않을 때 요령부득의 주관적 요설이나 겉멋의 함정에 떨어지는 것은 순식간일 수 있다는 우리의 우려가 기억되기를 바란다. 심사 또한 모험이다. 새 시인의 미래에 우리 자신을 걸고자 한다. 각고의 정진을 당부한다. / 심사위원 ; 문정희·김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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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영남일보[신춘문예 당선작-시] [시 당선작] 신발 / 박진이
발 하나 들어 있지 않은 난전의 신발들 맨발보다 더 시려 보이는 저 표준의 사이즈들은 몇 번을 신어보고 몇 번을 돌아서 보고 몇 번을 벗어두고 나서야 발의 온도를 이해할까 오늘도 얇은 먼지와 흰 눈에게 제 크기를 내어준다 겨울, 한기를 견디던 힘으로 발을 기다리는 일 진열이 아닌 나열의 추운 발 그러나 아무도 저 시린 발은 사지 않겠다는 듯 지나가는 걸음들은 빠르다 맞춤이 아니어서 주인이 없는 발 몇 켤레의 신발을 신어 본 후에야 제 발의 온도를 고를 수 있나 나열의 난전 앞에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내내 신발이 발을 믿지 못하는 것인지 발이 신발을 믿지 못하는 것인지 몇 켤레의 신발이 들렸다 놓였다 신겨졌다 벗겨졌다 뒤꿈치 똑똑 딛고 싶은 저녁 무렵 누가 나열의 난전에 놓인 신발을 사고 싶을까 생각하다가 아무래도 유리 너머 진열의 신발들에 눈이 흘리는 날 퉁퉁 부은 저녁의 발에 난전의 신발 한 켤레를 신겨 보는데 그새, 벗어놓은 헌 신발도 좋다는 듯 흰 눈발 내려앉고 있다
[신춘문예-심사평] 안정적인 호흡…자신의 목소리 자연스럽게 담아
..........본심의 작품 일부는 기성 시인의 영향이 두드러져 본인의 목소리가 아니라는 점은 불만이다. 띄어쓰기와 맞춤법은 시를 쓰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신발’은 선악이 엇갈리는 작품이다. 신발이 맨발보다 더 슬픈 것은 “발 하나 들어 있지 않은 난전의 신발”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미 발과 비슷하기 때문에 ‘시린 발’의 다른 모습이다. 따라서 “벗어놓은 헌 신발도 좋다는 듯 / 흰 눈발 내려앉고 있”는 풍경은 가난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 하지만 ‘신발’에는 눈에 거슬리는 불편이 있다. 예를 들어 “겨울, 한기를 견디던 힘으로 발을 기다리는 일 / 진열이 아닌 나열의 추운 발”이란 구절은 상투적 인식이다. ........박진이씨의 ‘신발’은 그런 점에서 순정적이고 게다가 안정적인 호흡을 얻었다. 유행하는 어법을 도외시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자연스럽게 드러내었다는 점이 우리의 호감을 얻었다. 빛나는 구절이 상투성이란 단점을 껴안았다. 당선을 축하한다. 신춘문예 당선이 영예가 되려면, 앞으로 평생 시인으로 살면서, 시를 사유하고 시를 써야 할 것이다. / 심사위원 ; 이하석, 송재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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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전북도민일보[신춘문예 당선작-시] 난파선은 난파선 속으로 / 김가령 -
난파선은 난파선 속에 뒤집혀 있다 깃발이, 갑판이, 선미가 부서졌다 아니 실제론 뼈댄 안 부서졌다 해일에 부딪쳤고 태풍에 부딪쳤다 그것들은 부딪침으로 섞인다 난파선은 난파선 속으로 지금은 멀미 중이다 난파선이 나를 껴안으려 한다 난파선이 쏟아내고 있다 방향키도, 서랍도, 포크도, 변기도 꾸역꾸역 쏟아낸다 나온 것들이 서로 섞여 흐른다 너는 흐르지 못했다 아니 실제론 너는 쏟아내지 못했다 그 이름이 바다를 안는다 난파선은 난파선 속으로 해파리도 해초도 흔들림이 없다 다만 자갈벌엔 구름이 있다 햇살도 자잘하다 바라보면 바다는 여전히 투명하다 힘차다 뱃전에 앉은 바다새가 바다를 바라보고 그 옆 나는 구토를 하고 있다 두통이 자갈벌에 처박힌다 파도 소린 진행이다 여름 가을 겨울이 밀려왔다 밀려갔다 하얀 소리가 부서진다 난파선은 난파선 속으로 바다와 별거 중이다 부서져 나간 글자, 흔적이 없다 폭우에 뜯겨나간 이름, 보고싶다 난파선 뒤에서 바다를 당기며 오른쪽으로 몸 기울어진 수평을 맞춘다 해일과 태풍이 무수한 소리를 숨기는 곳 짠 내음의 바다가 반짝 후미에서 빛났다 그 위 작은새 한 마리 깃을 내렸다 민들레 홑씨 둥글게 부풀어 날자 난파선은 난파선이 아니다 난파선 앞에서 난 파산하고 있다 바람을 들고 나는 석양에 기대 난파선에서 속을 푼다 조개껍질 몇 개가 통장 속으로 들어가 박힌다 앉은뱅이 파편 조각 하나가 열 번째 바다로 가고 있다 물결이 지느러미가 된다 누구의 바다 깊은 곳에서
[신춘문예-심사평]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과 생각의 재탄생"
신춘문예를 통해 한국문단에 도전하는 것이 문학을 소원하는 사람에게 있어 얼마만큼 소중한 일인지는 글을 쓰는 사람이면 잘 알고 있다. ......당선작으로 김가령의〈난파선은 난파선 속으로〉를 뽑았다. 몇 번을 읽었다. 뒤집혀 진 난파선과 파도, 그리고 투명한 바다의 고요함이 수많은 사건들의 역사가 되어 되돌아 왔다. 모든 기울어짐에 대하여 수평을 맞추고자 조절하는 모습은 곧 시의 몸부림이 되었다. 파편이 된 시적 소재를 다듬고 맞추어서 전하고자 하는 연결고리를 분명하게 찾아내고 사물 저 건너편까지 들여다 볼 수 있는 역량을 더하여 이 땅의 좋은 시인이 될 것을 기대해본다. ........ / 심사위원 ; 조미애 <국제펜클럽한국본부와 한국민인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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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전북일보[신춘문예 당선작-시] 갈매새 ,번지점프를 하다 / 박복영
아질한 둥지난간에 올라 선 아직 어린 갈매새는 주저하지 않았다 굉음처럼 절벽에 부딪쳐 일어서는 파도의 울부짖음을 두어번 날개짓으로 페이지를 넘기고 어미가 날아간 허공을 응시하며 뛰어내린 순간, 쏴아 날갯짓보다 더 빠른 속도로 하강하던 몸이 떠 올랐다.
한 번 도 바람의 땅을 걸어본 적 없으므로 가는 발가락은 오그린 채 가려웠다 하강은 추락을 꿈꾸지 않는 법. 가슴 깃털을 헤집고 파고드는 처녀비행의 속도는 두려움이 되지 않았다.
끊임없이 밀려와 절벽에 부딪쳐 부서지는 파도소리를 꽉, 물고 허공에 길을 찾는 갈매새가 잠시 수평선을 읽었다 굽은 부리에서 거친 파도의 현이 흘러나오자 휜 바람줄을 따라 기우는 날개가 다시 패앵해졌다
태어나서 처음 바람을 거스르는 동안 갈매새는 바람의 부피를 다 가늠 할 수 있을까. 포물선의 꼭지점에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아슬아슬한 궤적이 허공에서 지워지고 바람을 따라가며 바람이 풀어놓은 행의 단서를 찾는 동안 가슴 가득 차오르는 생의 씨앗들. 의문들이 빠져나올 때마다 날개가 책장처럼 펄럭였다. 갈매새가 날개를 당기며 내려다 본 벼랑 끝엔 벗어둔 신발 같은 텅 빈 둥지 옆으로 누군가 방생한 키 작은 해국들이 코카콜라 병뚜껑 같은 머리에 노랗게 흰 뼈를 우려내고 있었다
박복영 : 53세 / 전북 군산.
[신춘문예-심사평] "밀도·울림 있어 신뢰할 만한 작품"
생명력을 가진 것들은 도태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도전하고 실험합니다. 문학 역시 그러한 것은 생명체라는 증거일 것입니다. 독자들은 새로운 문학의 모습을 신춘문예 당선 작품을 통해서 발견하려고 기대합니다. 그 기대에 부응하려는 듯 올해에도 참신한 방향을 궁구하고 모색하려는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크게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무모하다 싶은 실험, 일체감과 통일성이 부족한 작품도 있었습니다. 안이한 타성에 젖어 있거나 목적의식이 두드러져 보이는 주제, 수사적 표현에서 독창성이 의심되는 작품들도 있었습니다. ........이에 박복영 씨의 ‘갈매새, 번지점프를 하다’가 최종 당선작으로 무난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박복영 씨의 다른 시들, ‘점묘화법’, ‘소리의 걸음을 읽다’ 등도 비슷한 밀도와 울림을 보여주어 더욱 신뢰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내용도 없이 시끄럽고 현란한 작금의 세상에서 응답도 보상도 없는 문학을 사랑하고 추구하는 여러분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부디 여러분이 걸어가는 문학의 길에 눈부신 광명이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 심사위원 ; 이양아, 이동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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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조선일보[신춘문예 당선작-시] 면(面) / 정현우
면과 면이 뒤집어질 때, 우리에게 보이는 면들은 적다 금 간 천장에는 면들이 쉼표로 떨어지고 세숫대야는 면을 받아내고 위층에서 다시 아래층 사람이 면을 받아내는 층층의 면 면을 뒤집으면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되는 복도에서, 우리의 면들이 뒤집어진다 발바닥을 옮기지 않는 담쟁이들의 면. 가끔 층층마다 떨어지는 발바닥의 면들을 면하고,
새 한 마리가 끼어든다. 부리가 서서히 거뭇해지는 앞면, 발버둥치는 뒷면이 엉겨 붙는다 앞면과 뒷면이 없는 죽음이 가끔씩 날선 바람으로 층계를 도려내고 접근금지 테이프가 각질처럼 붙어있다
얼굴과 얼굴이 마주할 때 내 면을 볼 수 없고 네 면을 볼 수 있다 반복과 소음이 삐뚤하게 담쟁이 꽃으로 피어나고 균형을 유지하는 면,과 면이 맞닿아 있다
어제는 누군가 엿듣고 있는 것 같다고 사다리차가 담쟁이들을 베어버렸다 삐져나온 철근 줄이 담쟁이와 이어져 있고 밤마다 우리는 벽으로 발바닥을 악착같이 붙인다 맞닿은 곳으로 담쟁이의 발과 발 한 면으로 모여들고 있다
▲1986년 평택 출생▲경희대학교 국문과 졸업 (2005년 입학 ~ 2011년 졸업)▲현) KBS1라디오 작가/음반) 라임 2집 ‘바람에 너를’
[신춘문예-심사평] 우리 시대 삶의 다양한 ‘면’을 성찰
본심에 오른 응모작 가운데 집중적으로 논의된 작품은 ‘면(面)’(정현우), ‘우산 없는 혁명’(고원효), ‘야간개장 동물원’(박민서) 세 편이었다. .......‘면’은 평면 측면 얼굴 경계선 바닥 방향성 등 다양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면이란 단어를 활용하여 우리 시대 삶의 다양한 ‘면’을 성찰한 작품이다. 인간이든 건물이든 세상 모든 것은 결국 면들의 만남과 어긋남에 의해 이루어지며 그로부터 갖가지 문제가 발생한다고 이 작품은 들려주고 있다. 이 시에 담긴 지혜는 통속적 잠언을 훌쩍 뛰어넘은 것으로서 오래 되새길 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여겨졌다. 우열을 가리기 힘든 세 작품을 앞에 놓고 장시간 고민과 토론을 거듭하다 선자들은 ‘면’을 당선작으로 뽑는 데 합의했다. 다른 두 응모자의 경우 여타의 투고작들이 충분한 믿음을 주지 못한 반면 정현우의 작품은 모두 고른 수준과 밀도를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내며, 다른 응모자들에게도 건필을 기원한다. / 심사위원 ; 정호승(시인)·남진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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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한경청년[신춘문예 당선작-시] 비커의 샤머니즘 / 김민율
굴러다니는 돌 하나 주워 주머니에 넣고 숭배한다 소원을 돌에게 말하고 우물에 던진다
대낮의 우물은 하늘을 번제하는 제단 저녁의 우물은 마력이 기거하는 당집
아이를 바쳤다는 소문에 이끼가 끼어 있다 물의 나이테를 열고 바깥을 엿듣는 누가 있다 두레박을 내려 몇 번이나 얼굴을 퍼올려도 제단에 바쳐진 아이가 사라지지 않는다
비커는 어린 시절의 설화 눈금에 다다를 수 없는 기억이 웅크리고 있다
수년 동안 던진 크고 작은 돌들이 내 뒤통수와 등짝을 닮은 기억을 보글거리며…… 눈금 바깥을 초월하고 있다
물이 기포로 기포가 증기로 변하는 것은 아이의 주먹을 펼치는 주술일까 모든 손마디를 다 펼치면 ‘아무것’이란 게 우글거리는
이미 기억을 개종한 내가 한 손에 다른 비커를 움켜쥐고 있다
■ 김민율 /△1978년 강원 강릉 출생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학원 강사
[신춘문예-심사평] 우물과 비커 … 새로운 상상력으로 접목한 ‘이종교배’
한국경제신문만의 특징인 ‘청년 신춘문예’라는 타이틀답게 푸르고 뜨거운 청년정신이 깃든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투고작들을 읽으면서 낯설고 도전적인 작품이 더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청년의 언어에서 보고 싶은 것은 ‘두려움’이라는 불가능을 ‘열정’이라는 가능으로 바꾸는 마술이기 때문이다. 응모자들은 이 점을 한번 뒤척여보면 좋겠다. ...........김민율의 ‘비커의 샤머니즘’ 외 4편은 응모작 전반이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집중하고 있는 세계가 보였다는 점에서 믿음이 갔다. 성실한 습작 기간을 거쳤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당선작인 ‘비커의 샤머니즘’은 구조가 튼실한 작품이다. 우물과 비커의 ‘이종교배 상상력’이 신선했다. 이 점이 새로운 서정성을 확보하게 했다. 우물-비커, 돌-눈금, 기억-개종의 자연스러우면서도 정확한 전개가 내용의 설득력을 갖게 했다. 절제된 감정의 언어를 가지고 있으니 보다 자유로운 시적 탐험을 시도해 보아도 좋겠다. 시인으로서 첫 호명을 축하한다. / 심사위원 ; 김기택·권혁웅·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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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한국일보[신춘문예 당선작-시] 방의 전개 / 윤종욱
밤새 발 밑에는 좁은 사막이 쌓였어요 새벽은 불투명하게 돌아왔고 매일매일 더 늙은 모습으로 우리는 입이 말라 버린 나무 조금씩 빠르게 허물어지는 어둠처럼 우리는 잎이 진 사람 침묵을 정확하게 발음해 보세요 턱 끝까지 숨이 막힐 만큼 우리가 창문이 없는 방이었을 때 내일을 열어 볼 수는 없었어요 우리가 방에서 갈라져 나온 뒤에 우리는 식탁의 높이에 맞춰 앉았어요 모래를 모두 쓸어 낸 몸으로 표백된 셔츠를 입고 찻잔의 깊이와 끓는 물의 부피를 재며 우리는 눈대중으로도 알고 있었어요 어둠이 얕은 곳에서는 언제 눈을 떠야 하는지를 어디에 눈을 둬야 하는지 말이에요 시계는 벽을 등지고 있었는데 시계는 무엇이든 가리키려 하고 우리는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해요 사막의 발단을 출발하여 가느다란 아가미가 발생하기까지 우리는 진화하는 걸까요 밖은 왜 여전히 어두운 거예요 우리의 아침을 활기차게 열어 보세요 분주한 아침이 지나고 나면 엄마가 시키는 대로 문을 닫고 우리는 방으로 들어갔어요
2015한국일보[신춘문예 당선작-시] 백지의 척후병 / 김복희
연속사방무늬 물이 부서져 날리고 구름은 재난을 다시 배운다 가스검침원이 밸브에 비누거품을 묻힌다 바닥을 밟는 게 너무 싫습니다 구름이 토한 것 같습니다 낮이 맨발로 흰색 슬리퍼를 끌면서 지나가고 뱀이 정수리부터 허물을 벗는다 구름은 발가락을 다 잘라냈을 겁니다 전쟁은 전쟁인거죠 그는 무너진 방설림 근처에 하숙하고 우리 집의 겨울을 측량하고 다른 집으로 간다 우리 고개를 수그려 인사를 나누었던가 폭발음이 들렸던가 팔꿈치로 배로 기어가 빙하를 밀고 가는 정수리 허물이 차갑게 빛난다 눈 밑에서 포복하던 생물들이 문을 찧는다 인질들이 일어선다
[신춘문예-심사평] 발명과 발견, 색깔 다른 두 신인 서로의 장점 배웠으면
시에서 발견과 발명은 구분된다. 발견이 낯익은 대상에서 낯선 의미를 찾아내는 과정이라면, 발명은 대상과 무관하게 낯선 의미를 빚어내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발견은 소통 가능성(서정시), 발명은 소통 불가능성(비서정시)과 직결되고, 다시 발견은 언어의 투명성(우리), 발명은 언어의 불투명성(나)과 연관된다. 우리 현대시는 발견과 발명 사이에 서식한다.
최종적으로 두 편을 놓고 논의가 이어졌다. 발견인가, 발명인가. 한 작품은 습작기가 단단해 보였다. 방(가족)을 중심으로 대상을 장악하고 그것을 질서화하는 능력에 신뢰가 갔다. 동봉한 응모작 수준도 일정한 편이었다. 반면, 다른 한 작품은 앞의 작품과 대척점에 자리했다. 재난 상황이라는 대상을 넘어 낯선 이미지를 통해 이질적 세계를 구축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전자는 발견의 시, 후자는 발명의 시에 가까웠다. 발견의 시가 윤종욱씨의 ‘방의 전개’였고, 발명의 시가 김복희씨의 ‘백지의 척후병’이었다. ...........서로 다른 개성이 발명을 아우르는 발견, 발견을 아우르는 발명의 길을 열어나가면서 우리 시의 풍요로움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시인으로서 탄생 장소와 시간이 같은 두 신인에게 두 배의 축하를 보낸다........./ 심사위원 ; 문학평론가 남진우, 황지우, 이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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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한라일보[신춘문예 당선작-시] 오래된 신발 / 고창남
인도에는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 드르르륵, 문이 열리면 떠올랐다 가라앉은 먼지들과 가볍게 부풀어 올랐을 세상의 호들갑이 풀어진 끈을 갈고리처럼 엮어 꽉 조여 맨다. 만년설처럼 쌓여만 가는 아득한 먼지 속에서 태양은 너무 용의주도하고 그림자는 자주 길 밖으로 흘러내린다. 인도에는 수많은 상처가 있다. 바람만 불어도 가시가 돋쳐 구멍 숭숭 뚫리고 나는 다만 그날의 일기를 기록한다. 지구의 표면을 닦는 순례자의 발걸음 덜거덕거리는 신발이 몸 안의 길을 따라 걷는다. 때론, 갠지스 강이든가 어디든가 가닿지 못한 그리움이 솜사탕처럼 부풀어 오를 때 우리라는 존재는 우리가 소망하던 우리가 아니다. 오래된 신발에서 오래된 잉크냄새가 난다. 평생 써 내려가야 할 미완의 경전 어제 걷던 길을 오늘도 걷는다. 인도에는 부처가 있다. 신발장 문을 열 때마다 온 생이 몸을 뒤척인다.
▶약력 ▷1965년 제주출생 ▷제주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방송정보학과 졸업 ▷1999년 제주신인문학상 수상
[신춘문예-심사평] 신뢰할 수 있는 역량을 택했다
새로운 시인의 등장을 기대하는 설렘은 첫째 새로운 안목에 대한 기대이며 다음으론 시인으로서의 역량이다. 그 설렘을 가장 먼저 겪는다는 점에서 심사위원은 행운이랄 수 있다. 2015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응모작들의 수준은 편차가 많았으나 시세계가 다양하고 기대가 되는 시편 또한 적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경합한 작품은 '폭설의 카르마'와 '오래된 신발'이다. '폭설의 카르마'는 중의적인 시적 구조와 남다른 상상력으로 좋은 점수를 얻었으나 주제를 충분히 녹여내지 못해 다소 전달에 어려움을 겪고, 언어에 대한 천착이 당차지 못해 가다만 듯한 아쉬움이 남았다. '오래된 신발'은 완성도가 있고 시를 끌고 가는 힘도 안정적이었다. 작품의 수준이 고르고 그만큼 만만찮은 자기 연마의 과정을 짐작케 했으나 우리가 친숙하게 읽어온 '낯익음'의 유형이라는 점 때문에 손을 들어주는데 망설임이 따랐다. 진지한 논의 끝에 두 작품의 장점 중 후자를 택하는데 두 심사위원은 합의했다. 새로운 안목 보다는 신뢰할 수 있는 역량을 선택한 것이다. 당선자에게 기존의 장점에 더해 자신만의 개성적인 발성법을 보다 치열하게 밀고나오기를 당부하며 아낌없는 축하를 보낸다. / 심사위원 ; 황학주 시인, 김병택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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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심사위원들의 견해를 중심으로 본 종합적인 평가
당선작품에서는 심사위원들의 견해를 중심으로 감상하여 보았으며, 그런 견해에도 불구하고 심사위원들과 다른 견해를 가질 수도 있는 점을 포함하여 각 당선시에 대한 생각을 간략하게 정리해 보았다. 난해함이 끼어드는 시에서는 감동의 결을 찾아내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그대신 새로움이라는 감각적인 느낌은 비교적 빨리 전달된다. 그러나 시는 감동을 전재로 존재한다는 인식을 기준으로 본다면 난해함을 장착한 시도 그 감동을 드러낼 수 있는 장치를 준비하여 시를 정리해 나가야 할 것이다, “활달한 수사와 짜임새 있는 전개로 재치가 돋보이는 수작”이라는 심사위원의 심사평을 보며 고개가 갸우뚱해 지는 때가 있다. 개별적으로 튀어나간 어휘들이 이미지의 연결고리를 없애 버린 난해함을 극복할 어떤 것을 심사위원들은 보았을까? 그런 산만한 난해함에서 무엇을 건져올렸을까? 난독(難讀)에 빠져 자꾸 의문이 일고 있는 것은 필자의 과문(寡聞) 탓일 수 있겠다. “벽과 담의 차이”는 새롭다는 느낌, 그리고 벽을 중심으로 끌고간 이 시에서 어떤 감동을 느낄 수 있을까? “물수리 그림자, 지나간다”에서 “얼음 부딪히는 북해에서 내 이물까지 오만 리 길/ 그곳에서 다시 고물까지 십만 팔천 리 길”이라는 표현 속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난 ‘오만리 길’ ‘십만 팔천리 길’은 무엇을 의미하며 어떤 정황을 나타내려 했는지 읽어내기 어려웠다. "걸어가는 나무“는 실제로 남미 지역에 가면 "걸어가는 나무 (arbol que camina, 아르볼 께 까미나)"라는 이름의 나무가 존재하며 다른 나무들처럼 뿌리가 땅속 깊이 박혀 있지 않고 대부분 바깥에 위치한 이 나무는 해바라기가 햇빛을 찾아 고개를 돌리듯 새 뿌리를 낼때 햇빛이 나는 쪽으로 뻗어나가고 그와 동시에 현재의 그늘아래 있는 뿌리에 대한 영양 공급을 중단해 썩혀 잘라버리기 때문에 나무가 그 만큼 이동하게 된다고 한다. 그 나무의 속성의 이미지를 시화하며 시인의 감성적 요인과 결합하여 그려낸 작품이다. 시 “모자이크”는 깨진 유리창의 장면들을 모자이크한 형태로 그려낸 일종의 감각 시편이라 할 수 있다. 진정성이 잘 어우러진 작품으로 읽힌다.. “시라시”는 뱀장어 새끼인 실뱀장어로 그것을 잡아 외국에 수출한 적이 있다. 지금은 그것을 잡아 국내에서 양어장에 넣어 기르고 있는데 그 가난한 세월을 회고하며 어머니의 고달픈 지난 세월과 자식들이 모두 곁을 떠나 홀로 살고 있는 현실의 외로움을 그려내고 있다. “선수들”은 언어가 충돌하며 드러내는 이미지들이 서로 연결되지 않는 산만함 속에서 혼돈을 경험하게 되었다. 작자는 어떤 감동에서 이런 시를 쓰고 있는 것일까? “레몬”은 단맛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혼자 시어보겠다는 고집스런 자세를 ‘부처’로 상징하여 세상을 교화시키려는 비판적 사유를 끌어내는 경쾌한 시적 울림을 준다. “아령 또는 우리의 왕”은 신체적 아령운동을 “자르려는 자와 붙어 있으려는 자”의 대립을 상징적으로 진술하여 이미지를 중층적으로 해석할 수 있게 구성한 작품으로 낯설게 하기가 너무 서정성을 압도하도록 시적운행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 “분홍잠”은 가을 정취 물씬한 농촌 풍경을 배경으로 홀로 사는 노인의 가을날의 하루 일상을 담고 있는 작품으로 언어구사가 매우 풍성한 시이다., “쌈”이라는 시에서는 사물과 자연현상을 쌈으로 만들어 나를 통해 전개시키는 변화들이 흡입되는 시적 상상력의 확장을 활달하게 느낄 수 있으나 그것에서 어떤 감동이 얻어질 것인지를 감정해 보기는 어려웠다. “누에의 잠”에서는 어머니가 누에를 치던 어린시절이 끌려나온다. 누에를 키우던 것을 중단하고 수의를 짓던 어머니는 이제 떠나 유골함에 들어 있는데 그 속에서 한 생을 헐고 나오는 어머니의 부활을 생각하는 작품으로 읽힌다. “새벽 낚시“는 새벽에 낚시를 하는 사람들의 의식과 삶의 부딪침을 형상화한 시이다 새벽에 드리워진 푸른 안개 속에서 낚시꾼들이 던지는 낚싯대 소리와 곁들여진 내면의 소리를 감각적으로 그려낸 작품으로 감성적 울림을 준다. 남미 볼리비아에 있는 살리나스 염전을 보고 그 광경을 시적 감성과 활달한 상징성으로 치환하여 그려낸 작품이다. “어머니의 계절”은 어머니가 떠난 빈집을 그려내어 사랑과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형상화시킨 작품이다. “탕제원”은 나이든 할머니가 무릎에 좋다하여 고양이를 잡아다 넣고 달여 즙을 내는 곳의 야야기를 시적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한 때 동물보호협회에서 항의를 하며 당선을 취소하라고 집회를 한 작품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그런 오해를 받기 쉬운 일이지만 대상을 새롭게 인식한 시선에는 시적 감성이 짙게 묻어나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키워드”는 세월호등과 같은 죽음의 사건을 통해 부서지고 깨진 고통과 황폐화된 의식들에 대해 암시를 하며 드러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지가 모호해서 충분한 해독이 쉽지 않아 보인다. “로로”는 “로로”라는 비인칭 개념을 통해 마음과 마음이 소통하기 위해 낯선 관념이나 사상을 전개시키고는 있으나 관념적 서술이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아 난해함에 빠져 관념을 해독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심사위원들의 말에 공감하며 이 시를 읽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신발”은 신춘문예에서는 아주 낯익은 소재로서 이미 많은 시적 진술 속에서 상투성을 의심받을 수 있는 작품이다. 물론 난전에 널려 있는 신발을 소재로 시인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도 불구하고 낡은 시로 폄하될 수 있을 것이다. “난파선은 난파선 속으로”는 뒤집혀진 난파선 속에서 무너져 내리는 사물과 수평을 맞추는 난파선의 몸부림을 그려낸 산문시다. 다양한 사물의 움직임과 심상이 서로를 껴안아 주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갈매새, 번지점프를 하다”에서는 갈매새가 알에서 깨어나 절벽에서 뛰어내려 세상(=바다)으로 날아가는 모습을 매우 감성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면”은 평면과 측면 입체적인 조합등을 통해 사회적 삶을 함축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며 모든 만남은 면들의 만남과 어긋남에 의해 갈등이 일어난다는 함축된 의미를 하나의 잠언처럼 가지고 있다. “비커의 샤머니즘”은 어릴 적 우물의 이야기를 비커 속에 들여놓고 우물과 비커라는 두 개의 사물을 상상력 속으로 엮어내는 새로움이 엿보였다. “방의 전개”는 우리가 창이 없는 방이었을 때, 그 방의 어둠속에서 일어나는 상상의 공간에서 각자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알고 어둠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진화해도 왜 밖은 여전히 어두운지를 말하는 이 시에서는 ‘어둠’이라는 실체와 공존하면서 함께 가는 것으로 인식한다. “백지의 척후병”은 매우 난해한 시적 이미지들을 드러내 놓았다. 솔직히 말해서 무엇을 이야기 하려는지 조차 짐작이 가지 않는 시다. 심사위원은 대상을 넘어 낯선 이미지를 통해 이질적 세계를 구축하려는 발명적 시라고 평설하고 있지만, 의미의 결을 감지할 수 없었다고 실토해야겠다. “오래된 신발“ 역시 오래된 신춘문예 소재가 되었던 작품들 중의 하나로 인식된다. 인도 기행속에서 부풀어 오른 생의 모습과 근원적 그리움, 부처에 대한 인식을 잘 그려낸 시로 보인다.
5. 신춘문예작품의 새 경향과 방향성
신춘문예 작품을 통해 본 금년도의 새로운 경향은 다시 등장하기 시작한 난해성과 모호함을 드러내고 있는 난해시를 보는 자세가 다소 황당한 느낌을 준다. 이십여년간 신춘문예 작품을 읽으면서도 난해함과 모호함을 가진 시 앞에서는 긴장이 된다. 그래서 오랜 시간을 공들여 읽어도 그 중심정서나 감동의 흐름을 읽을 수 없을 때가 많다. 과문(寡聞)한 탓이겠지만 솔직히 그 시를 쓴 당사자와의 대화를 통해서나 진솔한 내용 파악이 가능할 것 같은 낯선 새로움을 극복하기란 매우 어렵다고 생각하는 때가 많다. 적어도 그와 같은 난해시에 대해서는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에서 좀 더 깊이 있는 해설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 우리 문단의 발전을 위해서도 그러한 난해함에 관한 심사의견은 새로움을 탐색하려는 신인들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제공해 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특히 난해함을 품고 있는 시에서는 문법이나 문장의 합리성이 없는 비문(非文)이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무조건 잘 알 수 없으니까 그냥 덮어두고 넘어가는 것이 아닌 합리적인 문장으로 시가 창작되어야 할 것이다. 지난 몇년 동안 서정성에 집착하여 단조로운 흐름을 보이던 때와는 달리 난해시의 등장은 다소간의 긴장을 유발시키는 것이 사실이다. 그들의 감추어진 내면의 소리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많은 정독을 해야 하고, 그 속에서 건져지는 이미지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난독성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사고(思考)를 필요로 한다. 이제 난해시가 하나의 실험적 시도로 그 움직임을 가지게 될 것인지 시적 발전과 시적 감성을 이해하고 독자와의 감동을 공유하여 그 의미를 교류할 수 있도록 자기만 알 수 있는, 또는 자신들과 공유하는 집단에만 이해될 수 있는 비유나 사물의 속성을 시에 도입하지 말고 적어도 시를 탐색하고 그 깊이를 천착하는 시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시가 등장하기를 기대한다. 이런 새로운 움직임이 지금은 초기 단계이므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직 방향성을 알 수 없는 단계라고 할 수 있겠다.
-----<신춘문예작품의 개괄적 변화와 새로움의 지평>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금년도의 가장 큰 변화는 난해성과 모호함이 짙은 시들의 등장이라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 독자들이 현대시가 어려워서 읽지 않는다거나 현대시와 독자와의 간격이 멀어지고 있다는 지적은 시가 전에 비해 다소 난해해졌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보다 높은 수준의 독자들까지도 이해하기 어려운 시를 쓰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하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시의 영역에선 난해시이든 일반적 서정성은 띈 시든 특별히 문제가 될 일은 없다. 그러나 난해함으로 무장된 시에서 그 의미를 찾아낼 수 없게 될 때 부딪치게 되는 당혹감과 자괴감은 감상자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와 같은 시적 흐름도 시의 지평을 더 넓고 깊게 만드는 하나의 과정임을 알아야겠지만, 난해함에 매달리는 시인들도 그 난해함을 건너 그 깊이의 의미를 찾아갈 수 있는 합리적 연결고리나 함축미를 알 수 있는 은밀한 장치로 난독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서 시적 발전이나 난독(難讀)의 영향으로 인한 시적 괴리감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금년의 시적 형식은 전에 비해 시의 행이 더 장황해 져서 산문화 된 시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을 만큼 길어졌다. 그런 이유로 다소 시가 짧아진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 내용은 매우 길어졌다고 볼 수 있으며, 다소 행을 정리하여 의미망을 중심으로 행을 정리해낸 시들은 그 행의 길이가 더욱 길어졌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이미 시의 형식은 과거에 비해 행의 길이나 장황한 내용의 전개로 보아 산문의 영역에 더욱 접근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아직도 심사위원들의 면면은 장기 집권세력에 의해 고정화되어 우리 현대시의 발전을 막고 있는 듯이 보인다. 물론 이러한 고정된 편견을 가진 심사위원 위촉에 대한 문제는 각 신문사의 문화부 담당 기자들이 다소간 문학적 소양을 가지고 있다면 그런 경향에 대한 폐단---한국 문학이 그 심사위원들의 개인적 소양이나 문학적 깊이에 의해 한국 문학이 갇혀 왜소화되는 폐해---을 막을 수 있을 터이지만, 아직은 그런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하나의 경향은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가며 우리 곁에서 그 큰 흐름을 보여 준다. 그러한 흐름이 반드시 좋은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나쁘다고 외면할 일은 아니다. 한 시대 속에서는 다양한 문학적 흐름이 존재하고 그 흐름이 거대한 하나의 경향으로 정착되거나 한시적으로 등장하다 마는 경우도 존재한다. 신춘문예의 흐름이 우리 시의 전형은 아니다. 다만 신춘문예라는 하나의 거대한 축제에서 나타난 경향과 다른 일상적인 움직임에서 나타나는 경향을 감지하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하나의 중요한 과정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아직 새로운 움직임이 어떤 형태로 발전할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 움직임이 우리시를 발전시킬만한 힘을 가진 거대한 흐름인지를 인지할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잘 살펴가면서 자신에게 맞는 자기만의 그릇을 만들어 가면서 가치있는 경향이 어떤 것인지 판단하여 자신 속에 육화하여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노력을 병행하여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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