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소나무의 푸른 날갯짓
김석환 (명지대학교 문창과 교수)
박 시인의 시집에는 섬에서 태어나고 자라다가 뭍으로 나와 살면서 겪은 아픔과 기쁨이 고스란히 스미어 있다. 그런데 섬은 사면팔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는 지리적 특징 때문에 발전된 뭍의 문명으로부터 단절 되는 반면에 자연을 더 가까이 접할 수 있는 곳이다. 박 시인은 늘 밀물과 썰물이 교대로 드나들고, 갯벌엔 수많은 생명체들이 살아가고, 파도 소리가 들리는 섬에서 유소년 시절을 보내며 몸으로 자연의 비밀을 체득한 것이다. 그리고 뭍으로 나와 사는 동안 섬마을에 내재된 생명력과 질서를 반추하며 각박한 현실을 직시하고 수용하면서도 자신의 내면을 성찰한다. 푸른 날갯짓을 멈추지 않고 고난의 벽을 넘어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이상향을 그리며 시적 열정을 태워왔다.
다음 시는 그러한 시인의 삶과 시적 자세를 함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바닷가 바위틈에
홀로 서서
파도소리 발자욱으로 세기는
바람, 그 바람
지천명 허리에 휘어 감고
늘 푸르고 싶은
한 그루 바닷가소나무
갯바람에 솔 향 발하는
그날을 위해
오늘도 뿌리는
바위, 바위틈을 밀어고 있다.
-「바닷가 소나무」전문
소나무는 바다와 뭍의 경계인 ‘바닷가 바위 틈에/ 홀로 서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소나무’가 기름진 땅을 두고 굳이 뿌리를 내리고 살기 힘든 그곳을 선택한 까닭은 ‘파도소리 발자욱으로 새기는/ 바람’이 불어오기 때문이다. 파도소리는 두고 온 고향 섬마을 소식을 들려주고 바람은 밀려오는 잠을 쫓고 깨어나 바위틈에 더 깊이 뿌리를 내리라고 일러 줄 것이다. 자신의 운명이 하늘로부터 주어진 것임을 알 수 있는 지천명에 이른 시인을 대신하는 그 소나무는 바람을 ‘허리에 휘어 감고’ 그 속삭임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르며 어떠한 세파에도 꺾이거나 시들지 않고 ‘늘 푸르고 싶은’ 꿈을 다진다. 나아가 ‘솔 향’을 내뿜어 바람에 실어 보내기 위해 뿌리를 뻗는다. 소나무가 싸움키고 살아가는 바위는 오히려 장애물이 아니라 사나운 해풍과 육풍이 교차하며 불어와도 쓰러지지 않게 해 주는 보금자리요 닻이 되어 줄 것이다. 홀로 서 있는 소나무를 향해 바람에 실려 오는 고향의 소식과 추억은 외로움을 달래며 푸름을 더해가게 하는 자양분이다.
시집에는 고향의 외딴섬은 물론 이웃에 있는 여러 개의 섬들이 등장한다. 그 섬들에서 자라는 생명체들과 변화하는 자연의 풍경은 시인에게 아름다운 정서를 길러 주고 삶의 길을 가르쳐 주었다.
“산두”는 박 시인의 고향인 섬마을인데 “유채꽃이 봄을 데리고 오는” 그곳에서 사철 푸른 무인도 “매물섬”이 보이기도 한다. 그 섬엔 봄이면 송홧가루가 날리고, 앞바다엔 숭어떼가 뛰어오르고, 밀물과 썰물이 드나드는 갯벌엔 짱둥어나 낙지가 깃들어 살고 있다. 그것들을 닮은 어린 아이들은 머드팩을 하고 수영과 낚시를 즐기며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자란다. 그리고 “갓섬 등대가 눈 부라리면” 파도소리 장단에 개똥벌레가 춤을 추고 밤하늘에 은하수가 흘러넘친다. 그렇게 바다와 육지와 하늘이 조화를 이룬 동화의 나라에서 동심을 키우던 어린 시절은 박 시인의 시심의 뿌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살아가게 하는 것은 아침마다 수평선 위로 솟아오르는 태양이다.
그가 웃고 있다
검은 망토자락 날리며 쫓겨 가는 나를 바라보며
물안개 속에서 그가 호탕하게 웃고 있다
내 몸으로 스며드는 네 푸른 뿌리들
나는 너의 호탕한 웃음 속에서 서서히 스러져간다.
해변과 들판 골짜기 온통 푸른 웃음으로
서로 다른 꽃, 꽃, 꽃을 위한 너의 호탕한 웃음이구나
공사판 못들이 강약의 깊이를 가늠하며
뜨겁게 달구어지는 것도
너의 숨결이며 네 푸른 뿌리의 시작
-「흑산도 일출」 일부
흑산도 앞바다에서 힘차게 솟아오르는 아침 해, 그 우주적 생명력의 근원이 호탕하게 웃고 있는 풍경을 보며 섬이 된 시인은 몸속으로 스며드는 ‘푸른 뿌리’를 감지한다. 그리고 그 장엄한 일출의 신비경에 잠긴 섬은 온몸으로 생명의 햇살을 받아들이다 드디어 하나가 되어 ‘서서히 스러져 간다’. 일방적으로 생명의 기운을 베풀어 주는 해를 향해 ‘해변과 들판 골짜기’가 푸른 웃음을 지으며 다양한 꽃을 피워 화답한다. 그 아침 해의 ‘숨결’은 어느 노동자가 공사판에서 땀을 흘리며 박는 못에까지 뜨겁게 미치고, 신명이 나서 추는 “내 춤사위를 밟고” 웃기도 한다. 그렇게 해의 “푸른 뿌리가 온 세상/ 구석구석 뿌리”를 내리려 하는데 자신의 삶의 뿌리도 “네 푸른 뿌리가 되고 싶은 욕망으로” 아침노을에 붉게 물든다. 이처럼 박 시인은 흑산도의 일출을 보면서 태양은 세상의 모든 생명체를 살아 있게 하는 근원임을 깨달으며 그것에 삶의 뿌리를 내리고 살겠다는 꿈을 보여 주고 있다. 앞의 시에서 시인이 ‘바닷가 소나무’가 되어 파도소리를 듣고 바람을 맞이하는 것은 곧 언젠가 흑산도의 일출을 보며 그러한 신비한 체험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박 시인은 고향의 섬에서 그 햇살의 기운을 받고 살아가는 여러 생물들을 그리며 그것을 통하여 삶의 의미와 지혜를 형상화한다. ‘산두’에 속하는 섬 “요력도 마늘”은 “몸매가 울퉁불퉁 하고 성질까지 고약해서” 여자나 사내들이 다 거부반응을 보이지만 “몸 속에 그들이 원하는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요력도 마늘」) 그래서 “상상의 나래를 펴며 군침을 흘리기도” 하는 그들을 위해 “따뜻한 최후를 맞는다”. 마늘은 눈이 내리는 섬의 겨울 바닷가에서 주야로 불어오는 “고추바람 매서운 그 맛”을 속으로 다져 넣고 “동네잔치에 빠질 수 없”이 “주인행세”를 한다. 뿐만 아니라 고향에서 자란 “신안양파”는 “톡 소는 성질 뒤에” “푸른 비밀”을 감추고 사람들을 유혹하기도 한다.(「신안 양파」) 박 시인은 이처럼 겉으로 보기엔 볼품도 없고 냄새도 좋지 않으나 내면엔 사랑과 생명력을 갖고 있는 고향의 산물을 통해서 참된 인간성을 배웠는지도 모른다. 그 섬을 떠나 육지에 살게 된 시인은 비 개인 뒷산에 올라 강아지풀을 보며 어린 시절에 파도가 밀려오던 바닷가에서 함께 놀던, “까르르 웃어대는 까까머리들”과 “치렁치렁 긴 머리의 화련이”를 떠올린다.(「강아지풀」) 그리고 너무 멀리 와버린 산 속에 홀로 와 있는 자신을 돌아보며 외로움을 달랜다.
또한 “천사의 섬”, 즉 “1004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신안”의 갯벌에 사는 갖가지 생물을 제시하고 있다.(「천사의 섬」) “철게, 농게, 고막, 굴, 망둑어.. ” 등은 어린 시절에 시인과 함께 자라던 동무이자 부모님을 비롯한 섬 주민들의 삶을 이어주던 양식이었을 것이다. 시인은 그러한 미물들에게서 “천사의 숨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리고 분화구를 닮은 낙지 숨구멍 앞에 촛불을 켜두고 쭈그리고 앉아 낙지가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잽싸게 파내는, 낙지 잡는 법을 소개한다. (「갯벌낙지 잡는 법」) 그리고 낙지를 잡듯 그 사람을 만나 지금껏 “파도소리를 닮은 아이 노래를 들으며” 단맛 나게 살고 있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아침 해가 솟을 때 농군 앞서 걸어가고, 종일을 들판에서 채찍을 맞아가며 땅을 갈다 저녁노을이 물들면 쉼 없이 되새김질 하던 “한 마리 황소”가 바로 자신의 모습이라고 한다.(「내 모습」) 시인이 어느 날 강촌역에서 “나도 미친놈이다”라고 써두고 “소처럼 웃는다”고 고백한 것은 고향에서 종일 묵묵히 일을 하던 그 소를 기억했기 때문일 것이다.(「강촌역에서 소처럼 웃다」)
특히 그곳은 가난하지만 너른 품으로 감싸 안고 길러 주시던 어머니가 있어 더욱 그리운 곳이다. 어머니는 모래섬 메밀밭으로 김매러 간 사이에 어린 오누이만 남아 어머니를 기다리다 “깡보리밥”을 짓느라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엄마 생각」) 늦도록 오지 않는 “어무이” 대신 달빛만 힘없이 아이의 눈물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옆집 누렁이 짓는 소리에 골목을 내다보던 어린 누이는 허기를 이기지 못하고 두 눈에 “별빛을 흘리”고 있다. 고향은 바로 가난을 이기기 위해 늦도록 밭에 나가 일을 하던 어머니가 있고, 함께 어머니를 기다리던 누이의 눈물이 있어 시인의 가슴에선 아직도 그 별빛이 반짝이고 있는 것이다. 박 시인이 어느 날 “창고정리를 하다/ 낡은 빨래판을 보”고 “속옷을 갈아입던 어머니”의 늑골을 생각한 것도 그런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간절하기 때문일 것이다.(「빨래판」)
또한 시인은 아버지에게 받지 못했던 사랑을 생각하면서, 찬 서리가 내리면 늙은 감나무 아래 두 아들을 세워 두고 휘어진 가지에 올라가 두 아들과 함께 감을 따며 아들들에게 추억을 만들어 주던 자식사랑이 애틋한 시인이기도 한다.(「애비」) 또한 할머니와 아이들의 어머니는 그 감을 옆집에 나누어 주고, 까치밥도 몇 개쯤 남겨 놓는 후한 인정이 있기도 한 우리들의 이웃이기도하다. 그러한 시인의 가슴속의 고향은 아린 추억이 숨어 있는 곳이다. 어느 날 누이가 우물에 떨어졌다가 건져 올리는 사건이 발생했다.(「달밤의 비명소리」) 얼굴이 붉고 눈이 검어진 누이를 본 시인은 두려움도 잊고 달밤에 상여집이 있는 산길을 달려가 “염전을 지나고 산길을 넘어”아버지 마을이 보이자, 시인은 가슴앓이의 고통을 견디지 못한 채 가슴을 움켜쥐고 달빛과 함께 밭고랑에 꼬꾸라지며 나뒹굴기도 한다. 오직 누이의 사고를 아버지에게 알려야 하겠다는 생각만으로 아버지 집으로 달려가 도와달라고 했으나 아버지는 끝내 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인정이 넘치고 자연과 더불어 살던 고향 섬을 떠나와 사는 뭍의 현실은 너무 대조적이다. 시인은 어둠 속에서 고양이가 쓰레기통을 뒤지다 화자의 발자국 소리에 놀라 담장에 올라앉아 화자를 향해 ‘너 역시 쓰레기통을 뒤지다 오면서 남 밥 먹는 것을 방해하고 부끄러움도 모른다’며 서늘한 눈빛을 보내는 것이다.(「고양이 눈빛」) 그 고양이와 고양이 눈에 비친 화자는 곧 예의염치를 버리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더 많은 물질을 추구하기 위해 애쓰는 오늘 우리들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그러한 현실에서 밀려난 이들은 실업자, “도시의 피라미”가 되어 “인력시장, 직업소개소, 구직사이트”를 드나들다가 “찬바람 속에서 어두운 하늘의 별빛을 바라보고” 있다.(「상처 난 피라미들」) 그런데 박 시인은 산업화의 물결이 채 일기 이전인 1971년에 타향살이의 설움을 달래며 어둠을 가르기 위해 “허물어진 낙산성터”에서 날이 밝아올 때까지 “칼만 갈았다”는 이의 아픈 전력을 보여주고 있다.(「1971.봄」) 그러한 추억이 있기에 그들에 대하여 더 깊은 애정을 보내는 지도 모른다.
물신주의가 팽배해지며 인간성이 상실되어 가는 현실에서 인간이 감당해야 할 가장 고통스런 형벌은 고독일 것이다. 시인은 “47세의 여자로 화려한 싱글이라는 꽃을 안고 다니며 살”다 홀로 죽어 뒤늦게 발견된 그녀의 “고독사”에 관한 뉴스를 차용하고 있다.(「고독사」) “앙상한 푸들 한 마리”만이 그녀의 고독한 죽음을 지켰다는 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비극을 극단적으로 대신하고 있다. 그녀는 겉으로 화려함을 누리지만 안으로는 소외와 고독을 질병처럼 앓으며 사는 우리들의 전형적인 모습인지도 모른다. 또한 “영등포역 광장”에서 아이가 던져주는 빵부스러기를 쪼아 먹고 토사물로 만찬중인 “도시의 부랑아들”, 그 “매연에 찌들은 비둘기떼”를 묘사하고 있다. (「도시의 부랑아들」)
또한 ‘비둘기’는 평화시장에서 평화를 꿈꾸며 힘든 노동을 하는 이들을 대신하기도 한다.
청계천 평화시장
비둘기 같은 눈망울들
꽃잎 같은 손에 가위를 들고
가슴속 멍울 싹뚝 싹뚝 잘라내며
드르륵 드르륵 재봉틀에 꿈을 박아 갔다
-「평화시장」일부
‘비둘기’는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가위로 가슴속의 멍을 잘라내며 재봉틀에 꿈을 박는 ‘꽃잎 같은 손’과 동일시된다. 같은 또래들이 ‘바이올린 피아노를 치는’ 담장 너머 세상을 부러운 듯 훔쳐보는 공원들은 더 많은 임금을 받기 위해 밤늦도록 재봉틀을 돌리고 있을 것이다. 그곳엔 “평화시장”이라는 이름과는 대조적으로 평화가 없고 “비둘기들이 먼지를 쪼고 있”을 뿐이다. 그 비둘기들은 잘 살아 보겠다고 고향을 두고 도시로 이주하여 사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암시한다. 한편 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포클레인”은 서까래를 내려앉히고 대들보까지 부러뜨리고 으르렁거리다 늙은 감나무까지 부러뜨려 그 비명이 온 동네를 뒤흔드는 도시재개발 현장의 모습을 보여줌으로 기층민들의 현실을 말하고자 하기도 한다. (「포클레인」)
한편 비정규직 근로자를 ‘선풍기’에 비유하여 자본의 힘에 억눌려 소외된 채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고된 노동을 감당하는 현실을 풍자하고 있다.
산길 걸어가는 스님 그림자처럼
입을 열수도
얼굴을 보일수도
실루엣으로 날갯짓하는 선풍기
땡볕일수록 숨 가쁘게 더 돌아야 하는
돌다 돌다 더운 숨 토해내야 하는
앉지도 못한 체 서서 돌아야 하는 선풍기
삼복더위 물러가면
창고 속 어둠속에서 숨소리조차도 삼켜야 할 선풍기
찢어지는 어둠 속에서 붉은 혓바닥 솟아오르기 꿈꾸는
말복이 두려운 선풍기
-「비정규직 근로자」 일부
“마트에서 들여 온 선풍기”에 비유된 비정규직 근로자는 쉴 새 없이 날갯짓을 하며 그늘에서 꿈을 키우지만 입을 열고 얼굴을 내보이며 권리를 주장할 수도 없다. 잠시 앉아 쉬지도 못한 채 돌아야 하는 ‘선풍기’는 해고가 두려워 고통을 호소하지도 못하면서 힘든 노동을 하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 준다.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해야 하는 산업화 시대의 ‘찢어지는 어둠 속에서’ 억압당한 욕망을 안고 살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시인은 그렇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노동자를 다만 더 많은 이윤을 남기기 위한 기계로 여기며 가혹할 만큼 강한 노동을 요구하다 해고해 버리는 자본가의 비인간적인 태도를 은밀히 비판하고 있다.
한편 베트남 전쟁 중에 정글에 뿌려진 고엽제인 ‘에이젠트 오렌지’의 독성으로 “일그러지고 뒤틀려버린 육신은/ 포효하던 사자발톱에 할퀸 자국”이라며 인간의 탐욕이 야기한 전쟁이 인간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남기는가를 보여 준다.(「에이젠트 오렌지 (Agent Orange)」) 그리고 북한강변의 “아스팔트 위를 걸어가던 개”가 승용차에 치어 죽자 뒤이어 지나던 차들이 “한 생을 소실점으로 몰아가는” 현장을 그리고 있다.(「북한강변의 어느 주검」) 그런데 교통사고로 희생을 당하는 게 어디 개뿐이겠는가. 선진국 중에서 교통사고 사망률이 수위를 다투는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단면을 대신 보여주며 속도와 편리함을 추구하는 현대문명은 생명을 말살하고 있음을 고발하는 것이다. 그러한 현실을 본 시인은 “세상 속 답답한 가슴을 확 뚫어 주고 싶”은 심정을 폭포에 이입하여 보여 준다.(「폭포」) 그리고 절벽에서 뛰어내려 낮은 곳으로 가면서도 넓고 깊은 바다에 이르는 폭포를 통하여 군림하기보다 낮고 겸손한 자세가 진정한 유토피아에 이르는 삶의 길임을 암시한다.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사람들이 더 많은 물질을 얻기 위해 무한경쟁을 하는 동안 소외와 고독, 그리고 인간성 상실이라는 질병이 만연되었다. 박 시인은 그런 부정적 현실을 직시하면서 진정한 삶의 길을 찾아 가려는 치열한 자세를 보여 주고 있다. 우선 박 시인은 그 혼탁한 세파 속에서 흔들리는 자신의 존재를 점검하고 내면을 성찰한다.
늘 타고 다니던 승용차 “트렁크”를 열어 보니 차를 몰며 외출할 때 필요한 여러 가지 도구들이 일상용품들이 들어 있다.(「내 트렁크엔 무엇이 들어 있나」) 뿐만 아니라 그 속엔 “슬쩍 해 온 솔방울, 낡은 목장갑, 몇 년째 사용하지 않은 아이젠 한 벌, 미라가 되어 있는 각시붕어 한 마리” 등 이미 버려야 했던 것들까지 들어 있다. 언제 정리했는지도 모르고 무겁게 싣고 달려 온 그것들은 무조건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현대인의 탐욕과 그것 때문에 느끼는 불안을 잘 보여 준다. 그리고 “잡동사니”가 가득한 ‘트렁크’는 타자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이라 착각하고 사는 현대인의 내면을 대신한다. 화자가 “트렁크 바닥의 깔판”을 걷고 “쪼그린 사내 하나”를 발견하는데 그는 곧 헛된 욕망의 대상을 좇아 불안하게 속도를 더해 오는 동안 소외되어 있던 진정한 자아의 실체이다. 그 “쪼그린 사내”는 시 「빛은 어디에」에서 “거미줄을 헤치며/ 음습한 공기를 밀어내며“ 빛을 찾아 동굴을 벗어나려는 사내로 구체화된다.(「빛은 어디에」) 박쥐가 사는 그 동굴에서 사내는 ”돌모서리에 부딪혀/ 검붉은 피가 이마에 흘러“도 오직 빛이 들어오는 입구를 찾아 걸음을 옮긴다. 즉 진정한 자아를 찾아 자유로운 주체가 되어 현실로 진입하기 위해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자아의 참모습을 찾던 시인은 어둠 속에서 비틀거리다 거울과 마주한다.
산등성이에 걸려있는 달빛을 바라보며
거울 속 얼굴이 히죽히죽 웃기 시작한다.
천둥소리가 번갯불이 쨍그랑
거울을 깨뜨린다.
조각난 칼날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간다.
번뜩이는 빛 속에서 신음소리가 굴러 나오고
깨진 칼날들이 납작 엎드린다.
검은 강도 승냥이도 히죽히죽 웃는 얼굴도 칼날까지
두 눈이 다 보았다.
-「거울」 일부
거울 속엔 “충혈 된 분노”가 있고, “검은 강이 헐떡이”며, “흙빛 바닷물이 넘실”거린다. 그리고 많이 굶주린 “깡마른 승냥이 한 마리”가 비탈길을 올라가는데 눈에는 어둠이 가득 넘친다. 무의식적 욕망의 공간인 ‘거울’ 속에 있는 그러한 이미지들은 곧 헛된 것에 목마른 자아의 실체이다. 그리고 거울 속의 얼굴이 웃자 ‘천둥소리가 번갯불’이 거울을 깨뜨리는데 이는 곧 참된 자아를 밀쳐 두고 그 헛된 것을 탐하던 자신을 발견하면서 갈등을 겪는 내면을 암시한다. 사방으로 튕겨 나가는 ‘조각난 칼날들’ 역시 내면의 빈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헛된 욕망의 실체이다. 그렇게 시인은 참된 자아를 찾아 진정한 주체로 살아가기 위해서 헛된 욕망으로 가득한 거울, 즉 환상을 타파하고 있다.
그렇게 참된 자아를 찾던 박 시인은 고향으로 떠나는 배에 오르는데 이 역시 그러한 정신적 노력의 일환이다.(「고향길 뱃전에서」) 고향 “산두”에 이르러 “꼬막껍질처럼 모여 있는 집들”이 보이자 시인은 옛날로 돌아가 다시 “까까머리”가 된다. “감꽃이 만발”하고 “백년초가 손을 내미”는 그곳에서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굴렁쇠를 돌리고 제기를 차며 동심을 키우던 친구들의 모습이 파도처럼 일렁이다 사라진다. 고향을 떠나 욕망이 뒤얽힌 삶의 현장에서 보낸 “세월이 늦가을 호박넝쿨 같다는 생각뿐”이다. 그러나 시인은 살 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져 만날 수 없는 옛 친구들을 잊지 않으리라고 다짐한다. 고향을 떠나 살다가 지치고 외로울 때 그들에 대한 기억을 “곶감처럼 빼먹으며” 힘을 얻곤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귀향은 박 시인에게 존재 기원이요 거울인 고향에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확인하고 참된 자아를 찾아가는 마음의 여행이다.
한편 박 시인은 어두운 현실에 살면서 시를 쓰며 시인으로 살고자 하는데 이 역시 참된 자아를 찾고 지키는 방식이다.
“알바생 길거리 주검 성폭행 용산참사” 등은 인간의 소외와 단절이 심화되고 인간성이 사라진, “토네이도 몰아친 들판”처럼 황량한 삶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그러나 박 시인은 작은 가슴으로나마 “남쪽 향해 뻗어가는 호박넝쿨 같은 사람들”의 소박하고 순결한 꿈을 품어 주기 위하여 시를 쓴다. 그리고 아픔과 울음을 춤으로 풀어낼 춤판을 찾는 춤꾼처럼 그들과 함께 살 수 있는 “푸른 세상”을 찾아 그 “들판 한 모퉁이”에서 “들꽃”을 가꾸고 싶다고 한다. 그렇게 시인으로서의 꿈을 갖고 있는 박 시인은 춘흥을 못 이겨 집을 나가서 “희희낙락 봄 산천을 휘젓고 다니”는 마누라를 찾아 그 “속내를 베껴내”는 것이 곧 시를 쓰는 일이라고 한다.(「시가 이 봄에」) 그것은 곧 일상의 억압을 벗어나 “한 마리 새가 되”어 자유를 누리는 것임을 암시한다. 그리고 시가 그리운 날에는 “색색의 집게에 비둘기, 은행잎, 수 국, 해파리, 물뱀, 백합”과 같은 옷을 빨랫줄에 걸어 놓는데 그 이미지들은 시인이 쓴 시이자 참된 자아의 실체이다.(「시가 그리운 날은」) 하늘과 땅의 중간이자 실내와 실외의 경계에 있는 빨랫줄에 그것들을 걸어놓는 것은 현실을 벗어나 더 나은 가치가 있는 세계를 지향하는 시인의 내면을 암시한다.
‘빨랫줄’이 내포한 수직적 상승과 수평적 확산의 의미는 박 시인의 시에서 다양한 이미지로 형상화되며 새로운 세계를 향한 시인의 꿈을 암시한다. 시인은 “고천암호 가창오리”들의 작은 몸짓이 “모여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오르며/ 큰 깃발이 되어” 펄럭이는 것을 본다. 무리를 이루며 수직으로 상승하는 ‘가창오리떼’는 화합과 자유를 꿈꾸는 시인의 내면을 암시하는 객관적 상관물이다.(「고천암호에 흔드는 깃발」) 그리고 “장대높이뛰기”를 하며 허공을 향해 솟구쳐 오르는 모습을 “더 높은 곳을 향한 투혼의 날갯짓/ 한 마리 새”에 비유한다.(「장대높이뛰기」) 그리고 “창신동 산6번지”에서 동쪽에서 해가 솟아오르는 시간이면 아예 그 해, “붉은 새”를 먹어치우고 “온몸이 불덩어리”가 되기도 한다.(「붉은 새 먹어치우던 아침」) 그리고 벽을 넘고 있는 담쟁이넝쿨을 “푸른 화살”에 비유하며 그 땀 냄새를 맡는다. (「담쟁이넝쿨이 벽을 넘어간다」) “음지가 고향”인 그것은 어둠 속에서 길을 잃으면 “눈을 부라리고” 새처럼 “푸른 날갯짓”을 하며 “푸르게 날아가”는 것을 본다. 이처럼 박 시인은 지상에 발을 붙이고 사는 사람과 달리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는 새의 이미지로써 어두운 현실을 극복하고 이상적인 세계를 향하려는 욕망을 반복적으로 보여 준다.
뿐만이 아니라 “총소리와 피 냄새를 등에 지고 언덕길을 오르는 낙타들”이 사는 아프카니스탄에서 이주해 와 “옥탑방”에 살고 있는 외국인이 오카리나를 부는 장면을 묘사 하고 있다.
그 사람이 입술을 모으고 오카리나를 불면
나는 그럴 때마다
나무 하나 없는 산악지대가 떠오르고
내 마음은 동굴 속처럼 어두워진다.
멀고도 가까운 그 사람의 나라 아프가니스탄이 생각나는 것이다
총소리와 피 냄새를 등에 지고 언덕 오르는 낙타들
거꾸로 총을 매고 낙타 뒤를 따르는 남자들
온몸에 달빛을 휘감고 오카리나 불던 어느 날
그 사람은 동굴 속처럼 깊고 촉촉한 눈빛으로
그 사람 고국에 대해 말해 주었다
그곳은 달빛 속으로 낙타가 걸어 들어가는 사막도 있지만
아무다리야강, 하리강, 헬만드강, 카불강도 흐르고 있다고
하얀 이를 드러내 보여주면서도
그 사람은 손등에 박혀 있는 비둘기 모양의 흉터에 대해서는
결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다만, 눈가에 달빛 같은 미소만 흘려주었다
그 사람이 부는 오카리나 소리를 들으면, 가끔
내 마음 속 담쟁이넝쿨도 푸르게 바들거린다.
-「오카리나 부는 사람」일부
그 ‘옥탑방’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살고 있는 집의 옥상에 있는, 지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고 하늘과 가까운 곳이다. 즉 아픈 현실과 꿈의 세계의 중간에 있어서 두 곳을 쉽게 이어주는 사다리 역할을 하기에 적합하다. 그 옥상의 난간을 잡고 “푸른담쟁이넝쿨”이 자라는데 그도 역시 난간에 기대어 오카리나를 분디. 그 “열두 구멍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들”은 무의식의 “동굴” 속에 잠재된 그 “사람의 꿈”이다. 그가 손등에 난 ‘비둘기 모양의 흉터’가 암시하는 마음의 상처를 다스리며 ‘달빛 같은 미소만 흘’릴 수 있는 것도 오카리나 덕분일 것이다. 그런데 오카리나 소리를 듣고 있으면 화자의 마음 속에서도 “담쟁이넝쿨이 푸르게 바들거린다”는 것이다. ‘푸른담쟁이넝쿨’은 전쟁이 준 상처를 아름다운 음악으로 승화시키는 외국인 그리고 그의 오카리나 소리와 비유적 관계를 맺으며 그를 바라보고 있는 박 시인의 욕망을 대신 보여 준다. 외국인이 전쟁이 준 상처를 극복하고 평화롭던 옛 고향을 그리며 오카리나를 불듯이 고향 섬마을을 떠나온 박 시인은 전쟁터 같은 현실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시를 쓰는 것이다. 그러한 박 시인 역시 때로는 육지 속에서 “고독한 섬”이 되어 하모니카를 불며 “어깨 위에 까치 한 마리를 불러 앉히”기도 한다.(「나는 때로 하모니카를 분다」) 개별자인 인간은 아무리 육지에서 이웃들과 함께 살아도 누구나 숙명적으로 고독한 존재임을 알기 때문일까. 박 시인은 이제 하모니카 음계를 따라 기차를 타거나 자전거 바퀴살을 굴리며 “태초의 섬”, 즉 떠나온 고향과 같은 낙원으로 다시 돌아가는 환상에 젖는다.
그런데 박시인의 걸어온 삶의 여정은 늘 순탄하지만은 않았나 보다. “땡볕인데 칼바람”이 부는 어느 날 두 뺨을 맞고 방바닥에 나뒹굴다가 “똥개마냥 뛰”어 골목길로 달아났다.(「가출」) 엄마가 가지 말라고 울부짖으며 따라와도 “유리조각에 발바닥이 베”인 채 달리다 “쓰레기더미 가득한 막다른 골목길”에 이르렀다. 그 절망의 어둠 속에서 울며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올려다보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꾸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달빛이 밝은 밤에 집 마당으로 들어서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네 이년 이리 나와”라는 폭언에 숨이 막힌 화자는 그날부터 어지러운 집안 사정을 감지하고 차마 “일기를 쓰지 못했다”고 한다.(「그날 밤」) 그런 자신을 대신하여 귀뚜라미가 밤새도록 울어 줄 뿐 박 시인은 “애기구름 한 점 울면서 바다를 건너가”는 것을 보았다. 그 달밤에 집안에서 일어난 사건과 앞의 시에 나타난 ‘가출’은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박 시인은 철가방을 들고 배달을 가던 “열네 살 3월”의 아픈 체험적 진실을 고백하고 있다.
그 꽃들의 웃음소리와
두둑한 책가방을
내 가슴 속으로 끌고 와 꼬옥 안아보았습니다
겨우내
기다리던 나의 봄은
동상이 걸려 진물이 나고
철가방은 녹슬지 않으리라는 것을
순간,
저 나락으로
별빛이 뛰어 내렸습니다.
-「유서」일부
철가방을 들고 연탄공장으로 배달을 가다가 “학교 교문에서 세라복의 웃음꽃”을 보며 얼마나 부러워했을까. 화자는 그 꽃들의 웃음소리와 책가방을 가슴에 끌어와 안고 겨울밤의 맹추위를 견디며 새 봄을 기다리기도 했다. 그러나 봄이 와도 그 철가방을 놓을 수 없고 동상이 걸린 손과 발엔 진물만 흐를 뿐, 부럽고 부끄러워 흘리는 눈물 속으로 별빛이 추락하고 있었다. 책가방 대신 철가방을 매고 겨울 골목을 오가던 그 소년의 모습은 시인 자신의 옛 모습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상처를 다스리며 험한 세파를 헤치던 박 시인은 중년에 이르러 두렵고 설레는 마음을 진정시키느라 “청심환까지” 먹고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보았다고 한다.(「2004년 4월 5일」) 그리고 합격을 한 중년의 사람들과 함께 소주잔을 비우다 가난하여 못 배운 “한의 설움”을 터트리며 “너무 기쁘고, 서러워서” 울기도 했다. 이어서 대학에 진학하여 고향에서 몸으로 익힌 자연의 힘을 회상하고 “흔들리지만 결코 넘어질 수 없는 촛불의 힘”을 믿으며 “책가방을 움켜쥐고 응암동 고갯길”을 오르내렸다.(「대학 시절」) 그 ‘촛불’은 어릴 적에 받은 심리적 외상을 오히려 향학의 열정과 아름다운 시로 승화시켜 온 박 시인의 내면을 잘 암시해 주고 있다.
한편 박 시인은 말을 타고 안개가 길을 가린 자갈밭을 지나며 꽃을 휘어잡았는데 그 꽃들의 비명을 호탕한 웃음으로 재우며 달린 ‘그’의 내력을 그리고 있다.(「되돌아갈 수 없는 마을」) ‘그’는 마침내 낙엽이 지고 산새 소리도 들리지 않는 외진 산길에 이르자 어느 새 “겨울의 초입”인데 비로소 “되돌아갈 수 없는 마을”에 들어선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는 억센 자신의 손에 꺾인 채 자신과 함께 달려와 “말 잔등에 붙어 껌벅거”리는 “마른 꽃잎”을 보며 어깨를 들썩이고 있다. 그는 부지런히 달려온 길을 되돌아보며 험한 여정에 동행을 해 준 그 “마른 꽃잎”을 발견하고 뉘우침과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박 시인은 말을 타고 달려온 ‘그’를 통하여 자신의 삶을 겸허하게 돌이켜보는 것이다.
시를 쓰고 새가 되어 어두운 현실의 벽을 넘어 자유와 생명이 넘치는 세계를 향하려는 시인은 집을 수리하고 지어 그 이상향을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박 시인은 우선 낡은 집을 다시 수리하여 살고자 한다.(「낡은 집 리모델링 제안서」) 시인의 정신을 대신하는 공간인 집에는 ‘코스모스, 튤립’ 등의 고운 꽃무늬로 문과 벽을 장식하고 “소나무 한 그루와 비단 구렁이”를 그려 넣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토끼를 키우고, 실비어꽃밭을 가꾸며, 어릴 적 담장에서 피던 호박꽃을 피우고, 반딧불이를 찾는 사슴의 발길을 보고 싶어 한다. 그렇게 박 시인이 유년의 기억 속에 잠재된 이미지들로 새롭게 장식하려는 것은 오염된 세태를 벗어나 순결한 동심으로 되돌아가서 진정한 주체적 삶을 살고자 하는 의도를 엿보게 한다.
박 시인은 더 나아가 동심을 키우던 고향 마을처럼 “갯벌의 잔주름을 바라볼 수 있는” 바닷가 언덕에 “보랏빛” 꿈의 집을 지으려 한다.(「어떤 사람의 집짓기 구상」) 그곳에서 앵두처럼 익어가는 별을 향해 시심의 촛불을 밝히고 ‘촛불의 미학’을 집필한 “바슐라르와 탁사발을 부딪히기도 하면서” 영원한 아름다움에 이르는 길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음표”를 던지고 싶어 한다. 그 때 밤하늘에서는 “느낌표”처럼 유성이 떨어져 내리면 치열하게 거친 세파를 헤치고 온 생의 “마침표”를 어디에 어떻게 찍어야하는가를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결코 넉넉하거나 화려하지 않지만 하늘과 바다와 땅이 조화를 이루는, 그 우주적 질서에 순응하며 영원한 빛의 실체인 별을 보며 살 수 있는 그 집은 곧 박 시인이 지향하는 이상향이다.
박 시인은 고향 섬마을에서 자연의 생명력을 몸으로 체득하며 동심을 키웠다. 그리고 아름다운 정서를 안고 섬을 떠나 각박한 현실의 바위 틈을 가르며 더 깊이 뿌리내리고 시심의 촛불을 밝혀 왔다. 즉 삶의 근원인 고향에서 체득한 정서적 원형을 바탕으로 황량해지는 현실을 직시하면서 그 어둠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내면을 성찰하고 새가 되어 낙원의 집에 이르고자 시를 쓰고 노래를 불렀다. 이 시집은 그러한 박 시인의 치열한 삶의 여정에서 거둔 시의 열매들로 엮은 것이다. 시집에 유달리 ‘푸른’ 빛이 많이 등장하는 것은 시인이 얼마나 고난에 맞서서 진정한 자아를 지키고 생명과 자유가 넘치는 내일을 소망하며 살아왔는가를 엿보게 한다. 그리고 그러한 진정성을 비유적 이미지들로 형상화함으로써 ‘솔 향기’ 같은 진한 시적 미감을 맛보게 한다. 박 시인이 끝내 다음 시가 보여 주는 “빛의 정원”, 그 아름다운 시세계의 주인인 “푸르러진 한 그루 소나무”가 되어 독자들을 초대할 수 있기를 기원할 뿐이다.
보름달 하나가 바다에 뛰어내려
하늘과 바다에 달 쌍둥이로 마주 보고 있다
바닷가 바위 위
실루엣의 스님은 뒷짐을 지고
바다 건너 병풍처럼 드리운 어두운 숲
불빛 없는 작은 집 한 채를 바라보고 서 있다
묵언 정진하는 스님은
어둠 속 먼 곳을 바라보며
무슨 색의 끈을 풀어가고 서 있을까
바닷가
바위틈에 뿌리내려
비바람 파도소리 휘감고 푸르러진 한그루 소나무
지금은, 휘어진 가지에 내려앉은 달빛을 받쳐 들고
스님처럼 묵언 정진 중이다
파도소리조차 달빛 속으로 숨어들은
적요가 숨 쉬는 바닷가
물아일체物我一體의 푸른 밤이
달빛에 일렁이고 있다
-「빛의 정원- 전주엽의 월명화속」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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