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속도 / 장만호
다큐멘터리 속에서 흰수염고래가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
죽어가는 고래는 2톤이나 되는 혀와
자동차만한 심장을 가지고 있다고 나래이터는 말한다
자동차만한 심장, 사람이 들어가 앉을 수도 있는 심장.
나는 잠시 쓸쓸해진다.
수심 4,812미터의 심연 속으로 고래가 가라앉으면서
이제 저 차 속으로는 물이 스며들고
엔진은 조금씩 멎어갈 것이다. 그때까지
마음은 어느 좌석에 앉아있을 것인가.
서서히 한없이, 서서히 죽어가는 고래가
저 심연의 밑바닥으로 30분을 견딜 수 있는 한 호흡의 길이
사이에서, 저 한없이 느린 속도는
무서운 속도다. 새벽의 택시가 70여 미터의 빗길을 미끄러져
고속도로의 중앙분리대를 무서운 속도로 들이받던 그 순간
조수석에서 바라보던 그 깜깜한 심연을,
네 얼굴이 조금씩 일렁이며 멀어져가고
모든 빛이 한 점으로 좁혀져 내가 어둠의 주머니에
갇혀가는 것 같던 그 순간을,
링거의 수액이 한없이 느리게 떨어지는 것을 보며
나는 지금 가물거리는 의식으로 생각하고 있다
마음아, 너는 그때 어디에 있었니.
고래야, 고래야 너는 언제 바닥에 가 닿을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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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만호 1970년 전북 무주 출생. 고려대학교 국어국문과 졸업. 동대학원 국어국문과 재학중. 2001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시 '水踰里에서'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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