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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이 있는 시

무연고자 묘역 / 이시영

by 바닷가소나무 2011. 7. 18.

 

 

      무연고자 묘역 / 이시영

 


  술꾼 김정우가 결국은 거리에서 죽었다고 한다. 몇

달간의 공고 끝에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자 시립묘지 무

연고자 구역에 묻혔다고 한다. 뒤늦게 대학 동기들이 그

의 무덤 자리를 알아내 일 년에 한 차례씩 모이고 있다

고 한다. 역시 뒤늦게 밝혀졌지만 그는 6.25때 남대문

경찰서장의 아들이자 명문 경기고등학교 출신. 그러나

우리에겐 미아리 주점에서 ‘불 꺼진 창’을 잘 부르던 소

설가 지망의 갸름하고 긴 얼굴의 소년. 아니 학교 수업

을 작파하고 온몸으로 술을 마시던 전 존재가 술꾼이던

청년. 학교를 졸업하고는 의탁하고 있던 부천 누나집에

서도 나와 신당동 여관에서 혼자 살며 낮에는 무협소설

을 대필해주고 밤에는 그 돈으로 술 마시는 것이 그의

진짜 직업이었다고 한다.늘 무일푼이 되어서야 자유를

느낀다며 허청허청 을지로 길을 걷던 친구. 죽기 얼마

전에는 사모하던 여자 동창 앞에 새 잠바를 입고 나타나

“현숙씨 땜에 모처럼 새 옷을 입었노라”고 자랑했었다는

친구. 무연고자 묘역에도 봄이 오면 해마다 연한 풀이

푸릇푸릇 돋아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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