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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이 있는 시

뼈저린 꿈에서만 / 전봉건(1928-1988,60세)

by 바닷가소나무 2024. 6. 25.

뼈저린 꿈에서만 / 전봉건(1928-1988,60)

 

그리라 하면

그리겠습니다.

개울물에 어리는 풀포기 하나

개울 속에 빛나는 돌멩이 하나

그렇습니다 고향의 것이라면

무엇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지금도 똑똑하게 틀리는 일 없이

얼마든지 그리겠습니다.

 

말을 하라면

말을 하겠습니다.

우물가에 늘어선 미루나무는 여섯 그루

우물 속에 노니는 큰 붕어도 여섯 마리

그렇습니다 고향이 일이라면

무엇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지금도 똑똑하게 틀리는 일 없이

얼마든지 말하겠습니다.

 

마당 끝 홰나무 아래로

삶은 강냉이 한 바가지 드시고

나를 찾으시던 어머님의 모습.

가만히 옮기시던

그 발걸음 하나하나

조용히 웃으시던

그 얼굴의 빛 무늬 하나하나

나는 지금도 말하고 그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애써도 한 가지만은

그러나 아무리 몸부림쳐도 그것만은

내가 그리질 못하고 말도 못합니다.

강이 산으로 변하길 두 번

산이 강으로 변하길 두 번

그러고도 더 많이 흐른 세월이

가로세로 파놓은 어머님 이마의

어둡고 아픈 주름살.

 

 

어머님

꿈에 보는 어머님 주름살을

말로 하려면 목이 먼저 메이고

어머님

꿈에 보는 어머님 주름살을

그림으로 그리려면 눈앞이 먼저 흐립니다.

아아 이십육 년

뼈저린 꿈에서만 뫼시는 어머님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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