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장다리꽃

괴로움이 꿈틀거릴 때 

by 바닷가소나무 2020. 9. 11.

  빈 깡통을 콘크리트 바닥에 두고 망치로 찌그러뜨린다, 나는 망치를 들고 다니는 건축가이기 때문이다. 내가 새로 짓는 집은 시간이 흐르면 집 모양이 바뀌어 간다 창문이 꽈배기처럼 휘기도 하지만 중간층이 장구모양의 집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이상한 집을 짓는 이상한 건축가라고 수근 거린다 그렇다고 나는 주춤 하지 않는다

 

  보라는 듯이 이번에는 창문이 하늘을 보며 놀고 있는 파란 집을 지었다, 창문도 파랗게 웃었다. 입이 머리통 뒤에 달린 사람들, 눈이 발톱 밑에 붙은 사람들, 그들이 보고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는 대신, 날아가다 똥을 싸고 가는 새들의 몸짓을 볼 수 있고, 웃고 가는 뭉게구름 사시로 쳐다보지 않기 때문이라고 큰소리쳤다, 사람들은 나에게 갸우뚱 건축가라고 한다

 

  내 아버지가 사용하던 사다리는 나선형의 대나무 사다리를 쓰기도 했지만 썩은 물푸레나무로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 위험하다고 했지만 나는 아직도 그것을 사용하고 싶어 한다 망치가 필요 없는 집을 짓고 싶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초승달이 뜨는 밤이면 말했다 망치 같은 연장을 쓰지 않고 초승달 같은 집을 지어서 거기 살고 싶다고,

 

  나는 아버지 유산인 썩은 물푸레나무로 만든 휘어진 사다리를 타고 아버지에게 갔다. 초승달 같은 집에 누워있던 아버지는 눈도 뜨지 않은 채 빨리 내려가라고 했다. 내가 묻기도 전에, 망치로 꿈이 없는 집짓는 것 보다, 푸른 깡통이 열리는 한그루 나무를 초승달이 뜨는 언덕에 심으라했다. 나는 오늘도 빈 깡통을 콘크리트 바닥에 두고 망치로 찌그러뜨리고 있다.

 

 

 

'장다리꽃'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베란다에서 우는 귀뚜라미소리  (0) 2020.09.11
외나무다리를 혼자 건널 때  (0) 2020.09.11
내 젊은 날의 고래사냥  (0) 2020.09.11
저무는 선창  (0) 2020.09.11
파랑새  (0) 2020.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