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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미당 서정주의 친일 행각...

by 바닷가소나무 2013. 1. 14.

미당 서정주, 1915년 일제치하에 태어나 2000년 사망하기까지 80년이 넘게 살면서 수많은 시와 글,

명성, 제자 그리고 논란을 남긴 이 인물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고 판단하며 내일을 맞이해야 하는가?

 

■ 1. 왜 미당이 문제인가?

 

미당은 일생동안 1000여 편의 시와 많은 산문을 남겼고, 그의 시는 한때 중, 고등학교 교과서에

10편 가량의 시가 실리는 등 한국 문학계에 커다란 그림자를 남기고 있다.

물론 민주화가 진척되면서 교과서에서 그의 시가 차지하는 비중은 줄었으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

특히 교수, 시인 평론가 등 우리 사회의 지식층에 있다는 사람들은 그를 20세기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미당 서정주에 대해서는 그의 생전부터 많은 논란이 있어 왔고

그 논란의 중심에는 그의 친일과 친군부 행위,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의 시에 대한 해석이 있었다.

미당의 친일행위는 1966년 임종국의 '친일 문학론'에서 그 작품목록이 밝혀졌고

1986년 김병걸, 김규동의 '친일문학작품선집'을 통해 그 전모가 드러났다.

그리고 그의 친군부행위는 아직 정리되지 않았지만, 전두환을 향한 그의 숭배나 다름없는

찬양의 시들과 행위가 여러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있다.

미당 사후 논쟁의 신호탄으로 고은의 '미당 담론'(창작과 비평사 2001년 여름호)이 발표 된 직후

문정희, 이근배, 이남호씨 등이 미당을 옹호하는 글을 중앙 일간지에 발표했고,

그 후 황현산, 김명인, 김지하, 김진석씨 등에 의해 미당의 정치적 선택과 훼절이 그의 미학적 한계와

밀접한 인식론적 연관성이 있다는 비판적 논의가 발표되면서 미당은 죽어서도 뜨겁고도 슬픈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이 글에서는 주로 미당의 생애와 논쟁이 드러내고 있는 우리사회의 현실의 여러 문제들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 2. 미당의 일생

미당의 광주학생운동과 등단

1915년 전북 고창에서 대지주 김성수 집안의 마름의 아들로 태어난 미당은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고

부안군 보통학교를 거쳐 서울 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광주학생운동 주모자로 퇴학과 편입,

다시 권고자퇴 끝에 만해 한용운의 지인이면서 육당이나 춘원등에게도 큰 영향을 준

석전 박한영의 문하생으로 들어갔다가 그의 권유로 동국대의 전신인 중앙불전에 입학한다.

그후 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벽'이 당선되어 시인이 되고, 그해 11월 김동리, 오장환 등을

동인으로 한 '시인부락' 의 편집인 겸 발행인인 된다.

미당은 학생시절을 회상하면서 한때 사회주의에 빠져 학생운동을 했으나,

미당은 그것은 자신이 사회주의에 어설프게 물든 결과였다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 후 미당은 사회주의 그리고 사회주의와 관련된 예술활동을 비판하게 된다.

 

미당의 친일

미당은 41년 첫 시집 '화사집'을 발표하고 동인지를 내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다가

42년 최재서의 주선으로 '인문사'에 입사해 친일 어용 문학지인 '국민문학'과 '국민시가'의 편집일을

맡게 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친일 문학 작품을 만들어 내게 된다. 목록은 다음과 같다.

<시의 이야기-국민 시가에 대하여(1942, 매일신보, 평론)> <징병 적령기의 아들을 둔 조선의 어머니에게

(1943, 춘추, 수필)> <인보(隣保)의 정신(1943, 매일신보, 수필)> <스무 살 된 벗에게(1943, 조광, 수필)>

<항공일에(1943, 국민문학, 일본어시)> <최체부의 군속 지망(1943, 조광, 소설)>

<헌시(獻詩)(1943, 매일신보, 시)> <보도행(1943, 조광, 수필)> <무제(1944, 국민문학, 시)> <오장 마쓰이 송가(1944, 매일신보, 시)>

미당은 자신의 친일 행위를 일찍부터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친일인사들과는 조금 달랐다.

그가 72년 자서전에서 밝히는 친일의 이유는 국제정세에 어둡고 일제의 선전을 그대로 믿고,

또 전쟁에 나가는 조선사람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렇게 친일을 인정했음에도 그리고 이미 그의 친일작품이 밝혀졌음에도 무슨 이유에선지

그는 83년 자신의 전집에서 연보에는 42,43년을 공백으로 처리하고,

작품연보에서는 단 3편의 친일 작품만을 소개하고 있다. 물론 창피한 일이라서 그랬다고 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자신의 행적과 작품소개에는 모든 기록을 남기는 것이 자신의 과오를 솔직히 인정하는 길이지 않을까?

더구나 그는 84년 9월까지만 해도 자신이 일제 말기에 민족 정기를 지켰노라고 말해왔다고 한다.

그러다가 86년 김병걸의 작업으로 자신의 친일 문학 행위의 전모가 드러나자 드디어 언론과의 인터뷰와

자신의 시(종천순일파?)를 통해 공개적으로 친일행위를 인정했던 것이다.

 

해방과 미당 그리고 이승만

해방이 되었다. 미당이 앞으로 못 가도 200년은 갈 줄 알았다는 일본이 패망했다.

좌, 우의 대립과 새로운 시대를 향한 격동의 시기 미당은 어떤 활동을 했을까?

미당은 주저 없이 우익 문학 진영으로 들어갔다. 그는 해방 후 결성된 '조선청년문학가협회'(46년)와

이 단체가 확대재편 되었다는 '한국문학가협회'(48년)에 각각 시 분과 회장과 시가 분과 위원장을 맡고

있었는데, 이 단체들은 출발부터 해산까지 순전히 공산주의 이론과 공산주의 문학이론을 타도하기 위한 단체였다고 한다.

그 후 미당은 자신의 아버지가 한때 마름을 맡아보던 집안의 도움으로 48년 동아일보의 사회부장을

맡았다가 성격에 맡질 않아 문화부장으로 옮겼다.

또한 미당은 당시 이승만 개인의 선전도구로 쓰여졌던 신문 '민중일보'의 사장인 윤보선의 주선으로

47년부터 이승만의 전기 집필을 시작하였다. 미당은 이승만과 여러 번 만남을 가지면서

그를 통해 새로운 삶에의 용기를 느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작업의 와중에 정부가 수립되자

미당은 새로운 정부를 위해 무언가 좋은 일을 해 보고자 더 높고 더 좋은 자리는 마다하고

초대 문교부 예술 과장자리를 자청하여 맡았다고 밝히고 있다.

 

박정희를 거쳐 전두환 그리고...

이승만이 물러난 후 서정주는 박정희에게 기울여지려고 했으나 박정희는 미당 대신 박목월을 택했다고

한다. 하지만 서정주는 그 당시에도 월남참전을 앞장서서 고무, 찬양했다.

1980년 전두환이 나타나자 서정주는 기다렸다는 듯이 광주학살을 공인하고, 전두환을 단군 이래

5천년 만에 만나는 미소의 인간으로 말하고, 그를 위해 TV지원 연설을 하고,

72세에 56살 전두환의 생일 축시 '처음으로'를 발표하는 등의 활동을 벌이게 된다.

서정주는 이에 그치지 않고 당시 정권에 저항하던 민중문화운동을 비난하며 86년 '문학정신'이라는

잡지를 만들어서 민중문학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민중의 개념을 공산주의와 연관시키기도 하였다.

미당은 또다시 전두환의 4·13호헌 조치를 구국의 결단으로 치켜세웠지만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미 한국 사회의 민주화는 막을 수 없는 일이 되었다.

그 후 미당의 정치적 행위에 대해서 내가 별로 아는 바가 없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 사이에 

별다른 문제 거리로 제기되지도 않았다. 다만 그의 시집은 그의 나이가 80이 넘어서 까지 꾸준히 발간되었다.

 

■ 3. 미당 논쟁이 드러내는 우리 사회의 단면들은 무엇인가?

한 인간은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사회적이고 그렇기 때문에 한 인간의 역사는 그 인간이 살았던

역사적 상황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일제치하, 군부독재 아래서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현실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하지만 한 인간은 사회적이면서 동시에 개인적이기도 하다.

인간은 현실 속에서 살지만 현실은 다양한 모습과 과정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인간의 삶도 여러 가지 조각들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미당은 오래 살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삶속에는 한국의 근,현대사의 여러 단면들이 담겨있다.

여기서는 미당이 드러내는 우리사회의 단면에 대해 논해보겠다.

 

친일, 친독재. 권력을 향한 해바라기

우리 사회에서 친일파와 친군부 세력이 아직도 득세하는 현실 속에서 미당은 자신의 죄를 쉽게

그리고 정확히 밝히지 않았다. 그리고 문제는 이러한 사람들이 미당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과거가 청산되지 못하고 책임지지 않는 사회가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

 

예술과 사회. 순수하지 못한 순수문학

생명과 영생을 노래한 시인이 동시에 전쟁을 고무하는 글을 쓸 수 있다는 모순을 보여주는 사람이

바로 미당이다. 미당이 말하는 순수 문학이란 무엇인가?

거칠게 말해서 그것은 현실에 대한 인식의 부재 속에서 추구하는 진리, 영혼 같은 고급의 쾌락과 맞닿아 있다.

 

저자와 텍스트. 저자 없이는 텍스트도 없다.

저자와 텍스트를 분리시켜서 보려는 이른바 분리주의 미학론으로 미당을 옹호하려는

일군의 미당의 제자들은 저자와 텍스트의 분리가 어떤 경우에는 물론 가능하지만 미당의 경우는

올바르지 않다는 고은의 주장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만해 한용운의 시를 조국의 해방을 뜻한다고

해석할 수는 있지만 서정주의 시는 결코 그럴 수 없다.

 

금관문화훈장, 문학상, 그리고 미당의 제자들. 문화권력의 형성과 그 영향력

미당이 사후에 받은 금관문화훈장과 중앙일보가 제정한 미당 문학상을 보면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생각들이

앞서 말한 분리주의 미학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인은 시로만 평가받아야 한다는 미당 옹호론자들은 미당의 가미가제 찬양, 월남전 파병 지원,

산업역군 독려, 그리고 전두환에 대한 숭배의 시를 보지 못했단 말인가?

미당의 제자들과 그의 옹호론자들은 어쩌면 미당을 옹호함으로써 자신들의 철옹성안에서 순수 예술,

고급 예술, 책임 없는 예술을 하면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건지도 모른다. 현재 미당논쟁에 대해 접했던

사람은 얼마나 되고, 그 중에 미당의 잘못된 행위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미당이 차지하는 위치에 비해 미당에 대한 비판논의가 너무 적은 것이 아닐까?

 

민족문학?

미당에 대한 평가 중에 그가 모국어를 아름답게 했다는 말이 있다. 어떤 사람은 한국어는 미당으로 인해

축복 받았다 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시인이 언어를 다루기는 하지만

그에 대한 평가 기준을 모국어를 아름답게 했다, 안했다 같은 곳에 두는 그릇된 민족주의의 시각으로는

일제교육을 받은 미당의 시속에 일본적인 상징표현과 성격이 들어있다는 일면 타당한 주장을 포용할 수 없다.

예술은 국경을 초월할 수 있다.

 

■ 4. 미당 논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나는 지금 미당에 대한 논쟁과 비판의 글을 쓰지만, 그렇다고 미당의 시를 쓰레기로 매장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봐도 미당의 시는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에서 말한 것들과는 달리 미당은 정말 보통사람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런 점을 황동규 시인은 미당이 정치에 종속되는 샤머니즘적 성격을 가지고 있고 그 때문에 정치적 실수를 했고,

또 그렇기 때문에 그의 시가 좋다고 주장한다.

물론 나는 이런 이유로 황동규 시인처럼 미당의 죄를 덮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미당이 독특하고 개성있는 성격과 뛰어난 시상을 지니고 있다는 것도 인정한다.

또한 위에서 순수문학을 비판하고 저자와 텍스트의 분리를 비판했지만,

인간본성과 인간성을 뛰어넘으려는 순수문학을 인정하고 저자와 텍스트의 분리도 가능하다고 본다.

저자가 범죄자라도 그의 그림이 아름답지 못하다고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술은 예술이다.

마지막으로 미당의 제자들이 미당을 옹호하는 것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감정은 때로 이성을 마비시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의 위치와 능력을 고려할 때

그러한 지적인 파탄이 의아할 뿐이다.

 

미당은 뛰어난 시인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지조 없이 항상 이기는 편만 드는 비겁한 기회주의자였다.

이러한 미당을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을까?

오히려 그의 시는 이제야 비로소 올바른 평가작업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김화영 교수는 말했다. '미당의 시에 대한 평가는 이미 끝났는데 사람들은 미당의 삶만을 가지고 문제로 삼지

올바른 텍스트 비평은 내지 못한다'고 하지만 어느 누가 세익스피어나 이태백에 대한 평가가 끝났다고 말하는가?

더 이상 살펴볼 곳이 없다면 미당의 시는 유치한 졸작일 뿐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진정한 미당 비평, 사회와 예술의 분리, 저자와 텍스트의 분리, 민족국가간의 분리의 벽을 부수는 작업은

방금 시작되었고,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이미 고인이 된 사람이지만 그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본다.

(씨알두리 작은 모임 카페 자료실 에 그의 친일시 '마쓰이 히데오 송가'와 전두환 탄신 56회 축시 '처음으로'의 전문이 있으니 참고하시오.)

 

 

 

마쓰이 히데오 송가

              

                                                                                                   서 정주

 

 

 

    
                                              아아 레이테만은 어데런가
                                              언덕도
                                              산도
                                              뵈이지 않는
                                              구름만이 둥둥둥 떠서 다니는
                                              몇천 길의 바다런가

                                              아아 레이테만은
                                              여기서 몇만 리련가......
                                             
                                              귀 기울이면 들려오는
                                              아득한 파도소리......
                                              우리의 젊은 아우와 아들들이
                                              그 속에서 잠자는 아득한 파도소리......

                                              얼굴에 붉은 홍조를 띠우고
                                              '갔다가 오겠습니다' ..
                                              웃으며 가드니
                                              새와 같은 비행기가 날아서 가드니
                                              아우야 너는 다시 돌아오진 않는다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오장 우리의 자랑.
                                              그대는 조선 경기도 개성 사람
                                              인씨(印氏)의 둘째 아들 스물한 살 먹은 사내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가미가제 특별공격대원
                                              귀국대원

                                              귀국대원의 푸른 영혼은
                                              살아서 벌써 우리게로 왔느니
                                              우리 숨쉬는 이 나라의 하늘 위에
                                              조용히 조용히 돌아왔느니

                                              우리의 동포들이 밤과 낮으로
                                              정성껏 만들어보낸 비행기 한 채에
                                              그대, 몸을 실어 날았다간 내리는 곳
                                              소리 있이 벌이는 고흔 꽃처럼

                                              오히려 기쁜 몸짓 하며 내리는 곳
                                              쪼각쪼각 부서지는 산더미 같은 미국 군함!

                                              수백 척의 비행기와
                                              대포와 폭발탄과
                                              머리털이 샛노란 벌레 같은 병정을 싣고
                                              우리의 땅과 목숨을 뺏으러 온
                                              원수 영미의 항공모함을
                                              그대
                                              몸뚱이로 내려져서 깨었는가?
                                              깨뜨리며 깨뜨리며 자네도 깨졌는가-

                                              장하도다
                                              우리의 육군항공 오장(伍長) 마쓰이 히데오여
                                              너로 하여 향기로운 삼천리의 산천이여
                                              한결 더 짙푸르른 우리의 하늘이여

                                              아아 레이테만은 어데런가
                                              몇천 길의 바다런가

                                              귀 기울이면
                                              여기서도, 역력히 들려오는
                                              아득한 파도소리......
                                              레이테만의 파도소리......

 

 

 

출처 : 내사랑 명지
글쓴이 : 신선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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