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데[Emil Nolde]
본명은 Emil Hansen.
1867. 8. 7 독일 보홀트 근처 놀데~1956. 4. 15 니뷜 근처 제뷜. 독일의 표현주의 화가·판화가·수채화가. |
격정적인 종교화와 불길한 분위기를 담은 풍경화로 유명하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젊은시절 목각사(木刻師)로 일하며 생활했다. 정식으로 미술공부를 할 수 있었던 때는 그 초기 작품 중 몇 점이 엽서로 제작되어 팔렸을 때뿐이었다. 파리에서 표현주의 화풍과 유사한 작품을 그리기 시작했다. 1906년 브뤼케파에 가입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드레스덴에 근거지를 둔 표현주의 미술가들의 모임인 이 단체는 놀데의 '색채의 폭풍'(Storm of Colour)을 극찬했지만 직관적인 외톨이 화가 놀데는 1년 반 뒤 결속이 강했던 이 단체를 탈퇴했다.
종교에 열광하고 죄의식에 괴로워한 그는 〈황금 송아지를 에워싼 춤 Dance Around the Golden Calf〉(1910, 뮌헨에 있는 바이에른 국립회화미술관)·〈알렉산드리아 항구 In the Port of Alexandria〉와 같은 작품을 제작했다. 〈알렉산드리아 항구 In the Port of Alexandria〉는 연작 〈이집트인 성모 마리아의 전설 The Legend of St. Maria Aegyptica〉(1912, 함부르크 미술관) 중의 하나인데, 이 연작은 등장인물들의 에로틱한 광란, 그리고 악마 같고 가면을 쓴 것 같은 얼굴들을 거친 도안과 조화되지 않는 색조로 그렸다. 9폭의 폴립티크(polyptych:성단의 배후 등에 4패 이상의 패널을 이어 맞춘 화상)인 〈예수의 생애 The Life of Christ〉(1911~12, 제뷜 아다와 에밀 놀데 재단) 중 〈의심하는 도마 Doubting Thomas〉에는 예수의 상처를 보고 도마가 느끼는 경건한 두려움을 통해 종교적 회의에서 벗어나려는 그 자신의 고민이 표현되어 있다. 1913~14년 그는 민족학 탐험대의 일원으로 동인도에 갔다. 그곳에서 그는 소박한 신앙에 감명을 받고, 그 느낌을 석판화 〈무희 Dancer〉(1913)에 표현했다.
유럽으로 돌아온 놀데는 독일의 발트 해 연안에서 은둔생활에 들어갔다. 안개 자욱한 그 지방에 신비스러운 매력을 느껴 〈습지 정경 Marsh Landscape〉(1916, 스위스 바젤 미술관) 같은 작품을 그렸는데, 검은 구름으로 뒤덮인 낮은 수평선이 장엄한 느낌을 준다. 1916년 이후에 그린 풍경화는 초기 작품보다 전반적으로 더 차가운 색조를 띤다. 그러나 능숙하게 그린 꽃 그림들은 초기 작품의 화려한 채색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판화 작품을 많이 만들어냈는데, 특히 거칠게 새긴 목판화의 강한 흑백 효과가 뛰어나다.
놀데는 처음에 나치를 지지했는데 나치는 정권을 잡자 그의 작품을 '퇴폐적'이라고 규정하고 작품활동을 중지시켰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이전의 주제를 반복하는 데 그쳤다. 마지막 작품인 〈자화상 Self-Portrait〉(1947, 제뷜 아다와 에밀 놀데 재단)에는 여전히 힘찬 화필의 자취가 남아 있기는 해도 만년에 노예술가의 식어버린 열정이 여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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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에로와 여인들1917
손년과 큰새 1912
캔들 댄서1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