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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자료

[스크랩] 조선시대 우리나라 성풍속도(김홍도)

by 바닷가소나무 2006. 1. 28.




조선시대 춘화의 성격을 종합해 보면 몇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건강하다는 점이다.

우수한 조선시대 춘화의 어디에도 변태적이거나 부조화적인 성은
 
발견할 수 없다.

이는 성을 자연의 섭리로 받아들이고, 생명의 원천으로 받아들인
 
결과로 해석된다.

모든 춘화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단원 김홍도의 도장이 있는 춘화첩은
 
거의 모든 장면에서 자연 경물에 음양적 성격을 부여해놓고 있다.

이러한 도상적 특징은 한국 춘화에서만 발견되는 유일한 예이며,
 
그것은 바로 도교적 자연관과 우주관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단원의 ‘월하연인(月下戀人)’을 보자.

달 밝은 밤에 두 남녀가 사랑을 나누고 있다.

돗자리를 깔고 방사(房事)가 아닌 야외 정사를 치르고 있지만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이 그림은 춘화라기보다는 운치 있는 한 폭의 산수화 같다.

실제 손으로 벌거벗은 두 남녀를 가리고 보면
 
아름다운 밤 풍경일  수밖에 전혀 다른 생각이 들지 않는다.

배경의 정물들도 이 그림의 주제인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누는
 
남녀에게로 시선이 집중될 수 있도록 배려돼 있다.

전체적으로 담채와 수묵이 어우러져 담담한 느낌을 준다.

당장 한 편의 시가 읊어질 듯한 서정적인 자연경관을
 
성희 장면과 결합시킨 그림이다.








 



스님과 여염집 여인의 정사 장면을 묘사한 그림에는 소설 같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조선시대 여성에게 아들을 못 낳는 일은 칠거지악(七去之惡)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깊은 산중으로 부처를 찾아가 백일 치성을 드리고 수태,
 
대를 잇는 기쁨을 얻는다는 것이다.

결혼 10년이 넘도록 애를 갖지 못한 여성이 백일 치성으로
 
아이를 얻는 기적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여성이 백일 치성을 드리는 동안 이 여성의 행동을 지켜볼 수 있는 사람은
 
스님뿐이다.

불공을 드리면서 정담도 나눌 수 있다.

깊은 산속 절간에서의 이들의 만남은 큰 인연이다.

100일은 길다면 긴 시간이다.

배란기를 맞춘 마지막 치성. 탑돌이로 여성의 정신을 뺏는다.

두 손을 모으고 오직 아들 낳기만을 빌면서 수십,
 
수백 바퀴를 돌고나면 핑하고 어지럼증이 온다.

기를 쓰고 몇 바퀴를 더 돌지만 탑이 있는 절 마당에 쓰러지기 마련이다.

여인이 쓰러지기가 무섭게 스님의 손에 의해 인기척이 없는
 
절 방으로 옮겨진다.

이윽고 애를 얻기 위한 숭고한 작업이 시작된다.

여인은 비몽사몽간에 무언가를 느끼고 있지만 노골적인 몸짓은 할 수없다.

그저 눈을 지그시 감고 아무 것도 모르는 체
 
스님에게 몸을 맡길 수밖에 없는 일….

이 긴장감이 출렁이는 순간, 가만히 발을 밀치고
 
아무도 보아서는 안되는 장면을 동자승이 훔쳐본다.

이것이 ‘스님의 밀교(密交)’를 그려낸 소설 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이 춘화는 스님과 여인의 표정보다도 동자승의
 
훔쳐보기가 압권이다.

조선시대 춘화는 배경을 이루는 자연 경관뿐 아니라,
 
행위가 벌어지는 주변의 경물도 의미 없이 등장하는 법은 없다.

절구와 절굿공이가 있는가 하면, 참새나 개의 교미 장면을
 
살짝 곁들임으로써 강하게 암시하는 수법도 흔히 사용된다.

‘스님의 밀교’에서 동자승처럼 하녀나 시동이 남녀의 정사를
 
엿보는 장면을 심심찮게 등장시켜 그림 보는 재미를 돋워준다.

조선시대 춘화가 외설 차원으로 떨어지지 않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춘화는 성 유희 장면을 담고 묘사하면서도
 
그 장면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반드시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특징을 지닌다.

당대 사회에서 일어났을 법한 이야기들,
 
이를테면 한량과 기생의 관계 같은 것을 묘사한 일반 풍속화로
 
여겨지는 것이다.

초롱을 들고 기생집을 찾아온 한량이 방에 들어서자마자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장죽을 물고 누워 있는 기녀에게로 달려간다.

성급히 달려가는 한량의 몸짓도 우습지만
 
한량의 급한 마음을 알아차리고 반라로 누워 있는
 
기생의 표정 또한 재미있다.

속고쟁이가 없이 겉치마만 걷어 올려
 
당장이라도 일을 치를 수 있게 준비를 완료한 기녀의 속셈은 어떤 걸까….

님 오시기만 기다리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등불을 들고 오면서 기녀와의 이런저런 정사를 생각했을
 
한량의 다급함은 얼른 이해가 되지만
 
좀처럼 기녀의 담뱃대에 대한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는다.

기녀도 담배를 피우면서 님 오시기를 학수고대했다는
 
해설이 가능할것 같다.






나지막한 촛대에 촛불을 밝히고 두 여인이 춘화를 감상하고 있는
 
혜원의 그림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약간 상기된 얼굴로 춘화를 바라보는 왼쪽 여인의 거친 숨결에
 
촛불이 휘날리고 있다.

일그러진 촛불의 묘사는 여인들의 흥분감을 묘사하기 위한
 
화가의 또 다른 배려일 것이다.

이처럼 직접화법으로서 춘화가 있는가 하면 간접화법으로서
 
춘화도 얼마든지 있다는 걸 우리 선조들은 대조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18세기의 진경산수(眞景山水)나 풍속화가 이룩한
 
독자성과 마찬가지로 춘화 역시 중국 것과 다른
 
조선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조선의 춘화는 중국 춘화의 도상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조선의 성풍속을 짙게 반영하고 있어 회화적인 가치를 지닌
 
미술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 풍속화로 엿보는 선조들의 성 ◈


그림은 김홍도/최우석의 작품입니다

 
 
 
 


 
가져온 곳: [동해바다]  글쓴이: 동해바다 바로 가기
 

 
출처 : 블로그 > waterstonekang | 글쓴이 : waterstone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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