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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자료

[스크랩] 옛날모습

by 바닷가소나무 2006. 1. 28.
 

1900년 초반 서구에서 생산된 엽서다. 엽서는
서울에서 상하이를 거쳐 프랑스 파리로
날아갔다. 앞면에는 거리 풍경과 조선인 여성의 전형적
이미지인 장옷을 입고 외출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또한 사진 속에서 초기 사진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풍속 사진이나 풍속 엽서들이 사진관에서
생산되고 판매되었을 것이다.



아리랑은 한국인의 정서를 반영하는 대표적인 민요다.
특히 가사와 곡조에서 느껴지는 비애는 마치 한국인만의
본질적인 민족성처럼 인식되어 있다.
그러나 숙명적 비애의 정서는 식민지라는
역사적 상황과 관련된 것으로 불과 1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많은 신문과 잡지에서
망국의 한을 빗댄 애처롭고 구슬픈 한국인의
정서를 공공연하게 조장했으며, 식민지배자 역시
‘지배받을 수밖에 없는’ 민족적 슬픔을 적극 전파했다.
이 사진엽서도 기생이미지와 나란히
아리랑의 가사를 적어놓음으로써 가련하고
애처로운 조선인의 이미지를 창출하는 데 일조했다

짚신을 가득 지게에 싣고 있는 지게꾼과 목에 짚신
다발을 감고 있는 소녀. 거리를 지나던 사진가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는 그들을
멈추게 하고 사진을 찍었을 것이다. 남자와
소녀는 카메라를 피해 살짝 시선을
아래로 향하고 있다. 산더미처럼 ?인 짚신
다발을 힘겹게 지고 있는 모습은 하류층
남성의 이미지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풍속 사진. ‘조선 풍속’
엽서에 실린 사진 중 상당수는 스튜디오에서
조선인 모델을 고용해 찍은 것으로 추측된다.
무대 배경에는 서구식 장식물이 등장하고
조선인 모델들은 촬영자의 의도에 맞게
연출되어 풍속 이미지로 팔려나갔다.



길가에서 슬피우는 귀뚜라미 소리
사라져간 옛 것은 아름답고 그리워
우리들 고향은 멀리 먼 고려라고 부르는 나라랍니다.
그곳에서 태어난 두견새는 여름에도 구슬피 운답니다.



북해도 박람회와 조선박람회장 전시관에 소개된
조선인 인형이다. 머리 모양과 복장으로
조선인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 엽서는 2년 동안의 식민통치 성과를
가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초가집과 좁은
도로의 이미지는 개발되기 이전의 낙후한
조선이며, 이와 반대로 웅장한 서구식
건물과 넓은 도로, 거리를 오고가는 자동차의
이미지는 근대화된 조선을 강조하고 있다.



이 사진들은 정면과 측면을 촬영해 인종적인
특성을 관찰함으로써 체질 인류학적
연구의 자료로 이용되었다.
조선인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지역,
성별, 계층에 따른 표본을 찍어 분석한 자료의
축적은 식민 정부의 후원 아래 면밀하게 진행됐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인체 측정은 인류학자들이 인종 간의
신체적 특징을 통해 문화적 차이를 강조하고
나아가 문명과 야만을 구분하는 우생학의
근거를 마련한 방법론이었다. 즉 과학이라는 근대 학문의
이름을 빌린 폭력적인 제국주의 문화의
단면을 볼 수 있는 이미지라 할 수 있다.
위 사진처럼 비서구인은 측정의 대상으로서, 서구 문명의
우월성을 증명하기 위한 표본으로 측량 되었다.



카메라와 총은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로 진풀하기 위해 사용한 대표적인
과학의 산물이었다. 총은 식민지를
제압하기 위한 물리적 폭력 수단으로,
사진은 새로운 정복지의 정보를 확보하기
위한 기록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사진에는 카메라로 무언가를 찍고 있는,
총을 든 사람이 보인다. 지배자의 무력보다
더 무서운 것은 학살마저 상품화한,
학살의 현장까지 저들만의 고상한
상품으로 만들어버린 폭력일 것이다.



목에 칼을 쓴 채 물끄러미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세 남자와 살짝 눈빛을 떨어뜨리고
있는 맨발의 소녀. 무엇 때문에 이들은
감옥에 있지 않고 관아의 뜰에 나와 앉게 되었을까?



농부는 고령읍 장터에서 소 네마리를 사던 날,
집으로 향하는 행복한 귀갓길. 마침 비를 만나
비닐을 눌러 쓰고도 싱글벙글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1980년, 경분 고령읍>



썰물 때를 맞춰 바지락을 캐는 짧은 시간, 민첩한
손놀림으로 분주하게 바지락 캐는 일을 마친다.
바지락 가득 담아 돌아오는 길은
고단한 길이지만 그 어떤 비단길보다
아름다운 길이었다. <1996년, 충북 태안군 황도리>



오늘도 해녀는 물질을 하기 위해 바다로 향한다.
일터로 향하는 해녀들의 모습은 넓고 깊은
바다의 마음을 닮아있었다.
<1980년, 경북 포항시 구룡포읍>



바다는 하늘과 구름과 나만이 있는 고요한 일터다.
고기잡이 어부는 뱃노래 흥얼거리며 유유히
노를 저어 포구로 향한다. <1978년, 경남 진해 송정리>

이 사진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풍속 사진엽서다.
'죄인들'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엽서는 관광
기념용 사진엽서 가운데 한 장이며,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을 중심으로
널리 유통되었던 '상품'이다.



할아버지는 노련하게 소를 몰고
아버지는 지게를 지고 어머니는 머리에
광주리를 이고 아슬아슬하게 쌍섶다리를
건너는 정다운 모습. 우리 농촌의 살아가는 모습이다.
<2004년,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출처 : 사오정님의 플래닛입니다.
글쓴이 : 사오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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