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날개를 가지고 있는 것
- 디킨슨 -
희망은 날개를 가지고 있는 것.
영혼 속에 머물면서
가사 없는 노래를 부르면서
결코 멈추는 일이란 없다.
광풍 속에서 더욱더 아름답게 들린다.
폭풍우도 괴로워하리라,
이 작은 새를 당황케 하여
많은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었는데.
얼어붙은 듯 추운 나라나
멀리 떨어진 바다 근처에서 그 노래를 들었다.
그러나 어려움 속에 있으면서 한 번이라도
빵조각을 구걸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디킨슨
다른 표기 언어 Emily (Elizabeth) Dickinson
출생 | 1830. 12. 10, 미국 메사추세츠 애머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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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886. 5. 15, 애머스트 |
국적 | 미국 |
요약 미국의 서정시인.
'뉴잉글랜드의 신비주의자'라고 불렸으며, 시의 운율과 압운을 실험했다.
거의 모든 시가 죽은 뒤에 출판되었다. 에밀리 디킨슨은 3남매 중 둘째였는데, 그들은 모두 어른이 되어서도 우애가 두터웠다. 여동생 래비니아는 가족과 함께 독신으로 지냈고 오빠 오스틴은 에밀리의 친구와 결혼해 옆집에 살았다. 할아버지 새뮤얼 파울러 디킨슨은 애머스트대학의 설립자이며, 아버지 에드워드 디킨슨은 1835~72년에 이 대학에서 회계일을 맡았다. 1853~55년 의회에서 일하기도 한 변호사 에드워드 디킨슨은 엄한 아버지로서 인정없는 편은 아니었으나 거리감이 있었다.
에밀리의 어머니 역시 아이들과 가깝지 않았다.
에밀리는 애머스트 아카데미에서 공부했고, 1847~48년에 '마운트 홀리요크 여자신학교'에 다녔는데 이 학교는 지적 성장뿐 아니라 종교적인 성장도 강조했기 때문에 그녀는 열렬한 기독교인이 되어야 한다는 심한 부담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녀는 이에 저항하여 많은 시에서 신에 대해 다루었지만 평생 회의주의자로 남았다.
이러한 회의 속에서도 강한 종교적 감정에 지배되었으며, 이 갈등이 시에 긴장감을 더해준다.
1850년경 아마도 랠프 월도 에머슨과 에밀리 브론테의 시에 매료되었을 무렵, 아버지의 사무실에서 법률을 공부하는 젊은이 벤저민 F. 뉴턴의 지도를 받아 시를 쓰기 시작했다.
1858년에는 전에 쓴 시 몇 편을 모아 손으로 꿰맨 소책자를 만들기도 했다. 1850년대에 쓴 편지들에는 생기와 유머가 넘치면서 수줍은 처녀다운 면모가 드러난다. 1855년에는 의회에서 일하는 아버지를 만나려고 여동생과 함께 워싱턴 D. C.에 갔다. 여행 도중 필라델피아에 들러 설교를 듣게 된 유명한 목사 찰스 워즈워스는 그녀의 표현대로 '지상에서 가장 소중한 친구'가 되었다. 워즈워스는 꽤 낭만적인 인물로, 큰 슬픔을 겪었다고 알려졌는데 강단에서의 웅변은 그의 외로운 침잠과는 대조적인 것이었다.
에밀리는 그와 영혼의 문제에 대해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그의 칼뱅주의적 정통주의는 그녀의 사색에 유용한 밑거름이 되었다. 그의 단호하고 엄격한 믿음을 통해, 그녀는 에머슨을 비롯한 초절주의자들이 가졌던 자비로운 우주관이라는 안일한 가정을 잘 교정할 수 있었다.
1850년대에 조지아 G. 홀랜드 박사 부부 및 새뮤얼 바울스와 편지왕래를 시작했다.
이 두 사람은 문학에 관심을 두고 시를 싣기도 한 신문 〈스프링필드 리퍼블리컨 Springfield Republican〉의 편집자였다. 이들과는 여러 해 동안 편지왕래를 했는데, 1850년대 이후에는 주로 에밀리의 섬세함과 재치를 이해하는 이지적인 홀랜드 부인과 편지를 주고 받았다. 에밀리는 바울스가 자신의 시에 관심을 갖게 하려고 노력했으나, 예민한 사람이었지만 전통적 문학적 취향을 가진 그는 그녀의 시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으므로 그녀는 큰 충격을 받았다.
시를 점점 많이 써나가던 1850년대 후반경에, 디킨슨은 3통의 편지에서 '선생님'이라고 표현한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다.
이 사람은 이미 알고 지내던 친구들과 일치하지는 않지만 바울스나 워즈워스일 가능성도 있다. 이 사랑은 시 속의 몇몇 행에 나타나는데, 예를 들어 "나는 자유롭다 세상에서 벗어났으므로", "너무 큰 기쁨이네! 매우 큰 기쁨이네", "그대는 감히 백열하는 영혼을 보려는가?" 같은 것들이다. 또다른 시들은 이 사랑의 좌절과 그것이 차츰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되어 그와 영적인 결합을 이루는 것을 보여준다.
1850년대의 시들은 정서나 형식이 꽤 관습적이지만, 1860년부터는 영국 찬송가 작가인 아이작 와츠의 운율과 셰익스피어, 흠정역 성서에 영향을 받았으며 실험적인 언어와 작시법을 구사했다.
에밀리의 대표적인 시형식은 강약격 3음보로 된 4행시로서 집안의 서재에 꽂힌 워츠의 책에 설명된 형태이다. 이밖의 형식도 많이 썼는데, 단순한 찬송가 가사의 박자에도 변화를 부여해 그녀 생각의 보조에 맞도록 빠르거나 느린 또는 망설이는 듯한 운율을 사용했다. 또한 생각과 그 긴장감을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원래의 압운을 변형하거나 파괴함으로써 시의 새로운 기초를 다졌다. 경구적인 간결성을 이루기 위해 쓸데없는 단어는 삭제했으며, 남은 단어들은 생생하고 정확한 것이 되도록 했다.
구문을 자유로이 변경하여 특별한 문맥 속에 평범한 단어를 놓는 것을 즐겨 독자들에게 관심과 신선함을 던졌다. 그녀는 1862년 4월 15일 4편의 시를 동봉한 편지를 문학가 토머스 웬트워스 히긴슨에게 보내 자신의 시가 '살아 있는지'를 물었다.
히긴슨은 시 출판에는 반대했지만 시의 독창성을 인정했고 그뒤에도 계속하여 훈계자 역할을 했다. 1862년 이후 그녀는 시를 발표하라는 친구들의 모든 성의를 물리쳤으며, 그결과 생전에는 불과 7편의 시만 출판되었고 그 가운데 5편은 〈스프링필드 리퍼블리컨〉지에 실렸다.
약 800편에 이르는 많은 시를 쓴 최고 시작기는 남북전쟁 때이다.
시의 소재는 전쟁이 아니라 내면을 향한 것이었지만 전쟁중의 긴장된 분위기는 시작(詩作)의 긴박감을 고무했던 것 같다. 긴장이 가장 고조되었던 때는 1862년으로, 먼 거리와 조국의 위험이 에밀리의 친구들을 매우 긴장하게 만들었다. 당시 새뮤얼 바울스는 건강 때문에 유럽에 있었고, 찰스 워즈워스는 샌프란시스코의 갈보리 교회의 목사가 되어 떠났으며, T. W. 히긴슨은 군대의 장교로 있었다. 에밀리도 눈병이 낫지 않아 1864~65년에 치료를 받기 위해 메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에서 몇 달을 지냈다.
애머스트로 돌아온 뒤 다시는 여행하지 않았으며 1860년대 후반부터는 가족의 농장 주변을 떠나지 않았다.
남북전쟁이 끝난 뒤에는 그리 많이 쓰지 못했으나 더욱더 자신의 삶을 예술의 규율로 조절하려고 했다. 그녀의 편지들은 때로 예술성에서 시에 견줄 만한 것으로, 경구적인 문체로 일상적 경험들에 대해 썼다(서간체 문학). 예를 들어 한 친구가 에밀리와 여동생에게 한꺼번에 편지 1통만을 보내 그녀의 기분을 상하게 했을 때, 그녀는 대답하기를 "자두 하나가 둘다의 것이면 자두가 아니다.
나는 예의가 있어서 과육을 먹을 수 없고 씨는 좋아하지 않으니까."라고 했다. 1870년경에는 흰 옷만 입었으며, 집으로 찾아온 사람도 거의 만나지 않았는데, 이 은둔생활을 충실한 여동생이 잘 지켜주었다. 1870년 8월에 애머스트를 방문한 히긴슨은 당시의 에밀리를 빨간머리에 흰 옷을 입은 "소박한 작은 여자"라고 말했으며, 그에게 인사로 꽃을 주었고 "부드럽고 놀란 듯이 숨죽인 아이같은 목소리"로 말했다고 묘사했다.
말년에는 그녀가 사랑하던 많은 사람들이 죽어 슬프게 지냈다.
특히 가장 슬펐던 1874년의 아버지의 죽음과 1883년의 여덟살 난 조카 길버트의 죽음에 대해, 가장 뛰어난 몇 통의 편지를 썼다. 1878년 바울스, 1881년 히긴슨, 1882년 워즈워스와 어머니, 1884년 오티스 P. 로드, 1885년 헬렌 헌트 잭슨이 각각 죽어 슬퍼했다. 에밀리가 1878년경에 사랑한 로드는 메사추세츠 주 세일럼 출신의 판사로서 아버지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로드에게 보낸 여러 편지에는 온화하고 성숙한 사랑이 담겨 있으며, 로드도 그 사랑에 응답했다. 한편 잭슨은 시인이자 인기 소설가였는데, 에밀리의 시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출판하도록 설득했었다.
그녀가 죽은 직후 동생 래비니아는 시를 출판하기로 마음먹었다.
1890년 T.W. 히긴슨과 메이블 루미스 토드가 편집한 〈에밀리 디킨슨 시집 Poems by Emily Dickinson〉이 선보였다. 이밖에도 주로 메이블 루미스 토드, 마사 디킨슨 비안치(에밀리의 조카딸)와 밀리슨트 토드 빙엄이 편집한 시집들이 1891~1957년에 출판되었고, 1955년에는 토머스 H. 존슨이 현존하는 모든 시들과 여러 이본(異本)들을 편집했다.
디킨슨의 시에서 친밀하고 익숙한 언어로 표현된 주제들은 사랑·죽음·자연 등이다.
자신이 태어나고 죽은 집에서 조용히 지낸 은둔생활과 간결한 시에 담긴 깊이와 강렬함 사이의 대조는 그녀의 성격과 개인적인 인간관계에 대해 많은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1775편의 많은 시들과 비슷한 수에 달하는 편지들을 통해 본 에밀리는 열정적이고 재치가 있는 여성이며, 시뿐만 아니라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과 자신의 삶 전체를 예술로 승화시킨 철저한 예술가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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