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 샬롯 브론티 -
인생은 사람들 말처럼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랍니다.
아침에 내린 비는
화창한 오후를 선물하지요.
때론 어두운 구름이 끼지만
모두 금방 지나갑니다.
소나기가 와서 장미가 핀다면
소나기 내리는 것을 슬퍼할 필요가 없지요.
인생의 즐거운 순간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고마운 맘으로 그 시간을 즐기세요.
가끔 죽음이 끼어들어
제일 좋은 이를 데려간다 한들 어때요.
슬픔이 승리하여
희망을 짓누르는 것 같으면 또 어때요.
희망은 금빛 날개를 가지고 있답니다.
그 금빛 날개는 어느 순간에도
우리가 잘 버티도록 도와 주지요.
씩씩하게, 그리고 두려움 없이
힘든 날들을 견뎌내세요.
영광스럽게, 그리고 늠름하게,
용기는 절망을 이겨낼 수 있답니다.
**********
샬럿 브론테
다른 표기 언어 브론테 , Charlotte Brontë
출생 | 1816. 4. 21, 잉글랜드 요크셔 손턴 |
---|---|
사망 | 1855. 3. 31, 요크셔 호어스 |
국적 | 영국 |
요약 : 브론테는 <제인 에어>(1847)의 작가로 유명하다. 이 소설은 자연스러운 욕구와 사회적 여건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 여성의 감동적인 이야기로, 당시 영국사회 여성의 위치를 정확하게 그려냈다.
목차
개요
〈제인 에어 Jane Eyre:An Autobiography〉(1847)로 유명하다.
이 소설은 자연스러운 욕구와 사회적 여건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 여성의 감동적인 이야기로, 빅토리아조 소설에 새로운 사실성을 부여했다. 그밖에 〈셜리 Shirley:A Tale〉(1849)·〈빌렛 Villette〉(1853) 등을 썼다.
생애
아버지 패트릭 브론테는 아일랜드 출신의 영국국교회 사제였으며, 원래의 성(姓)인 브런티가 평범하다고 브론테로 바꾸었다.
몇몇 교구를 거친 뒤 아내 마리아 브랜월 브론테와 6명의 어린 자녀를 데리고 1820년에 요크셔 황무지에 있는 호어스로 이사했다. 이사한 뒤 곧 아내와 큰 아이 둘(마리아와 엘리자베스)이 죽어 아버지가 세 딸(샬럿, 에밀리, 앤)과 외아들 패트릭 브랜월을 돌보아야 했다. 콘월에 살던 이모 엘리자베스 브랜월이 호어스에 와서 아이들의 양육을 도와주었다.
언니들이 죽기 전인 1824년 샬럿과 에밀리는 언니들과 함께 랭커셔 커크비론즈데일 근처의 코원브리지에 있는, 성직자 딸들이 다니는 학교에 다녔다. 이 학교는 수업료는 쌌으나, 음식이 엉망이었고 규율이 엄격했다. 샬럿은 뒷날 〈제인 에어〉에서 이 학교를 로드로 재현해 약간 과장되게 비난했다. 교장 윌리엄 카루스 윌슨 목사는 소설 속에 네이어미 브로클허스트로 나온다.
샬럿과 에밀리는 1825년 6월에 집으로 돌아와 5년여 동안 집에서 공부하고 놀았다.
아이들은 서로 낭만적인 이야기를 써서 들려주거나 기발한 놀이를 생각해내어 집안이나 황량한 황무지에서 놀곤 했다. 1831년 샬럿은 허더스필드 근처 로헤드에 있는 '미스 울러 학교'에 들어가 1년 동안 다녔으며, 그곳에서 사귄 친구 몇 명과 오랫동안 우정을 나누었다. 친구 엘런 너시와는 죽을 때까지 친하게 지냈으며, 서로 주고받은 편지는 당시 그녀의 삶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준다. 1832년 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집으로 왔지만, 1835년 로헤드에 다시 교사로 초빙되어 갔다.
브랜월은 화가 지망생이었으므로 샬럿은 가족의 생계를 도울 만한 일이 필요했다. 그러나 교사직은 불가피한 제한이 따라서 샬럿에게는 맞지 않았다. 그녀는 건강이 나빠지고 우울증까지 얻어 1838년 여름에 일을 그만두었다. 1839년 샬럿은 친구 오빠인 헨리 너시 목사의 청혼을 받았고, 또 몇 달 뒤에 다른 목사로부터 청혼을 받았으나 모두 거절했다. 자신의 재능을 실생활에서 최대한 활용하려는 야심과 브랜월이 진 빚을 갚아야 하는 필요성에 이끌려 로던에 있는 어퍼우드하우스의 화이트가(家)에서 몇 개월간 가정교사 생활을 했다.
한편 브랜월은 글과 그림에 재능이 많고, 고전 지식도 많았으며, 사교성도 있어서 그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러나 그는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고 의지가 약하며 무절제했다. 그는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알코올과 마약에 중독되었다.
한편 자매들은 이모의 자금지원을 받아 학교를 열 계획을 세우고, 1842년 2월 샬럿과 에밀리는 프랑스어 실력을 향상하고 독일어를 배우기 위해 브뤼셀에 갔다. 그곳 학교의 훌륭한 선생으로, 사람 보는 눈이 뛰어났던 콩스탕틴 에제가 두 자매의 재능을 알아차렸다.
철두철미한 프로테스탄트였던 샬럿은 학교의 가톨릭 분위기를 경멸하긴 했지만 행복했다. 이모가 죽어 잠시 집으로 돌아온 뒤 교생 자격으로 브뤼셀에 다시 갔으며 1843년을 그곳에서 외롭고 우울하게 지냈다. 친구들은 모두 브뤼셀을 떠났고, 에제의 부인도 그녀를 시샘했던 것 같다. 그녀가 에제에게 가졌던 애정의 성격과 그녀가 자신의 마음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었다. 샬럿은 에제의 지성에 각별히 흥미를 느꼈고, 에제도 그녀의 잠재력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일깨워주려고 애썼다.
에제의 강한 개성은 그녀의 기질과 감정에 잘 맞았다. 그녀는 그에게 순수하지만 열렬한 애정을 보였으나 그는 그것을 억누르려고 했다. 샬럿이 고향에 돌아와서 보낸 편지는 연애편지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오해받을 우려가 있다고 에제가 말한 뒤부터 그녀는 편지를 보내지 않고 조용히 자신의 감정을 정리했다. 에제와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하든 간에 브뤼셀에서의 경험은 그녀의 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녀는 엄격한 문학교육을 받았으며,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알게 되었고, 훗날 소설을 쓰는 데 필요한 여러 자료를 모았다.
한편 시력을 잃게 된 아버지를 혼자 지내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샬럿은 1844년 오래 전부터 꿈꾸어온 대로 교구 목사관 안에 학교를 열려고 했다. 학교 편람이 나왔으나 멀리 떨어진 호어스까지 올 학생은 없었다.
1845년 가을 샬럿은 에밀리가 쓴 시 몇 편을 우연히 보고 자신의 작품과 함께 엮어 〈커러, 엘리스, 액턴 벨의 시집 Poems by Currer, Ellis and Acton Bell〉(1846)을 출판했다. 가명을 쓴 이유는 비밀을 지키고 여자들의 작품에 대한 불평등한 비평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책은 자비로 출판되었는데, 비평가의 관심을 거의 끌지 못했으며 단 2부만 팔렸다. 그러나 일단 길이 열렸으므로 그들은 그전에 쓴 소설 3편을 발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샬럿은 〈교수 The Professor:A Tale〉를 발표하지 못했으나, 시력 교정을 받으러 간 아버지와 함께 맨체스터에 머물던 1846년 8월에 쓰기 시작한 〈제인 에어〉를 거의 끝마친 상태였다. 〈교수〉의 출판을 거절했던 스미스엘더출판사가 더 흥미롭고 사건이 많은 이 3권짜리 소설을 출판할 의사를 보이자 샬럿은 작품을 완성하자마자 즉시 출판사에 넘겼다.
이 소설은 완성된 뒤 8주도 채 되기 전에 출판되어(1847. 10. 16) 그해에 다른 자매들이 출판한 책보다 훨씬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뒤 몇 달간은 그녀에게 슬픈 일이 연달아 일어났다. 브랜월이 1848년 9월, 에밀리가 12월, 그리고 앤이 1849년 5월에 차례로 죽었다. 샬럿은 텅 빈 목사관에서 〈셜리〉를 완성하여 10월에 발표했다. 그뒤 몇 년 동안 샬럿은 출판업자 조지 스미스와 그의 어머니의 초청으로 런던에 3번 다녀왔다.
그곳에서 새커리를 비롯한 남녀 문인들을 만났으며, 조지 리치먼드는 그녀의 초상화도 그렸다. 호반 지역에도 2번 가서 1851년 작가 해리엇 마티노와 함께 지냈으며, 스코틀랜드에도 가고, 맨체스터에서 살던 개스켈 여사를 방문하고 그녀를 호어스로 초대하기도 했다. 1853년 1월에 〈빌렛〉이 나왔다. 한편 1851년 스미스엘더출판사 직원인 제임스 테일러로부터 청혼을 받았으나 이번에도 거절했으며, 또한 아버지의 부목사로서 아일랜드인인 아서 벨 니콜스로부터 4번째 청혼을 받았다.
샬럿이 아버지의 동의를 얻는 데는 몇 달이 걸렸으나, 그들은 1854년 6월 29일 호어스 교회에서 결혼했다. 아일랜드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뒤 호어스로 돌아와 남편 니콜스는 그곳에서 계속 아버지의 부목사로 일했다. 니콜스는 그녀의 지적인 생활을 함께 나눌 수 없었지만, 샬럿은 사랑받는 아내 역할을 하는 것이 행복했다.
새 소설 〈엠마 Emma〉를 쓰기 시작했는데, 그중 몇 페이지가 현재까지 남아 있다. 샬럿은 임신한 상태에서 병이 겹쳐 1855년에 죽었고, 니콜스는 1861년에 패트릭 브론테가 죽을 때까지 호어스에 있다가 아일랜드로 돌아갔다.
브론테에 대한 평가
첫 소설 〈교수〉(1857)는 소녀시절의 경험을 차분하게 되새긴 작품이다.
브뤼셀에 있는 한 영국인 가정교사의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되어 있으며, 그곳에서 겪은 샬럿의 경험에 바탕을 두었지만 주인공의 성(性)과 역할은 바뀌어 있다. 에밀리가 쓴 〈폭풍의 언덕 Wuthering Heights〉을 읽으면서 자신의 재능에 따라 이러한 한정된 자기 수양을 변형시킬 필요를 느꼈다.
〈제인 에어〉에는 적나라하고 직접적인 문구와 풍자가 많긴 하지만, 이 소설이 성공한 이유는 사고하고 느낄 줄 아는 여성이 사랑을 열망하면서도 강한 자존심과 도덕적인 확신을 위해 사랑을 포기할 수 있다는 힘찬 확신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여자 가정교사가 낭만적인 주인을 사랑하게 된다는 줄거리는 멜로 드라마식의 유치한 감이 있고 고상한 수사적 문장이 현대의 취향에는 맞지 않지만 샬럿은 여전히 고정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소설의 부제가 '자서전'(An Autobiography)이고 1인칭 시점으로 씌어져 있지만, 로드에 대한 제인의 인상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샬럿의 자서전이 아니다.
개인적 경험은 광범위한 여러 자료와 섞여 있으며, 신데렐라 주제는 새뮤얼 리처드슨의 〈파멜라 Pamela〉에서 따온 것 같다. 사건의 동기는 주도면밀하게 짜여 있으며, 게이츠헤드홀로 돌아오는 장면 같은 삽화적인 부분도 제인의 성격을 충분히 표현하고 사랑·독립·용서라는 3가지 도덕적 주제를 펼치기 위해 필요한 부분으로 보인다.
샬럿은 〈셜리〉를 '사실적이고 냉정하며 내용이 충실한' 작품으로 만들려고 마음 먹고 감상과 우연을 피하고 시야를 넓혔다.
영국 국민 전체를 다룬 소설가 마리아 에지워스와 스콧의 작품을 제외하면 〈셜리〉는 영어로 된 최초의 지방소설이다. 이 소설에서는 요크셔 사람들, 교회, 성당, 그녀의 아버지가 젊었을 때의 섬유노동자와 기계 파괴자들, 강인하지만 다소 적개심이 담긴 남녀평등론 등 지방적인 소재를 치밀하게 다루었다.
〈빌렛〉은 〈셜리〉와 달리 브뤼셀이 배경이며 1인칭 시점을 취한다. 인물과 사건은 에제 기숙학교에 다니는 다양한 사람들과 그들의 생활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사랑이 이루어져 행복한 여자와, 마음은 정열적이지만 상대가 없는 인물을 대조적으로 다루고 있다.
샬럿 소설의 영향은 여러 해 동안 최고로 꼽혀왔던 〈폭풍의 언덕〉에 비해 당대에는 훨씬 더 즉각 나타났다. 로맨스와 풍자적 사실주의를 결합한 그녀의 소설양식은 1세기 동안 거의 모든 여류소설가 사이에서 유행했다. 어린아이나 젊은 여성의 감수성을 통해 이야기를 들려주는 혁신적인 문학양식은 효과를 거두어 디킨스도 이 양식을 따랐다.
서정성도 뛰어나 낭만적인 시에 대한 재능이 소설에 가미되었으며, 여성의 관점에서 사랑을 그림으로써 빅토리아조의 인습적인 사고를 흔들어놓았다.
그녀의 양면적인 본성은 완전히 조화를 이룬 적이 없었고, 이것은 버지니아 울프가 '수평면의 갑작스런 움직임'이라고 부른 효과를 낳았다. 샬럿의 위대성은 독자들로 하여금 작품 속에 진지하게 몰입하게 하여 전달되도록 한 데 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내 인생의 한편의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안에 찾던 것이 있었네 / 수잔 폴리스 슈츠 (0) | 2018.01.13 |
---|---|
당신이 날 사랑해햐 한다면 / 브라우닝 (0) | 2018.01.12 |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난대도 / 파슨즈 (0) | 2018.01.10 |
당신을 만나기 전에는 / 핀 (0) | 2018.01.09 |
선물 / 기욤 아폴리네르 (0) | 2018.0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