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
기욤 아폴리네르
하늘엔 천사와 또 천사가 있다.
어떤 천사는 장교복을 입고
어떤 천사는 요리사 차림을 하고
또 다른 천사는 노래를 한다.
하늘빛 제복 입은 장교님,
성탄절 지나 따스한 봄이 오면
당신은 빛나는 태양의 훈장을 달게 되겠지요.
아, 눈이 내린다.
내려라 눈아.
사랑하는 이가 어찌하여
내 품 안에서 멀여졌는지
비 내리는 소리를 엿들어 보아라.
******
미라보 다리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우리 둘의 사랑을 나는 회상해야 하는가
기쁨은 언제나 괴로움 뒤에 왔었지
밤이 오고 종이 울리고
나날은 가버리고 나는 남는다.
손을 맞잡고 마주 보고 있자
영원한 시선들에 지쳐버린 물결이
우리 팔의 다리 아래로 지나가는 동안
밤이 오고 종이 울리고
나날은 가버리고 나는 남는다.
사랑은 가버린다 저 흐르는 물처럼
사랑은 가버리고 삶은 얼마나 느린가
희망은 또 얼마나 사나운가
밤이 오고 종이 울리고
나날은 가버리고 나는 남는다.
나날이 가버리고 주일들이 지나가
지나간 시간도 사랑들도 되돌아오지 않고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른다.
밤이 오고 종이 울리고
나날은 가버리고 나는 남는다.
*****
사랑받지 못한 애인의 노래
권태로운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슬픔에 젖은 여인입니다.
슬픔에 젖은 여인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불행을 겪고 있는 여인입니다.
불행을 겪고 있는 여인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병을 앓는 여인입니다.
병을 앓는 여인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버림 받은 여인입니다.
버림 받은 여인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쫒겨난 여인입니다.
쫒겨난 여인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죽은 여인입니다.
죽은 여인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잊혀진 여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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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
요약:20세기초에 프랑스 문단과 예술계에서 번창한 모든 아방가르드 운동에 참가하고 시를 새로운 분야로 안내한 프랑스 시인이다.
폴란드 망명자인 어머니와 이탈리아 장교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자신의 혈통을 비밀에 붙였다.
비교적 자유롭게 자란 그는 20세 때 파리로 가서 자유분방한 생활을 즐겼다. 1901년 독일에서 보낸 몇 개월은 그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고, 이때의 경험은 자신의 시적 재능을 깨닫는 데 도움을 주었다. 특히 라인 지방의 매력은 언제나 그의 추억에 남아 있었고, 이 지방의 숲과 전설에 깃든 아름다움은 나중에 그의 시에서 되살아났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국 아가씨인 애니 플레이든을 사랑하게 된 사건이었다.
그는 런던까지 이 여인을 따라갔지만, 끝내 사랑을 얻지 못했다. 이 낭만적인 실연에서 영감을 얻어 유명한 시 〈사랑받지 못한 애인의 노래 Chanson du malaimé〉를 썼다. 파리로 돌아온 뒤, 아폴리네르는 문필가들이 자주 드나드는 카페의 단골 손님이자 작가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또한 나중에 유명해진 몇몇 젊은 화가들, 즉 모리스 드 블라맹크, 앙드레 드랭, 라울 뒤피, 파블로 피카소 등과 친구가 되었다.
그는 앙리 루소의 그림과 아프리카 조각을 동시대인에게 소개했으며, 피카소와 함께 그림만이 아니라 문학에서도 입체파 미학의 근본 원리를 밝히려고 애썼다. 그는 1913년에 〈입체파 화가들 Peintures cubistes〉을 발표했다.
그의 처녀작 〈타락한 마술사 L'Enchanteur pourrissant〉(1909)는 마술사 메를랭과 요정 비비안이 나누는 이상야릇한 대화를 시적 산문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듬해 그는 기발하고 기상천외한 작품들로 이루어진 생기 넘치는 단편집을 〈이교 창시자 회사 L'Hérésiarque et Cie〉(1910)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이어서 격식을 차린 4행련구로 씌어진 〈동물지 Le Bestiaire〉(1911)가 나왔다. 그러나 그의 대표작은 〈알코올 Alcools〉(1913, 영어판 1964)이다.
이 시집에서 그는 자신의 모든 경험을 상상 속에서 다시 체험하면서 때로는 12음절 보격을 가진 정상적인 연으로, 때로는 짧은 무운 시행으로 그 경험을 표현했고, 구두점은 전혀 찍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아폴리네르는 입대하여(1914) 보병 소위가 되었고, 1916년에 머리를 다쳤다. 제대한 그는 파리로 돌아와 상징주의적 소설인 〈살해된 시인 Le Poète assassiné〉(1916)을 발표했고, 그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진 3번째 시집 〈칼리그람 Calligrammes〉(1918)을 발표했다.
이 시집을 지배하는 것은 전쟁의 이미지와 새로운 연애에 대한 그의 집착이다. 전쟁터에서 입은 상처로 쇠약해진 그는 유행성 독감에 걸려 죽었다.
희곡 〈티레시아스의 유방 Les Mamelles de Tirésias〉은 그가 죽기 전해에 상연되었다(1917). 그는 이 희곡을 초현실주의 작품이라고 불렀는데, 초현실주의라는 용어가 쓰인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프랑수아 풀랭크는 이 경희곡을 희가극으로 각색했다(초연 1947). 아폴리네르는 시에서 대담하고 무모한 기법을 실험했다.
그의 〈칼리그람〉은 독창적인 활자 배열 덕분에 시이면서 동시에 도안이다. 좀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아폴리네르는 언어의 색다른 조합으로 놀라움이나 경악의 효과를 내고자 했고, 이 때문에 그를 초현실주의의 선구자라고 부를 수 있다. 다음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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